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부가 살고 있는 서사집은 약간 남서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실에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해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옵니다. 동쪽에서 떠오른 해는 그 빛이 현관 유리창을 통해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고, 그 이후 낮을 통과하여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의 해는 거실 통창으로 그 빛의 궤적을 볼 수 있습니다. 흐린 날을 제외하곤 매일 반복되는 자연현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와 그 빛이 연출하는 하늘의 장관이 동일한 날은 하루도 없습니다. 매일 새로운 해요, 매일 새로운 햇빛의 향연입니다. 구름이 해를 가린 흐린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도 구름의 형상은 계속 새로워집니다. 어제와 똑같은 형상의 구름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 하늘의 해와 구름뿐이겠습니까. 마당에 심겨진 매화나무와 단풍나무도 매일 새롭고, 집 뒤 대나무숲의 바람소리와 새소리도 매순간 새롭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날은 날마다 새날이지만, 그 새날을 어제의 헌 날로 환칠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
|
|
[지금 이 책]
조선 상인들의 손으로 한글 성경이 번역되고 인쇄되어 전해지기까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부와의 왕래는 극히 제한되었고, 조선과 청나라를 잇는 고려문을 통해서만 국경을 넘는 일이 허용되었다.
1874년 무렵, 고려문으로 향한 의주 상인 백씨는 국제시장에서 양초를 팔고 있던 한 서양인을 만난다. 그의 이름은 존 로스. 거래를 위해 말을 건넸지만 흥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그는 백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사실 나는 양초를 파는 사람이 아니오.” “그럼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파는 사람이오?”
그러자 존 로스는 대답했다.
“나는 성경책을 파는 사람이라오.”
그날 고려문에서의 이 특별한 만남은, 금기로 여겨지던 성경이 조선에 스며드는 한 출발점이 되었다. 백씨를 통해 그의 아들 백홍준에게 한문 성경이 전해졌고, 백홍준은 말씀을 읽으며 신앙을 받아들였다. 세례를 받은 그는 훗날 한글 성경 번역에 참여하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여러 차례 국경을 넘어 한글 성경을 들여오려 애썼다.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말씀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된 한글 성경의 여정을 따라간다. 번역과 인쇄, 그리고 조선 땅으로 전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이면에 자리한 한국 근대사의 아픔과 신앙의 씨앗을 함께 조명한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조선과 국외 여러 지역에서 이어진 만남과 사건들은, 마침내 한글 성경 번역과 보급이라는 결실로 맺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선교사가 직접 발을 들이지 못한 땅에서도 말씀을 통해 믿음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 내며, 한글 성경이 단지 한 권의 번역서가 아니라 시대를 건너온 신앙의 증언임을 보여 준다.
다큐멘터리와 다양한 저서를 통해 믿음의 자취를 기록해 온 이원식 감독은, 이 놀라운 역사를 보다 친근하고 대중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독자는 한 편의 서사를 따라가듯, 오늘 우리가 읽는 한글 성경이 어떤 길을 지나 우리 손에 들리게 되었는지를 차근히 만나게 된다.
|
|
|
[읽기의 순간들]
송하은, 이화여대 교회사 박사과정생
2026년 새해의 정국은 유난히도 ‘신앙의 진정성’을 둘러싼 공적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른 시간으로 느껴졌다. 정교분리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 교회 세습 문제를 둘러싼 비판과 반박이 잇따르면서, 기독교 신앙은 더 이상 개인의 위안과 필요를 채우는 영역에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결국 우리는 신앙을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 차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때에 양현혜 교수의 〈한국 개신교 사상사〉 시리즈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오늘의 한국 교회를 역사적 연속성과 반복의 구조 속에 놓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태도로 이 시대를 건너야 하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신의 악단〉을 보았다면,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신앙’, ‘회심’, ‘자유와 복종’, ‘신앙과 이성’, ‘공적 책임’, ‘정교분리’, ‘전도’ 같은 키워드를 놓고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만약 기독교를 그저 삶의 필요를 채우는 유용한 종교로만 여겼다면, 영화의 주인공 교순이 회심 이후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찬양대 단원들의 생명을 살릴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순은 기독교를 “죽음을 이기고, 인간의 운명인 유한성을 넘어서는 ‘영원성’의 종교”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신앙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 반면 윤치호와 박인덕의 경우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그들은 기독교를 통해 조선의 문명화라는 과제, 혹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같은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저자는 이런 태도가 결국 ‘자기애의 신앙’으로 흘러가며, “신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로 축소될 위험을 낳는다고 말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윤치호적 심성에 더 가깝구나” 하는 불편한 자각을 여러 번 피하지 못했다. 양현혜 교수님은 교회사 수업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옷, 누구의 옷을 걸치고 있나? 남의 옷을 걸치고 억지로 내 것이라 우기고 있지는 않나?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남의 아버지 손을 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나님께 전화를 걸어 놓고, 자기 혼자 떠들고 떼쓰고, 자기 멋대로 결론까지 내려 버리는 건 아닌가?” 그 질문들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익숙해져 버린 기독교의 말과 행동, 언어와 사고방식을 다시 점검하고, 오염되고 오용된 것들이 있다면 용기 있게 고칠 때가 왔다. 한국 개신교 역사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건넨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한다. 읽는 동안 불편해질 수도 있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
|
|
[가까이 또 멀리]
만나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씨 뿌리고 추수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과 다른 나라가 있으며 그 나라가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또 만나를 내려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만나가 중요하냐, 그 나라 왕의 아들이 중요하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만 붙들고 예수님을 놓쳤습니다.
《호세아: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
|
|
|
새 책 나옵니다
𝓃𝑒𝓌 천종호 판사가 들려주는 십계명
앞서 저자는 ‘선, 정의, 법, 사랑’을 주제로 한 책들을 출간해 왔다. 십계명은 신학자가 아닌 법학자의 시선으로 성경을 다루고자 한 마지막 주제였다. 십계명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산상수훈의 말씀을 살피던 중, 마태복음 5장에 그동안 저자가 연구해 온 주제인 ‘선, 정의, 법, 사랑’이 압축되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을 바탕으로 십계명 해석에 관한 글과 정의와 사랑에 관한 글을 통합하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이 책은 법과 정의, 용서와 사랑의 개념, 그리고 그 상호 관계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토대로 십계명을 해석해 나간다.
|
|
|
홍성사 도서회원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글을 클릭해 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