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티스트들에게 띄우는 딥한 러브레터

❇️저 멀리, 저 편 어딘가 휘두르고 부수고 있는 여자들

첫 편지는 역시 이 곡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Loner'의 뮤직비디오는 자유롭게 자기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한 썰을 풀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해준 아이템이기 때문이죠. 팬시한 세트 속에서 레트로 핀업걸로 셀프 포지셔닝을 한 칼리 우치스가 어둠을 액세서리로 두르고 노래를 부르는 풍경은 '도대체 이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들'에 대해 골몰하게 된 지점이었습니다. 음악 취향에 있어서만큼은 오픈 마인드를 잃지 않고 싶었건만, 언젠가부터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여성 아티스트의 곡들을 집착적으로 담아야 성에 차는 편협하기 그지없는 리스너가 되어버린 것은 훨씬 이전부터였고요. 대중들이 바라는 답을 성실하게 고민해낸 여자들이 족족 쟁취하곤 하는 성과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면서도, 어쩐지 제 플레이리스트 상위권에는 반대의 경향에 위치한 여자들의 트랙이 쌓여갔습니다.

세간의 기준에 다소 이상하거나 말거나, 기어이 하고 싶은 걸 해내고야 마는 그런 여자들.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입고 싶은 걸 입고, 찍고 싶은 걸 찍는 그 여자들이 휘두르는 모든 게 좋았습니다. 저는 마음대로 이입을 하고 대리만족을 하며 멋대로 살아버리고 싶었던 자아를 꺼내어 빚어 어느 평생우주에 쏘아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Loner' 뮤직비디오 속 어둠을 곁들여 더 빛이 나는 칼리의 레트로 핀업걸 자아처럼, 입고 싶은 걸 입고 밤 거리를 자유롭게 쏘다니고 있을 수도 있겠죠.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능귀 비치에서 죽은 해파리를 구경하며 작은 트럭을 끌고 솜사탕을 팔고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칼리가 만든 비디오의 몇몇 씬으로 제 비좁은 세계는 열아홉 시절의 꿈도 먹고 자라나 다채롭게 부풀었습니다. 둥실둥실 어딘가를 떠다니며 흘러다니고 있을테죠.

어떤 여성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인데 멀리에 있는 소시민 여성의 세상이 움직입니다. 반발짝, 때로는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의 둠칫거림일지라도 열 번 움직이면 세발자국 정도는 가겠지요.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는 여성 서사를 잘 읽어내기 위해선 읽고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성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법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영향받는다는 걸 느끼며 체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은 어떤 컨텐츠보다도 일상 속에 두기 좋으므로, 그저 자기 걸 하는 여성 아티스트의 곡을 최신 플레이리스트에 심는 것만으로 사랑은 시작될 수 있죠. 내 시간 한 귀퉁이에 어떤 여성의 에너지를 들이기로 한다는 사소하지만 애정어린 결정. 깊숙히, 넘실대며 치밀고 들어오는 낯선 여자들에게 깊이 마음 빼앗기는 짜릿한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하길 바라며 <멀리의 초록> 첫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 2021.12.24
멀리의 초록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전해주세요!
피드백 남기러 가기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