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컬쳐75의 은영, 준영, 태현>
컬쳐75 인터뷰: 안산에서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해
* 인터뷰이: 김태현, 라은영, 이준영
* 인터뷰어 : 소똥, 혜진
* 인터뷰 편집: 소똥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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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오랫동안 안산과 아주 가까운 동네에 살았다4호선 오이도행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안산 땅을 밟을 수 있는 동네였다알게 모르게 4호선의 몸을 빌려 안산을 넘나들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조개구이와 해물칼국수를 먹기 위해 항상 오이도에 갔고당시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샴푸 맛의 향신료를 안산 다문화거리에서 먹었던 국수에서 처음 접하기도 했다. 2014년도에는 뜻하지 않게 304개의 우주를 떠나보내야 했고, 혹시 모를 기적만을 바라며 함께 촛불을 들었다. 남은 평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로 한 다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옆 동네에서 살며 안산을 넘나드는 동안, 그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던 이들이 존재했다
2003년부터 예술인으로 먹고살기 위한 고민과 실험을 이어온 은영,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도시보다 생명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문화기획으로 완전히 뛰어든 태현,
매년 열리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축제로만 끝나지 않고 일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준영.
 
안산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을 만났다. 오늘은 이들의 이야기를 빌려 안산의 구석구석을 넘나들었다. 앞으로 안산에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아른거릴 것만 같다.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태현
사회적협동조합 컬쳐752017년도 12월에 창립총회를 했어요. 창립총회를 하기까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있었어요. 안산에 서울예대라고 하는 예술 대학이 있어요. 근데 서울예대에서 열심히 예술을 공부한 학생들이 졸업하고 다 서울로 가더라고요. ‘졸업한 학생 중에 몇 명이라도 안산에 남아서 예술을 하면 좋겠다. 안산에 머무르면서 예술 할 수 있는, 지역 예술인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태현
저는 개인적으로 2005년도에 극단 걸판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고요. 2013년도에는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한 친구들 몇 명을 꼬셔서 새로운 극단을 만드는 걸 시도했는데. ! 이 친구들이 되게 순진하게 잘 넘어오더라고요. (웃음) 다른 데 못 가게 극단을 얼른 만들었어요. ‘동네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이야기로 극을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좋았어요. 안산에서 연극 하는 친구들 말고 시각 분야, 음악 분야로 예술을 하는 친구들도 있지 않을까? 살펴봤더니 있더라고요.
 
태현
또 한편으로는 청년 예술인 창업 공간조성을 안산시에 제안했어요. 이야기가 잘 되어서 월피동에 청년큐브 예대캠프라는 청년 예술인 특화 창업 공간이 생겼어요. 일반적으로는 청년 창업 공간을 만들 때, 문화예술 창업 공간을 특화시켜서 배치하기 어려운데 그걸 또 이뤄낸 거예요. 이렇게 해보니 청년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은영
저는 안산에서 2003년부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어요.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라고 하는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에 몸 담고 있고, ‘신나는 문화학교대표이기도 합니다. 컬쳐75에서는 현재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컬쳐75의 청년 예술인뿐만이 아니라, 많은 예술인이 예술 교육보다는 공연이나 작품 활동들을 많이 하세요. 꿈다락 사업 같은 경우는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라고 볼 수가 있잖아요. 이사장님이 함께 협력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주셔서 같이 꿈다락 사업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준영
저는 2019년에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판교로 넘어가서 게임 기획 쪽으로 일하다가, 다시 서울로 가서 문화기획 쪼금 하고, 패션 쪽에서도 일했어요.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즈음에 컬쳐75 조합원인 제 와이프가 컬쳐75 실무자 자리를 추천을 해줘서 현재는 컬쳐75 실무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 김태현 이사장님께서는 극단을 만들어 활동하시다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연극활동보다는 문화기획활동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시기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태현
2014년도에 저는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4월 말까지 공연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때 당시에는 날마다 안산에 사람들이 모여서 촛불을 들고 세월호 탑승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던 때였어요. 다들 저녁마다 안산문화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모이는데, 저는 무대에서 공연해야 했었죠. 무대에 계속 서 있는 게 힘들었어요. 공연 일정이 마무리된 후에는 저도 여기에 합류해서 시간을 보냈어요.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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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속으로 뛰어든 태현> 
👪 140명의 조합원이 컬쳐75의 큰 자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조합원 모두와 소통하며 협업하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140명과 손발을 맞추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요? 140명이 함께일 수 있는 구심점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태현
창립하고 가장 먼저 했던 사업이 예술인 기본소득에 관한 공론화였어요. 주변 예술인들이 열심히 예술 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요. 너무 속상해서 아잇 됐고! 기본 소득을 받으면서 같이 예술하자! 이러면서 기본소득 전문가도 초청해서 같이 토크를 했죠. 운이 좋게도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에 조금씩 정책화가 되어가는 과정들이 있었고, 작년 7월에 예술인 창작 수당 지급 조례가 경기도에 생겼어요. 금액이 많진 않지만요.
                                                
태현
정책적인 측면과 시설 인프라에 대한 기대를 통해 우리 조합원들이 컬쳐75로 모이게 만드는 게 있었는데, 사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잖아요. 실질적인 도움은 우리가 기획하는 여러 가지 사업들에 우리 조합원들을 섭외하는 거예요. 꾸준히 예술로서 일할 수 있는 일거리들을 제공하는 거죠. 한편으로는 참여하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분명히 있겠죠? 140명이니까? (웃음) 그분들은 예술인들이 지원받을 수 있을 만한 좋은 정보가 있으면 바로바로 카톡방에 공유해주세요. 공유해준 정보들로 도움을 받는 거죠.
 
소똥
카톡방의 역할이 생각보다 큰 것 같아요.
 
태현
맞아요. 맞아요.
 
소똥
은영님과 준영님이 느끼는 컬쳐75의 구심점 또는 컬쳐75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의 소회나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은영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예전에는 안산에서 문화예술기획 저희 신나는 문화학교가 탑이었거든요. (웃음) 세상은 이전보다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변화하는 지점들도 많이 생겨나고,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보다 굉장히 높아졌거든요? 이 부분을 기존의 단체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신나는 문화학교도 이런 변화 지점들을 좇아가지 못했어요. 컬처75 같은 경우는 젊은 청년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본인들의 관점으로 일을 추진력 있게 잘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신나는 문화학교가 어느 순간엔가 이렇게 뒤로 밀리고. (웃음)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이럴 수가...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세태라는 걸 인정하고, 같이 협업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잘 나누는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겸허하게... (웃음

<겸허하기로 마음먹은 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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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만 명의 안산시민 누구나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역에 정착하며 예술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는 가능할까요? 지금까지의 활동을 거치며 컬쳐75가 찾은 답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태현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형식적으로는 주말에 문화적으로 놀 수 있는 마당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안산 예술의전당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그 잔디밭을 야외 공연장으로 만들어 놨어요. 무대로서의 쓸모가 참 애매해서 1년에 몇 차례 안 쓰이는 버려진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을 문화 놀이터로 바꿨어요. 월마다 마켓 포레스트라는 이름으로 문화 놀이터를 개최하고 있어요. 형식적으로는 문화적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마당들을 곳곳에 많이 마련하고 있고요.

<문화 놀이터 마켓 포레스트>
태현
안산이라고 하는 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자원, 생태자원, 문화자원, 인적자원들을 활용해서 시민들하고 흥미롭게 만나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어요. 예를 들면 지금 수원 같은 데는 화성이라는 놀라운 문화재가 떡하니 있잖아요. 안산은 40년 전에 여기를 다 밀어버리고 공단을 만들면서 생긴 도시이다 보니 문화재라고는 천년 고찰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인데, 400년 된 고택이 하나 숨어 있어요. 아무도 몰라! 안산시와 협업해서 청문당이라고 하는 고택에 시민분들을 초대해 하룻밤 자면서 놀기도 했어요. 또 하나는 우리 도시가 세월호 이후로 성찰적 면모를 갖춘 도시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고잔동을 다크투어리즘으로 구성해 시민들을 초대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안산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자원들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을 해왔어요.
 
태현
이런 것들을 했을 때 과연 75만 모두에게 가고 있는가? (웃음) 그러고 있지는 못하지만, 더 확대하려고 하고 있어요. 서울에 마을 예술창작소라고 민간이 가진 공간을 지역 시민들을 위해 공유 공간을 내어주면 운영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안산도 문화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이 정도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말을 진짜 많이 해.
 
은영
안산에도 구도심과 신도심이 있고, 공단이 있고, 공단 옆에는 이제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동네가 있어요. 동네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 다 달라요. 마을마다 문화예술인들이 들어가서 마을에 있는 자원들을 활용해 재미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 동네 주민들과 다른 동네 주민들이 와서 같이 그 동네를 즐길 수 있다면, 서로 교류하면서 연결되는 지점들이 생길 것 같아요
💗 안산이라는 도시를 소개하는 말들 속에서 애정이 담겨있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안산 자랑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애정하거나 자랑할 만한 안산의 장소나 컨텐츠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은영
원곡동이라는 동네가 있어요.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동네인데, 그 동네를 가면 세계 모든 나라의 음식들을 다 맛볼 수 있어요. 저는 가끔 밥 먹으러 가거든요. 그리고 안산이 작년에 상호 문화도시로 지정이 됐거든요.
 
소똥
상호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은 처음 들어봐요.
 
태현
유럽 평의회가 다른 문화가 서로 존중되면서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상호문화의 도시로 지정하는데 안산이 지정됐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많이 아쉽긴 아쉬운데...
 
은영
맞아요. 원곡동이라는 동네가 이주민들이 있어서 무서운 곳이 아니라, 좀 특이하고 재미있는 동네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차별이라고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컬쳐75에도 이주민이 한 명밖에 없어요. 저는 이것도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안산에서 8만 명이 넘는 지금 이주민들이 있는데 말이죠.
 
준영
안산이 매년 거리극 축제를 성대하게 하잖아요. 2019년에 입사한 후에 거리극 축제에 합류해서 같이 일했었어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큰 축제를 경험한 게 처음이거든요. 그 기억 때문에 몰라도 안산에 뭔가 자랑할만한 거는 거리극 축제가 아닌가.
 
태현
준영 씨가 그 축제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웃음) 그때 당시에 국제거리 축제 폐막작이 스페인 연출가가 와서, 안산 시민 100명을 공중에 띄우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100명의 시민을 모아서 스페인 연출가와 함께 연습시키는 역할을 컬쳐75가 맡았는데, 본인이 스스로 공중에 떴던 역할을 했거든요. (다 같이 웃음) 그런 사연이 있습니다.

<숨은 준영 찾기>
태현
 
태현
단원은 워낙 그림을 잘 그려지고 궁중에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었는데, 단원이 특별하게 기억되기 시작했던 것은 결국 풍속화 때문이잖아요. 백성들의 살아가는 그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는 시도가 그때 당시에는 파격이었죠. 성호 이익 선생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실학을 읽은 양반인데 “선비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라는 말을 했어요. 때가 되면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었던 최초의 양반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인데 진리가 책상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고, 백성들 삶의 현장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고 하는 것이 섹시한 사상 아닙니까? 대단히 혁신적이고 이노베이션의 상징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최용신 같은 경우는 그때 당시 우리 조선의 아이들은 배움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어요. 아이들의 일상이 봉건적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배움이라고 하는 새로운 희열을 안겨준 양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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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
이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새로움, 혁신적임, 애민 사상에 기반한 그들의 활동이 굉장히 내세울 만한데 그렇게 읽어내지 못한 채 박제화되어 있는 게 좀 안타까워요
💭 꿈다락를 통해 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진행하는 교육을 소개해주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나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리극 학교>
준영
저희는 거리극 학교라는 교육을 진행해요. 안산에서 매년 거리극 축제가 열리는데, 항상 축제로만 열리다 끝나니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통해 안산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거리극이라는 장르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기획하게 되었어요. 마임, 아크로바틱, 저글링 이 3가지 수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준영
저는 배웠다고 느꼈을 때는, 거리극 학교를 진행하면서 항상 느끼는 게 맨 처음에는 애들이 진짜 수업을 안 따라오고, 말도 안 들어요. 근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서로 더 친해지기도 하고, 거리극이라는 장르를 천천히 습득하면서 동작도 유연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감정을 동작으로 잘 표현하더라고요. 꾸준히 하면 진짜 되긴 되는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아크로바틱한 친구들>
소똥
거리극 학교에 참여한 친구들은 축제 때 공연을 하나요?
 
태현
올해는 축제 공연 말고 발표 공연을 했어요. 내년에는 축제 때 공연으로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은영
참여자들이 배워 나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요, 저는 강사분들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육은 쌍방향이잖아요. 아이들과 긴 호흡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게 저는 교육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도록 천천히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수업을 진행해달라고 강사님들께 말씀드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배움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선생님들이 아이들하고 호흡이 맞아 갈 때, 그게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소똥
혹시 강사님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 뒤에서 지켜보시나요.
 
은영
항상 안 보는 척 하면서 이제 매의 눈으로 보죠. 간식을 갖다 주는 것처럼 앉아 있다가 나와요.(웃음)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예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은영
2003년쯤에 안산, 서울, 인천에 있는 예술인들이 모여서 이야기했어요. ‘왜 우리는 예술교육으로 먹고살 수 없는 거지? 우리도 월급을 받으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면 한번 월급을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을 해보자!’ 이 이야기를 계기로 신나는 문화학교라고 하는 예술인 모임을 만들었어요.
 
소똥
신나는 문화학교는 그렇게 탄생했군요.
 
은영
실제로 일자리 지원을 받았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활동하고, 예술인들이 거점 공간에 직장인들처럼 출퇴근한다는 전제하에서요. 몇 년 동안 이 생활이 이어졌어요.
 
소똥
그때 당시에는 꽤 실험적이었네요.
 
은영
. 실험적이었죠. 3년 정도 지원받았어요. 2008년에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면서 서울, 인천, 경기가 각각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했고, 그게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의 전신이거든요. 그 당시에도 돈 벌며 먹고 사는 문제가 정말 큰 문제였어요.
 
태현
예술가가 직업이 될 수 있게 하자.

<2003년부터 기억을 더듬고 있는 은영과 입을 꾹 닫고 경청하고 있는 준영>
소똥
지금은 먹고 살 만하세요?
 
은영
사실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소상공인이라든가 중소기업을 향한 지원에 비해 문화예술에 대한 부분들은 지원이 없으니까 직격탄을 맞았죠.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인정을 안 하거나 못 하는 부분들이 속상하죠.
 
혜진
그때 월급 받는 프로젝트에는 정말 직장인만큼의 월급을 받았나요
 
은영
하루에 8시간 근무했어요. 근데 예술가의 특성들이 있잖아요. 음악 하는 분들이 어떻게 사무실에 계속 있겠어요. 그런 것 때문에 고용노동부나 실업 국민재단과의 마찰이 많았어요. 많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인정받으며 진행된 것이 커다란 성과였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당시에도 법정 최저시급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준영
저는 요즘에 물가가 너무 올라서 장 보는 게 무섭더라고요. 저한테 밥은 그냥 일할 수밖에 없는 목적이 아닐까. 예술로 먹고살 만한지는 제 아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게, 제 아내가 초등학교에서 연극 강사를 하고 있어요. 5~6년 정도 했는데 신기한 게 그동안 시급이 똑같더라고요.
 
소똥
5년 동안이요?
 
준영
. 3~4만 원? 이전보다 학교 수업을 더 많이 진행해야만 겨우겨우 밥 벌어먹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최근에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학교들이 이제 연극 수업을 안 하고, 그 이후에는 비대면으로나마 했는데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제 아내로서는 예술로 밥 벌어먹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은영
그 아르떼 문화예술 강사 시급도 문제예요. 2004년에 아르떼가 만들어지면서 시급이 4만 원이었거든요. 10년 지난 다음에 43천 원이 됐어요. 3천 원 올랐단 말이야. 학교 같은 경우는 이제 교육청의 기준으로 책정되는데 이거보다 더 낮아요. 35천 원이야.
 
소똥
너무 안 올랐네요...
 
태현
짧게 얘기하겠습니다. 저는 대표다 보니까 이제 컬쳐75 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될 일들도 있다 보니 야근할 일이 많아요. 그러니까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은 밤 10시쯤 집에 갔을 때인데요. 저와 함께 사는 분께서 한 달 전쯤에 보드카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너무 맛있는 거예요! (웃음) 둘이서 한잔하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는 그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해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쪼리 신는 걸 좋아하는 은영, 인스타 셀럽 준영, 스텝용 옷이 많은 태현>
태현
우리 준영 팀장님은 인스타에서 패션으로 유명해요.
 
준영
저는 회사를 출근할 때마다 입는 것 중에 꼭 하나가 청바지를 항상 입어요. 그게 편하더라고요. 저는 일을 할 때 사무실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 나가서 설치작업을 할 때 청바지를 입으면 뭐가 묻어도 상관없어서 청바지를 꼭 입는 것 같아요,
 
은영
저는 선호하는 복장이 그날그날 달라요. 아침에 일정을 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굉장히 편하게 입어요. 오늘은 공적인 스케줄이 있어서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었어요. 평소에는 몸빼바지에 쪼리 신고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태현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청바지가 실내에서 일하기도 좋은데 미팅하기에도 썩 나쁘지 않아요. 상의 같은 경우는 오늘은 편하게 입었는데 이걸 입고 왔네? 은영 선생님이 운영하는 공간이 하나 있어요. 쉼표라는 공간인데, 세월호 생존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참사 이후에 꽤 오랫동안 생존 학생들을 위한 건 없었거든요. 제가 입은 건 생존 학생들끼리 만든 동아리 티셔츠인데, 제가 같이 사는 분도 은영 선생님과 함께 그 공간을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우리 집에 티셔츠가 있었어요. 저는 일하다가 만들어진 옷들을 많이 입습니다. (웃음) 뭔지 아시죠.
 
소똥
알죠알죠. 축제 티 이런 거 (웃음)
🚴 여러분의 본캐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본캐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캐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준영
저는 요즘에 퇴근하면 밥을 먹고 바로 책방에 들어가서 웹툰 스토리 대본을 쓰는 작가로 전환해요. 요즘 문화기획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요. 부캐로 활동하는 게 좋은 점은 딱 전환이 돼서 정신적으로도 좋더라고요.
 
소똥
책방에 들어가면 딱 전환되나요?
 
준영
사실 핸드폰 좀 하다가... (웃음) 최대한 스위치를 빨리 바꿔서 글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태현
저는 부캐가 많은데, 하나는 안산의 국민 MC거든요. (일동 웃음) 여러 가지 행사나 뜻있는 자리에서 MC를 많이 봤어요. 연극 하는 것보다 수익도 짭짤하고 그랬었습니다. MC를 한참 하다가 지금 안 해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제 부캐는 MC. 내일과 모레도 MC를 본다. (웃음)
 
은영
저는 부캐가 나름 체육인인 것 같아요.
 
태현&준영
나름? 완전 체육인~

<나름 체육인이라 주장하는 은영을 부정하는 태현과 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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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은영
지원사업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정말로 그게 뭔지 궁금해요.
 
소똥
컬쳐75도 지원 사업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겠죠?
 
은영
있죠!
 
태현
마라톤?
 
은영
아니야~ (웃음)

<지속가능한 예술을 꿈꾸는 컬쳐75>
컬쳐75 인터뷰: 안산에서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해. .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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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김혜진, 컬쳐75
  • 녹취록 작성 : 엄희은
  • 장소: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 인터뷰 발행일: 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