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Viides sukopolvi (Fifth Generation)>, 클래식 음악에도 잘 만든 음악 하나로 연금을 받은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 레터의 주인공인 시벨리우스! 👀 그가 작곡한 교향시 <핀란디아>는 핀란드 제2의 국가라 불릴 정도로 크게 사랑받았고, 핀란드 정부는 그 공을 기려서 평생 연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얀 눈이 떠오르는 핀란드, 핀란드에서 온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그의 대표작 <바이올린 협주곡>이 궁금하다면 서둘러 따라오세요! ABOUT Performance 💬: 바이올리니스트 Maxim Vengerov와 Daniel Barenboim 지휘의 Chicago Symphony Orchestra 연주로 만나보세요! 🗣 사운드클라우드 재생 버튼을 누르고 메일 어플로 돌아오면 음악과 함께 해설을 즐길 수 있답니다! 1865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시벨리우스는 5살부터 장난삼아 피아노를 치곤 했습니다. 7살 무렵부터는 숙모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9살부터 작곡을, 14살에는 바이올린을 공부했을 정도로 음악과 가깝게 지내던 시벨리우스는 뜻밖에도 법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는 가족의 권유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음악대학 수업을 많이 청강했던 그는 결국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음악원에 다시 입학했어요😂 시벨리우스는 독특한 관현악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관현악곡을 작곡할 때 다채로운 악기를 동원했던 동시대 작곡가들과 달리, 고전적이고 간소한 악기 편성만으로도 낭만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기에 이런 평을 받는 것 같아요. 하나 더!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라고 해요.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에 자국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에 한창이었고, 시벨리우스는 전통 선율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자국의 신화나 역사, 자연 등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기에 핀란드인의 애국심을 자극했죠 🙌🏼 시벨리우스는 왜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았을까? 👣 앞서 활발하게 작곡 활동을 펼친 시벨리우스를 살펴보았는데요, 그는 1930년을 기점으로 작곡활동을 멈춥니다. 그가 어떤 연유로 곡 쓰기를 중단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어요.
🤑: <핀란디아>로 큰 성공을 거두고 연금까지 받았잖아. 돈이 많으니까 더는 곡을 쓸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 아닐까? 😔: 아! 그런데 아까 “당시의 후기 낭만 작곡가들과 달리 다채로운 악기 사용을 하지 않았다”라는 설명이 있었잖아. 그런데 자신의 이런 특징이 당시의 다른 음악가에 비해 뒤처졌다고 느낀 거 아닐까? 자신감을 잃은 거지. 악평도 많았대. 😬: 아니야, 내가 파워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얘기할게. 시벨리우스가 귓병을 앓은 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변했대. 그런데 시벨리우스가 미국에서 인기 있었다고 하더라고. 내가 보기엔 엄청난 인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져서 숨은 거 같아. 물론 확실한 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유력한 가설로 위의 세 가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진실은 시벨리우스만이 알겠죠? 🤐 유명 작곡가라면 자연스레 그를 연구하고 비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시벨리우스는 이 둘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다른 작곡가 중 하나예요. 어떤 사람은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핀란드의 자연경관, 애국심, 문화적 정체성이 아름답다고 하였지만, 또 다른 비평가는 관현악곡에서 고전적인 악기 편성을 사용한 시벨리우스를 무의미하고 하찮다고 평가했죠. 심지어 라이보비츠는 그의 글에서 "시벨리우스는 세계 최악의 작곡가"라고 비판했습니다. 😍 뉴만 "이 음악은 페이지마다 색다른 사고방식, 색다른 삶의 방식, 색다른 풍경과 바다 경관을 불러일으킨다.” ↕️ 🤨 아도르노“동시대 유럽의 어떤 작곡 기술적 발전도 수용하지 않았고…. 그의 교향곡들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요소들과 비논리적이고 이해 불가능한 요소들을 결합했다.” ©️ KidTripster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시벨리우스가 이러한 평가에 상당히 마음 아파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청중’의 반응을 중요하게 생각한 작곡가 중 하나였어요. 다른 음악가들에게 조언해줄 때에도 “청중이 어떻게 들을지를 생각해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흠🤔 1930년 이후로 작곡을 하지 않은 이유가 '논쟁의 중심에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가설에 조금 힘이 실리나요?! 시벨리우스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 싶어 했고, 작곡가가 된 후에도 실내악단 단원으로 참여할 만큼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바이올린 곡이 유독 많아요. 그러나 협주곡 양식으로는 한 곡만 남겼는데요. 오늘 소개할 곡이 바로 단 하나뿐인✨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이 작품은 그가 38세 때인 1903년에 작곡되었고, 2년간의 퇴고를 거쳐 1905년에 우리가 지금 듣는 곡 형태로 완성되었어요. 그리고 그 해, 베를린에서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겸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초연되었답니다. 총 3악장으로 되어있는 이 곡의 1악장은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그 시작 부분은 어딘지 서늘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 북유럽 특유의 싸늘한 자연🌲을 잘 나타냈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세 개의 악장 중 1악장의 구성이 크고 내용이 풍부하여 곡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이어 나오는 2악장과 3악장이 결코 1악장보다 못한 것은 아닙니다. 2악장은 슬프고 목가적인 노래를 삽입하여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느린 악장 레퍼토리로 애용되고, 마지막 악장인 3악장은 춤곡🩰 을 연상하는 듯한 강한 리듬의 반복과 기교적인 연주의 결합으로 훨씬 극적인 효과를 주거든요! 시벨리우스가 귓병을 앓은 후에 작곡된 이 곡의 바이올린 소리는 칼날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곡을 듣고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핀란드의 추운 겨울 날씨가 떠오르나요?❄️ 음악에 대한 더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담은 글들이 매주 월요일 브런치와 웹사이트에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