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2일 수요일
날씨 기록 : 장마 시작
안녕하세요. 무늬레터입니다.

힘들었던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사람과 일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그 무게가 힘겨워서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했던 시간들이었어요. 요동치는 기분과 쏟아지는 걱정에 잠 못 드는 밤들이 이어졌습니다.


평일을 간신히 버티다 지난 주말엔 동굴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충분히 앓았으니 이젠 가벼워지기로 했습니다.

📚책을 많이 샀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는 영화를 안 보게 됩니다. 제게 영화는 유흥이자 쾌락이에요. 마음이 괴로울 때는 책을 읽습니다. 듣는 것 보는 것보다 읽는 것이 저에겐 잘 듣는 약입니다. 읽기 위해서는 사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책을 많이 샀어요. 이럴 땐 다른 사람들이 발췌한 한 문장에 끌려서 책을 구매합니다.단 한 문장이 제 맘을 다독여서 그 다정함을 느끼고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통째로 사는 거죠. 제 주문 목록을 소개하며 왜 이 책을 골랐는지 말씀드릴게요. 광고는 전혀 없습니다. 광고였으면 좋겠네요. 

📖 김이나,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어쨌든 행복은 의지로 만들어지고, 세상이란 내가 선택한 결과로만 존재한다. 모든 선택의 결과는 생각보다 늦게 드러나고 후회는 대체로 성급한 착각이다. 나의 선택을 믿어줄수록 바라던 결과의 확률은 높아진다."

 
📖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부사는 부연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하죠. 하지만 그렇게 부차적인 말이나 부수적인 표현이 누군가에겐 목숨만큼 얻기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문장을 쓸 때 부사를 빼라는 문장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아요. 인생은 '너무'와 '정말' 사이에서 춤추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부차적인 것들 때문에 울고 웃으니까요.)"


📖 안미옥 시집 <온>


시작을 시작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작이 필요했다.

베란다의 기분. 축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틀렸어. 틀려도 돼

하얀 목소리가 벽에 칠해진다.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 했을 때.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 '생일 편지' 중에서 일부


📖 김익한, <거인의 노트>


이 책의 부제는 '인생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입니다. 국내 1호 기록학자의 첫 책이에요. 사실 남미 여행에 가서 어떻게 기록을 해야할까 고민하면서 요즘 '기록'을 디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책인데요.


"기록하면 인생이 방향이 명확해진다. 문제로 여겼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고 고민은 쉽게 풀린다. 기록은 한계에 부딪힌 당신이 벽을 넘어서기 위해 행하는 첫걸음이다."


책 소개글이 끌려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맘 편하게 해준다고 하면 옥장판이어도 살 판이에요. 


📖 <1등의 습관>, <유연함의 힘>


제가 원래 자기계발 도서를 안 읽는 편인데요. 지난 주에 서핑을 하러 가서 만난 O님이 <1등의 습관>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자칭 ENTJ지만, 사실은 ESFJ 같은 저에게 재밌을 것 같다고요. 그 분의 매력에 반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관련 도서를 하나 더 물어왔습니다. 말했죠? 옥장판이라도 살 판이라고. 어쩌면 유연하게 제가 처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진 않을까 기대합니다. 


📖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근심걱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역시 다른 몰입할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소설도 두 권 골랐어요. 오랜만에 최애 러시아 소설 읽으려고 했지만 날이 더운 관계로 중국과 아프리가계 소설을 골라봤습니다. 

🤔내 안에 있는 좋은 본질🤔

최근에 종종 읽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칼럼에 예전에 전미경 정신과 의사가 인터뷰했던게 다시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전미경 의사는 이 인터뷰에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내 안에 있는 좋은 본질에 집중하는 능력"


이 말을 듣고나서부터 저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냥 보이지는 않고 어딘가에 부딪히고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에 저의 장단점이 드러납니다. 


지난 주에 일과 사람에 부딪히며 힘들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면서 저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자꾸 제가 처한 상황이 나쁘게 보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지는 거예요.


'왜 나는 이렇게 좋게 생각하지 못하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화내고 짜증내고 실망하고 절망하지? 그러니까 뭘 해도 빨리 그만두는 거 아냐!'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편입니다. 자기애도 강하고 자기 효능감도 대단한 진짜 자기중심적 인간이거든요. 너무 '남탓내덕'을 입에 달고 살아서 좀 숨겨야 할 정도입니다. 회복탄력성도 뛰어난 편인데요, 사실 제가 이렇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만큼 자주 다치고 쓰라리기 때문이에요. 


며칠을 고생시키더니 저의 높은 자존감 버튼이 눌리고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난 세상만사를 좋게 생각했던 적이 없어!'


저는 보통은 즐겁게 삽니다. 그래 보이죠. 왜냐면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요. 사실 긍정적이지는 않아요.  흔히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성공한다!'의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을 봐주고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점을 찾아내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싫어해요. 웩. 덕담보다 뒷담으로 친해진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제 장점은 어떤 상황이든 '지나면 다 경험이고 배울 점이다~'라고 합리화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 제게 좋지 않은 점을 하나라도 발견하거나 당장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버리고 후회없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사랑했던 책방이 그랬고, 열정을 쏟았던 풋살도 그랬어요. 누군가의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좋으니까 그 사람을 보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이로우니까 그 사람 곁에 머뭅니다. 싫다면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절대 못 돼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오히려 좋아" 같은 유행어를 싫어해요. 저는 "그러니까 좋아." 거든요. 


하, 역시 좋아하는 걸 말 할 때보다 싫어하는 걸 말할 때가 더 좋아요. 싫어하는 걸 맘껏 말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하잖아요. 이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영향을 좀 받은 것 같죠? 


결국, 제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번 기회에 또 저라는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의 좋은 본질을 또 하나 찾았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p.s. 편지를 꽤 오래 써왔지만, 흠, 이렇게 저를 드러내는 글을 쓸 때는 두렵고 민망해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괜히 저라는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까봐 직전까지 지웠다 썼다를 반복합니다. 지금도 수요일 아침에 추신을 덧붙이고 있어요. 혹시라도 조금이나마 제가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면 안타깝습니다...)

또또또 정기콘텐츠
지난 주에 본 영화&시리즈 🎬

절망의 주말을 보내고 겨우 평안을 찾았어요. 실컷 책을 샀지만, 맘이 편해지니 정작 보는 건 영화입니다. 이번 주엔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가능한 퇴근 후 약속이나 일을 안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월요일과 화요일에 연속해서 영화를 봤습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감독 민규동 / 배우 임수정, 이선균, 류승룡

한국 코미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왜 이제야 이걸 봤나 모르겠어요. 흔한 로맨틱 코미디 같지만 사실 이런 뻔한 장르로 괜찮은 걸 만들기가 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에서 '자연재해'가 장치로 쓰이는 걸 좋아합니다. <최고의 이혼>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는데, 이것도 그렇거든요? 그냥, 저는 인간 관계가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서요. 관계에 있어서는 능동적이지 않은 편이라,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 만나고 만나지 않고 이어지고 헤어지고 하는 것에는 대자연과 우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좋아하기도 해요. 

끝난 후 가볍고 상쾌한 감동이 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딱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필사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해요.

📍<코코>, 2018
감독 리 언크리치

애니메이션 잘 안 보는데, 남미 여행 간다고 봤어요. 디즈니와 픽사의 합작입니다. 지금 절찬리에 상영중인 <엘리멘탈>도 그렇죠. 그래서 그런지 배경이 멕시코와 아시아계(한국)라는 차이가 있고, 토착민과 이주민이라는 것도 다르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가족의 사랑(+참된 사랑은 개인의 꿈을 응원해주는 것)❤️ 이라는 주제는 같습니다. 

저는 이주민이나 교포 2세가 아니고, 부모님을 모시거나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유교적인 사상을 전혀 가지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K-차녀(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집안의 귀염둥이 막내)라서 <엘리멘탈>에 공감하기가 어려웠어요.

게다가 불과 물이 만나서 사랑이라요. 사주에 의하면 불이 많은 사람은 나무가 많은 사람을 만나야 잘 산대요. 뜬금없지만 제가 불과 흙이 많은 사주인데, 사막에 물 붓는다고 오아시스 안 생긴대요. 오히려 단단한 흙을 말랑하게 해줄 나무가 더 잘 맞는다고 들었거든요. 갑자기 이게 떠올라서 영화 보는 내내 '웨이드 말고 나무 속성을 만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과학보다 사주를 믿는 제가 진짜 아시안 걸이라고요.  

<엘리멘탈> 이야기 그만할게요. 그래서 <코코>는 어땠냐면, 재밌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에 할머니 '코코'의 코 움직임이 진짜 신기해서 감동적이었어요.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보니 노인들이 잘 안 나오잖아요. 나와도 그 <업>의 할아버지처럼 전혀 늙은 피부나 몸이 아니라 탱탱한 채로 머리만 하얗고 팔자주름 하나 있는데, <코코>는 다릅니다. 그 한 장면에 세월이 담긴 느낌이라서 울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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