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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이 좋아서! |  박찬은

섬 백패킹을 하며 내 몸과 화해하다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여름, 나는 한 정형외과 주차장에서 핸들에 기댄 채 통곡하고 있었다. PT(Personal Traning)를 받는 4개월 동안 극도의 식단과 과한 운동으로 인한 무릎과 허리 부상, 갑상선과 호르몬 이상으로 바프(바디 프로필) 촬영을 불과 3주 남겨두고 “당장 운동을 중단할 것”이라는 의사의 지시를 들은 참이다. 족저근막염, 접촉성 피부염 등 생전 없던 질병들이 일 잘하는 저승사자처럼 착착 내 몸을 찾아왔다. 낮술까지 포함하면 주 8일 생명수처럼 마시던 술을 끊고 고구마만 먹으며 혹독하게 나를 밀어붙인 결과가 모두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멎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다음 스튜디오에 취소 전화를 걸고 무릎과 허리에 보호대를 착용한 채 홍성 남당항으로 훌쩍 떠났다. 캠핑이라도 가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다른 나무들과 간격을 두고 자란 탓에 SNS에서 ‘왕따 나무’로 불리는 소나무 아래가 홍성의 죽도 야영장을 찾은 내 목적이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한지라 일단 캠핑장 사장님과 암호명으로 접선을 한다. ‘지금 왕따 나무 아래 자리 있나요?’(나) ‘오늘 더워서 아무도 안 와요. 지금 오슈~’(사장님) 그렇게 친구 A와 난 더위라는 치트키로 인기 높은 왕따 나무 아래를 점유한다. 딸처럼 여기면 좀 싸게 주지 않을까 싶어 찾은 남당항 ‘딸부자수산’에서 생선회와 새우, 튀김을 사서 배에 오르니 거대한 트위스트 펌을 한 A와 무릎 보호대를 찬 채 거대한 배낭을 멘 나를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진다. 죽도는 고작 1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섬이었지만 착실한 선장님은 스피커로 선내 방송을 시작했다. “죽도를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천수만의 유일한 섬 죽도는 태양광, 풍력,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어 모든 전기 스스로 공급하는 에너지 자립섬, 탄소 배출 없는 무공해 섬입니다. 대나무섬 죽도에서 즐거운 추억 만들어 가십시오.”  

선착장에 도착해 다시 캠핑 배낭을 메고 700미터를 걸으니 야영장이다. 3개의 캠핑 데크와 매점, 개수대와 샤워실 뒤로 우리가 노린 SNS 속 왕따 나무가 서 있다. 그 뒤로 녹색 잔디가 덮인 무덤이 눈에 들어온다. ‘실례합니다. 조용히 쉬다 갈게요.’ 사이트 뒤 무덤을 향해 정중하게 목례를 하며 텐트와 야전침대를 편다. 사장님은 해변 노지라고 1만 원만 받았다. 가게로 얼음을 사러 갔지만 사장님이 없다. “내 지금 육지 나왔는데 한 시간이면 가니까 조금만 기다리소.” 얼음을 산 우리는 왕따 나무 아래에 앉아 맥주 캔을 땄다. 아, 이 얼마나 간만에 듣는 청명한 사운드인가. 캔맥주는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반 년쯤 냉장고에 들어있었지 않나 싶을 정도”라고 했던 맥주만큼 시원했다. 헤어진 연인 만나듯 맥주와 조우한 나는 격조했던 지난 4개월을 반추하며 얼음이 녹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갈급하게 맥주를 들이부었다. Fu*k the diet. Fu*k the 바디 프로필.


무인도를 연상시키는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남당항에서 사온 생선회 한 접시와 대하구이까지 꿀꺽하자 숨쉬기조차 거북해진 우리는 뒤뚱거리며 섬 트레킹에 나섰다. 다 둘러봐도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직경 1.2킬로미터의 섬은 전망쉼터를 중심으로 대나무가 빈틈 없이 빽빽하게 자생하고 있었다. 가히 ‘죽도(竹島)’답다. 둘레길을 걷다가 죽도의 얼굴인 팬더 가족과 사진도 찍고, 홍성을 대표하는 최영, 김좌진 장군의 기()도 받았다. 썰물이 되자 주변 무인도가 서로 연결됐다. 황금색 대나무숲, 녹색 잔디, 파란색 바다. 죽도에서의 트레킹은 컬러풀한 자연의 팝업 북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덥다. 배는 이미 꺼진 지 오래고 8월 더위에 당도 급격히 떨어졌다. 가게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섬이니까 맥심 커피 한 잔은 얻어 마실 수 있겠지?” 그러나 주민들은 밭에 나갔는지 죄다 빈집이다. 더위에 헐떡이던 A가 말한다. “언니, 구조 신호라도 할까요. 모래 위에 미키마우스 그려 놓으면 디즈니가 저작권 때문에 우리 찾아낼 거예요.” 정신이 멍해지는 더위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바프나 부상 따위의 생각은 어느새 잊혀졌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섬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캠핑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대하를 굽고 남은 새우 머리를 튀겨 다시 맥주를 곁들였다. 방울토마토 개수를 새고, 샐러드 속 옥수수까지 골라내던 트레이너의 활어 같은 몸이 갑자기 떠올랐다. 고개를 흔들어 그 얼굴을 지우고 야전침대에 누워 책을 펴 든다. 어느덧
탁 트인 바다 사이로 붉은 빛 서해의 명품 낙조가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이윽고 손톱 모양의 달이 떠올랐다. 어떤 시인이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라고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예쁜 초승달 당신이 못 보면 안 되는데. 함께가 아니라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 문을 열고 나가 예쁜 달을 눈에 담길 바라는 마음. 랜턴을 꺼도 밝았던 진안 운장산의 달무리, 은빛 억새와 나 말고는 아무 것도 없던 정선의 민둥산, 정읍의 흐드러지게 핀 꽃무릇이 떠오른다. 내 앞에 예쁘고 좋은 것이 흘러 넘쳐서, 그걸 보여주고 싶은 누군가가 생긴다면 그것이 사랑이겠지.  

 

다음 날 아침,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 민박집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잘 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차 안에서 꺽꺽거리며 울던 어제의 내가 생각났다. 운다고 요추 전방전위가 낫는 것도 아니고 하얗게 비어 버린 무릎 연골에 새 살이 차오르진 않는다. 코어 근육도 세우지 않은 채 주5일 6킬로미터 공복 유산소, 주 3일 웨이트를 하고, 안 좋은 자세와 피로 누적에도 불구하고 야근과 각종 모임으로 날 밀어붙였다. PT 4개월을 에두른 유일한 직설은 납작해진 배와 가늘어진 팔과 탄탄한 힙 사진을 SNS에 올리려던 내 얄팍한 목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닦는 난초 잎마냥 몸을 잘 보살피며 산다는 건 이토록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나는 그 키우기 쉽다는 스투키조차 죽여버리는 식물 연쇄살인범이 아니었던가. 죽도에서의 백패킹은 ‘바프 찍어야 되니까 먹지 말자’에서 ‘이렇게 먹고 건강하게 운동하자’로 바뀐 내 모토를 축하했던 캠핑이었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며 내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다짐을 하면서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하나 샀다. 차와 바이크가 없는 ‘에너지 자립섬’ 죽도에서 몸에 대한 강박에서 자립한 걸 자축하면서 말이다. ✉️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 1일 3매 | 최갑수

물음의 기차를 타고

일을 하다 보면 ‘본질’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본질이 중요하다. 본질을 알아야 한다 등. 저 역시 이 말을 가끔 사용합니다. 그런데 막상 “본질이 뭔가요?” 하고 물어 오면 쉽게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본질이란, ‘왜 나는 이 일을 하는 거지?’라고 묻는 질문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가 본질이라는 얘기죠. 제가 이십 년 넘게 이 바닥에서 일하며 목격하고 있는 건, 브랜딩도 좋고 전략도 좋지만 주어진 마감을 꾸역꾸역하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끝없이 던지더군요.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십 대와 삼십 대, 사십 대에 이 질문을 계속했고, 그 시기에 어울리는 답을 내렸던 것 같아요. 오십 대가 된 지금도 묻습니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여행과 글이 데려가는 내 삶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우리는 이 물음의 기차를 타고 끝없이 달려갑니다. 아득한 들판을 지나고 험준한 산맥을 통과하고 다리를 건너죠. 지치거나, 내려야 할 종착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땐 기차에서 잠시 내려서기도 합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났을 때에도 그러죠. 잠깐 머물다 다시 기차에 오를 때도 있고,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한동안 방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 어떤 여행을 하고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더 나아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고 싶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기차에 오르게 됐습니다. 여행과 글이 아니라 삶, 내 여행과 글은 결국 내 삶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내가 내리고 싶을 땐 언제든 내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탄 물음의 기차는 오늘도 어슴푸레한 새벽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저는 묻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내려야 할 곳은 어디인가. 창문에 어떤 남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자 편집자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Book |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

여행자메이 지음 | 16,800원 | 얼론북 펴냄
"이따금 죽고 싶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의 저자 여행자메이는 인기 유튜버이자 작가입니다. 반짝이던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우울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해일처럼 다가왔습니다. 


“나는 서른의 문턱에서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목적을 잃은 상실감, 대상이 불분명한 환멸감, 후회 섞인 자괴감……. 순서조차 알 수 없이 일순간 불어난 눈덩이는 채 대비할 새도 없이 나를 깔아뭉갰다.”

 

이 책에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느 서른 살의 솔직하고 용기 있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명상을 하며 자신의 진정한 참모습과 만나게 되고, 암벽 등반에 도전하며 실패를 이겨내는 힘을 기릅니다. 때로는 아로마 테라피를 하며 그가 지나온 여행의 기억을 그만의 방법으로 재생하고 간직하죠. 그리고 마침내 깨닫습니다. 자신의 구원자는 오직 자신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니, 나만 힘든 거야? 나만 아프고 못 버티겠는 거야?”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을 통해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겉보기엔 오늘을 사는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나 미래에 머무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말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 책 속으로 -


주변 누군가가 극단적인 수준의 우울을 겪고 있다면, 나는 내가 그러했듯 죽기 전까지 년만 하고 싶은 하며 돈이라도 써보라고, 기꺼이 그렇게 말해줄 것이다. 심장이 멈추었다면 갈비뼈가 부러질지언정 심폐소생술을 해주어야 하니까.

- p.62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픈 목을 잊은 명상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통증이 사라진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그것을 괴롭다고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통증이라 부르며 불편하다고 여겨 왔던 그것은, 그저 하나의 감각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감각과 반응의 연결고리를 깨뜨리면 이토록 평화로워지는구나, 일상 속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던 무수한 것들도 내가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않으면 그저 흘려보낼 있겠구나. 나는 사실을 몸으로 깨우쳤다.

- p.83

 

클라이밍의 본질은 수직의 벽에서 균형을 맞추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힘이 없어 하는 아냐. 균형을 맞추는 것뿐이지.”

- p.120


삶에는 분명 칸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칸을 허용해 주어야 새로운 무엇이 차오를 있으며, 설령 아무것도 차오르지 않더라도 자체로 온전한 쉼이 되어 삶의 균형을 이루어 것이다. 다른 색과 곱게 어우러진 하얀색 만다라처럼 말이다.

- p.135 


잎을 보면 언뜻 보기엔 똑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모두 달라. 특히 꽃술이 예뻐. 생김새가 얼마나 제각각인지 몰라. 내가 나이 이걸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 p.180


우리는 겉보기엔 오늘을 사는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나 미래에 머무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요.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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