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최민서 인턴기자가 청년 여성들의 노동기를 다룬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을 소개합니다. '쉬었음 청년'의 이면 속 우리의 노동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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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수경,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제 첫 밥벌이는 스물한 살, 5호선 끝자락에 있는 독학 재수학원에서의 조교 아르바이트였습니다. 학생 관리라는 명목 하에 CCTV를 계속 들여다보고 칸막이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깨웠습니다. 혼자 8시간을 풀로 근무했고 휴식 시간도 없이 먼지 쌓인 창고에서 빠르게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공부 관련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에겐 100만원짜리 학원 강의를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했고요.
지금 돌아보면 이러한 일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만 그때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빵집에서 폭언과 고강도 육체노동을 견뎠던 대학 동기도, “얼굴이 예쁘니 남자 고객을 불러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주어진 일 뒤에 뒤따라오는 모멸감이나 자괴감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었으니까요.
‘쉬었음 청년’ ‘MZ세대’라는 프레임과 달리 청년 여성들은 계속해서 일을 해왔습니다. 말 잘 듣는 어린 여성을 언제든 고용할 수 있는 일터에서 최대한의 노동력을 발휘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전수경 작가는 청년 여성 노동자 20명을 만나 그들의 노동 이야기를 기록해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이라는 제목으로 엮어냈습니다.
책의 부제목 ‘이토록 무례한 일터에서 청년 여성은 어떻게 삭제되고 소멸되는가’에서 볼 수 있듯, 저자는 지워진 2030 세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아이스크림 카페 아르바이트부터 도서관 계약직, 콜센터 직원, 스포츠센터 강사, 강아지 유치원 교사, 현장실습생 등 저자가 만난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노동을 시작해 ‘알바’ ‘인턴’ ‘막내’ ‘기간제’로 불렸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일을 쉰 적은 없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로는 가지 못했고, 어떤 거친 일이라도 주어지면 해냈고 또 해내려 했지만 그 성과는 쉽게 무시되거나 부당하게 빼앗겨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름을 잃은 여성들은 분투하며 견뎌왔고 가난과 질병, 가부장제는 이들을 더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참는 게 당연해진 사회에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근무시간을 조정하려 한다면 잘리거나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곤 합니다. 위험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비일비재했지만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다친 몸조차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강아지 유치원 교사 수진, 돌봄 현장에서 일하다가 얻은 허리디스크를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활동지원사 혜진은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여기는 현장에서 몸과 마음이 갈려나가도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저자는 젊은 여성들이 일하며 겪는 심리적인 고통도 주목해나갑니다. 젊고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주하게 되는 폭력적인 언어와 희롱성 발언들은 여성들을 취약한 존재로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대형 헤어숍 디자이너 다은은 나이가 많은 남성 고객에게 신체 접촉을 당하고 집 앞까지 찾아오는 일을 겪지만 매출을 올리려면 불가피한 일이라는 취급을 받습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서연은 남성 스태프만큼의 몫을 해내지만 연차가 쌓여도 ‘커피를 타주는’ 막내 자리에만 머뭅니다. 한 개인을 노동자가 아닌 여성으로만 바라보는 탓에 차별과 멸시는 반복됩니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청년 여성들은 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동료를 위해 상사를 고발하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투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저자는 “그들의 힘을 볼 수 있었다. 폭력이 난무하고 들숨에 모멸이 날숨에 혐오가 떠다니는 거칠고 험한 곳에서 일했어도 이 젊은 여성들이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책은 인터뷰뿐만 아니라 청년 여성의 노동에 대한 대담까지 담아냅니다. 대담에 참여한 여성들은 당사자이자 연대자로서 청년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폭력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갑니다. 여성들은 따돌림, 폭언, 성희롱, 차별, 무시 같은 폭력을 바로 알아챌 수 있지만 이를 문제삼기 어렵다며 해결책을 고민합니다. 여성 노동 문제로 지적되어 온 성희롱, 성폭력, 출산뿐만 아니라 임금 격차 같은 계급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만난 청년 여성들의 개별적인 이야기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처럼 읽히지만은 않았습니다. 첫 아르바이트가 생각나기도 했고 유치원 교사의 노동 강도에 대한 기사나 <다음 소희>의 몇몇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여성 청년들을 만나기 전의 나였다면 윤서가 겪은 일들이 예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자를 향한 폭력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고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점점 더 자주 본다.”라는 말처럼 운이 나쁜 여성이 어쩌다 겪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 비판을 위한 소재로 이들의 이야기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던 저자는 섬세한 시선으로 이 책을 엮어나갔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저항의 방법 중 하나”라면, 이 책은 그 저항의 기록이자 서로의 이야기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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