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편지를 씁니다.

최근 지인들과의 저녁 식사 중에 요즘의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한 걱정 섞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분이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흥미로운 관점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함의 정도를 뜻하는 개념으로,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이 세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즉 무질서로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역행하는 힘도 있습니다. 우주의 탄생, 별의 탄생,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 그리고 우리 삶의 우연한 만남들과 사랑 같은 것들 말이죠.

무질서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은 세상 속에서 소중한 것들에 주목하는 것. 제게 참 위안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최근 6개월 동안 제 삶에 혼란과 무질서함이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핑계로 글쓰기도 미뤄왔었고요 하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이 글쓰기가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붙잡는,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없던 8월을 뒤로하고 9월 초 세계경제포럼 Global Shapers Community Annual Curators Meeting에 참여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습니다. Global Shapers Community는 세계경제포럼의 2030 리더십 이니셔티브로,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이 모여 소셜 임팩트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입니다. 저는 서울 허브에 속해 있고, 올해 1년간 Curator(반장 같은 역할)를 맡게 되어, 전 세계 주요 도시의 Curator들이 모이는 Annual Curators Meeting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제네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좌석 앞 모니터에 뜨는 지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문뜩 제가 가보지 못한,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나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참 넓구나.’

제네바에 도착해 제일 처음으로 사귄 친구는 공항에서 만난 줄리엔입니다. 줄리엔은 아프리카의 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다시 동쪽으로 약 900km 떨어져 있는 섬나라 모리셔스의, 모리셔스에서 다시 동쪽으로 약 650km 떨어져 있는 작은 섬 로드리게스에서 온 친구입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또 다른 친구들, 이집트에서 온 노울과 캐나다에서 온 닉을 만났고, 함께 기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Are you also Shaper?”라는 물음과 인사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제네바에서의 잊을 수 없는 3박 4일이 시작되었습니다.

150개국에서 온 500명의 쉐이퍼들을 다 알아가기엔 3박 4일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아쉽게도 이야기를 못 나눠본 친구들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강력한 커뮤니티로 연결되었고, 단순 150, 500이라는 숫자들로는 그 다양성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커뮤니티를 경험한 우리는, 지구 위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그 연결성을 강하게 느끼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넓기도 한데, 참 좁기도 하구나.’

리더십과 소셜 임팩트에 대한 여러 세션들이 진행되면서 우리들의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고, 어쩌면 우리에겐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한 글로벌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이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 또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연결성에 대한 인식과 글로벌 리더십의 중요성과 부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생겨서였을까요, 아니면 이 커뮤니티와 함께라면 가능하겠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순간적 감정 때문이었을까요. 클라우스 슈밥 교수님(세계경제포럼과 Global Shapers Community 설립자)이 기후 위기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속으로 ‘2030년, 2050년이 지구에 중요한 마일스톤이 될 테고, 내 커리어에도 마찬가지 일 텐데, 그냥 나 하나 정도는 기후 위기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 사회 문제 해결로 커리어를 가도 괜찮겠다. 그렇게 하자.’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의에 찬 무거운 마음이라기보단 되려 편안한,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는 언제부턴가 계속 제 머릿속에 중요한 키워드로 막연히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어느 한 분과의 대화에서 ‘글로벌’의 의미가 조금 더 구체화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선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분야에서 선구자가 되려면 네 가지가 중요하다. 글로벌 빅픽처, 글로벌 네트워크, 나만의 인사이트와 로직, 그리고 용기. 나는 내 분야의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늘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나의 작은 인사이트와 로직으로 용기 연습을 하는 것이고, 또한 이를 계속하다 보면 나의 존재감 같은 게 살짝 생겨서 이게 글로벌 네크워크와 글로벌 빅픽처로 이어지더라.”

그 당시 ‘한 분야에서 선구자가 되기 위선 글로벌이 중요하다.’는 그의 메시지가 굉장히 와닿았고, 프랑스로의 유학을 갈팡질팡하던 그때에 이러한 의미 부여를 통해 마음을 정하곤 했었습니다. 이번에 제네바에서 경험한 글로벌 연결성과 글로벌 리더십의 중요성과 부재에 대한 인식은 2019년 때와는 또 다른 글로벌의 이유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고민은 저를 어디로 이끌어 줄까요.

한국에 돌아와서 작은 연습 삼아 제네바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기후, 불평등, 금융에 관련하여 세계경제포럼에 아티클을 게재했습니다. 한번 읽어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