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의사는 이 인터뷰에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내 안에 있는 좋은 본질에 집중하는 능력"
이 말을 듣고나서부터 저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냥 보이지는 않고 어딘가에 부딪히고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에 저의 장단점이 드러납니다.
지난 주에 일과 사람에 부딪히며 힘들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면서 저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자꾸 제가 처한 상황이 나쁘게 보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지는 거예요.
'왜 나는 이렇게 좋게 생각하지 못하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화내고 짜증내고 실망하고 절망하지? 그러니까 뭘 해도 빨리 그만두는 거 아냐!'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편입니다. 자기애도 강하고 자기 효능감도 대단한 진짜 자기중심적 인간이거든요. 너무 '남탓내덕'을 입에 달고 살아서 좀 숨겨야 할 정도입니다. 회복탄력성도 뛰어난 편인데요, 사실 제가 이렇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만큼 자주 다치고 쓰라리기 때문이에요.
며칠을 고생시키더니 저의 높은 자존감 버튼이 눌리고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난 세상만사를 좋게 생각했던 적이 없어!'
저는 보통은 즐겁게 삽니다. 그래 보이죠. 왜냐면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요. 사실 긍정적이지는 않아요. 흔히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성공한다!'의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을 봐주고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점을 찾아내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싫어해요. 웩. 덕담보다 뒷담으로 친해진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제 장점은 어떤 상황이든 '지나면 다 경험이고 배울 점이다~'라고 합리화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 제게 좋지 않은 점을 하나라도 발견하거나 당장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버리고 후회없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사랑했던 책방이 그랬고, 열정을 쏟았던 풋살도 그랬어요. 누군가의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좋으니까 그 사람을 보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이로우니까 그 사람 곁에 머뭅니다. 싫다면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절대 못 돼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오히려 좋아" 같은 유행어를 싫어해요. 저는 "그러니까 좋아." 거든요.
하, 역시 좋아하는 걸 말 할 때보다 싫어하는 걸 말할 때가 더 좋아요. 싫어하는 걸 맘껏 말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하잖아요. 이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영향을 좀 받은 것 같죠?
결국, 제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번 기회에 또 저라는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의 좋은 본질을 또 하나 찾았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p.s. 편지를 꽤 오래 써왔지만, 흠, 이렇게 저를 드러내는 글을 쓸 때는 두렵고 민망해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괜히 저라는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까봐 직전까지 지웠다 썼다를 반복합니다. 지금도 수요일 아침에 추신을 덧붙이고 있어요. 혹시라도 조금이나마 제가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면 안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