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인터뷰 : 김규년
vol. 3
2023년 12월 20일
오늘의 Brot & Kunst
아티스트 인터뷰 : 김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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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이하게, 더 이상하게
아티스트 김규년은 인터뷰 내내 '기이한', '이상한'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어요. 그가 '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들을 다양하게 연구하는 것처럼 '이상하다'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정상적인 것과 다르다고 할 때, '이상하다'라는 말을 쓰는데요.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김규년이 말하는 '이상함'은 예술을 통해 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다른 독특하고 신기한 감각을 건드려 주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티스트 인터뷰의 첫 시작을 여는 아티스트 김규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상함'이라는 단어에 대한 여러분만의 생각을 들여다보시면서 '예술가라는 이상한 직업'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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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규년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주로 다루는 주제 및 작품 장르도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있어요. 주로 ‘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들, ‘보이다’, ‘보게 된다.’,‘안 보이는 것’, ‘덜 보이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제가 작가 노트에 ‘자세하게 보여주기’, ‘이상하게 보여주기’, ‘보이지 않는 걸 보여주기’, ‘가려지게 보여주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어요. 이런 것들을 주제 삼아서 작품과 전시를 만들어요.
Q. 부모님에게는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어요?
예술가라고 소개해요. 부모님께서는 저를 상당히 지지해 주시는 편이에요.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손재주가 좋고, 예술가의 기질이 있는 분이시라 예술을 하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미대도 못 가셨고 결국 미술을 못 하게 되셨죠. 저는 미술을 곧잘 해서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 학원을 보냈어요. 미술 학원을 재밌게 다니다 보니까 그림을 잘 그리게 됐고, 고등학교 올라갈 때 예고를 가게 됐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제가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한 번에 허락하셨어요. 어머니도 좋아하시지만 더 현실적인 분이라 가끔 ‘미술 하면서 어떻게 돈 못 벌겠니.’라고 물어보세요. 저는 그런 차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저도 가끔씩 자각하면서 균형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Q. 직업란에 ‘예술가’라고 적습니까?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가요?
저는 시각예술가라고 적어요. 대학교 졸업 후에 ‘내가 감히 예술가라고 해도 되나?’, ‘내가 하는 게 진짜 예술인가?’라면서 약간 머뭇거렸던 시기가 있었어요. 어렸으니까 저를 낮춰서 ‘나 까짓 게 예술가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 하기 시작하니까 되게 편하더라고요. 처음 마음먹기가 어렵지, 말하기 시작하니까 어디 가서라도 그냥 시각 예술 한다고 소개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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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술 활동을 하면서 가장 위기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졸업 후 2018~19년 1년 사이에 개인전을 하고 단체전도 몇 개 하면서 졸업하자마자 ‘뭔가 되는구나.’, ‘내가 예술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가 2019년 2월에 개인전을 한 이후로 어느 순간 툭 끊기더니 한 2년 동안 전시 활동이 없었어요. 그 시기에 지원 사업을 60개 넘게 지원했어요. 한두 개를 제외하고 공모에서 다 떨어지고, 저를 불러주는 데도 없으니까 그때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기대했던 저의 모습과 멀어진다고 느꼈을 때 무너지는 것 같았고,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Q.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2주에 한 번씩 예술인 복지센터에서 해주는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그렇게 2년 정도 받고, 상담 마지막 날이 되자 선생님께서 ‘규년님 이제 바빠지셨네요.’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일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일이 들어오는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기다리는 기간에 작업도 열심히 했고, 그때 모아놨던 작업들을 나중에 보여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는 일에 분명히 흐름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번 극복을 해봐서 그런지 다시 위기가 온다고 해도 제가 작업하면서 보내는 시간으로 삼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Q.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놔두고 예술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런저런 제안을 많이 받아봤어요. 회사부터 시작해서 기술직, 여러 업무가 있었는데 제가 다 거절했어요. 결국 미술이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이고, 미술을 할 때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저는 많이 못 벌어도 먹고 살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먹고 살 돈 정도만 버는 활동이 있고, 나머지 시간은 최대한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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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활동
Q. 비디오라는 매체를 다루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비디오를 다루는 규년님만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학교 2학년 때 비디오 아트라는 수업에서 비디오를 처음 다뤄보게 되었어요. 비디오를 조금씩 찍어보고 만들었는데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때는 비디오 아트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한 학년에 한두 명 하는 정도였어요. 저는 어린 마음에 남들과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데 컴퓨터로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유튜브가 주목받기 시작하던 2015년부터 비디오를 그냥 보기만 할 게 아니고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취미와 작업이 맞아떨어지면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비디오에 더 집중했어요.
유튜브 때문에 지금 비디오가 더욱더 중요한 매체가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를 접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비디오라는 게 무엇인지 연구하고, 비디오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는 작업이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비디오가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작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Q. 지금까지했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2017년에 한 <The presentation>이라는 작업을 제일 좋아해요. 졸업 심사를 상상하며 1년 동안 졸업 작품 상황을 준비한 작업이에요. 이 작업에는 비디오가 가진 여러 요소들이 담겨 있어요. 오랜 시간을 짧게 담거나 몇 년 후로 뛰어넘을 수 있는 비디오 매체 특성을 활용해서 1년이라는 준비 시간을 30분 이내의 졸업 심사로 표현했어요. 그리고 더빙을 활용해서 제가 말하고 있지만 독일 여성의 목소리로 설명이 나오게 만들었어요. 독일 사람이 한국 영화 보듯이 독일어 자막도 집어넣었고요. 비디오에서 프레임이 나왔다 들어가 보기도 하고, 흑백으로 바꿔보기도 했어요. 비디오라는 매체 특성을 살려서 잘 풀어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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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ation>, 퍼포먼스,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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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까지 여러 번의 개인전을 하셨는데,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달랐는지 기억하나요?
독일에서 한 첫 번째 개인전은 실제가 비디오랑 똑같지 않다는 개념을 가지고 비디오를 일상으로 가져왔어요. 매일 무언가를 똑같은 위치에 놓는데 다음 날에는 약간 틀어질 수도 있죠. 조금씩 변형되는 모습들, 이상하게 보이는 어긋남 자체가 아름다웠어요.
두 번째 개인전은 비디오 촬영에 대한 주제였어요. 제가 비디오 작품을 공간에 설치해놓고 관객들이 여러 가지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그것을 촬영하게 만들었어요. 공간 일부분에서 관객이 촬영한 영상이 계속 상영되는데 분명히 안에서 똑같은 걸 보고 나와도 밖에 나와서 보이는 비디오들은 다 다른 거예요. 관객의 액션이 필요한, 관객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전시였어요. 세 번째 개인전은 비디오를 혼자서 보기, 둘이서 보기, 셋이서 보기로 나눠봤고, 어떻게 비디오를 보는지 비디오 관람에 관한 전시였어요.
네 번째도 비디오 관람에 관한 것이면서 비디오 다르게 보기를 다뤘어요. 비디오 매체를 계속 다루고 있지만, 그 속성들을 이용해서 개인전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비디오를 연구할 때 화면이나 내용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디오를 본다는 행위까지 합쳐서 연구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설치로 보여줄 것인가를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언제나 보는 사람, 관객이 너무 중요하고, 저는 관객이 보지 않으면 에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독일어 단어 중에 'Funktion', 'funktionieren'을 좋아해요. ‘기능’, ‘기능하다’란 뜻이죠. 저는 예술이 기능하려면 관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서 작가가 의도한 대로가 아니라 관객이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관점에서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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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상설치 작업과 전시를 하면서 가장 적게 든 예산과 많이 든 예산을 설명 부탁해도 될까요?
최근에 했던 개인전에서 예산이 제일 적게 들었어요. 영상 기기를 대여하는 게 비싸서 TV를 주워서 작업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반대로 지난번 <뉴뉴비디오>라는 개인전을 할 때 가장 많은 예산이 들었어요. 보는 방법과 보는 환경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그네 의자와 책상을 여러 개 갖다 놓고, 부스도 만들다 보니 돈이 많이 들었어요. 기기는 대여하지 않고, 다 샀어요. 대여가 몇 주 넘어가면 사는 것과 가격이 비슷해요. 당시 서울문화재단에서 리서치 명목으로 300만 원을 지원받았거든요. 제 리서치 제목은 <비디오를 시청하는 방법 연구>였고, 리서치 명목이라 전시를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연구만 하고 끝내기가 아까웠어요. 그때 마침 제가 갤러리 공모에 선정되어 공간 대관료도 무료라서 연구한 김에 전시까지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구해놓고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단 말이에요. 보여주는 순간 의미가 있는 거죠.
Q.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영상 기기 대여 업체나 관심 있게 보는 SNS 계정 및 채널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미디어 안에서 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여 업체는 알고 있지만 그냥 사버려요. 대여비가 비싸기도 하고, 작업하면서 어차피 기기를 또 쓸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카메라도 샀잖아요. 딱 그때를 위한 쓸모뿐만이 아니라 제가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무언가 계속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사이키델릭 트랜스라고, 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출 수 있는 정신없는 음악 장르가 있어요. 그런 음악을 업로드하는 친구들을 보면 보통 음악에 이상한 영상들을 같이 올려요. 디제이 사무라이라는 사람의 영상을 제일 좋아해요.
Q. 요즘 많은 사람들이 팝업스토어를 찾고 있어요. 혹시 작가님이 팝업스토어 협업을 맡게 된다면, 같이 하고 싶은 기업 및 브랜드가 있을까요?
제가 LG트윈스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야구장에 가보면 온갖 스크린들이 있고, 중계도 매일 해주니까 야구는 항상 영상이랑 연결되어 있어요. 야구가 끝나면 중간에 사진이 나오잖아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미술의 영역을 사용한 거란 말이죠. 저는 제 식대로 좀 이상한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가 선수를 촬영할 수도 있고, 기존에 있던 영상을 가지고서 이용할 수도 있고요. 한 2년 전에 네이버 스포츠에서 공모가 있었어요. 아쉽게도 그때 제가 그 공모에 내려다 못 냈었는데요. 저는 LG트윈스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LG트윈스 관련된 일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Q. 최근 작가님을 설레게 하는 작업, 새롭게 시작한 작업에 대해 궁금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사람들이 의외로 TV나 모니터를 많이 버려요. 작업실로 가져와서 틀어보고 작동되면 그냥 가져요. 그중에 망가진 TV가 있었는데 액정이 깨졌지만 일부분은 나오거든요. 그게 재밌어서 제가 부서진 앵글에 맞춤형 영상을 만들었어요. 보통 영상은 핸드폰이나 컴퓨터, TV처럼 무엇으로도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상은 그 TV로만 봐야 기능한다는 점이 재밌는 것 같아요. 부서진 화면이 추상적이라서 저도 추상적인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이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어쩌면 화면이 더 부서질 수도 있잖아요. 제가 이 작업을 만들어가면서 어떻게 대처할지는 또 생각해 봐야 할텐데, 그 부분이 저를 설레게 만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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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 예술
Q. 예술가에게 ‘돈’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먹고살기. 내가 먹고 살 거를 교환해 주는 화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약간 심플하게 생각하면 "예술은 예술이고, 돈은 돈이다."
Q. 예술가인 당신에게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한가요? 아니면 괜찮나요?
예술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벌어야지, 그게 돈이 되냐.' 이런 이야기를 진짜 많이 하는데, 이걸 들으면 불편해져요. 돈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닌데, 마치 돈이 안 되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니까요. 제 작품은 돈으로 판단되는 게 아닌데 그것을 돈과 결부시키면 기분이 나쁠 수 있죠. 저는 돈과 예술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Q. 돈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마련하고 싶은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캘리포니아 LA에 바다가 보이는 집 겸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농담처럼 말해요. 일단 자연 풍경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캘리포니아 LA를 이야기하는 것은 풍경이 좋으면서 도심에서도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1층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제 작업실이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이라 계단으로 물건 옮기는 게 너무 힘들어요. 풍경이 탁 트여 보이려면 층고가 높아야 하지만 대신 엘리베이터까지 완벽하게 갖춰져서 쉽게 물건을 옮길 수 있어야 해요. 음악을 크게 들어도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음향 시스템도 매우 중요할 것 같고요.
Q.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코로나 시기 때 주식 열풍이 불어서 저도 했었거든요. 한 6개월 넘게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안 해요. 주식을 한다면, 주식 관련해서 자꾸 쳐다보게 되고, 회사에 대해 공부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간이면 책을 읽는 게 백 배 천 배 나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한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결국에는 오너의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는 게 주식이기 때문에 거기에 투자하는 게 거의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많은 예술 대학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혼란을 겪는데요. 이 시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예술 대학에서 경제 활동 및 재무 관련하여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기본적으로 학생들도 본인이 먹고 살 것이 돼야 사회로 나오는 순간 살 수 있게 되고, 그다음에 예술도 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배운 예술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업 교육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방향성은 제시해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다음에는 사실 학생들이 알아서 해야 되는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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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동 & 예술 활동
Q. 요즘 흔히 통용되는 ‘N잡러’, ‘멀티플레이어’는 달리 말하면 한 가지를 집중하는 시간을 쪼개서 사용한다는 것일 수도 있어요. 경제 활동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을까요?
저는 직업이 진짜 많아요. 아동미술학원 선생님. 성균관대학교 강사. 영상 촬영자. 영상 편집자. 시각 예술 작가. 하루에도 직업이 여러 번 바뀌어요. 자아가 많아서 힘들고, 때론 제가 누군지 모르겠는 거예요. 한 가지 집중하는 게 좋겠지만 영상 미술이라는 게 그대로 경제활동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어쨌든 N잡러는 필수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2잡, 3잡 이내에서 끊어야지 4잡, 5잡까지 하니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자아분열이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적어요. 작업이라는 것이 ‘지금 10시부터 12시까지 작업하겠다.’라고 하면 바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작가로서는 불안하지만, 불안감이 들면 놓치는 부분 없도록 계획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면서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다행히 제가 계획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Q. 예술 작업 활동을 시작하고 판매가 이뤄진 시점은 언제인가요? 작품이 팔린 경험에 대해 나눠주실 수 있나요?
저는 지금까지 작품을 세 번 팔아봤는데요. 독일에서 대학 다닐 때 처음으로 작품을 팔아봤어요. 제가 다닌 독일 학교는 매년 아트페어를 열면, 학생들이 작품을 내요. 제가 항상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저는 그림이 잘 팔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림을 냈어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제가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예술을 시작한 이후로 9년 만에 팔아보게 된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오고 2021년에 청년 예술청이라는 기관에서 제 영상 작품을 200~300만 원에 사줬어요. 그다음으로는 제가 독일 카셀에서 비디오를 팔았던 것처럼 작년 개인전 때도 팔아봤어요. 비디오 한 개를 만 원에 팔았는데, 거기서 한 40만 원어치 판 것 같아요. 구매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예술 작품을 사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고요. 저는 예술 작가로서 제 작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맛볼 수 있었어요.
Q.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서 비디오 판매를 도전한 퍼포먼스 <비디오 팝니다>가 인상적이었어요.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간혹 미술관 같은 기관이나 기업에서 비디오 작품을 사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길거리에 제 작품을 들고나가보기로 결심했고, 세계적인 미술축제인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 방문해서 판매하려고 했어요. 호객행위를 위해서 가면을 만들었고, Knew New Video 로고가 새겨진 USB를 주문 제작했어요. 비디오 작품이 담긴 USB를 작품 이미지와 함께 지퍼백에 넣고, 노점상이 과일을 담아 팔듯이 USB를 소쿠리에 담아서 판매를 시도해 봤어요.
처음에 저는 진짜 잘 팔리고, 돈을 많이 벌 줄 알았어요. 퍼포먼스 진행하는 동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지만 1개를 팔고, 더 이상 안 팔리는 거예요. 물어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재밌다고만 하는 걸 보니 새삼 '사람들의 지갑을 여는 게 쉽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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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아티스트 피칭쇼 <Brot & Kunst>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저는 여전히 또 비디오를 팔 거예요. 이번에는 제 비디오 작품 스틸컷 이미지를 캔버스에 프린팅 했어요. 캔버스 뒷면에는 약간 공간이 있으니까 거기에 제 비디오가 담긴 usb를 부착해서 같이 드리는 방식이에요. 지퍼백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면서 어디 던져놓거나 책상 서랍에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더라고요. 캔버스는 소품처럼 어딘가에 올려놓거나 벽에 걸어놓을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돈을 주고 물질을 산 것에 대한 가치를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비디오 중에 7개를 선정하고, 비디오 당 캔버스10개를 만들었어요. 저에게 3만 5천 원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비디오 스틸컷이 프린트된 캔버스를 제공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이거 뭐지?'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장소에서 비디오 usb를 한번 팔아보고 싶어요. 강남역이나 지방 오일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팔아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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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비디오 스틸컷 프린트, 20×20cm,
아티스트 피칭쇼 <Brot & Kunst>, 2023 |
비디오 작업 8개, 싱글 채널 비디오,
아티스트 피칭쇼 <Brot & Kunst>,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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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잘 팔리는 작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본인의 작품 세계 안에서 작품을 팔기 위해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일이 끝나면 저도 아무런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쉬고 싶단 말이죠. 사람들은 기왕이면 예쁜 것, 밝은 것,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거죠. 즐거움과 힐링이 되는 것들이 주로 잘 팔리지 않나 싶어요. 제 작품이 그냥 멍하게 보는 게 아니라 왠지 무언가를 생각해야 될 것 같은 압박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쉬고 싶은데 자꾸 생각하라고 하니까 팔리지 않는 거죠. 그런데 저는 제 작품 스타일을 사람들에 맞춰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잖아요. 제가 일상에서는 많이 배려하는 편인데 작업에서는 더 제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고집이 세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그게 없으면 매력이 없는 거니까 저만의 세계를 지켜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Q.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을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걸까요?
저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성균관 대학교로 강의를 나가는데 수업에 미술학과 학생도 들어오고, 복수 전공으로 영상학과 학생도 들어와요. 영상학과 학생들에게 왜 미술학과 수업을 듣냐고 물어보면 영상학과에서 배운 거랑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상업 영상과 순수미술 영상의 다른 점이 될 것 같아요. 상업 영상을 찍는 친구들 말로는 상업 영상의 문법, 어떤 틀이 있고,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틀에 지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순수미술 영상은 내 마음대로 나만의 문법을 발견해나가는 것 같아서 배워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최근에 읽은 <AI 빅뱅>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창의성이란 무엇이고, 창의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틀이 있다면 그 틀을 좀 벗어나 보기도 하고, 그 틀을 넓혀줄 때 그것을 창의성이라고 하거든요. 만약에 틀이 있다면, 경계라는 게 있다는 거잖아요. 저는 상업미술은 어느 정도 경계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순수미술은 그 경계를 넓혀보려고 시도하는 거죠. 그런데 너무 경계 안에 있거나 밖에 있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경계 근처를 넘나들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그 경계를 흔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너무 극단에 있지 말고 교류를 하면서 서로에게 많이 배워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Q. 현재 경제 활동을 위해 하고 있는 프로젝트 혹은 업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비디오 매체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이게 돈이 잘 안 벌리니까요. 저에게는 비디오 관련한 기술이 있고, 지금까지 쌓은 경험들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알바를 넘어서서 이제는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일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뉴뉴미디어’라는 이름의 사업자를 만들어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회사가 있어야 거래도 할 수 있고, 돈도 정당하게 벌 수 있어서 차리게 된 것 같아요. 뉴뉴미디어 업무 중에는 가장 기본적으로 제 비디오 작업을 파는 것이 있고요. 행사 촬영, 건물 건축 촬영을 하기도 해요. 그 밖에 주변 지인들의 결혼식이나 주변 작가들의 퍼포먼스 영상 촬영 같은 일들이 은근히 들어오더라고요. 또 편집 일도 들어오고 있어요. 초반에는 없었는데 요새 더 많이 들어와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규년이가 뭐 한다더라’라는 식으로 알려져서 일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영상 일은 상업 영상하시는 분들이 더 많이 해요. 이미 많이 자리를 잡고 계시고요. 제 작업의 차별점이자 제가 항상 표방하는 건 ‘좀 이상한데’라는 반응이 나오는 영상이에요. 의뢰가 들어오면 저는 꼭 물어봐요. ‘제 작업을 보셨는지, 제가 어떤 영상 만드는지 아시는지요.’ 그냥 시작했다가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조율하고 시작하는 게 좋아요.
Q. 뉴뉴미디어의 비전은 무엇이고, 뉴뉴미디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비전은 ‘더 이상하게 만들기’예요.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서 클라이언트들한테 맞춰주는 편이거든요. 제 포트폴리오에 이상한 것들이 더 많이 쌓여서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주세요.’, ‘마음대로 만들어주세요.’라는 업무 의뢰로 계속 운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원하는 지점이고, 그런 것들로만 하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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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Brot & Kunst>에서는 두 번째 아티스트 인터뷰로 찾아오겠습니다. 어떤 아티스트인지 많은 기대 바라며 수요일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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