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발달할 수록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을 나누는 경계는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만 남을 겁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모태에서 자라난 것이지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사회인으로 만들어지죠. 그리고 미래의 인간은 인공장기나 증강 신체를 통해 살아가고 인공지능 로봇도 인공 신체에서 태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만들어진 것과 나고 자란 것'의 경계는 갈수록 불분명해질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조건과 기술의 윤리를 물을 수밖에 없죠. 이성과 감성의 측면 모두를요.

“로봇은 지각 능력이 없고 주관적 느낌이라 할 만한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움직이면서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는 대상들에게 감정과 고통 받을 능력을 투사하고, 이들이 손상되거나 파괴되면 그에 대해 공감과 아픔을 느낀다.”(p.27)

과거의 과학적 상상력이 오늘날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탐구하는 일은 미래에 대한 오늘날 과학적 상상력에 용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신화에 드러난 과학적 상상력은 신탁과 같은 불가해한 예언과 예견이 아니었습니다. 동일성으로 점철된 세상을 비집고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엿보려던 이들의 피땀과 사유로 그려낸 미래의 예비에 가깝죠.

그렇다면 과학기술을 발달시키는 우리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요? 생명공학적인 신인류가 되어 마치 신처럼 영원한 권능을 누리려는 것일까요? 그때 우리에게선 어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불사의 존재에게는 모든 것이 쉽다”고 고전학자 데보라 스타이너는 말한다. 몇몇 예외를 빼면, 신들은 “눈에 띄는 노력이나 압박이 없이” 행동한다. 위험과 죽음의 위협이 없는데 자기희생, 용맹함, 영웅적인 노력, 영광 등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감 능력과 마찬가지로 이런 미덕들 역시 분명히 인간의 이상理想이다."(87쪽)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불로불사, 인공 지능, 비행기, 광선무기, 컴퓨터 등을 고찰하며 '신과 로봇 사이' 인간의 정체성을 사유합니다. 오늘날 SF영화부터 고전학, 기술학, 미래학을 통해 그 작동원리가 인과나 고증에서 불투명한 것들(블랙박스)을 분석하죠. 그러면서도 과학기술과 상상력의 간극을 억지로 메우거나 엮지 않고 오히려 고찰의 대상으로 삼아 열린 논의를 끌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매혹적입니다.

오늘날에도 과학의 첨단에는 상상력과 인문학이 있습니다. 신화가 그려낸 밑그림을 실제로 마주하고 활용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 시대의 신화는 무엇이며 다음 시대의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까요? 지금 당신의 상상력은 무엇을 예비하고 있나요?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현생 인류가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에 최적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진화는 다음 3가지 생태학적 특징으로 발현된다고 합니다.

1. 자유로운 네트워크 접속
2. 집단 지성과 집단 창의력 활용
3. 초복잡-초고속 시스템 환경 조성

1번은 개방형 인터넷과 연결기기, 2번은 위키피디아와 각종 공유지식 플랫폼,  3번은 스마트 기기와 연동되는 자동화 기계로 조성된 유비쿼터스 환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기술집약 주먹도끼' 하나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죠. 인간은 도구의 기능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뇌의 기능과 손가락을 섬세하게 발달시켰고 도구와 인간은 상호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도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없을까요?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언급하며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이는 주요 경작물로서 ‘밀’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밀의 안정적이며 효율적인 수확을 목표로 반강제적이며 억압적인 사회적 체계를 만든 일까지를 포함하죠. 그렇다면 최소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밀’의 자리에 위치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식주를 거래하는 화폐, 더 나은 가치를 가진 정보 경쟁의 시대를 거쳐 어떤 '밀'을 원하는 걸까요?

두 저자는 그런 '밀'을 포괄한 인간의 존재 양식 자체의 변화를 전망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 도구'가 있습니다. 인문학적 성찰의 토양이 되는 사회-문화조차도 이런 도구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여전히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과학기술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단 이해하고 활용하며 최선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이 책은 다른 유사 과학기술 서적과 달리 인간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순기능과 부작용’, ‘지배와 피지배’로 양분하며 섣불리 청사진을 제시하거나 막연한 공포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 넓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명료한 근거와 다양한 사례를 참조하여 긍정적인 과학기술 사용 방향과 리스크의 관리라는 차원으로 접근합니다. 책 전반에 걸쳐 현시대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적 접근이 이어지는데요. 인상적인 지점은 과학기술의 만용보다도 독재 국가나 대기업의 기술 통제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고도의 기술발달과 올바른 사용이 해법'이라는 대한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 것이죠(사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인류의 운명'이라는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리는 사람이 더 의심스럽긴 합니다).

이 책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생 인류에 끼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시각을 넓히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