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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님! ‘목요 팩플’ 인터뷰입니다.
창업, 보통 사람은 한 번 결심하기도 쉽지 않은 이 일을 두세 번 잇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창업한 회사를 엑시트(상장이나 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한 후 다시 창업에 나서는 '연쇄창업가'입니다. 보통 이들은 돈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발견했거나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어 또 나섰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겐 성공과 실패란 어떤 의미일까요?  
박수련 기자가 한국의 대표적인 연쇄창업가이자 엔젤투자자인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를 만나 물어봤습니다. 그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새로 도전했다기에, 이 사람은 정말 실패가 두렵지 않은지 궁금했다는데요. 답을 들었을까요? 인터뷰 함께 보러 가시죠! 

2021.10.14 #154
Today's Interview
“연쇄창업가 노정석, 그는 왜 AI 뷰티에 꽂혔나”
장병규, 신중호, 노정석. 
KAIST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검색엔진 ‘첫눈’(네이버가 2006년 인수)의 초기 멤버들. 그러나 이후의 길은 제각각이었다. 네오위즈 이후 첫눈을 연쇄 창업한 장병규는 2007년 게임회사(크래프톤, 옛 블루홀)를 또 창업, 오랜 담금질 끝에 배틀그라운드로 다시 성공 신화를 썼다. 네이버에 뿌리를 내린 신중호는 ‘라인의 아버지’로 네이버-라인 글로벌 사업의 핵심 임원의 길을 걷는 중이다. 

그럼 대학시절 포항공대 전산망을 마비시킨 해커 노정석은? 선배들의 ‘첫눈’을 뛰쳐 나와 자기 회사를 차린 그는 그 회사(태터앤컴퍼니)를 3년 만에 구글에 매각했다. 2008년 구글이 인수한 아시아 최초의 스타트업이란 기록도 남겼다. 이때가 그의 두번째 엑시트. 이후로도 노정석은 한 차례 더 엑시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장병규 등과 함께 국내 대표 연쇄창업가(serial entrepreneur)이자 엔젤투자자(극초기 스타트업에 종잣돈 투자)로 꼽힌다. 

그런 노정석이 최근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보안 기술, 인터넷 콘텐츠, 모바일 광고, 가상현실(VR)에 이은 도전은, 뜻밖에도 뷰티다. AI 기반 화장품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한다. IT업계 '창업의 정석'이  전통 제조업인 뷰티에서 어떤 기회를 발견한 걸까. 팩플은 노정석(45) 비팩토리 대표를 지난달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한 번, 이후 화상회의로 한 번 더 만났다. 

왜 뷰티인가. 이전 창업과 너무 다른데.
“구글에 엑시트한 후 2년간 구글 본사에서 일하면서 삶의 아젠다를 찾았다. 휴먼 롱제비티(human longevity), 건강한 노화다. 실리콘밸리에서 가만 보니까 에릭 슈미트, 제프 베이조스, 피터 틸… 유명한 그쪽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도전하는 게 있더라. ‘영생의 꿈’이다. 아프기 싫고 늙기 싫다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 지 깨달았다.”

거기에 사업 기회가 많다는 깨달음인가?
“계기가 더 있었다. 몇 년 전 중국 상하이에 살면서 온 가족이 미세먼지로 정말 힘들었다. 직접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관련 스타트업에도 투자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 소프트웨어로 먹고 살았는데, 육체라는 하드웨어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실감했다. 또 아이 키우며 살다보니, 가상 세계에서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아 돈 버는 사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프라인 세상에 경험할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런 꿈이라면 바이오, 생명공학 창업을 해야하지 않나.
“현재는 내가 당장 생명공학 회사를 창업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뷰티는 바이오로 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괜찮다. 소비자 인터넷 시장에 대한 경험과 소프트웨어를 뷰티에 접목하면, 업을 혁신할 수 있다. 장기적으론, 화장품도 질환을 미리 관리하는 예방의학처럼 될 거라고 보기 때문에.”

화장품 시장을 AI로 혁신한다? 개인 맞춤형 화장품을 의미하나.
“맞춤형 화장품이라 해도 ‘구입후 끝’이라면 혁신이 아니다. 우린 개인 취향과 상황에 맞는 비스포커블 화장품을 소량 제작하고,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을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바꾸려고 한다. 개인에 필요한 성분의 화장품을, 딱 필요한 양 만큼, 제때에 공급할 수 있게 전 과정을 데이터로 추적하고 서비스할 인프라를 만들겠다.” 

화장품과 소프트웨어의 결합? 원료 물질은 그대로 아닌가.  
“그대로 맞다. 그런데 ‘전기차를 두고 타이어로 굴러가는데, 소프트웨어랑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나. 전기차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이고, 그 위의 데이터다. 화장품도 소비자가 확인한 효능과 만족도, 개인화된 제품의 성분 함량 정보 등을 관리할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산업이 된다. 그 데이터를 얻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소비자에게 더 나은 제품을 계속 업데이트 해주는 ‘서비스로서 화장품’(Beauty as a Service)이 뷰티의 미래다.” 

데이터가 핵심인데, 어떻게 수집하나
“소비자가 입력하는 데이터도 있을 거고, 언젠가 데이터 수집기능이 있는 용기를 통해 얻을 수도 있다. 구체적으론 소비자가 기본제품을 써보고, 원하는 성분 함량을 조절해 주문하면 화장품 프린터(AI 로봇)가 생산하고, 데이터는 누적 관리된다. 이달 중 스킨케어 제품을 출시하고 본격적으로 서비스 기반을 만들겠다.” 

비팩토리의 기초화장품 브랜드 kyyb의 에센스 '유시파이 앰플'. [사진 비팩토리]
이 모델로 기존 시장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대량생산되는 기존 화장품은 ‘유통기한 3년’ 글씨 박히고 나면 끝이다. 기업은 3년 안에 어떻게든 물건 팔면 되고, 새 브랜드를 계속 만든다. 이미 물건 산 소비자는 방치되고, 필요한  화장품 조합은 알아서 찾아야 한다. 광고 모델 보고 화장품 사기도 하고. 이게 소비자에게 필요한 뷰티일까. 기존 업계에선 ‘그게 업의 특징인데, 니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더라. 그런데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서 스마트폰이 나왔나. 소프트웨어가 디카를, 아이팟을 대체했다.”

시장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던데.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시간은 걸릴 만큼 걸릴 거라고. 뷰티도 그렇다. 대량생산 체제의 골리앗은 강력하다. 소비자 인식도 쉽게 안 바뀐다. 그렇지만 저는 도전하고 싶다. 될 때까지. 이 회사는 안 팔고 내가 계속 할 거다.(웃음)” 

노정석 대표가 최근 수년간 집중적으로 공부한 건 AI다. 인공지능은 휴먼 롱제비티와 함께 그가 정한 인생의 테마. 전세계 AI 석학 강의를 찾아듣고 논문 읽던 그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파일 하나를 공개했다. 창업계에서 화제를 모은 그 파일엔 모든 문제를 AI로 푸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 
 
테슬라를 AI 비즈니스 모델의 최고 사례로 꼽는 이유는.
“테슬라 초기부터 지켜봤다. 언젠가부터 이 회사는 AI 자체가 아닌, AI 비즈니스 구조에 집중했다.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갖췄고, 그게 돌아갈 서비스 기반을 만들었다. 이 구조가 잘 돌아가면 AI 기술은 그 위에 얹기만 하면 된다. 구글 딥마인드나 오픈AI가 도전하는 알고리즘의 혁신? 그런 건 테슬라에 필요 없다. 그런 인공지능은 곧 API 형태로 쓸 수 있겠고, 기업은 자기 사업에 필요한 AI 모델을 잘 짜깁기 해 쓰면 된다.”

AI가 크게 바꿀 산업은 또 어디일까.
바이오다. 지금이야 바이오 산업에 뛰어들려면 생명공학 박사 학위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10년 내 그 장벽이 무너질 것이다. 마치 1980~90년대에 보통 사람은 도저히 당시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해할 수 없어 코딩할 엄두도 못냈지만, 그새 프로그래밍 언어가 발전하면서 이젠 일반인도 공부하면 코딩할 수 있는 것처럼. 이게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기존 생명공학 지식이 소프트웨어로 쌓인다면 고교생도 신약개발 실험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2002년 카레이싱을 하던 노정석 대표. 
이번이 여섯번째 회사다. 왜 자꾸 창업을 하나. 
“스물여섯 살에 첫 엑시트를 한 후 열심히 놀아도 봤고, 글로벌 대기업도 다녀봤지만 뭘 해도 결국 다시 창업으로 돌아오곤 했다. 편하게 즐기는 삶이 나에겐 재미 없더라. 그런데 스타트업 역시 막상 창업하고 나면 별일이 다 생기는 사업이라,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 위험과 긴장 속에 있어야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카레이싱하고도 비슷하다.” 

카레이싱의 어떤 점이? 
압축된 경험. 1시간짜리 레이스에서 10년치 에너지를 다 쓰고 나온다. 카레이스는 0.001초로도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1초를 굉장히 잘게 나눠 쓰는 훈련을 한다. 앞차가 뱅뱅 돌고 있는 순간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1초후 나의 운명이 결정된다. 훈련이 잘 안돼 있으면 당황하고 브레이크 밟겠지만, 0.1초 안에 내게 주어진 옵션을 펼쳐놓고 잘 판단하면 위기를 넘기고, 0.1초를 아낄 길 수 있다. 이렇게 20바퀴, 40바퀴 돌고 나면 총 1초가 된다. 이런 순간 판단을 하는 동시에 이 운동의 역설을 관리해야한다. 가장 빠르다고 느낄 때 사실 가장 느리고, 물처럼 자연스러운 기분일 때 자동차는 가장 빨리 달린다. 사업도 매번 힘든 선택을 하면서, 다음으로 또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승선이 있다.”

그는 첫번째 엑시트 이후 1년간 프로 카레이서로 활동했다. IT업계에는 그처럼 카레이싱을 좋아하는 창업가 그룹이 꽤 있다. 이들이 만든  카레이싱 동호회엔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투자총괄,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이두희 멋쟁이사자처럼 대표, 이정웅 선데이토즈 창업자 등도 참여하고 있다.

사업할 때 분야를 정하는 기준이 있는지.
“세 가지다. 첫째, 한국적인 강점이 있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가. 둘째, 시장 사이즈가 큰데 소프트웨어가 더해지면 파워가 더 커지는가.  셋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닿아 있는가. 세상이 그 방향으로 간다는 확신이 들면 미리 거기 가서 신념을 투입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업한다.” 

노정석 대표는 꾸준히 엔젤투자를 해왔다. 티몬, 미미박스, 렌딧, 어웨어, 다노 등등. 그는 “엑시트를 몇 번 먼저 해봤다는 이유로 뒤에 서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만 해선 살아있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같이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배울 수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 투자하나.
“똑똑하면서도 자기 관점이 있는 ‘똑똑한 또라이’다. 박지웅 패스트파이브 대표같은 사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자기 관점을 가졌는지, 내단(內丹)이 있는지를 본다. 그게 없는 창업자는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고 유행을 쫓아간다. 그리고 똑똑한 또라이 옆에 4~5명의 팀이 있다면, 여긴 절대 안 망한다. 그런 팀엔 내가 졸라서 투자하겠다고, 같이 하자고 한다. 그들을 가장 먼저 믿어주고 싶다. 스타트업은 ‘안 된다’는 소릴 더 많이 들으니까.” 

노정석의 비팩토리를 믿어준 이도 있었나.  
“있다. 업계 대다수가 안될 거라고 했지만 ‘코스맥스’는 달랐다. 세계 최대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이다. 비팩토리 초기에 AI 로봇으로 누구나 원하는 색조 화장품을 찍어낼 수 있는 화장품 프린터를 구상했는데, 이 프린터의 시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잉크’(화장품 반재료)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소프트웨어에 따라 로봇이 움직여 화장품을 뽑아내야 하는데, 대부분 화장품 업체에선 거절 당했다. 그러다 코스맥스를 만나면서 일이 풀렸다. 그렇게 확보한 반재료로 6개월 간 시제품을 만들고나니, 코스맥스에서도 '설마 이걸 진짜 해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더라.(웃음) 코스맥스는 비팩토리 투자자이자 제조 파트너이고, 나는 코스맥스 디지털 고문을 함께 맡고 있다.”

연쇄창업가 노정석에게 성공이란 뭔가. 실패가 두렵지 않나. 
“어렸을 땐 ‘쟤보다는 부자 돼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거 없다. 누구와의 경쟁, 돈의 액수, 순위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더라. 지금 이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아무리 대단히 좋은 일이 생겨도,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그 다음날엔 다시 돌아와 일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2014년 그는 400억 규모로 회사(파이브락스)를 미국 모바일 광고회사에 매각한다고 발표한 직후 이렇게 말했었다. “실패는 과정이자 선(line), 성공은 결과이자 점(dot)이다. 긴 선 위에 점이 중간중간 나오는 것”이라고. 지금도 ‘선 위의 점’을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런 답이 왔다. “물론이다. 이젠 그 얘기를 아들에게도 한다. 어제의 성공에 취해 있으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으니, 다시 선 위로 돌아와야 한다고.”
오늘 '연쇄창업가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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