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
대구미술관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 전경.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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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의 판화를 모은 대규모 전시입니다. 최근에는 판화도 기술적 진화로 하나의 장르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17세기 판화라고 하면 사이즈도 작고 색채도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전시를 방문했는데, 우선 작품 수가 120점에 달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렘브란트 에칭이 290~300점이라고 하니, 전체의 절반 정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희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로부터 자세한 전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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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어떻게 이런 전시가 가능했을 지가 저는 가장 궁금했고, 그것을 질문했습니다.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가 소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 재단을 만든 얀 멀더스 대표는 사업가 출신으로, 렘브란트 판화를 하나씩 모으면서 현재는 약 220점을 갖고 있습니다.
멀더스 대표는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도 근무했던 문화 예술인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 보여준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동판을 보고 반해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렘브란트의 DNA가 여기에 들어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지금은 80대를 바라보고 있는 멀더스 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판화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재단을 만들고,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그르노블 미술관,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하우스 뮤지엄 등에 소장품을 대여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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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 전경. 보시다시피... 작품 사이즈는 작습니다.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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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는 벨기에 앤트워프의 판화 미술관 ‘뮤지엄 드 리드’가 렘브란트순회재단과 협업해 올해 초 열었던 전시의 확장판입니다. 벨기에에서는 84점을 전시했는데, 대구미술관에서는 120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대구미술관 전시 공간이 크다보니 84점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장자에게 요청했더니 자신이 가진 컬렉션 중에 얼마든지 마음대로 선택해도 좋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렘브란트 에칭은 워낙 오래 전부터 연구가 되어 왔기 때문에, 그 주제가 대략 6-7개로 나뉩니다. 이를 기준으로 이번 전시는 7개 카테고리를 되도록 골고루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구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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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를 고치는 예수, 1648년경, 27.8×38.8cm,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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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멀더스 대표가 ‘렘브란트 DNA가 있다’고 느낀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전시는 크게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초상 등 7개 분류로 나눠지는데요. 여기서 물론 가장 잘 알려진 명작은 성경을 주제로 한 것들이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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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화상 코너에서는 우리가 유화로 만나는 멋진 모습의 렘브란트뿐 아니라, 헝클어진 머리, 쩍 벌린 입, 그늘 아래 어두운 얼굴 등 다양한 표정과 형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렘브란트가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보면서, 사람의 얼굴을 탐구하는 흔적을 아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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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돌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화상, 1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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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한 어두운 얼굴의 자화상. 1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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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확장된 버전은 바로 거리의 사람들입니다. 렘브란트는 거리로 나아가 눈 먼 바이올린 연주자, 지팡이를 짚은 농부, 떠돌이 가족, 의족을 한 거지 등 현실의 풍경을 사진 찍듯 포착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종이 위에 찍힌 판화지만, 생생한 묘사 속에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의 어느 거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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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의족을 한 거지, 1630년경.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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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에 푹 빠져서 너무 가까이 다가서다 전시장 지킴이 분에게 저지를 받기도 했는데요. 이번 전시는 작은 작품 사이즈를 고려해 특별해 경계선을 치지 않았다고 이 학예사는 설명했습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돋보기를 놓아야 하나 싶고, 또 작품과 관객의 안전을 헤쳐서도 안 되니까요. 그래도 바닥에 유도선만 그리고 과하게 제지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번 주말 전시장을 돌아보니 관객분들께서 스스로 조심하면서 감상하는 모습에 안심했습니다.”
이렇게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에 푹 빠져서 보다 뒷부분에 이르면, 그가 어떻게 성경 속 주제를 교리적 차원을 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묘사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정희 학예사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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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 1633, 25.7×20.8cm.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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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만약 다른 작가라면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것만 부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뒤쪽 배경에 여자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앞쪽에는 강아지가 볼일을 보는 모습이 나오죠. 흔히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렘브란트는 그것을 넘어 카메라로 찍듯 세상을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벨기에 전시도 이런 부분을 강조했고, 저도 공감해 ‘17세기의 사진가’라는 전시명을 붙이게 됐습니다.”
전시장에서는 렘브란트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흔적, 또 에칭 판화를 만드는 방법을 담은 영상 등도 볼 수 있습니다. 에칭의 매력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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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뉴스레터를 보고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합니다.
🔸자수를 통해서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림을 만들수 있다는것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알고싶습니다.
🔸국제 미술사를 주도하는 두 미술관장들이 공통적으로 단선미술사가 예술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한 인터뷰 인상적입니다. 그들만의 좁은 세계에서 더 나아가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시도들을 지지합니다. 사미족 출신 화가 브리타 마라카트 라바의 까마귀 자수와 그 아래 그림, 저항하며 피 흘리는 듯한 사미족의 역사를 그린 자수 보니 마음 아프네요. 자수를 통해서 한맺힌 역사가 느껴집니다. 총칼 없이도 미술로 이렇게 싸울 수 있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밖에 싸울 수 없는 사미족의 슬픔에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힐마의 추상화를 보니 회화가 꼭 스토리를 갖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모양과 색의 조화로운 만남으로 인한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한 지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기사입니다.
🔸"미술사는 절대 고정 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항상 변한다"
🔸'선주민' 처음 접한 단어 입니다. 원주민으로 통상 표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주민을 쓰지 않으시고 선주민이라는 단어를 쓰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수수팥떡)
👉 질문 감사드립니다. 제가 선주민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생각한 영어 표현이 'indigenous people' 인데요. 과거 aborigine(문명에서 떨어진 사람) 등을 원주민으로 번역하면서 원주민이라는 단어에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반면, indigenous people은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착민이라는 중립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번역할 때 '먼저 살고 있던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통상 '선주민'이라고 쓰고 있어서 저도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
🔸제가 알아가고 있는 것들과 가르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할지 늘 고민이었는데 이번 기사를 읽고 역시! 좀 더 다양한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글- 감사합니다. (손솜씨)
🔸왠지 동양보다 서양역사에서는 여성차별이 덜 할것 같았는데 미술사를 접할때마다 은근히 여성차별이 심각했던것 같아 놀랍니다 특히 여성화가에 대한 차별로 역사속에서 아예 부각되지않은점은 놀랍다못해 심각하네요(psyj)
🔸우리는 편견과 집단이기주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시선이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서로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에서 벗어나라고 이 뉴스레터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성 유럽인 미국인을 중심으로 '정의'되어온 미술사". 정말 듣고보니 그렇네요. 이에 학습되어서인지 "여류", "제3세계" 예술가처럼 수식어가 붙은 작품들을 저도 모르게 주변부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어쩌면 낮추어보았던것 같기도 합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차별과 폭력을 통한 지우기도 자행되어 왔었으니, 얼마나 많은 훌륭한 예술과 이야기들이 사라졌을까라는 생각에 가슴 저립니다. 그래서 더욱 MoMA와 TATE의 메시지는 중요하게 울림을 주는것 같아요. 스웨덴 영화제가 11월 7일까지 한다니 가서 사미 스티치와 힐마 보려고요. 감사합니다 :) (Felix)
🔸이번주 일이 바빠 주말에서야 레터를 열었는데 뒤늦게 영화가 보고싶어져 너무 아쉽네요. 스웨덴 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구나 하고 휙 넘겼는데 보고싶은 영화가 두개나 생길 줄은 몰랐어요ㅎㅎ
👉 어제까지 서울에서 상영을 했는데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지역으로도 이어진다고 하니 한 번 웹사이트를 확인해보세요 ^^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리며 자극을 받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추천하신 영화들 꼭 찾아보려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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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감 한 스푼'이 전해드릴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가까운 소통을 원하신다면 저의 인스타그램(@mini.kimi)으로도 찾아오셔서 편히 이야기 나누어주세요.
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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