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극장을 논하다 (한국연극, 2022년 6월호)
"한국에서는 '다원'이라 불리지만 국제적으로는 현대예술, 또는 아방가르드 예술이라 불립니다" ... "기존의 규범, 체제, 형식에 저항하면서 예술을 통해 세상을 변혁할 수 있다고 꿈꾸던 아방가르드지만 그러한 아방가르드 예술도 오늘날 자본의 위력 앞에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원동력이었던 ‘부정성’마저 자본에 침식당해 더 이상 부정성이 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다원예술'이라는 표현을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고 이건 '융복합 예술' 같은 뜻을 표현한 것일까 혼자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방가르드'를 지칭하는 용어라니요. '신(New) 사업'인 줄 알았는데 '반(Anti) 사업'이었다니요! 무려 14페이지에 달하는 긴 대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자본주의 시대 예술의 위기감, 그리고 이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미술계만 하더라도 자본화가 개미지옥처럼 깊어져 버렸고 이제 그쪽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얘기는 정말 한물간 구닥다리처럼 여겨지는 것 같거든요” ... “아직도 자본의 침식이 덜하고 회복이 가능한 분야가 있다면 저도 연극, 아니 연극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 “아방가르드가 불가능한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제도로부터 저항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믿는 정신, 그 무모한 태도에서 침몰하고 있는 예술의 마지막 희망을 봅니다”

두 분 모두 '연극'을 아방가르드의 최후 보루로써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건 그동안 제가 '연극'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뮤지컬 말고 연극이요)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이쯤에서 비상업 연극이 공공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명분,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성숙한 시민’을 창출해 내는 가치, 그것 때문에 공공재로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음을 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예술은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며, 또한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님을…” “한국연극계에서 좋은 연극이란,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연극’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때문에 연극이 대중성에서 자유로운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연극’이 꼭 좋은 연극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올해 저희는 'VR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장르로 정부지원사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상업적이지 않은 이 분야에 왜 정부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장은 돈이 안 되지만 나중엔 돈이 될 수 있으니까... 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초기 투자' 관점에서 그렇겠거니 생각한 정도였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미래 가치를 보고 초기 투자하는 건 굳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 정부가 이런 (비상업) 연극을 지원하는 이유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그러한 연극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니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우리가 지금 세상에 내놓으려는 작품이 공공재로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한편, ixi가 관심을 갖는 주요 화두인 '인터랙티브'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요.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게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거죠” ... “극장이나 미술관에서 ‘능동적’이 된들, 그게 모양새로만 나타나고 극장 바깥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계속 수동적인 삶을 살면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아니, 진정한 고민 없이 스타일로만 상호작용하고 만다면, 도리어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거죠” ... “그저 능동적인 소비자만 될 뿐인 거죠. 상호작용은 사실 자본주의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요?” ... "인터랙티브가 아니라 인터패시브 연극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싶은 관객, 혹은 참여자는 그저 '능동적인 소비자'면 충분한가, 아니면 우리 역시 그 이상을 바라고 있는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VR과 연극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나왔습니다. VR이 연극의 가장 고유한 차별성인 '현장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관점이었는데요. 

“가상현실이 뜨거워지면서 ‘고글 안은 가상, 바깥 현실은 실재’라는 이분법적인 전제가 쉽게 통용이 되는데 그로부터 벗어난 현실과 감각의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 “현장성은 연극이 영화를 비롯한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독보적인 예술로 만드는 결정적 요소죠. 그런데 가상현실을 통해 증강현실이 가능해지고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인류세의 변곡점에 진입한 지금, 우리는 연극을, 그리고 연극의 현장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세기 말 무성영화의 시작이 연극무대였듯이, 이제 첨단 IT 시대 가상현실 게임을 비롯한 새로운 영상미디어 역시 연극성에 기반해 진척될 것입니다

저 역시 VR을 쓰면서 '연극'으로부터 배울 게 있겠다 싶었던 건 연극이 현장성에 관심을 갖는 장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VR 경험 역시 '현장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하지만 이 '현장성'은 반드시 물리적 현실의 현장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VR에서 이머시브 연극 연습을 하고 또 실제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동안 저는 지금 이 경험은 현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우/관객과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험적으로 그 모두가 한 공간에 있다고 느끼고 교감했던 것 또한 명백했거든요.   

저도 어느 정도는 VR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가 '연극성에 기반해 진척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미디어의 진척이 기존 예술을 모두 집어삼킨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의미가 될 지 자본주의 시스템 내의 '신제품'으로 기능할 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가짜가 아니다, 다만 가상일 뿐이다" (시사in, 2022.7.19)
이미지 출처 : 시사in 홈페이지
'미래극장을 논하다'를 정리하며 떠오른 또 하나의 기사가 있었는데요. 같이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이 기사들을 읽으면서 가상현실이 기존 물리적 현실에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현장성'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그러한 조짐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가상 인간의 활약으로 증명된 것은 CG 기술 수준만이 아니다. 대중의 '비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것 역시 의미 있다" ... "어쩌면 우리도 정체성의 일부는 이미 가상화된 게 아닐까?"

저는 가상인간/가상현실에 우호적인 세대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 게 아니라 굳이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전에 소개드린 '메타 사피엔스'적인 모습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저항'이 필요했던 이유는 싫든 좋든 하나의 세계에서 같이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떠날 수 있다면요? 지금 사는 세계가 싫다고 할 때, 그걸 고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더 나에게 잘 맞는) 세계를 찾아 떠나면 된다면요? 인간이 싫다고 할 때, 어떻게든 인간으로서 적응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면요? 

앞으로의 변화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뉴스] 밤의 찬가 (7/15~8/7, 문화비축기지, 서울)
이 작품은 '다원예술 퍼포먼스'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음과 동시에 '2022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추구하는 '다원'이란 뭔지 '이머시브'란 뭔지 궁금해지더군요. 

"이머시브, 곧 장소를 이동하며 각기 다른 환경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경험하도록 하고 이색적인 감각의 전시를 선보입니다"라는 소개 문구에서 '이머시브'라는 단어는 장소를 이동하는 경험을 지칭하는 것처럼 쓰이고 있는데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겼을 지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번 주말 직접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뉴스] 세브란스 in SDCC 2022 (7/21~24, 미국 샌디에고)
이미지 출처 : Slashfim.com
샌디에고 코믹콘이 개막했습니다. 한때 이 행사에 가보는 것을 위시리스트 1순위로 꼽기도 했었는데요. 올해는 애플TV 오리지널 '세브란스:단절'의 이머시브 전시가 샌디에고 코믹콘에서 열린다는 소식 때문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애플TV' 구독을 이 작품 때문에 못 끊고 있습니다)

극의 배경이 되는 '회사' 신입사원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요. 이제 작품의 세계관을 공간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와 같은 작품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이러한 이머시브 전시를 활용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뉴스] 웰컴 투 레스피트 in LA (7/30, 8/6, 미국 LA)
한국어판 공연을 막 마치자마자, 다시 영어 오리지널 공연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VR 이머시브 연극 <웰컴 투 레스피트> 영어버젼 공연이 7/30, 8/6 양일 간 LA에서 재개된다고 합니다. 직접 LA에서 볼 수도 있고 온라인을 통해 볼 수도 있다고 하니, 혹시 오리지널 영어 버젼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이번 기회를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티켓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VR 헤드셋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2D 스트리밍 버젼도 제공한다고 합니다. 
[뉴스] 미국 타임지 '메타버스' 특집 커버 (8/8 일자)
이미지 출처 : TIME 홈페이지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미국 잡지 '타임'의 8/8일자 표지가 '메타버스'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타임은 2015년 오큘러스 창업자 팔머 러키를 다소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표지를 낸 적 있었는데요. 정확히 7년 만에 '모든 것을 바꿀 차세대 디지털 시대'로서 메타버스를 언급합니다. 이 잡지가 '메타버스'에 대해 이 정도로 확신하는 것 같지는 않고 매튜 볼의 신작 '더 메타버스'를 소개하는 취지의 커버입니다. 

그만큼 매튜 볼의 신작이 주목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텐데요. 7/19일 출간 되자마자 아마존 기술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거의 모든 XR 인플루언서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매튜 볼이 이번 '메타버스 신드롬'을 일으킨 핵심인물이니까요. (저는 이번 메타버스 신드롬이 매튜 볼의 2020년 1월 에세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책입니다. 몇 개월 전 매튜 볼에게 '직접 한글판 출시계획은 당분간 없다'라는 답변을 받은지라 어쩔 수 없이 영어판을 주문했는데요. 혹시나 같이 읽으실 분이 있다면 이 핑계로 독서모임이라도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함께 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디스코드 ixi 채널에 남겨주세요. 아무도 없더라도 이번 여름 휴가 시즌 혼자서라도 뒤적거려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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