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사회 #황두영 #읽는당신_북클럽_지도 [주말에 뭐 읽지] 2021-04-15 #52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이토록 용감한 상상 장애여성공감 외 지음/와온 펴냄 글을 쓰는 11월 말, 국회는 새해 예산 싸움이 한창이다. 책상 위에는 의원실 지역구의 지자체에서 온 요청 제안서가 가득하다. 올해 중요한 부탁은 ‘가족안심 시립요양원’ 예산 증액이다. 의원실의 지역구는 도시가 끝나고 농촌이 시작하는 곳인데, 요양원 예정 부지는 아파트 단지와 가깝지만 도시 외곽선인 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 지자체의 사업계획에 따르면 ‘가족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노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가정적인 공간’을 만든다. 이전에도 요양병원 민원에 한창 시달린 적이 있었다. 다만 반대로 요양병원 건설을 막으라는 민원이었다. 당시 일했던 의원실 지역구는 ‘강남 4구’를 꿈꾸며 한창 아파트값을 올리던 신흥 부촌이었다. 1980년대 지어진 초대형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면서 구청은 부지 끝에 민간 요양병원 건설 허가를 내줬다. 입주 예정자들은 요양병원 환자들이 아파트 단지와 인근 공원, 초등학교를 산책하고 아이들에게 감염병을 옮길 것이라며 요양병원 건설을 격렬히 반대했다. 구청은 이길 수 없는 소송까지 감내하며 병원 건축허가를 취소했다. 소송은 예상대로 졌고 요양병원은 욕을 먹으며 지어지고 있다. 때론 지어달라는, 때론 짓지 말아달라는 모순된 시설 건립 민원을 다루며 ‘시설’이 있어야 할 곳, ‘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한다. 지역사회의 ‘가족’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너무 멀지는 않지만 또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는 곳. 가정은 아니고 ‘가정적인 공간’. 시설인의 인격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산책길에서 마주치지 않을 곳. 시민단체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인 탈시설 자립운동이 단순히 반인권적인 시설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설사회〉를 엮었다. 저자들은 시설과 지역사회의 이분법을 넘어 특정한 사람들을 시설 또는 거주 행정규제 등 다른 사람들에게 의탁해서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시설사회’라 명명한다. 시설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분리나 유예된 시간, 폐쇄된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의 상이 무엇인지 호명하는 메커니즘’(35쪽)이라는 게 김순남의 설명이다. 장애, 난민, 청소년, 노숙인, HIV/AIDS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와 관련 연구자들이 ‘시설’에 대해 쓴 이 책은, 사실 문제 제기만 하다 글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답 없는 현실을 설명하거나 조금은 난해한 이론적 쟁점을 던져놓는 식이다. 그런데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시설의 완전한 폐쇄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는 사회’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성긴 스케치를 시작한 그 용기가, 나도 함께 이 그림을 채워나가리란 의지를 갖게 했다.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그날 밤 체르노빌 애던 히긴보덤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대체 무언가?” 1986년 4월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전 사고 소식을 듣고 맨 먼저 출동했던 시민방호군 장교를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듯이 방사능을 사랑했다.” 740쪽에 이르는 만만찮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 책의 일차 동력은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의 필력에서 나온다. 궁극의 힘은 역시 팩트다. ‘사회주의의 밝은 미래’를 약속했던 원자로가 어떻게 ‘수 세대에 영향을 미칠 어마어마한 재앙’의 진원지가 됐는지 책은 치밀하게 추적한다. 부패한 구체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비밀주의에 기반한 원자력 산업 자체가 파국을 잉태하고 있었다. 35년 전 연대기가 이토록 실감나게 읽히는 건 변치 않는 재난의 법칙 때문일 테다. 노가다 칸타빌레 송주홍 지음, 시대의창 펴냄 “몸을 써서 움직여야 무거운 걸 옮길 수 있고, 그게 확인되어야 일당을 받을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싶었다. 아직 짓고 있는 중인 아파트라서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만 빼면. 최고기온이 35℃를 넘는 한여름 건설 현장 취재를 간 날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21층 옥상 단열재를 까는 날이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옥상에서 직사광선을 그대로 흡수하는 단열재 사이를 걸어다니며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일’을 하는 청년 노가다꾼이 책을 냈다. 인력사무소에서 출발해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 바닥에 굴러다니는 온갖 공구와 자재까지 꼼꼼히 설명하며 공사‘판’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읽고 나면 ‘노가다’는 더 이상 쉽게 쓸 수 있는 비유가 아니다. 젓가락질 너는 자유다 조한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각자의 기준으로, 각자의 모양에 맞게 사는 거죠.” 누구나 젓가락질을 둘러싼 갈등을 겪는다. 저자는 주변의 모진 ‘핍박’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젓가락질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을 ‘젓가락질 소수민족’이라고 일컫는다. 각각의 젓가락질이 가진 강점과 약점, ‘능력치’를 분석한 능청스러운 글이 흥미롭다. 올바른 방식의 젓가락질은 식사 예절에 속한다는 항변에 대해서는, 그 예절이라는 건 사실 ‘잘 먹기 위한 것’인데, 도리어 식욕을 떨어트린다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한다. 각자의 젓가락질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젓가락질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대개 젓가락질만 나무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취업이나 결혼 등에 관한 오지랖에 대해 ‘왜 꼭 그래야 해?’라고 질문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꿋꿋해집시다! 우리’라는 말과 함께. 끝내주는 맞춤법 김정선 지음, 유유 펴냄 “손 끝에 익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맞춤법은 늘 고민거리다. 2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 출판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해온 저자는 맞춤법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습관처럼 몸에 배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간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등을 낸 뒤 독자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한글맞춤법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다. 교정 교열 일을 오래 한 사람처럼 맞춤법을 눈과 손에 익게 만들 방법이 뭘까? 저자는 다양한 맞춤법 문제를 담은 문장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만들기로 했다. 어문규정을 몰라서 틀리는 게 아니다. 발음 때문에 실수한다. 외우려고 골머리 앓을 필요 없이 책 속의 문제를 성실히 풀어나가면 된다. 자신감 있게 시작했으나 뒤로 갈수록 썼다 지웠다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의 영토 제빵사에 의해 버려진 빵 다섯 개가 쓰레기통을 탈출한다. "이대로 버려질 수는 없다, 빵집으로 돌아가자"라고 각오를 다지면서. 하지만 '슈크림이 없는 걸 금방 들킬 텐데 어쩌지?' 고민하던 빵들은 각자 흩어져 슈크림을 찾아 속을 채운 뒤 다시 만나기로 하는데... 사랑스럽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내 멋대로 슈크림빵> 이야기. │ 김서정(동화작가, 평론가) '내가 빵이라면 속을 뭘로 채울까' 전체 글 보기 >> ‘갑자기 웬 시설 이야기?’ 오늘의 메인 칼럼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드셨을 수도 있겠네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은 장애인의 날이 가깝다 보니 관련 책에 눈길이 간 것도 있었고요. 지난주 <시사IN> 기사를 읽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가 ‘교도소와 장애인 거주 시설이 얼마나 닮은 꼴인지’ 얘기하는 대목을 읽고 생각이 깊어진 까닭도 있었습니다(이대표는 집회 시위로 부과된 벌금을 내신 대신 노역형을 선택하고 구치소 생활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황두영 작가의 서평 덕분이었습니다. 황두영 작가는 지난해 발간된 <외롭지 않을 권리> 저자입니다.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는 우리사회에 생활동반자법이 왜 필요한지, 논리적이면서도 흡인력 강한 필치로 설득해냈죠. 그가 이 책을 골라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온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신뢰할 만한 이의 서평이 가진 힘이란 이런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서평 전문지가 새로 창간됐다는 것은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출판평론가 장은수씨 말마따나 한국에서 고급 서평지는 사실상 존재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소신 있게 서평을 이어가던 전문지들이 줄줄이 폐간했고, ‘신간 안내가 서평으로 둔갑’해 유통되곤 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죠. 이 와중에 용감하게 첫 발을 내딛은 <서울 리뷰 오브 북스>는 창간준비호(0호)에서 이렇게 선언했더군요. “책이 화제를 뿌리는 것만큼이나 멋진 서평이 화제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라고요. 이들의 창간준비호는 별책부록에 실린 소설가 김초엽,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먹물 누아르' 때문에도 화제가 되고 있던데요. 아무쪼록 그 꿈이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는 인류’를 연결시킬 매개가 하나라도 더 많아지는 건 책 동네에 기쁜 소식이니까요. p.s. 책 동네 기쁜 소식 하나 더 전할게요.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 운영중인 ‘읽는당신×북클럽’ 28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웹 지도가 새로 나왔어요.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찾아갈 수 있는 주거권역)에 있는 우리동네 책방을 단번에 찾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주)동네서점에서 특별히 만들어주신 건데요. ㈜동네서점 웹사이트에 가면 내 맘에 드는 동네책방에서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할 수 있는 #동네서점집으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니 방역 상황 때문에 외출이 꺼려지는 분들은 참조하시길요. "편집자 레터가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서 한 줄 남겼어요." <마지막 산책> 책 소개가 특히 좋았습니다.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지난 뉴스레터를 받아본 독자들이 남겨주신 사연입니다💌 편집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누르고 의견을 남겨주세요. 더 나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귀한 참조가 될 것입니다. 💬 받은 이메일이 스팸으로 가지 않도록 이메일 주소록에 book@sisain.kr을 등록해주세요. 수신거부를 원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주)참언론 webmaster@sisain.co.kr 카톨릭출판사 빌딩 신관3층 02-3700-3200 수신거부 Unsubscri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