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인사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책과 참치’가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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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책은 바닷속 물고기만큼 많습니다. ‘앎’은 너무나 방대하여 늘 모르는 문제가 많고, 새로이 알아가야 할 것들로 넘쳐납니다. 내가 읽는 책의 위상과 맥락을 파악하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얻고자 원하는 건 텍스트의 원양을 건널 ‘앎의 지도’입니다. 각자의 절실함으로 같이 읽을 좋은 책들을 고르고 소개해보려 합니다.
‘읽기와 쓰기’가 혹시 그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닌지 모두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시대(“요새 누가 책 읽어?”), 책 덕후조차 진득한 독서가 도저히 힘든 시대, 라고들 합니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책 읽기 문화에 대한 생각도 나눠보려 합니다.
‘독서 문화’는 분명 살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책 읽는 공간과 방법, 책이라는 물질적 객체 그리고 책 읽는 인간의 관심과 능력 등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전자책(또는 핸드폰 또는 종이책)을, 디지털 공간에 늘 접속된 상태로, 유튜브나 SNS에 영향받고 또 영향을 주면서 읽거나 듣습니다. 그래서 포스트텍스트 시대라는 말도 들립니다. 새로운 독자들은 근대 문예학의 규범을 초월한 장르와 독법에 따라 선택한 책을, 참여자로서 ‘팬’처럼 읽고 즐깁니다. 우리는 변화한 텍스트 환경에 적응해가는 읽는 행위의 증언자이고 싶습니다.
참치는 사는 동안 멈추지 않고 깊은 바닷속을 엄청난 속도로 헤엄치는 물고기입니다. ‘참치tuna’의 이름도 ‘돌진하다rush’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thunnus에서 유래했다 합니다. 참치는 3천 년 전 페니키아인들로부터 인류사와 함께해온 물고기이고, 1950년대부터 신생 공화국 대한민국의 출판업과 바다를 연결해준 매개입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말처럼, 인간과 동물과 기계와 도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헤엄칩니다. ‘책과 참치’라는 낯선 연결엔 책과 인간, 책과 책, 인간과 사회, 사회와 지식의 연결에 대한 상상을 담았습니다. 각자의 취향과 목적은 다를지언정, 함께 책 바다를 항해하며 책들의 지도를 그려갈 분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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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들의 수호성인
몽테뉴와 함께,
‘아무튼, 피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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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돌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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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이 멍청한 계엄령이 뒤덮으려 한 2024년 12월의 하늘을 뚫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수많은 깃발 사이에서 ‘내향인’ 깃발이 유독 반가웠다. 내가 자타공인 내향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엑스(X)에서는, 웬만해서는 사람 많은 곳을 기피하는 내향인마저 깃발을 내걸고 광장으로 나왔으니 사태가 얼마나 엄중한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없이 공유되며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 작고 소박한 깃발이 내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만 같아 ‘내심內心’ 감사했다.
MBTI 유행에 따라 ‘너는 E인가 I인가’를 묻는 일은 흔해졌고 내향인의 엉뚱해 뵈는 면모를 풍자하는 밈도 말도 넘쳐나게 되었지만, 내향인들이 비로소 행복해지는 장소인 ‘자기만의 방’은 민주사회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자연권에 속한다. 그러니 헌법 17조는 대한민국 내향인들에게 최소한의 ‘국룰’이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따라서 헌법 파괴자 윤석열의 탄핵을 외치는 것은 내향인에게 있어 본성에서 우러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다. 내향인에게 12.3 계엄은 내면의 경계선을 침범당한 모욕감을 넘어 생명이 단축되는 듯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윤석열은 선을 ‘씨게’ 넘었다.
내향인은 말 그대로 외부보다 내면을 향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 사이에서 누리는 유대관계의 즐거움을 적극 거부하지는 않지만, 홀로 먹고 마시고 읽고 생각하며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필수적인 삶의 조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정도로도 족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런 본성이 ‘내향인’이라는 명명과 더불어 유별난 인간형으로 새삼스레 강조되는 느낌이다. 경쟁적으로 자기 자신을 팔리는 상품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각자도생이 극에 달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예술인 고 김민기가 생전에 자신을 ‘뒷것’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많은 이가 그에게 존경을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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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취와 열광보다 더 그와 거리가 먼 것은 없었다. 그는 고립된 인간도 은둔자도 아니었으며, 자신을 과시하거나 뽐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탐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탐색했다. _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안인희 옮김, 유유, 2012, 1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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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 2차대전 시기의 유대인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책 『위로하는 정신』은 르네상스 이후의 인문주의자이자 내 식대로는 ‘최초의 내향인’인 몽테뉴에 관한 짧은 전기다. 츠바이크가 1942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붙들던 미완의 원고를 사후에 다듬어 펴낸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는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다. 부제는 츠바이크의 몽테뉴에 대한 직접적이고 집약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벌거벗은 자아도 전시하길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까지 풍기는 이 표현은 ‘뒷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받는다. 츠바이크가 몽테뉴를 그리워했던 이유도 몽테뉴의 이런 면모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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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책에 따르면, 몽테뉴는 부유한 프랑스 보르도 시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16세기의 귀족으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관이 되었고 마침내는 보르도 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다. 그러나 등 떠밀려 두 번째로 보르도 시장에 오르기 전 10년 동안은 자발적으로 ‘사회생활’을 끊고 자신만의 작은 요새 ‘치타델레’를 지어 그 안에 머물며 오로지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가 지금 우리가 에세이라 부르는 장르를 창조한 문필가이기도 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치타델레에서 쓰기 시작한 그의 『에세』 1권 서문은 "독자여,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않다"1) 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 책은 신의 섭리가 아닌 혼란스러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이유로 한 세기가량 스페인과 로마 가톨릭에서 금서로 지정된다. ‘내면’을 지키는 일은 그렇게 역사적으로 험난했고 나는 이런 의미에서 몽테뉴를 ‘최초의 내향인’이라 부르고 싶다.
몽테뉴는 하룻밤에 8천 명이 학살당한 ‘성 바르톨로메오의 밤’ 같은 사건이 일어났던 최악의 종교전쟁 시대, 내전의 시대를 살았다. 페스트가 유럽을 덮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때에 ‘내면’을 성찰하며 자족하는 행위는 가장 누리기 어려운 호사였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과 교리를 놓고 처참한 전쟁이 벌어지는 판국에 신에 의탁하지 않은 독립된 주체로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도 전혀 쉬운 일은 아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즉 자기 자신으로 살기, 점점 더 자유로워지기를 시도했던 셈이다."2) 세상일은 묘해서 그런 입장으로 인해 오히려 온건한 중재자로 부각된 그는 가톨릭과 위그노파 사이를 중재하는 아슬아슬한 임무를 맡게 되고, 결국엔 전쟁을 종식하고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다. 하지만 왕이 제안한 최고위 공직은 기어코 사양해 다시 한번 물의를 일으켰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몽테뉴의 시대와는 또다른 난세를 건너고 있다. 경제 불황과 국내외 정치적 갈등, 극우의 부상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지만 이것만 문제가 아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온갖 정보와 광고의 쓰나미, 소위 맞춤형이라는 외피를 쓴 편파적 알고리즘 기능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좁히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나는 오롯이 나인가 자주 회의하게 되는 때에 이르렀고, 자연과 인간의 종말이나 인공지능 로봇 같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화두가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작가 류은숙은 『아무튼, 피트니스』에서 자기 몸을 외면해왔던(그만큼 내향적인) 작가가 건강 회복을 위해 피티를 받게 된 계기를 인권운동가다운 예민함과 함께 경쾌하게 그린다. 몸에 ‘투자’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은 꽤나 선명하게 계급적이고, 그만큼 몸은 정치적 장소다. 가난할수록 비만해지기 쉽고 부자일수록 몸 ‘만들기’ 쉽다는 게 상식이 된 사회에서 ‘자신만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란, 단단한 내면을 갖추려는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비슷하게 보잘것없는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그럴수록 독단에 빠지거나 열등감에 휩싸여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 열을 올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지혜로운 타협을 할 줄 아는 자는 타인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받을 용기’보다는, 체념하고 물러설 줄 아는 용기를 내기가 실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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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아쉽고 모자라도 내 몸이 나와 동행할 나의 일부라는 것, 남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활력이 있으면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3)
정신적 독재에 '미친 자들', 자기들이 얻은 '새로운 것'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옳은 진리라고 우기면서 자기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보다 몽테뉴가 더 미워한 것은 없었다.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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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할지언정 자신을 가감없이 마주하고자 하는 정직함은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좌절 섞인 불안을 제각각인 삶의 기준들을 이해하고 감내하며 함께 살아가는 관용적 태도로 전환하게 해준다. 그리고 삶의 태도로서 이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최고가 아니어도, 이 정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며 각자의 보편성과 개성을 음미하려는 자세를, 지독한 내향인들의 책에서 발견한다. 읽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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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심민화․최권행 옮김, 민음사, 2022년, 36쪽.
2)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149쪽.
3)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코난북스, 2017, 135쪽.
4)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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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돌문어
어쩌다보니 꽤 오랜 시간 논픽션 편집자로 일해왔습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지인 경북 영주, 안동 등지에서 돌문어는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식자재인데,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때도 숙회로 내놓는다고 합니다. 부드럽고 쫄깃하게 삶은 돌문어 같은 책들을 이곳에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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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츠바이크 #츠바이크 #위로하는정신 #류은숙 #아무튼피트니스 #내향인 #윤석열탄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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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와 독서,
'광장'의 텍스트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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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멍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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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 곁에 책도 있었다
12월 3일 이후, 세 달여가 지났다. 아직도 항쟁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탄핵의 봄을 기다리며 지난겨울의 거리를 떠올려본다. 달라진 시위 문화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풍경을 기억에 남겼다. 형형색색의 응원봉부터 ‘다만세’와 각종 케이팝들, 다양한 정체성을 휘날리는 깃발들, 선결제 먹거리와 난방버스, ‘키세스’ 은박담요, ‘탄핵 굿즈’, 집회 브이로그 영상들까지 모두 오늘날 네트워크화된 시위 문화의 새로운 양상들이다. 그중에서도 독서 문화 연구자인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광장의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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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자유발언 책 내용, 뮤지컬 대사, 좋아하는 학자의 말 인용하던 그 아름다운 사람들 절대 너네는 못 이긴다.” (엑스, @let_herebel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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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엑스(X) 계정주가 말했듯 2024년 12월 21일 밤부터 22일의 낮까지 남태령의 자유발언대에 선 여성과 퀴어 시민들은 자신이 아끼는 말들을 힘껏 인용하며 분노와 연대의 언어를 토했다. 그들의 정체성과 불안정성의 조건이 천차만별이었던 만큼이나 인용의 출처 역시 다양했다. 소설, 노랫말, 뮤지컬, 드라마 대사 등 가리는 것이 없었다. 특히 유튜브로 남태령 자유발언을 시청하던 도중 어느 발언자가 인용한,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문장이 내 귀에 확 꽂혔다. “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다.” SNS에서 꽤나 많이 언급된 문장이었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남동을 비롯해 전국 지역의 광장으로 책 좀 읽는 청년들이 몰려나왔다. 대개가 여성인 그들의 손에는 응원봉과 함께 책이 들려 있었다. 왜 책을 가지고 시위에 나선 것일까? 무슨 책을 들고 나갔나? 무슨 책이 화제가 됐나?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시민들은 탄핵 촉구 집회 현장을 오가며 책을 읽었다. 국회로 가는 지하철에서 혹은 남태령의 길바닥에서 책과 패드를 꺼내 현 시국을 연상시키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집회 현장에서 데이터 사용이 폭증해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는 경우를 대비해 책을 들고 간다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집회에 나갈 때 들고 가는 가방의 내용물을 소개하는) ‘왓츠인마이데모백’ 영상과 글을 보면, 그렇게 책 한 권씩을 챙겨 담은 경우가 적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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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등’의 깃발들
깃발도 빠질 수 없다. 광장에 등장한 다채로운 깃발 중에는 독서와 글쓰기에 연관된 것도 꽤 많았다. ‘책 읽다가 뛰쳐나온 활자 중독자 모임’ ‘원고하다 뛰쳐나온 로판 작가 모임회’ ‘뜬눈 편집자들’ ‘웹소작가 마감하기도 하기도 급한데’ ‘전국 웹소 읽기 연합회’ ‘벼락치기 독서모임’ ‘병렬독서 인구 모임’ 등 작가, 편집자, 독자들이 만든 깃발이 대표적인 예다.
웹소설의 문장을 인용하거나 가상의 조직과 등장인물을 내세운 깃발도 화제가 됐다. 그중 특히 연산호 작가가 쓴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이하 ‘어바등’) 관련 깃발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근미래 국제해저기지의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이 웹소설은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만큼 깃발의 가짓수도 많았다. ‘어바등 해저기지 노동조합’ ‘북태평양 해저기지 뜨개모임’ ‘박무현 치과의원’ ‘북태평양 해저기지 평화협회’ ‘등불보존연구소: 심해해달서식지부’ 등 『어바등』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덕후적’ 표상들이 깃발에 새겨져 있었다. 팬들은 저 깃발들에 적힌 “나는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현 시국과 겹쳐 읽으며 진심으로 울컥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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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인증한 ‘이 시국의 책 읽기’
시민들은 시위를 마치고 난 후에 집회 현장을 오가며 읽은 책, 광장의 길바닥에서 본 책, 집에 돌아와서 찾아본 책을 SNS와 블로그에 인증했다. 과연 ‘텍스트힙’의 시대답다. 그들이 선택한 ‘이 시국에 읽을 책’은 무엇이었을까? 엑스와 블로그에서 ‘시국’ ‘집회’ ‘책’ ‘독서’ ‘읽기’ 같은 단어를 검색해봤다. 다양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뚜렷하지는 않으나 어떤 경향성을 띠는 듯했다. 언급된 빈도가 높았던 책 몇 가지를 소개한다.
역시나 가장 많이 거론된 책은 한강의 소설이다. 계엄 직후인 12월 11일에 때마침 스웨덴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한강 작가는 수상 기념 강연에서 “폭력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일의 고통과 연대의 환희를 토로하면서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1) 시위 현장에 이 책을 부적처럼 갖고 다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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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에 계신 20대 여성분은 5.18의 이야기를 담은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책을 계속 들며 시위하셨어요.” (엑스 @jjangdy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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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여러 한국 소설이 2030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많이 회자됐다. 한강의 작품 다음으로 자주 SNS에 소환되었던 책은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다. 단지 이 소설이 연세대 한총련 사태, 광우병 촛불집회,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한국 당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여성 혐오와 차별,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혁명과 시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긴 작품이자 퀴어 서사로서 너무나 시의적절하다는 평이 다수였다. 윤석열 탄핵 집회가 단지 치졸한 대통령과 그 수하들을 몰아내는 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여성과 퀴어 독자들의 염원이 이 책을 재발견하게 했을 것이다.
남태령 투쟁은 출간된 지 물경 이십 년이 넘은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소환했다. 엑스의 시민들은 전농의 트랙터가 서울로 향해 달리고 있을 때, 소설의 주인공인 농민 황만근을 떠올렸다. 황만근은 홀로 경운기를 타고 농가 부채 해결을 위한 농민 총궐기 대회에 참가하려 했지만 끝내 목적지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과는 다른 현실의 희망적인 결말. 2024년의 ‘황만근’들이 끄는 13대의 트랙터는 ‘응원봉’과 더불어 28시간의 대치 끝에 경찰버스의 벽을 뚫고 한남동 관저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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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는, 혼자 경운기를 끌고 농민 총궐기 대회에 참여했던 황만근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결말은 어떠했나. - 일주일 뒤에 황만근은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그를 안고 돌아왔다. 한 항아리밖에 안 되는 그의 뼈를 담고 돌아왔다. - 우린 연대해야만 한다.” (엑스 @Jey_novem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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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논픽션들이 언급되었는데, 정보라의 『아무튼, 데모』가 단연 화제였다. 2010년대 주요 시위 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이 책은 그야말로 ‘시국 맞춤 책’이었다. 집회 준비물이나 오체투지의 요령 같은 실용적인 정보도 흥미롭지만, 정작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위 참여란 (대하기 껄끄럽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 그들의 말을 듣고 내 목소리를 보태고 함께 연대하면서 공동체의 질감을 느끼는 일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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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여럿 눈에 띄었다.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등은 제목부터 현 시국의 핵심 문제를 강렬하게 환기하는 책들이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완벽할 수 없는 제도이고,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극심한 퇴행을 겪고 있으며,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인해 현대 민주주의가 큰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이 책들의 공통 전제다.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었듯 하버드대 정치학자들이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트럼피즘Trumpism에 의한 미국 민주주의의 붕괴를 다룬 책이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목도한 시민들은 이 책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너무 우리 얘기’라며 무릎을 쳤다.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고, 폭동을 조직하고, 반란을 조장하고, 폭탄 투척 및 암살 등 다양한 테러 행위를 계획하고, 정적을 물리치거나 유권자를 위협하기 위해 군대나 폭력배를 동원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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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텍스트힙
그 밖에도 여기 다 적지 못한 수많은 책이 있다. 책 관련 뉴스레터와 출판사 SNS, 온라인 독서모임 등에서 만든 다채로운 ‘이 시국에 읽을 책’ 목록들이 있다. 연초에는 헌법 관련 책의 판매가 급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집회에 가지고 가거나 SNS에 인증한 ‘힙한’ 텍스트들 중에 계엄과 탄핵, 독재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룬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시위 현장에 갖고 나간 경우도 많았다. 한국사, 페미니즘, 기후 위기, SF,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 시집 등 장르나 주제도 다채로웠다. 말하자면 ‘이 시국의 책’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시민들이 각자 책을 읽다가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투영하여 시국과의 연관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도 SNS에서는 또다른 ‘이 시국의 책’들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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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강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 경향신문 2024.12.8.
2)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024,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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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멍탐정
출판 및 독서 문화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 여기서는 글로벌 독서-문화의 동향을 소개하고, 한국의 베스트셀러 문화를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여가 시간에는 세계 각국 독서문화사의 어두운 심해에 잠겨 있는 귀하고 특이한 책과 독자를 찾아 매일 검색의 항해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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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국의책 #시위와독서 #‘광장’의책읽기 #‘광장’의텍스트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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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편집
김만석, 김지원, 박영신, 서민우,
이용희, 이우창, 천정환
디자인 김다혜
발행 콘텐츠랩 책과참치
콘텐츠랩 책과참치
booksnchamc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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