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장애 Hidden Disability는 주변의 이해가 부족하고 제도적 지원도 열악하다.
  
숨겨진 장애, 난독증 

난독이란 어려울 난難, 읽을 독讀 한자어 그대로 어렵게 읽는 증상이다.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가지다. 글자를 봤을 때 그것이 다른 글자처럼 보이거나, 글자들이 뒤섞여 보이거나, 생략하여 읽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cat’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이를 ‘tac’으로 보게 되거나, ‘car’처럼 전혀 다른 단어로 인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어를 잘못 인식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해석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지니게 된다. 글자뿐 아니라 문장과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글을 읽고 뇌에 받아들이는 과정은 크게 ‘이해'와 ‘해석' 두 단계로 나뉜다. 난독증은 이러한 '이해'와 '해석' 두 과정 모두에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앞선 뉴스레터<공황장애와 집중력 회복을 위한 디자인>에서 말한 세 가지 계층의 집중력에서 볼 때, 스포트라이트 Spotlight와 데이라이트 Daylight에 어려움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글자를 몰라서 잘못 읽는 것이나 지능이 낮아서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난독증은 신경학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학습장애이며, 거의 모든 경우는 선천적인 요인이다. 글을 읽는 동안 뇌에서 활성화되는 영역도 난독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 난독증 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약 5~17%가 난독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독증의 증상은 다양하지만, 위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대략 난독증 당사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위 사이트에서는 난독증 당사자에게 빈번하게 나타나는 왜곡된 문자의 형태를 보여준다. 물론 모든 당사자가 이런 왜곡을 겪는 것은 아니다. 

난독증은 신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다 보니 숨겨진 장애(Hidden Disability)라고 불린다. 참고로 우리가 집중력 호에서 다루고 있는 공황장애나, ADHD도 모두 숨겨진 장애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이해가 부족하고, 제대로 된 제도적 지원도 열악해 당사자와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향후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디자인의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채혜선 님은 현재 테크 기업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10년 전, EBS 취재 프로그램으로  <디자이너 난독증을 위한 서체를 만들다> 편에서도 출현한 바 있다. 그 때는 서체에 집중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화면의 레이아웃과 구조적 측면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혜선 님은 난독증 당사자이자 디자이너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난독증을 고려한 디자인이 실질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다채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엑셀로 질문지를 짜서 보내드렸는데, 혜선 님은 문서를 2단으로 나누고 질문 간 길이를 널찍이 띄어서 프린트를 직접 해왔다. 그리고 본인의 의견은 직접 손으로 썼다. 그래야만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분별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약간의 색깔이 다른 필기체는 본인이 쓴 글씨임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자신만의 방법이다. 
채혜선 님은 난독증 당사자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많은 영감을 전달해 주었다. 

난독증 당사자의 아픔 

“세호는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받침 없는 글자는 대체로 읽을 수 있지만 받침이 있는 글자나 전에 본 적이 없는 글자를 읽을 수 없다. 세호는 수업 시간에 하는 과제를 할 수도 없으며 시험문제를 혼자 풀 수 없어 선생님이 읽어주어야 한다. 선생님이 읽어주기만 하면 점수가 좋은 편이고 수업을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다. 희한하게도 받아쓰기는 전날 어머니와 20~30 분 같이 연습하면  1~2 개밖에 틀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사는 집에서 안 시켜서 한글이 늦은 것일지도 모르니 집에서 열심히 시키라는 조언을 하고 아이가 기죽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세호는 점점 학교 가기 싫어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 올 때가 많다. 세호 어머니는 대안학교나 홈 스쿨링을 알아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 한국난독증협회 교사용 가이드 자료 중
난독증과 난독증이 아닌 사람의 뇌에서 활성화되는 영역이 다른 것을 설명하는 영상. 난독증에 대한 이해를 위해 참고할만하다.   

난독증은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초등학생 아이들이 얼마나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에 민감한지 알 것이다. 아이가 글자를 읽기 어려워하고, 과제를 할 수도 없으며, 간단한 문제를 풀 수 없는 상태일 때 받게 되는 답답함과 우울함은 말할 수 없다. 난독증 자녀를 둔 한 부모는 학교에 간 뒤로 아이가 부정적인 말을 내뱉고, 심지어 친구들조차 아이를 멀리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한다. 부적응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부모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난독증과 디자인 요소들

난독증은 글을 읽는데 많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단순히 피로도가 높은 정도가 아니라 멀미나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생각한 난독증을 고려한 디자인은  “읽는 것 자체에 지나치게 많은 집중력"을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집중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혜선 님은 한 단어로 명료하게 설명해주었는데, 난독증을 고려한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분별성’ 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디자인의 분별성을 높일 수 있을까? 주로 그래픽에 해당된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화면의 구조적 측면과, 라이팅 스타일writing style, 소재, 비주얼 요소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화면의 구조, 레이아웃의 중요성이다. 한 화면 내에서도 구조적으로 명확하게 분할하여 각 문단 덩어리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한다. 세부적으로는 문단 덩어리마다 폰트 차이가 좀 더 있어도 좋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공간도 충분히 두어 글자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한 문장이 너무 길지 않도록 하는 것도 좋다. 또한 문장의 끝지점을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편집 디자인 시에 양측 정렬이 아닌 좌측 정렬을 하도록 한다. 그러면 시각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문장이 끝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MSV 5호를 예시로 들자면, 윗 페이지의 글은 페이지 글이 한 줄이면서(1단) 양측정렬(끝단이 동일)로 되어 있어서 글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야만 한다. 특히 양측정렬은 텍스트 블록의 양 끝을 맞추기 위해 단어 사이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게 된다. 그래서 미세하게 불규칙한 단어 간격이 발생하는 데 이는 읽기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랫 페이지의 글은 페이지가 두 줄로 구성(2단)되어 있고, 좌측정렬로 되어 있어 문장의 시작과 끝 지점을 더 명확하게 읽을 수 있고, 독자가 텍스트를 따라가며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절한 여백으로 눈의 피로도도 줄인다. 

능동형으로 문장을 작성한다. 장황하고 긴 문장보다 간결하고 능동형으로 된 문장이 좋다. 호흡이 길거나, 수동형으로 된 문장은 전체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행동의 주체’가 ‘어떤 동작’을 받는 형태다. 그렇기 때문에 인지적 차원에서 부담이 된다. 그러나 능동형 문장은 '행동의 주체'가 '동작'을 실행하는 형태로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누가 무엇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정보를 더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수동형 : "새로운 법안은 국회의원들에 의해 통과되었고, 이는 22대 총선에서 뽑힌 의원들의 첫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능동형 : "22대 총선에서 뽑힌 국회의원들은 첫 주요 활동으로,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한다. 너무 밝고 광택이 있는 종이 소재는 반사가 일어나 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매트matt 하거나 네추럴한 질감의 종이를 사용한다. 또한 책 중에 가끔 얇은 종이를 쓰다보니 뒷면에 있는 글씨가 비춰지는 경우 역시 시선을 산만하게 하여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조금 더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여 현재 페이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좋다.

최대한 뒷면 비침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이나 노트를 제작할 때 용지 두깨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주얼 요소(컬러, 아이콘, 픽토그램)을 활용해 식별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 부분은 특히 안전과 관련된 제품에 중요하다. 자동심장충격기(AED)의 예를 들어보자. 지하철 역사 내에 AED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러분 중에 이 제품을 설명서 없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만약 위급 상황시에 이런 제품의 사용방법이 글로만 잔뜩 써 있다면, 글을 정확하게 해독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러스트나 픽토그램을 활용하여 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안전 처럼 모든 사람들의 사용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제품은 특히나 일러스트나 픽토그램 등의 그래픽 활용이 중요하다.   
01,02,03,04 로 배열 되는 것과, 1,2,3,4 로 배열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구분하기 쉬운가? 0이 앞에 들어가 있으면 공통적인 요소가 많으므로 상대적으로 분별하기 어렵다. 1,2,3,4 처럼 숫자가 명확하게 써져 있는 편이 숫자끼리 옆에 있을 때 서로 분별하기 용이하다.
마치며 :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5% 이상을 다인종 국가로 정의하고 있다. 아직 공식적 발표는 없지만 2024년부터 한국은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난독증을 고려한 디자인은 당사자뿐 아니라 이처럼 최근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서 한국어를 새롭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지 저하를 겪고 있는 고연령 어르신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물었을 때, 혜선 님은 스피커Speaker로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피커로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뭘까? 단순히 미학적 의미로서 디자인을 넘어 사회를 향해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의료 관계자나 학교 선생님만 난독증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난독증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이번 글에서 언급한 것 처럼 그래픽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픽토그램 등 새로운 관점에서 난독증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난독증에 대해 잘 몰랐던 디자이너들도 이번 글을 통해 당연시하게 생각했던 것에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변화를 만드는 인사이트. MSV의 다른 글도 읽어보세요.  
김병수 미션잇 대표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인의 가치는 심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고의 툴이라고 믿는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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