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과 향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당신이 읽고 싶어지는 책을 소개합니다 📚

“바다 냄새는 단순하면서도 거대하고 독특했기 때문에 그르누이는 그것을 생선, 소금, 물, 해초, 신선한 공기 등의 냄새로 나누기를 주저했다. 그는 그 냄새를 나누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전체로서 기억해 두었다. 바다 냄새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과도 섞지 않고 순수하게 그것을 간직했다가 그 냄새에 완전히 취해 버리고 싶었다.”

-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 우리는 왜 향수를 뿌릴까?

현대인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곤 합니다. 영상과 게임처럼 많은 이의 여가시간을 책임지는 엔터테인먼트는 우리를 더 자극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죠. 그러나 대다수의 자극들은 대부분 시각과 청각에 국한되어 있었는데요. 최근 들어 ‘후각’은 새로운 자극제로서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향수, 입욕제, 바디스프레이 등 ‘향’에 관련된 제품들의 판매가 늘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소확행’, ‘스몰 럭셔리’라는 트렌드가 마스크 착용이 보편화되며 향수를 타겟으로 삼게 된 것이죠. 딥티크, 바이레도 등 독특한 향과 예쁜 패키징을 선보이는 프리미엄 향수, ‘니치 향수’ 또한 각종 플랫폼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선 여러분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향과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토록 향을 특별히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향을 담은 향수란 대체 어떤 상품인지 조금 더 재밌게 알아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책

〈향의 과학〉 | 히라야마 노리아키

추천이유: 향, 후각에 대한 과학 연구를 알기 쉽게 풀어쓴 책, 프루스트 효과의 과학적 원리가 담겨있어요.

〈냄새들〉 | 김수정

추천이유: 추억을 냄새로 기록한 작가의 따뜻한 에세이집. 각자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책입니다.

〈악취와 향기〉 | 알랭 코르뱅

추천이유: 향수의 탄생을 근대 서양 역사와 함께 되짚어볼 수 있는 책. 서양사를 냄새로 배우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향기 탐색〉 | 셀리아 리틀턴

추천이유: 프랑스, 모로코 예멘 등 다양한 나라와 지역에서 기록한 향기 답사 기록. 이국적인 장소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 향기에 담긴 이야기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 바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에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 덕분에 냄새로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떠올리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후각은 기억을 담지하는 메신저로 기능합니다. 향과 같은 후각 정보는 시각이나 청각 정보와 달리 뇌에서 바로 감지된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후각의 감각적 특징 때문에 냄새는 기억하는 주체의 감상이 덧씌워진 특별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냄새로 각인되어 그 냄새를 맡았을 때 아주 선명하게 우리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이죠. 🎈

사진 : ⓒ 황소자리

〈향의 과학〉이라는 책은 이러한 프루스트 효과를 비롯해 향의 과학적 기원과 발전을 역사적 연대기를 따라가며 소개하고 있는 책인데요. 이집트 미라에 사용된 향료부터 어떤 화학자의 폭발사고로부터 시작된 라벤더향, 우리의 삶의 질을 책임지는 인공적인 ‘좋은 향’까지. 이처럼 저자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곁을 지켜온 향에 대한 과학 연구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후각의 특성을 중심으로 향기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향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금술사와 과학자들의 노력은 무엇이었는지, 좋은 향을 만드는 비밀은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똥 냄새’라고 인식하는 냄새와 재스민 향이 사실은 똑같은 분자라는 것, 이런 흥미로운 향과 관련된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는 교양서입니다. 🌸

📝 책 속 한마디

“농도에 따라 냄새의 질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분자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인돌이다. 인돌은 농도가 높으면 분뇨처럼 불쾌한 냄새이지만, 묽어지면 완전히 달라져 하얀 꽃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향이 된다. 재스민 꽃 안에는 인돌이 함유되어서, 재스민 특유의 개성을 나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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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 꿈꾸는인생

물론 과학 이야기 대신 냄새가 불러오는 특별한 기억에 잠겨보고 싶으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 바로 김수정 작가의 〈냄새들〉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1인 출판사인 ‘꿈꾸는 인생’에서 펴낸 책인데요.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기록하는 ‘들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나온 에세이입니다. 온갖 추억을 후각으로 담아온 저자가 일상 속에서 맡았던 온갖 냄새들을 기록하며 향수에 잠겨볼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가 실려있어요. 님께서도 분명 특정 냄새와 관련된 기억이 있으실 텐데요. 같은 장소나 상황을 저자는 어떤 냄새로 기억하고 있는지, 만약 그런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작가의 기억을 통해 나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부분은 ‘계절 냄새’에 대한 서술입니다. 어느덧 겨울이 찾아온 지금 겨울 냄새에 대한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일상 속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과연 우리 곁에 찾아온 겨울 냄새는 어떤 걸까, 나는 겨울을 어떤 냄새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아래의 책 속 한마디와 함께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

📝 책 속 한마디

“어린 시절 엄마는 가난한 사람에게 겨울은 힘든 계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그래도 난 겨울이 좋았다. 엄마가 목 끝까지 덮어 준 솜이불에서 나던 장롱 냄새, 귀에 걸어 준 분홍색 면 마스크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던 엄마의 크림 냄새가 따뜻했다. 묵직한 이불을 덮을 때, 보드라운 마스크를 쓸 때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럴 때마다 히죽 웃으며 엄마를 힐끗 바라보았다. 또 뭐가 그렇게도 신났어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는 엄마의 거친 손에서도 어렴풋이 겨울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빨랫비누 냄새, 연탄집게의 매캐한 냄새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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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향수를 뿌리는 이유

앞서 살펴 봤듯이 냄새, 향은 기억의 강력한 매개체가 됩니다. 그러니 향은 실상 가장 중요한 자기 표현의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특별한 향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롭고 특별한 일일 테니까요. 물론 각자가 지닌 체취로 기억되는 것 또한 정말 좋겠지만, 나의 가치관과 분위기를 더 잘 나타내줄 수 있다면 조금 더 만족스럽겠죠. 아마 우리가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 ⓒ 오롯

그렇다면 향수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상품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악취와 향기〉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답니다. 이 책은 알랭 코르뱅이라는 유명한 프랑스의 근대 역사학자가 쓴 책으로, 18~19세기 서양 근대 사회에서 후각이 중요한 감각으로 떠오르며 생겨난 악취와 향기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과학과 의학이론이 발전하며 ‘공기’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고, 하수구, 변소, 도축장 등 ‘악취’가 서린 장소와 함께 살아가던 근대 유럽의 시민들은 순수한 공기를 예찬하며 악취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생의 규율들이 처음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던 것이죠. 냄새가 부르주아와 서민을 구분하는 기제로 활용되면서 냄새가 사회적 계급을 비롯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설명 또한 흥미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소설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한데요. ‘냄새’로 읽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중요한 저작으로, 향수만큼이나 큰 지적 자극이 되어줄 텍스트입니다. 👒

📝 책 속 한마디

“내적 독백에 어울리는 은밀한 장소의 확보는 개인의 방이나 손님을 위한 거실의 향기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이런 장소 덕분에 사적 공간의 한복판에서 ‘후각의 미학’이 생겨났다. 은밀한 사생활의 장소를 장식하는 데 어울리는 향기의 기술이 등장한 것에 발맞추어 향수 가게도 발달해가는 조짐을 보였다. 향기의 기술과 향수 가게의 발달은 동일한 의지에 기초해 있었던 것이다. 곧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섬세한 변화를 주고 싶다는 관심과, 개성을 나타내서 돋보이고 싶은 의지는 뿌리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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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기]

🗯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사진 : ⓒ 열린책들

영화로도 유명한 이 책은 아마 향수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소설일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2천만 부가 팔렸을 만큼 대단한 베스트셀러이지만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데요. 이는 작가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일절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성격만큼이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간의 고독과 소외, 고립된 공간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또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라는 고독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어떤 냄새든 맡을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루누이는 아무런 체취를 가지지 못 해 항상 알 수 없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향수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죠. 결국 ‘사람’을 재료로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향수를 만들게 되는데요. 그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 사건들, 과거 프랑스의 악취나고 향기나는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바인드북 블로그에 자세한 리뷰가 담겨 있으니 한 번 둘러보고 가세요. 😄

🔎 우리가 좋아하는 ‘그 향’의 정체

사진 : ⓒ 뮤진트리

머스크, 우디, 시트러스… 향수를 사러 가면 그 향을 설명하는 수많은 용어들이 따라오곤 하는데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향수의 원료는 자연으로부터 오거나 자연의 향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향기 탐색〉 이라는 책은 이처럼 향의 기초적인 원료가 어떻게 자라고 재배되는지 세계 곳곳을 답사한 기록을 담은 글입니다. 저자 셀리어 리틀턴은 고고학자인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어머니와의 여행에서 남은 기억들에 천착해 자신이 마주한 수많은 향의 기원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향의 기초적인 원료와 재배 방식부터 그 향이 향수로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라스, 모로코, 인도, 예멘 등 이국적인 장소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려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자가 자신만의 향을 찾는 여행을 하며 배운 삶의 방식, 즉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끌어안는 법에 대한 고찰도 담겨 있는 특별한 책이랍니다. 🍂

📝 책 속 한마디

“모로코는 향으로 충만한 땅이었다. 향긋한 오크모스 숲에서부터 끝없이 펼쳐진 오렌지 숲과 메디나 지역의 토속으로 뒤섞인 냄새들. 모로코 사람들은 향이 품고 있는 비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향수 제조가 영혼에 이르는 길일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일부이며 일종의 의식이라고 믿는다. 병에 걸렸을 때에는 오일과 연고로 치료하고 길모퉁이에서는 행상인들이 지나가는 사람의 코앞에 향수가 묻은 막대기를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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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기]

👀 향알못을 위한 유튜브 추천

향수를 사고 싶은데 어떤 향이 있는지,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조향사 김혜은이 만든 향수 리뷰 채널, ‘센트위키’ 입니다. 브랜드별 향수 리뷰부터 향기에 대한 다양한 상식, 용어 설명 등 실제 향수를 구매하는 선택과정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탑노트는 무엇인지, 향수는 어디에 뿌려야 하는지, 기본적인 향의 종류는 무엇인지 손쉽게 알 수 있답니다. 🔎

우리가 향기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여러 향수를 시향하며 나에게 맞는 향을 찾는 것은 향이 가진 풍요로운 감각들을 하나둘씩 일깨우는 과정의 일부일 텐데요.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해드린 향과 향수에 대한 네 권의 책은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와 가장 맞닿은 책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서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명민한 감각들을 깨우기 위함이니까요. 오늘 뉴스레터를 통해 누군가는 향수의 과학을, 누군가는 향의 역사를, 누군가는 그 안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셨을 텐데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감각 중 하나인 후각을 더 풍요롭게 이해하고 활용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뉴스레터에서도 읽고 싶어지는 책과 함께 다시 뵙겠습니다! 🧡

📌 지난 피드백

• 특별편으로 주제 선정 과정을 소개해보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있었답니다. 바인드북도 구독자님들과 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요. 연말 결산 느낌으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특별호를 기획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소식은 바인드북 인스타그램에서 더 빨리 만나보실 수 있고, 뉴스레터보다 더 가볍고 다양한 주제로 책추천이 올라가고 있으니 함께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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