“그림의 떡”이라는, 사람에 대하여서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비유를 바라보며 곰곰 생각합니다.

오늘날, 가사 노동이 한 사람이 해내기엔, 특히나 아이가 있고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경우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 많은 여성들은 ‘어머니 혹은 가족, 친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일과 육아 등을 병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런 가사노동의 가격을 낮추면 해결 되는 일일까요? 왜 가사노동이 몹시 중요한 일인 걸 모두가 알면서도 그건 한사코 ‘싼 값’이어야만 하는 걸까요? 가사노동은 지금까지처럼 그저 ‘누군가’에게 헐값에 떠맡겨버리면 좋을 일일까요? 

오늘 편지에서는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빌 브라이슨), <삼순이>(정찬일), <사랑의 노동>(매들린 번팅) 등을 지팡이 삼아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이 책에는 아주 다양하고 신기한 이야기들, 발명품들이 가득합니다만 -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근대의 발명품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안일(가사노동)’과 ‘하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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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집안일’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위생 및 영양, 양육 등의 기준은 불과 1~2세기 전에는 당연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연구자님들 가운데서 1년에 한번 목욕을 하거나, 청소를 1년에 두번만 하는 경우는 없으실테니까요. 이 책에 소개된 18세기의 한 여성처럼 쥐가 들끓는 침대에서 베개 대신 슬리퍼를 한아름 품에 안고 잠드는 분도 아마도(?) 없을테고요.(쥐가 시끄럽게 굴 때마다 슬리퍼를 던져 쫓아버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날은 아이를 열 명 낳아 그중 3~4명이 죽는 것이 당연하지도 않습니다. 예방의학, 공중위생 등의 덕도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부지런히 영양을 신경쓰고 청결을 유지한 덕분이죠. 이에 대해 루스 코완은 가사노동자들은 “깨끗한 욕조, 화장실, 세면대”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생산해왔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높은 위생 등 기준을 유지하기 위한 ‘촘촘한 가사일’이 탄생한 것, 그것도 상류층 뿐 아니라 중류층 이하에게까지 보편화 된 것은 분명 ‘대단한 근대의 발명’이라고 할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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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근대에 탄생한 까다롭고 복잡한 ‘집안일’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은, ‘하인’의 존재였습니다.

빌 브라이슨은 이 책에서 심지어 근대를 “하인의 시대!”라고 정의할 정돈데요.

갸우뚱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체 왜 하인이 ‘근대의 발명품’이야?

(원래 옛날부터 종, 노예 등은 있지 않았나?)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근대 이후 노예, 예속된 상태가 아닌 ‘일반 자유민’이 이렇게 많이 다른 사람의 지붕 아래서 일했던 적이 없다는 건데요.

원래는 종, 하인을 두는 건 소수 상류층의 특권이었지만, 18~20세기 초반엔 아무리 여유가 많지 않은 중류층이라고 하더라도 하인을 3~4명 두는 것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마치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 냉장고, 세탁기, 식탁 등을 으레 갖추어 두듯요.

확실히 오늘날 돈으로 환산해보니 감이 딱 잡히는 느낌인데요. 오늘날 연봉 3000만원인 사람이, 따로 가사를 위해 ‘전일제 하인’을 구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테니까요. 실제 당시 얼마나 많은 가정이 하녀를 고용하고 있었는지 어림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녀는 이미 세탁기, 가스레인지 등 ‘편리한 주방의 친구’들이 발명된 한참 뒤인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기계가 ‘편리하다’해도 당연히 사람이 대신해주는 쪽이 훨씬 안락하니까요.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특히 상류층일수록 더더욱) ‘기본적인 자기 일’조차도 할 줄 몰랐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fig.3>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는 1960년대 식모살이를 했던 봉순이 언니에 대한 소설입니다. 당시 무작정 상경한 도시 빈민 어린 여성들은 식모살이 외에는 거의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습니다. (왼쪽) 1976년 공급된 잠실주공아파트 5단지(35평형) 평면도. 가운데 가정부방이 따로 표시되어있습니다. / 동아일보(링크),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정찬일이 쓴 <삼순이: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은 우리나라의 ‘식모’ 등 근현대 시기 여성들이 주로 종사했던 직업의 역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인데요.

위의 <거의 모든 사생활에 대한 역사> 속 영국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노비 세습제 폐지 이후(고종,1886) 일제시대, 6.25 전쟁 등을 거쳐 ‘식모’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발명’되고 또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얼마나 식모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당시의 기사 대목들입니다.

이쯤에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런 시대는 왜 끝났을까?’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여성들에게 있어, 밥 굶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방책이 식모살이 뿐이었던 거죠.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식모의 공급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많은 가정은 싼 값에도 마구 식모들을 여럿 부릴 수 있게 됐죠. (심지어 싼값조차 아니라 무임금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하녀들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했고요. 이처럼 하녀들의 불만이 높다보니 고용주 입장에서도 “안락해야 할 집이 가시방석 같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고요 - 이는 대체로 자업자득이었습니다만, 중요한 건 ‘저임금 노동’과 모멸적 태도가 - 찻잔 안에 앉아 발장구를 치면 제 몸까지 흔들리듯 - 고용주에게도 좋지 않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공간 내에선요.

일상화된 차별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적 효과를 미쳤을리 없습니다. 심지어 1956년의 한 언론사 설문조사에서는 ‘식모나 사동보다 강아지를 더 우대하는 것은 정당하다’라는 질문에 무려 45%나 되는 대학생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이후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식모’라는 단어 대신 ‘가정부(家政婦)’ 파출부 등의 명칭으로 대체되고 월급이 높아지자, 자연스레 ‘하녀의 시대’ - 인간 아래 인간 으로 운영, 유지되어온 시대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자는 데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