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91회 (2022.02.08)
  

<우리는 시를 사랑해>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임선우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 벌써 입춘이네요. 기나긴 겨울을 여러분은 어떻게 나셨나요? 사실 저는 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해서 겨울이 끝났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워요. 저에게 겨울은 따뜻함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하는 계절, 거리의 불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찬바람이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겨울에 대한 제 기억의 한 조각을 여러분에게 나눠드리려고 해요.

지난겨울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만 내릴 곳을 지나쳐서 커다란 교회 앞에 내리게 되었는데요, 한밤중의 교회는 아주 조용했고, 낮 동안 천천히 내리던 눈은 어느새 그치었고, 눈앞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이 넓게 펼쳐져 있었어요. 눈을 밟으며 걷다보니 오래전에 눈길을 함께 자주 걸었던, 이제는 없는 사람이 떠올랐어요. 동시에 저는 온몸에 환하게 불이 켜지듯 행복해졌고, 무척 행복해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비로소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런 순간은 어떻게 예고도 없이 삶에 찾아오는 걸까요? 눈물의 새로운 경로가 생겼다는 것은 드디어 조금 성장했다는 의미일까요?

💘임선우 소설가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자유형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나아가는 방식에도 자유가 있다니

팔로 만든 아치에도 형식이 있다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트를 그리는 걸까

물을 밀며 물을 마시며 물과 싸우다

물배가 차서 수박처럼 동그래지고

 

무지개를 상상하며 팔을 뻗어요

강사님의 아름다운 설명 때문에

물속에서 입 벌리고 울 뻔했어요

이대로 팔과 다리에 살이 붙으면

죽은 개들을 다시 만나러 갈 것 같아서

 

님아 그 강 그 강 모두 강 때문이죠

번들거리는 몸도 마음도 강 때문이죠

수영을 시작한 건 귀하게

숨을 쉬고 싶어서

죽을 것처럼 보고플 때 빠지지 않고

숨을 색색 쉬며 용감하게 나아가려고

 

그러니 우선 자유부터 익혀야 해요

몸에 힘을 빼고

수박에 줄을 긋듯이

물속에선 마음껏 일그러져도 괜찮아

벼락의 길을 부드럽게 따라 흐르며

멍든 팔을 구명줄처럼 수면에 뻗을 때

 

내 무지개 속엔 개가 있고 엄마가 있고

언덕이 있고 복수(腹水)가 차고 무덤을 그리고

내 그리움 속엔 왕릉만한 비탈이 있어서

정수리 너머로 봉분을 힘껏 끌어안을 때

심장을 그리는 법을 알 것 같은데

 

나는 청어를 알아요 등 푸른 몸과 헛물을 안아요

물을 잔뜩 먹고 부푼 나는 하마가 되어

부드럽게 유영하는 할머니들을 봅니다

백자 같은 인간의

어깨와 곡선

아름다움은 다 겪고도 안아주는 것

 

어때요 기분좋은 저항이 느껴지나요

물레 감듯 모든 걸 안고 나아가세요

강사님은 아름다운 말만 툭툭 내뱉고

나는 그게 수박씨처럼 귀하고 예뻐서

눈귀코를 번쩍 뜬 채 팔을 뻗쳐요

그렇게 품을 알 때까지 수영은 계속되어요

「자유형」을 읽는 동안 눈 쌓인 교회 앞을 걷던 그 겨울밤이 떠올랐어요. 그리움이 무지개가 되는 순간을, 슬픔 속에서도 귀하게 숨을 쉬며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요.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말의 의미는 슬픔을 극복했다는 것이 아니라, 슬픔마저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생겼다는 뜻이겠죠.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읽다가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던 이유는, 라임빛 표지처럼 환한 시들이 자꾸만 제 안에 남은 사랑을 비춰주었기 때문이에요. 말갛고 단단한 사랑의 기록들을 읽다보면, 저 또한 받은 사랑을 함부로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씩씩하게 내일을 살아가고 싶어져요.

그러나 그러한 마음에 가닿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요. “죽을 것처럼 보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사랑하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할까요. 그래서인지 “그렇게 품을 알 때까지 수영은 계속되어요”라는 시의 마지막 행은 어쩐지 자유로운 슬픔을 향한 다짐처럼 읽히기도 하고요. 반복해서 마지막 행을 읽다보면 시에 아직 적히지 않은 연습의 미래를 헤아려보다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추신. 「자유형」을 읽고 나면 자유라는 말을 더 사랑하게 되어요.

  
  🤍막간 우.시.사. 소식🤍

"2023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詩를 사랑해."
2023 #동네라이브 세번째 시간✨
양안다 시인편 (with 박연준 시인) 

 
모든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한 영원의 이야기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양안다 시인을 만날 수 있는 시간!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시인과 함께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인간이라는 미로를 탐색해보아요 💖

📌2/9 목요일 저녁 7시 30분 문학동네 인스타그램

💘임선우 소설가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울음으로 가득 찬 그림자였어요, 다리를 절던 까마귀가 풍장되던 검은 거울이었어요 (혹은 잠을 위한 속삭임)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어쩌면 춤은 새의 다리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심리학자의 병도 어쩌면 나비의 심장에서 나온 것일지도 몰라요, 제 고향 바닷가에 있는 암벽에는 공룡의 발자국이 있지요, 새 발자국처럼 아련했어요,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나봐요,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새벽이면 먼 나라에서 새들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요, 마치 아주 어린 당신이 나를 마중 나오는 것 같아요

 

가슴에 꽉 찬 이 물은 해류처럼 자꾸 움직여요, 대륙보다 물이 더 많은 지구를 내 몸은 닮아가는 것 같아요, 차가운 물이 혈관을 지나갈 때마다 짐승들은 죽어가고 뜨거운 물이 지나갈 때는 식물들이 죽어가는데 속수무책으로 내 몸은 별로 향해 가고 있어요,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성교처럼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은 흐느끼지요, 마치 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갈 때 정류장으로부터 따라오던 검은 비 같아요

 

저 마른 풀에도 보랏빛 꽃이 피었어요, 잎과 줄기가 말라가는데도 들양귀비꽃이 붉게 웃고 있어요, 불안한 저녁에도 밤은 왔구요, 어둠이 오자 꽃술처럼 떨리던 가녀린 불안은 사라졌지요, 다리를 오그리고 잠 속으로 들어가는 활짝 핀 꽃처럼요, 빛이 오기 전까지 오므린 다리 속으로 꽃술을 가

난하게 보호하는 꽃처럼요

 

밤이 이렇게 일찍 올 때 내 속에서 자꾸 죽자고 소리 지르는 당신은 누구인지, 거리에서는 축복받지 못한 탄생에 대한 노래만 흘러나오고, 저 대양 위에는 흰 이처럼 번득이는 눈이 내리고 아직 목숨이 없는 아기의 얼굴을 한밤이 흘러가요, 빛을 잃어서 헐거운 나무들은 해안에 서서 밀려오는 물결을 향해 젖은 손을 자꾸 내미는데

 

여관에 누워 나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사랑을 생각했어요, 잃어버리고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랑에 대하여, 그 오렌지와 레몬의 세월, 자두와 수박의 세월, 검고도 붉은 과육의 세월, 그 뱀 같은 땀의 세월에 대하여, 저 푸르른 심장의 나날들 그리고

 

날 보내지 말라고, 날 비행장에 두고 부두에 두고 터미널에 두고 도시 속으로 사라지지 말라고 날 여기에 두고 실종되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별의 시간이 사마귀처럼 돋아나는 발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효 시절 동안 내가 뭉갠 건, 나의 몸이요, 내 몸은 새로운 냄새를 풍겼어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냄새를 향해 당신, 아직 어설픈 상처를 드러내본 적 있어요?

 

다만 청국장 끓이는 냄새를 맡으면 길고 긴 죽음의 잠 속에서 실종되어버린 곰 생각이 왜 날까요, 오래전에 한 밥집에서 청국장을 먹었을 때 김 속, 긴 잠 속에 빠져 있던 곰이 나타난 적이 있었어요, 그 곰을 잡아먹은 어미들이 곰의 가죽을 걸치고 우는 것을 보았지요, 먹어치운 곰의 살을 뱃속에 담고 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요, 시간이 시간이 아직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태어나서는 사라져요

 

고래의 가장 가녀린 실핏줄 속에까지 만신의 얼굴은 들어 있어서 저 무거운 점액의 생명인 바닷물은 일어나는지도 몰라요, 물결, 그것 자체가 만물인 바닷물 속에 가만히 들어가면 내 무시무시한 조상들이 아직 그곳에 살고 있어요, 아직 나이지 못한 나의 조상들은 바다를 헤엄쳐요, 나는 따뜻한 물속에서 내 조상이 지냈으면 했어요, 한류의 차가운 심장을 두들기는 물고기로 다시 시작해서 어느 식탁 위에 오르고 싶은 나는 인간의 여자 시간 사십오를 살고 있는데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숨만이 길인지도 몰라요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아주 늙은 당신이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요, 가녀린 손가락의 나날 동안만 연애를 하던 청춘의 별 같아요, 작은 개다리소반에 올려져 있던 영혼 같아요, 밭에서 따온 아침 오이 같아요, 그리고, 고추장에 박힌 아린 마늘 같아요, 아직 돌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는 숲 같아요, 검은 거울 같아요

 

증발한 수분을 기다리는 눈물 같은 시간 앞에서 푸른 미역의 말들을 그렸지요, 도자기를 굽는 가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흙이 굳어가는 시간을 추억했어요, 얼마나 깊이 바다로 내려가야 우리는 바닷속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 심연에서 태어나서 불을 환하게 켜는 이름 없는 해파리들에게 저 가녀린 빛의 다리를 준 이는 누구일까요? 흐느적거리는 팔다리에 심연의 아늑함, 존재의 배를 타고 바다의 바닥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어 같아요, 이 밤은 그네의 흔들거리는 시간처럼 유모차 하나가 내 몸속에 살아요, 누군가 나를 언제나 실어나르는 그 유모차 속에 앉아 나는 노래하지요, 노래하지 않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악보는 날아가는 새의 귀에 들어 있지요, 눈 감은 물고기들 피곤한 물이 물고기들을 해안에 밀어놓았고 게들은 뻘 안에서 울었어요, 검은 손을 가진 바람이 와요, 태양은 자러 바다 밑으로 들어가네요, 그 바다 밑을 우리는 지구의 저편이라고 불렀지요

 

그러나 그리움과 슬픔을 안고 씩씩하게 나아가다가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게 됩니다. 거대한 슬픔을 마주하고, 슬픔의 더 먼 곳까지 나아가고 싶어져요.

「울음으로 가득 찬 그림자였어요, 다리를 절던 까마귀가 풍장되던 검은 거울이었어요 (혹은 잠을 위한 속삭임)」을 읽을 때면 저는 거대한 슬픔의 세계를 떠올립니다. 어젯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적인 슬픔이 눈을 떠보니 수천수만 얼굴로 다시 태어나 나를 바라보는 그런 세계를요. 그 세계에서도 시간은 지나가고요, 저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그곳을 산책합니다. 어지러운 산책의 중심에는 과녁처럼 정확하게 당신이 있습니다. “날 여기에 두고 실종되지 말라고” 보내는 문자는 너무 절박해서 읽기조차 괴로워요. 저는 도망치듯 애원으로부터 빠져나와 바다의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작은 개다리소반에 올려져 있다가, 지구의 저편까지 가게 되어요. 그렇게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마주하게 된 슬픔은, 어쩐지 이전과는 다른 빛깔을 지니고 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추신. '잠을 위한 속삭임'이라는 제목 때문일까요. 이 시는 자기 전에 읽을 때 가장 좋습니다.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다음주 시믈리에는 최진영 소설가입니다.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의 소설로 많은 독자들께 꾸준히 사랑받아온 분이지요.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이 이번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최진영 소설가가 고른 두 편의 시는 무엇일까요? 다음주 수요일에 만날 수 있습니다!
💛<우시사>의 시믈리에가 되어주실 분 🙋‍♀️💛

<우시사>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아래 링크의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주세요.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어 <우시사> 독자분들께 대신 소개해드릴게요.
  
💌지난호 <우시사>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 한 편의 시를 다양한 방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요.
💬 어느 정도 나이가 드니 <우시사>에서 소개하는 시를 읽으며 옛일을 많이 떠올립니다. 국수를 밀던, 마디가 굵고 거친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이 생각나고, 책갈피에 붉은 단풍잎 끼워 책을 선물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의견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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