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본색 13호
2021-10-23 상강

안녕하세요 이하오입니다.

  중영본색 13호에서는 공리 배우의 첩보전 <난심대극원>과 청춘영화 <물에 빠진 다섯 소년> 소개, 중국 영화 스크린 수 8만 돌파 그리고 중국 영화계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장진호> 소식을 전합니다.
1. 일제강점기 상하이의 겨울 <난심대극원>
  중국 국민배우 공리의 첩보물 <난심대극원 兰心大剧院>이 지난 10월 15일 개봉했습니다. <난심대극원>은 1941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여성 공작원의 첩보 작전을 다루었습니다. 로우예(娄烨) 감독이 연출했고, 공리(巩俐)와 조우정(赵又廷), 그리고 오다기리 조가 출연했습니다. 

<난심대극원>  © 더우반
  <난심대극원>은 중국의 여류 작가 홍잉(虹影)의 소설 <상해지사>와 일본의 소설 <상해>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1941년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했던 시기, 중국 최고의 여배우 위진(공리 역)은 일본군의 작전을 파악해 동맹국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고 상하이로 향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연극에 출연하기 위해 상하이로 온 위진은 낮에는 연극 리허설 무대에 오르고 밤에는 은밀히 움직이며 작전을 펼칩니다. 상하이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영국, 독일의 세력들은 위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그녀가 상하이에 온 진짜 목적을 알아내려 합니다. 작전 끝에 일본군 사령관(오다기리조 역)을 납치하여 일본의 “진주만 공습” 계획을 알아낸 위진은 역사를 바꿀 단서를 손에 쥐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일본군 사령관(오다기리조 역)과 배우 위진(공리 역) © 더우반
  <난심대극원>은 2019년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중국에서도 2019년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난심대극원>은 돌연 상영 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렵게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로우예 감독은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고 이데올로기를 비트는 주제와 연출로 당국의 제재를 받아왔습니다. <난심대극원> 또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내용의 여타 중국 첩보물과 같은 쉬운 길은 가지 않습니다. 대신 조국과 외세, 사랑을 두고 고뇌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며 중국식 선전 영화와 줄다리기를 벌입니다.

<난심대극원> 속 공리의 총격전  © 더우반
  <난심대극원>은 실제와 연극무대를 오가는 서사 방식과 여러 국가의 얽히고설킨 관계 등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분명 아닙니다. 중국 관객들은 <난심대극원>에 대해 “몇 번을 봐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로우예 감독이 관객들에게 도전했다” 등 미지근한 평가를 남겼고, 흥행 성적도 저조합니다. 훌륭한 작품성과 좋은 배우가 중국 영화계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난심대극원>은 공리 배우의 스파이 연기와 총격씬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로우예 감독 특유의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흔들리는 흑백화면 속 당시 위태로웠던 상하이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2. 중국 영화 스크린 수 8만 돌파, 6년 연속 세계 1위
  중국 전국의 영화관 스크린 수가 8만을 넘어섰습니다. 2016년 스크린 수 4만을 넘긴 후 5년 만에 4만 개의 스크린을 증축한 것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크린을 보유한 국가로, 2위인 북미 스크린 수(4만)의 두 배에 달합니다. 북미(미국+캐나다)의 인구는 총 3.7억 명으로 인구 대비 스크린수는 8,400:1이고 중국의 인구 대비 스크린수는 11,000:1로, 중국은 북미의 수준을 넘어설 때까지 스크린 수를 계속 늘릴 계획입니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 영화 시장이 불황에 빠졌던 2020년과 2021년에도 중국에서는 만여 개의 스크린을 증축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부터 지방의 소도시 위주로 영화관을 건설하여 현재 중국 전역의 영화관 중 소도시의 영화관 비율이 20%까지 늘어난 것입니다.

© 1905电影网
  중국은 최근 중국의 사회발전 3단계(온포-소강-대동) 중 소강사회 실현을 이룬 것으로 보고, 대동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소강사회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인민들이 일정 수준의 문화생활까지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긴 사회를 뜻합니다. 영화 관람은 가장 대중적인 문화생활 중 하나로, 영화관 건설은 추가 자본이나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 효율적이며 성과는 가시적인 사업입니다.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화관 건설은 중국이 주장하는 ‘소강사회’의 실현과 ‘대동사회’를 향한 바람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대동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은 문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영화계에는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3. 청춘영화 종합선물세트 <물에 빠진 다섯 소년>
  겨울의 찬바람이 코앞에 닥친 이때, 여름의 열기를 잠시나마 되돌릴 수 있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평범한 남고생들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도전기 <물에 빠진 다섯 소년 五个扑水的少年>입니다.

<물에 빠진 다섯 소년>  © 더우반
  바다가 보이는 중국 남부 도시에 수영장이 아주 멋진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얼떨결에 “남자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공연을 맡게 된 체육 선생님은 남학생 다섯 명을 모아 팀을 꾸립니다. 멍 때리는 애, 반 꼴찌, 친구 없는 전학생, 전교 1등, 육상 특기생 등 남고생 다섯 명은 수영부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싱크로나이즈드를 시작합니다. 전문적인 코치도 없이 매일 학교 수영장에 모여 잠수만 하던 아이들은 연습 장소마저 학교 수영부에 뺏기고 팀은 해산 위기에 처합니다. 대단한 열의도 없이 시작한 일이지만 평범하고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들은 팀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다섯 소년이 새파란 물에 몸을 던지고 서로와 눈을 맞추며 아주 오랫동안 숨을 참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물에 부딪혀 들어와 소년들의 심장에 닿습니다.

<물에 빠진 다섯 소년> 캡쳐  © 더우반
  여름의 햇살, 수영장, 야자나무, 바닷가, 짝사랑, 밤바람, 꼬치 등등 “중국의 청춘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다섯 소년>은 중국 청춘영화의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해안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화면은 매 순간 상쾌하고 평화롭습니다. 평범한 것이 고민인 소년들의 어설프고 무모한 도전에 영화를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에 눈이 부시고 소년들이 일으키는 물보라에 마음속까지 시원해집니다. 자극적인 내용과 연출로 가득했던 중국 극장가에서 보기 드물게 담백하고 평화로운 영화입니다. 여름의 청량함을 가득 머금은 이 영화는 원래 7월 초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재유행으로 상영이 여러 차례 미루어졌습니다. 결국 국경절 연휴에 대작들과 함께 개봉하며 기대한 만큼의 흥행 성적은 내지 못했지만 여름의 청량함을 그리워하며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와 평점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청춘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4. <장진호> N차 관람하는 중국 관객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선전 영화 <장진호 长津湖>가 박스오피스 수익 50억 위안을 넘어서면서 “2021년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재관람하고 학교나 직장에서 단체 관람하는 등 영화를 여러차례 관람하는 관객들이 <장진호>의 흥행 스코어를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장진호>는 상영 3주 차에 접어든 10월 22일 중국 역대 영화 흥행 수익 3위에 올랐습니다. 역대 흥행 성적 1위인 <전랑2>와는 6억 위안 차이로, 충분히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장진호>  © 더우반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후 미디어를 통한 선전활동이 활발해지며 선전 영화는 공산당의 적극적인 지지와 투자에 힘입어 제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였습니다. 최근에는 할리우드와 같이 영화 제작의 산업화 시스템을 갖추고, 오락성과 상업성을 가미한 선전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 <장진호>는 그런 중국 영화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장진호>는 촬영 기간만 180일로, 12,000여 명의 스태프가 참여하고 90,000여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습니다. 영화의 후반 작업에는 중국 전역에 있는 100여 개 회사가 참여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전례 없는 대규모 작업으로 중국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또한 2017년 <전랑2>, 2019년 <유랑지구>, 2021년 <장진호>로 이어지는 지난 몇 년간 중국 선전 영화의 발전 추세는 중국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향후 공산당이 선전 영화 제작과 관련하여 어떤 정책을 펼칠지, 어떤 형태의 선전 영화가 등장할지 주목됩니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입니다. 상강이 되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하룻밤 사이에 들판의 풍경이 바뀐다고 합니다. 찰나에 지나갈 가을 풍경을 눈에 잘 담으시고 남은 한 해도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동에 돌아오겠습니다. 

발행인 이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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