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첫 차 수업 |  금진방

더 맛있는 차를 우릴 날을 기대하며

차 우리는 법을 처음 배울 때 내가 어떤 방식과 사고를 통해 깨치고 이해했는지 그 흐름을 짧게나마 소개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이 과정을 한 시간 정도만 집중해서 주의 깊게 따라 하다 보면 기본적인 차 우리는 방법 정도는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차를 우릴 때 필요한 기본 요소를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을 추려보면 찻잎, 물, 다구, 사람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찻잎과 다구, 물은 누구나 알듯 차를 마시려면 꼭 있어야 하는 필수 요소다.

사람은 다소 가변성이 있는 요소다. 차를 우리는 사람에 따라 같은 찻잎과 다구, 물을 사용하더라도 차의 맛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가장 맛이 좋은 차는 사춘기 전 아이들이 우리는 차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잡념이 없이 차를 우리기 때문이다. 무협지나 무협 영화를 보면 산속에서 수행하는 대사 옆에 다동(茶童)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우린 차가 맛이 좋기 때문에 이런 다동들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한다. 요즘 그렇게 했다가는 아동학대로 처벌을 받겠지만 당시에는 다동들이 우린 차를 으뜸으로 쳤다. 이는 차를 우리는 사람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 이제 잡설은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차를 우리는 순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차 우리는 순서 ]


   1. 차호를 100도로 끓인 물로 덥힌다.
   2. 찻잎을 꺼내어 감상하고 다구를 준비한다.
   3. 물을 끓이는 동안에 차호에 찻잎을 두고 향을 맡는다.
   4. 첫 물을 우려내 세차(차의 불순물을 세척하는 것와 룬차(차를 풀어주는 것)를 한다. 이 과정은 메마른 찻잎이 잘 우려나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보이차에서는 세차라는 용어를 쓰고, 우롱차에서는 룬차라는 용어를 쓴다.
   5. 그런 다음 물을 따라내고 열후(뜨거울 때 맡는 향)를 하며 또 향을 즐긴다.
   6. 물을 넣고 우린다.
   7. 차를 우리는 횟수는 차의 성숙도와 발효도에 따라 정한다.
   8. 찻잎이 식었을 때 차호를 가지고 냉후(식었을 때 맡는 향)를 하며 향을 즐긴다.
    
차를 우릴 때 기억해 두면 좋은 기본 공식이 하나 있다. 근의 공식이나 삼각함수를 처음 배울 때처럼 일단 외워두면 나중에 이해가 될 때가 있으니 꼭 외워두기를 권한다.

‘여린 잎은 낮은 온도에서, 성숙한 잎은 높은 온도에서, 발효도가 낮으면 낮은 온도에서, 높으면 높은 온도에서.’

이것이 기본 공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찻잎의 상태를 보고 차를 우리는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 넓다.
찻물의 온도는 녹차나 여린 싹으로 만든 차는 섭씨 70~85도 정도가 적당하고, 청차나 홍차, 흑차 등 발효도가 높은 차는 찻물의 온도가 더 높아도 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작고 여린 잎은 좀 덜 뜨겁게, 거친 잎은 팔팔 끓는 물로 끓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정도의 요령만 익혀놓아도 차를 우릴 때의 두려움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내가 사무실에서 보이 숙차를 먹는 것 역시 이 기본 공식에 따른다.

일하다 보면 차에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차가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다. 녹차를 이렇게 우렸다면 차를 버리고 새로 우리는 게 나을 정도로 쓴맛이 난다. 대신 흑차 같은 경우 1아 5엽·6엽(대여섯 번째 잎)까지도 따서 만드는데 이런 차는 보리차 끓이듯이 주전자에 넣고 팔팔 끓여 먹어도 된다. 내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해 길게 우려도 못 먹을 정도로 쓴 맛을 내지 않는다.

초보자들이 차를 마시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물과 찻잎의 비율이다. “차 하나 우리는 데 뭐가 그리 까다로워?” 하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차는 편하게 마시면 된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대지만, 그래도 모든 것에는 따라야 할 법칙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와인을 머그컵에 따라 마시고 위스키를 종이컵에 따라 마시는 데 동의할 애주가가 있을까? 이건 누가 생각해도 잘못된 방식이다. 술은 각각의 향과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잔을 선택해 마셔야 맛을 제대로 느끼고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법칙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 낸 최선의 방법. 그것을 배우고 따르다 보면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_ 물과 찻잎의 비율
이제 물과 찻잎의 비율에 대해 알아보자. 보이차는 40cc 기준 1g을 준비하면 된다. 120cc짜리 차호를 사용한다면 3g의 차를 우려야 한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120cc 차호에 많은 양의 차를 넣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물 120cc에 3g의 차를 넣고 여러 차례 우리는 것이 낫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찻잎의 등급에 따라 포차(泡茶·차를 우리는 과정) 시간이 달라진다. 보이차는 특급과 1~9등급으로 찻잎을 구분한다. 특급이 가장 작은 잎이고 숫자가 커질수록 크고 거친 잎이다. 보통 특급과 1~2등급 찻잎만으로는 보이차를 만들지 않지만, 간혹 중국에서는 싹으로 고급 보이차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도식화해서 차 우리는 시간을 설명해보겠다. 정리하자면, 특급~2등급의 어린잎은 7초, 3~4등급은 15초, 6등급은 20초 안팎, 7~8등급은 30초다. 여린 잎일수록 차가 잘 우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짧게 한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찻잎의 양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이제 차의 종류에 따라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할 차례다. 누구나 처음에는 여기에 대해 아예 감이 없기 때문에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할 지를 모른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가장 일반적인 비율을 소개해 본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차의 종류로 대략 나눠 설명하자면 녹차, 홍차, 백차, 황차는 대체로 찻잎과 물의 비율이 1:50이다. 숙성도가 높은 청차, 흑차는 찻잎과 물의 비율이 1:20 정도로 찻잎의 양을 많이 잡는다. 이처럼 찻잎을 다른 차들보다 많이 투차하는 이유는 청차는 향기를 즐기는 차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찻잎 양을 많이 잡으면 향을 쫙 뽑아낼 수 있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흑차는 차 나뭇가지에서 위로부터 1아 5엽·6엽까지 채엽해 사용하기 때문에 찻잎을 많이 넣어야 더 맛있게 우릴 수 있다. 내 기준으로는 150cc에 7~8g 정도를 넣는다.

 _ 차 우리는 시간

차를 우리는 시간도 차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차를 처음 마실 때 차가 맛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차를 우리는 시간을 너무 길게 잡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차는 쓰다’라는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차는 오래 우릴 수록 쓰고 떫은 맛을 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에서 많이 마시는 녹차는 더더욱 그렇다.

차를 우리는 횟수가 증가 할수록 우리는 시간을 늘려 주어야 한다. 청차의 경우, 처음 우려 내고 2, 3, 4번째 우릴 때는 횟수 당 15초씩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다.

팁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평소 자신이 맛있게 마시는 찻물 색을 기억해 두라는 것. 차를 우리다 보면 회사에서 급히 찾는다든지, 아이가 부른다든지 등 각종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차를 오랜 시간 우려 버렸다면, 물을 더 부어 기억해 두었던 찻물 색으로 농도를 맞추면 어느 정도는 맛을 복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복구 프로그램이 그렇듯 완벽한 복구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상당히 효과는 있는 편이다.


_ 차 우리는 횟수

마지막으로 차를 우리는 횟수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딱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초보자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발효도에 따라 녹차는 우릴 수 있는 횟수가 적고, 발효도가 높고 성숙한 잎을 쓰는 청차와 흑차는 우릴 수 있는 횟수가 많다.

보통 녹차는 3~4회, 청차와 흑차는 7~8회를 우린다. 백차, 황차, 홍차는 잎의 성숙도를 봐서 우리는 횟수를 결정하는데 마시다 보면 차 맛이 약해져 찻잎이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차를 더 우릴 수 있는지 더 이상은 우릴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간단한 판별법이 있는데, 건조된 잎이 쫙 펴지면 더는 우려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차를 우리면서 잎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 대홍포红袍(우롱차의 한 종류)는 잎이 다 펴지지 않아도 차가 더 우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모든 공식에는 예외가 있듯 차에도 예외가 있는 것이다.

앞서 나온 공식들을 기억해 둔다면 찻잎과 다구를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약간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문 분야에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말을 자주 쓴다. 차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초급 과정을 마쳤으니 이제 슬슬 조금 더 욕심을 내 볼 때가 온 것이다. 단순히 ‘마실 만한 차를 우리는 것’과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이는 기사를 쓰는 것과 이치가 같다. 그럴싸한 기사를 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5년 정도 언론사에서 일하면 그런 기사는 하루 10개라도 ‘양산’해 낼 수 있다. 반대로 정말 좋은 기사를 쓰기는 쉽지 않다. 취재원을 상대하는 법과 기사를 작성하는 글 솜씨, 현장 분위기를 읽어내는 감각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차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기부터 탄탄히 닦고 많이 우려 봐야 차의 참맛을 끌어낼 수 있다. 천리 길도 첫 걸음부터다. 지금 당장 수납장으로 가보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차가 우두커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꺼내서 우려 보자. 첫 작품은 물론 쓰겠지만, 우리고 우리고 또 우리다 보면 그럴싸한 차를 마시게 될 날이 올 테니까.

차를 사랑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차를 마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차를 권한다. 대륙의 식탁 베이징을 맛보다 중국의 맛을 썼다. 미식가로도 유명한 그의 인스타그램 @gold_awesome에는 차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 이야기가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 1일 3매 |  최갑수

문득 생각나는 사람

새벽에 일어나 문득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이 아마 가장 그리운 사람이 아닐까요. 오늘은 시와 산문을 같이 보내드립니다.


   창가에 누군가의 얼굴이 있다


   기차를 타고 백예린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


   기차는 노을 속으로 달려간다

   기차는 사라지기 위해 간다

   그게 기차의 인생이다


   창에 어떤 얼굴이 비치며 빠르게 스친다

  내가 알던 얼굴이고 만나러 가던 얼굴이고 잊으려 하던 얼굴이다

   그리워하던 얼굴이다


   한참 멀리 있던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가까이 와 있다

   가을의 노을 앞에서 그걸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기차를 타고 가는 길

  철길은 끝이 나고 기차는 호흡처럼 희미하게 멈출 것인데

   그게 기차의 운명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노을 속으로 점점 희미해지는 기차를 타고

   창으로 스치며 사라지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입술 밖으로 나온 사랑한다는 말은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당신을 향해 흩어지지 말았으면


집을 떠나온 지 20년이 됐다. 아주 멀리 와서 새로운 집을 지었다. 두 집 사이에 500킬로미터의 거리가 있다. 자주 가지 못한다. 가끔 오며 가는 바람에 안부를 전해 듣는 게 다다.


500킬로미터 밖의 집에 노모가 살고 있다. 벽돌로 지은 이층집인데 이층 베란다에서 보는 새벽이 아주 푸르렀다. 들판 너머 다가오는 저녁은 더없이 붉은 노을과 함께 오곤 했다. 이 새벽과 저녁 사이에서 글을 쓰고 살다가 집을 떠나왔다. 떠나온 지가 20년이 됐는데, 아이가 셋인 거다.


가끔 노모를 찾는다. 노모는 다리가 아파 내가 살던 방이 있는 이층에는 오르지 못하고 일층의 방에서 항아리처럼 살고 있다. 항아리는 다 내주고 퍼주어서 속이 텅텅 비었다. 속은 어둡고 쓸쓸하다. 항아리 속에 봄의 생기도 있었고, 푸르게 반짝이던 여름의 감나무 잎도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깊게 비어 있어 아무리 들여다보려고 해도 까마득하기만 해서, 내 마음이 검고 먹먹할 때가 많다. 


항아리에 무얼 채워야 할까, 채울 수나 있을까.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우리가 함께 살았던 푸른 새벽과 붉은 노을의 저녁에 대해 말해보는데, 내 목소리만 크게 울린다.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Words 


원하는 것을 원하는 순간에 다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지루한 인생일 거야. - alone&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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