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올모스트페이머스 #벨벳골드마인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님은 어떤 연예인을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람에게 푹 빠져서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촌각을 세우고 어떻게 하면 한 번이라도 그를 직접 볼 수 있을까 그가 가는 어드 곳이든 따라다닐 정도로요. 

좋아함의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군가의 팬이었던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팬과 연예인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입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나의 우상이 사실 내가 알던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성덕 (2021)
성공한 덕후, 성덕. 팬들에게 성덕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누구나 되고 싶은 그 무언가일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나아가서 그가 나를 알아볼 정도가 되면 팬을 넘어 성덕에 이르렀다고 칭하곤 하죠.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오세연 감독도 그랬습니다. 그녀는 10대 시절을 바쳐 한 연예인의 성덕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좋아했던 연예인은 정준영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라는 문구에 가슴 한 켠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던 건 저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때로는 닮고 싶었고, 삶의 어떤 힘든 순간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존재가 알고보니 범죄자였다는 이야기.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세연 감독은 그녀의 경험에서 시작해 그녀처럼 고통받고 있는 덕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습니다. 다큐멘터리는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는데 입소문을 타서 이후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마다 빠르게 표가 매진되고는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감독님이 유퀴즈에 출연하시기도 했네요.

감독 : 오세연
러닝타임 : 1시간 25분
Stream on 왓챠
올모스트 페이머스 (2000) 
그루피(groupie)라는 말을 아시나요? 저는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이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요, 영화에서 언급되는 뉘앙스 상 그다지 긍정적인 뜻을 가진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락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그들과 친분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록 밴드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6, 70년대에 만들어졌고 주로 소녀팬들, 그중에서도 록 밴드 멤버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고 지금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윌리암(패트릭 퓨짓)은 로큰롤에 푹 빠진 고등학생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에 대한 글을 쓰다 우연히 "스틸워터"라는 그룹의 투어에 함께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스틸워터의 열성팬 페니 레인(케이트 허드슨)을 만납니다. 자신은 그루피가 아니라는 페니. 하지만 그녀는 스틸워터의 기타리스트이자 유부남인 러셀(빌리 크루덥)과 심상치 않은 관계처럼 보이죠.

투어가 길어질수록 윌리엄은 혼란스러워집니다. 자신이 동경하던 록 밴드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투어에 함께하는 건 너무나도 즐겁고 신나지만 과연 그들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나의 스타, 나의 우상이 맞는지 영 알 수 없게 되어 버렸거든요.

감독 : 카메론 크로우
러닝타임 : 2시간 2분
Stream on 왓챠
벨벳 골드마인 (1998)
영화 『다크나이트』의 브루스웨인으로 크리스찬 베일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그는 록 밴드를 쫓아다니는 십 대 소년 아서를 연기했거든요. 그런데 그 록 밴드가 글램록 밴드라 아서의 차림새도 범상치 않습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1970년대 글램록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보위를 모델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에서 아서가 추종하는 인물인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바로 데이비드 보위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죠. 그러나 정작 데이비드 보위가 이 영화에 자신의 음악이 쓰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는 다른 밴드의 음악이나 영화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 쓰였습니다. 

영화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스타 커드 와일드(이완 맥그리거)는 이기 팝이 모델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이름과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자꾸만 커트 코베인이 생각났습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한참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지요. (영화는 70년대 영국이 주 배경입니다.)

감독 : 토드 헤인즈
러닝타임: 1시간 59분
Watch on 왓챠, 넷플릭스, 티빙
덧붙이는 이야기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장편소설

정세랑 작가의 글에는 건강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도 그래요. 소설은 거칠게 말해 판타지 같은 사랑이야기인데요, 책을 덮고 나면 따뜻함과 행복한 감정이 몽골몽골 피어오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마지막에 덧붙이는 까닭은 이 대책 없이 낙천적인 이야기에 더 이상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어버린 연예인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부분은 소설의 주인공 '한아'가 남자친구 '경민'과 나누는 대화 중에 있습니다. 한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말하는데요, 작가가 소설을 냈던 당시에는 굉장한 인기가도를 달렸던 그가 책이 출판되고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더 이상 대중매체에서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정세랑 작가는 10년 만에 소설을 고쳐 쓰면서 해당 연예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고른 연예인은 부디 책이 쇄를 거듭하는 시간 동안 아무 탈 없기를.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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