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학과 평화 담론: 에스토니아 사례를 중심으로


박정란(Visiting Professor, University of Tartu, Estonia, 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해외 한국학, 어떻게 볼 것인가?

 국내외 한국학 전공과 과목 개설 역사가 길어질수록 그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국내 한국학 전공 앞에는 '글로벌'이 붙고 융복합 학문이라는 학과 소개가 눈에 띈다. 또 해외 한국학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있다. 각 국가, 지역의 역사, 문화, 현안 등과 한국학이 어떤 접점을 찾아 발전해가고 있는가? 더 나아가 한국학이 지역 내 평화 담론에 기여할 수 있는가? 이 시각도 해외 한국학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본 글에서는 에스토니아 타르투대학교 한국학 사례에 집중한다.

 에스토니아 타르투대학교(University of Tartu, Tartu Ülikool)에 한국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4년부터다.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총 인구 약 130만 명, 남한 면적 절반 정도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은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중세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타르투대학교는 에스토니아 국립대학으로 에스토니아 제2 도시이자 2024년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ofCulture 2024)로 선정된 타르투(Tartu)에 있다. 타르투대학교에서는 한국 역사, 문학, 사회와 문화, 단계별 한국어 과목이 매 학기 개설된다. 이 강좌들을 담당하며 고민하는 것 중 하나도 앞서 언급했던 것들이다. 타르투대학교 한국학 수강생 국적, 전공 배경은 다양하다. 그 뒤, 학생들의 관심과 한국을 어떻게 연결 지을 것인가? 또 한국학이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 지역 평화 담론에 기여할 것인가? 이 물음을 가지고 에스토니아 타르투대학교 한국학 사례를 보고 한국학과 평화 담론의 지평을 넓히려는 논의를 열고자 한다.


타르투대학교 한국학, 에스토니아에서 만나는 한국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러시아, 중 국을 사이에 두고 그 안에 역사를 공유한다. 이는 과거로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자국, 그리고 유럽과 연관지어 낸다. 에스토니아 정부의 해외 정보 담당 기관인 에스토니아 대외 정보 서비스(Estonian Foreign Intelligence Service, EFIS)가 매년 발간하는 「국제 안보와 에스토니아(International Security and Estonia)」 보고서와 에스토니아 외교, 안보 및 국방 부문 국책 연구소인 국방안보 국제센터(The International Centre for Defence and Security, ICDS) 발간물에서도 그렇다. 특히, 2018년 EFIS의 연례 보고서 총 72페이지 중에서 이례적으로 북한의 전술 핵과 미사일에 대해 5페이지를 할애해 분석했다. 본 보고서 내에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은 계속된다(North Korea󰡑s Weapon Programme Continues)」 제하로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일지를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상세하게 제시하고, 북한 인권 상황, 북한의 사이버 위협 등을 지적했다. ICDS 발간물에서는 한반도 군사적 불안정과 긴장은 러시아와 중국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 반대편에 있는 에스토니아 안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논조를 이어갔다.

 현재만이 아니다. 과거를 보면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역사 또한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세계 1, 2차 대전 결과와 맞물려 엇갈린 운명을 맞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적 독립운동사, 저항 문학 등에서 촘촘한 공통점을 본다. 한국 문학 시간에 이육사,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토론하며, 에스토니아 정신을 일깨우던 마리운더(Marie Under), 깨슈 한스(Käsu Hans)를 빠트릴 수 없는 이유다.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위한 평화적 운동사는 한국의 3·1운동, 조선청년독립단, 헤이그특사를 연상시킨다. 에스토니아는 1939년 8월 23일 다시 한번 주권을 잃고 소비에트로 편입됐다. 즉,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의 공산화가 시작된 1939년 8월 23일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러시아 간 비밀 협약, 즉, 독소불가침조약(MRP, the Molotov-Ribbentrop Pact)이 있던 때다. 그 이후 에스토니아는 국내외에서 에스토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리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연대해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이어 갔다. 미국 뉴욕에서 1966년부터 시작한 BATUN(the Baltic Appeal to the United Nations), 노래혁명(Dance and Song Festival), 발트의 길(Baltic Way) 등이 그것이다. 노래 혁명과 발트의 길은 각각 유네스코(UNESCO) 무형 유산, 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디아스포라의 역사: 에스토니아인, 고려인 3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 시간마다 소환되는 에스토니아인이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 시장인 콜바르트(Mihhail Kõlvart), 고려인 3세다. 그의 가족사는 한국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콜바르트에 대한 언론 보도는 에스토니아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콜바르트가 서울을 방문해 명예시민이 되었을 때, 한국 언론에서도 그가 어머니와 함께 선 사진을 크게 실으며 가족사에 주목했다. 국내외 보도 내용을 정리해 학생들에게 들려주곤 하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콜바르트의 외조부모는 한국인으로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1937년 스탈린 정책으로 소련의 극동 지역에서 한인 약 172,000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던 때, 외조부모도 그 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카자흐스탄에서 콜바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났다. 콜바르트의 어머니는 모스크바 대학 재학 중 에스토니아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1977년 콜바르트가 태어났다. 1980년대 초 콜바르트의 가족은 에스토니아로 이주했 다. 그의 아버지는 1992년 에스토니아태권도협회를 설립했다. 아들 콜바르트도 태권도 검은띠 유단자이자 코치를 역임했다. 2019년 콜바르트가 42세가 되던 해에는 탈린 시장으로 당선됐다.

에스토니아에도 같은 역사가 있다. 단, 콜바르트의 이주 경로와는 반대인 에스토니아에서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소비에트 시기 에스토니아에서 시베리아 등지로 강제 이주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는 매년 전국적으로 이어진다. 특히, 6월 14일을 강제 추방 희생자 추모의 날 이자 공휴일로 정해 전국에서 희생자 숫자만큼 촛불을 켠다. 이렇게 1941년 6월 14일 에스토니아에서 시베리아로 만 명이 넘는 에스토니아인들이 강제 추방된 것을 지금도 기린다.

 수도 탈린에는 2만 2천명 이상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기념관(Victims of Communism Memorial)이 세워졌다. 영화 제작으로 국내외에 알리는 문화 활동도 꾸준하다. 영화 「나의 작은 동무(My Little Comrade)」는 한국에서도 개봉했고,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한국학과 평화 담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물론 에스토니아와 한국은 여러모로 다른 점도 있다. 이 지점도 학생들과 논의를 여는 또 다른 문이 된다. 예를 들어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종교 현황이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종교화되지 않은 나라(the world's 'least religious' country)로 분류된다. 이에 대해 2009년 갤럽 조사가 인용되는데, 당시 조사 대상국 중에서 에스토니아 내 종교 역할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2011년 에스토니아 자체 인구조사에서도 다를 바 없다. 인구 19%만이 특정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ascribe to) 답했다. 다만, 가장 최근 인구조사인 2019년에는 변화가 컸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29%를 기록했다. 29% 중 약 5%를 제외하고 기독교인이라고 답했고, 기독교 정교(Orthodox Christians) 16%, 루터교(Lutherans) 8%이다.

 그럼에도 한국 보다는 종교가 있다고 대답한 응답은 여전히 낮다. 학생들은 여기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기독교 역사가 에스토니아보다 짧지만 한국 내 큰 비중에 주목한다. 그 배경과 역사를 발표 주제로 선택하거나 질문한다. 이때면 교실 내 강의뿐 아니라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역사를 듣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생각한다.

 한국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여행뿐 아니라 교환학생, 연수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하려는 학생 상담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이번 여름 방학 중 한 학기 동안 타르투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으로 한 달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또 매 학기 중에는 타르투대학교와 협약을 맺은 서울, 부산 등에 소재한 대학으로 1-2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더 나아가 한국학 주제발표를 위해 공공기관이나 대학 초대로 방문하기도 한다. 또 좀 더 특별한 기억을 위해 평화를 테마로 한 DMZ 방문을 일정에 넣는 졸업생도 있었다. 이들의 경험을 듣는 행사를 조직하면 어느 때 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석한다. 들어보면 대부분 학생들의 한국 방문 일정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템플 스테이다. 한국 사적지로써 역사를 알 수 있고, 유럽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새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한국 내 대학, 민간, 공공기관 등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하루, 며칠씩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학과 평화 담론에 대한 보다 폭넓은 논의를 위해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한 체험형 학습 프로그램을 준비하면 어떨까? 유럽, 북미, 다른 아시아 국가의 기독교와 비교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기독교사는 분명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또 다른 접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방학, 학기 중에 한 달, 한 학기, 때로는 수년간 머문다. 이 학생들이 기독교 관련 시설, 박물관, 사적지 등을 방문해 짧게는 하루에서 며칠 더 길게 머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그 안에는 체험학습과 더불어 한국 기독교사와 평화에 대한 강좌도 제공될 수 있다. 한국 종교사에서 해외 선교사들의 역할과 기독교,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의 평화 지향적 역할과 과제, 해외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 비교 등이 강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 한국 교회가 민간단체, 공공기관, 대학과 연계해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자료

Baltic Way 30: One History, Two Million Stories.
https://www.ev100.ee/en/balticway30.

Estonian Foreign Intelligence Service,'s "North Korea's Weapon Programme Continues." International Security and Estonia 2018, pp. 61-65.

International Centre for Defence and Security(ICDS), https://icds.ee/en/.

Magic helps out in the least religious country Estonia. Estonian World.
https://estonianworld.com/knowledge/magic-helps-out-in-the-least-religious-country-estonia/.

Orthodox Christianity now the prevalent faith in Estonia. Estonian World.
https://estonianworld.com/life/orthodox-christianity-now-the-prevalent-faith-in-estonia/.

Spirituality in Estonia - the world's 'least religious' country. BBC News. 26 August 2011.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14635021.

Song Celebration. (2019b, July 4). Laulupidu 2019.
https://2019.laulupidu.ee/en/song-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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