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몰입 무해한 몰입
어른이 되고서는 고집쟁이를 찾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상이 다른 다수와 의견을 융합해 나아가며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사람에게 몰두와 고집은 아집으로 점쳐질 뿐이다. 그런데도 고집쟁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평범한 대중을 공략해야 하는 동네 가게에 다수 자리 잡았다. 타협보다는 몰입과 고민에 집중하며 또렷한 자신의 색을 판매한다. 조건 없는 몰입의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좋아해서”라고 답한다.
대부분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장소를 찾아 헤맬 때 우리는 기어코 꺾을 수 없는 고집을 고수하며 소비자를 상대하는 사장님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커피다. 홍대 권역에 자리 잡은 커피와 관련된 고집쟁이를 만나러 가는 첫날, 만만치 않은 이들과 대면할 것이라는 심증을 지울 수 없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미리 인터뷰를 약속한 카페에 첫발을 내딛고 우리가 왔음을 알렸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에 몰입해 있던 사장님께서는 이렇게 답했다. “아, 오늘이 목요일이었나요?” 그 순간, 앞으로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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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커피 한 잔
등장인물: 이규범, 김지석, 이상직, 조성호
로케이션: 도덕과 규범, 커피하우스 마이샤, 레코즈 커피, 후엘 투 고
타협력: 0.9 /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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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 너를 더 알아가고 싶어
: 도덕과 규범
침대를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집을 나서서 망설임 없이 도착한 동네 카페가 내어주는 커피 한 잔. 이 한 잔은 내 선택에 조금의 망설임도 끼워 넣지 않기 위해 섬세한 계산을 거친다. 그 첫 과정이 로스팅이다. (원산지에서 콩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커피는 생두가 지닌 향에서 이미 그 특성이 결정된다. 그대로 갈아서 먹으면 좋겠지만 곧바로 먹기에는 풋내가 강하고 향이 단조롭기에 생두에 열을 가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로스팅을 거친다.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카페 도덕과 규범의 이규범 사장은 커피콩이 지닌 오직 하나의 베스트 포인트를 고집하며 콩을 볶는다. “베스트 포인트는 무조건 하나예요! 콩을 일정 온도에 넣어서 볶고 잘 빼내면 끝나는 게 로스팅이지만, 1℃ 차이로 맛이 급변해요. 만약 170도부터 250도 사이에 콩을 넣을 수 있다고 치면 1℃ 차이로 다 해봐야 하죠. 다시 말하지만, 베스트 포인트는 무조건 하나거든요. 심지어 그 적정 값은 커피콩 마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경우의 수가 제곱으로 늘어나고 고민할 거리가 많죠.”
커피콩은 농산물이다. 아무리 완벽한 프로파일을 만들어도 해마다 수분함량과 같은 조건이 달라지기에 표준값을 맞힐 수가 없다. 이에 이규범 사장은 기계에 입력하는 수식을 만들기보다 문제를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운다. 그는 그렇게 백 번 할 것을 오십 번으로 줄이고 열 번 할 것을 다섯 번으로 줄인다. “공장에서 찍어 내는 표준값을 기계에 입력해 보통의 향을 추출할 수도 있어요. 저는 적어도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과물로 하고 싶지 않아요. 설령 그대로 하더라도 결과물이 똑같이 나올 리도 만무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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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더 나은 맛이란 대부분이 더 나은 향과 풍미를 상상한다. 이규범 사장은 이를 이렇게 고쳐 말한다. “로스팅은 더 나아진 맛, 또는 나만의 맛을 구현해내는 작업이 아니라 콩이 가진 고유한 향에 가장 근접한 값을 찾아내는 작업이에요” 콩이 가진 맛과 향을 손실 없이 최대한 1에 수렴하도록 구현해 내는 게 로스팅의 목표다. 커피콩에는 작은 결함이 조금만 있어도 맛이 이상하게 느껴지기에 이를 최대한 줄여서 볶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집대마왕 이규범 사장은 매 배치마다 커핑을 한 후 결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망설임 없이 폐기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갈수록 민감해져 콩의 고유한 맛에 도달하는 여정이 자꾸만 길어지지만, 그는 쉬는 날까지 반납해가며 기어코 타협하지 않는다. 결국 로스팅은 커피콩과 가장 친해지는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다. 조건 없는 부단한 노력에 감탄을 보이니 그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멋쩍어하며 “잘 하고 싶죠.”라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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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커피가 맛있어?
: 커피하우스 마이샤 coffee house maisha
맛있는 커피라는 말은 인제 미덥지 않다. 실상 한 잔을 마시며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요즘 내 혀는 1,500원짜리 메가 사이즈 커피에 절여져 있다. 커피를 빠른 뇌 회전을 위한 착화제 정도로 이용하니 이제는 약물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마포구 망원동에 자리 잡은 커피하우스 마이샤의 김지석 사장은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바꾼다.
카페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열을 착실히 맞춘 6개의 드리퍼와 이를 올려 둔 위압감 넘치는 단상이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 그는 마치 의식을 치르듯 단상 앞에 서서 진지하게 그리고 꽤 길게 드리퍼에 물줄기를 흘려보낸다. 그가 내린 커피의 맛은 깔끔하고, 풍부하며 스모키향이 난 동시에 과실의 산뜻함을 뿜어냈다. 커피가 어떠냐는 질문에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맛있다고 답할 수 있었다. “사실 커피가 맛있다는 기준은 모호해요. 향미뿐만이 아니라 분위기, 기분, 그리고 주변 냄새 등 많은 것이 작용하거든요. 커피는 혀뿐만이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죠. 저는 최선의 향을 연구하고 내드릴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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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아내는 진지함을 맹렬히 고집하는 그는 단순히 맛있다고 정의 내리지 않았고 편안한 공식과 타협하지도 않았다. 대표적으로 커피 하우스 마이샤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숯불로 콩을 볶은 숯불 배전 커피가 있다. 김지석 사장은 백탄이 된 사과나무 장작을 이용하여 오랜 시간 콩을 볶고 이를 커피 한 잔으로 낸다. 쉬운 방식으로 적당한 커피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는 최선의 향을 지긋하게 탐구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커피에도 정답이 없습니다. 반드시 써야 하는 그라인더나 머신, 추출법이 없어요. 본인이 커피를 내리는 장소의 기압이나 온도, 물의 맛 등 다양한 변수를 연구하고 수용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향을 뽑아내야 하죠.”
실제로 커피만큼 복잡한 풍미를 지닌 식품은 몇 없고 그 향은 환경과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고집대마왕 김지석 사장은 이러한 중요 가치와 기본 지식을 차치한 채 과도한 일반화를 강요하는 시장을 꼬집는다. “요즘의 커피는 좋은 장비와 수식으로 모든 것을 정량화해서 누가 내려도 적당한 맛을 내도록 유도해요. 그 방법을 통해 커피 추출은 균일하게 할 수 있겠지만, 덕분에 날아가는 60~70%의 향과 기계 낭비는 누구도 문제 삼지 않죠. 다른 환경마다 존재하는 변수를 연구해 보기도 전에 그렇게 통일을 해버려요. 그러면 생산자는 의미 없이 과한 돈을 들이고 소비자는 좋은 커피를 마실 기회를 잃게 되죠.” 그가 커피 한 잔에 쏟아내는 고집은 지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소비자에게 온전하게 대접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이 그가 몰두하는 동력이다. 빠른 속도로 소비자가 드나드는 6층짜리 규모의 대형 카페 바로 앞에서도 김지석 사장은 오늘도 여전히 진지하게 그리고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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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음악이 될 때
: 레코즈 커피 rekoz coffee
이규범 그리고 김지석 사장이 입을 모아 한 말이 있다. “최고의 커피는 좋은 기분으로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마시는 맛있는 한 잔이에요.” 커피는 마시는 것으로 끝을 맺을 수 없는 식품이다. 시각은 물론 청각까지 커피 한 잔에 관여한다. 더욱이 최근 카페라는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커피 한 잔을 돕는 요소는 나날이 발전한다. 그중 떼어놓을 수 없는 대표 요소가 음악이다.
근래에 음악은 카페 공간을 채우는 필수 배경이자 커피 한 잔을 돕는 기능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섬세하게 선택된 음악은 적당한 볼륨으로 타인의 음성을 차단하고 커피의 잔향을 은은하게 이어준다. 이제 음악 없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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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레코즈 커피는 음악과 커피의 조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반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 문턱을 넘으면 일반적인 카페에서는 느끼지 못한 음악과 음질이 귀를 때린다. 커피를 주문하고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카페에서 쉬이 볼 수 없던 음향 장비와 사장님의 고집이 묻어나는 대량의 레코드판이 눈을 사로잡는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제가 여태껏 해온 커피와 좋아하던 음악을 같이 했을 때 가게가 인위적이지 않고 멋지겠다고 생각했어요. 커피 한 잔을 팔더라도 운영하는 사람의 진심이 통해야 하잖아요? 겉만 화려하고 막상 파헤쳐 보니 속은 비어 있는 그런 곳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커피에 곁들이는 음악이 중요해진 요즘, 이용자들은 카페 음악에 섬세한 선택을 요구한다. 실제로 외국의 카페 브랜드는 오래전부터 음악을 정밀하게 선택하여 재생한다. 고집대마왕 이상직 사장은 작은 가게에서 혼자 일하면서도 LP와 CD, 그리고 스트리밍 등 여러 소스를 이용해 가게 분위기와 상황에 적절한 음악을 직접 선곡한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을 골라서 틀어요. 그냥 순전히 고집이죠. 내가 좋아하는 음악,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손님이 좋아할 음악을 트는 게 최우선이에요.”
레코즈 커피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모든 장르를 아우르지만 보통 재즈가 많다. 재즈는 낮은음과 높은음을 오가는 정도가 역동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깊은 몰입이 필요하지 않기에 커피를 마시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감각적으로는 들리지만, 감정적으로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재즈가 상대적으로 카페 분위기에 잘 맞아요. 모두가 편안히 들을 수 있거든요.” 이상하게도 이상직 사장이 내어 준 커피의 맛은 음악으로 설명하는 게 더 편안하다. 재즈 향을 한껏 품어 카페를 나서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잔향은 그의 고집이 잘 통했다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한껏 추위에 독이 오른 오늘, 이 공간에 한 명의 손님만 있다면 어떤 음악을 틀겠냐는 질문에 그는 고심하더니 한 곡을 조심스레 건넸다.
💿 Chet Baker & Paul Bley – If I Should Lose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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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카페가 있어?
: 후 엘 투고 huel to go
유동 인구가 폭발적인 역세권, 전 연령대가 오가는 거리, 직장인의 소비가 잦은 골목 등 많은 이가 돈을 벌기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상권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곳에는 많은 사람이 몰리고 경쟁이 짙어진다. 마포구 염리동의 카페 후엘 투 고는 이런 공식을 벗어나 좁은 골목에 뿌리를 내렸다. 작은 분식집을 지나서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골목을 걷다 보면 고집대마왕 조성호 사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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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사람이 동네 주민뿐인 이곳에 왜 자리를 잡았냐는 질문에 조성호 사장은 이렇게 답한다. “경쟁을 달가워하지 않아요. 제가 활발한 상권에 들어가서 커피를 잘 팔면 그 옆으로 더 저렴한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요. 서로 얻을 것 없는 경쟁이 시작되는 거죠. 굉장히 소모적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도시가 지닌 레이아웃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입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동네와 골목 상권의 활성화다. 검색과 발견이 손쉬워지고 대중의 소비 습관이 취향을 동반하기 시작하면서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곳에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등 공신은 골목에서 연구를 멈추지 않으며 성실하고 끈기 있게 소비자를 기다린 사장님이다.
“1호점인 후엘고 huelgo는 더 말도 안 되는 곳에 있어요. 언덕의 끝자락에 자리해 있죠. 감사하게도 처음과 달리 점점 많은 동네 단골분이 찾아주십니다. 외진 곳에서 커피를 판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맛은 당연히 수준급이어야 하고 이곳을 찾아와야 할 상징적인 메뉴도 있어야 해요. 그리고 성실해야 하죠. 꾸준하고 성실하게 문을 열고 진지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다 보면 동네 분들이 한 분, 두 분씩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해요. 궁금하신 거죠. 장사는 결국 사람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완벽한 상태를 꾸리고 성실하게 출근해야 하죠.”
후엘 투 고가 자리한 곳 정면에는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이 학교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 앞으로는 허리를 굽힌 할머니, 말 많은 꼬맹이가 이곳을 흘깃 보고는 지나친다. 동네에 있기에 느껴지는 분위기와 향취가 있다. 후엘 투 고에서 마신 커피는 동네의 아늑함을 가득 머금고 있어, 또 다른 향을 뿜어낸다. 커피는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 이라던 마이샤 김지석 사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후엘 투 고의 초록색은 앞에 보이는 학교와 같은 색이에요. 일부러 맞춰서 칠했죠. (웃음)” 외진 곳에서 동네의 색을 한 잔에 담아내는 조성호 사장은 무모한 것을 알면서도 동네 분들을 위한 커피를 내린다. 상권이 좋은 곳에서 반짝 잘 되는 것보다는 골목에서 서서히 잘 되어 오래 커피를 내리고 싶다는 그의 고집이 모두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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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파일Profile: 로스팅이 진행되는 동안 온도 상승, 또는 하강과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2) 커핑cupping: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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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박우진
인터뷰이ㅣ도덕과 규범 이규범 사장,
커피하우스 마이샤 김지석 사장,
레코즈 커피 이상직 사장,
후엘 투 고 조성호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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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ndgi@gmail.com
Local Stitch Content Team I Designer Minseok Kim I Editor Woojin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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