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자의 조건에 대한 아버지와 두 딸의 글입니다.
2024.6.18. 스물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
땡비에서 나눠볼 오늘의 이야기는 🐝할매와 할배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나이듦은 어떤 색깔인가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나 생각이 있나요? 님도 오늘 땡비와 함께 나이든 나의 모습도 상상해보고, 나이든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늙어감에 대하여(by. 흔희)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출산을 한 지 60일 정도가 지났다. 오랜만에 같이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지는 길에 잠깐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아기새가 둥지에 폭 안겨 있듯, 아기는 엄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주위의 공기에 아기의 평온함이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저출생으로 인해 아기가 귀해진 시대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아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머금는다. 귀엽고 어린 존재는 그런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담기는 것이 당연한 존재.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도 그랬다. 아이들은 젊다는 이유로 20, 30대의 교사들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와주었다. 40을 목전에 두고 언뜻 불안감이 들었다. 지금은 젊어서 아이들과 지내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아이들과의 세대가 벌어질 텐데. 그때 나는 어떤 것을 내세워 그 틈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 갓 학교에 발령받았던 해의 일이 떠올랐다. 칠판에 그날 시간표를 적어주는데 뒤에서 한 남학생이 말했다.

"와 오늘 시간표 장난 아니네. 1교시는 무서운 할매, 2교시는 착한 할매, 3교시는 그냥 할매네."     

1년간 휴직을 하고 있을 때, 의도치 않게 동네 할매들과 안면을 텄다. 아이의 등굣길을 배웅해 주면서 같은 시간에 자주 마주치던 할매들이었다. 처음에는 눈인사만 하고 지나갔는데 얼굴이 눈에 익자 할매들은 자연스럽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주었다. 주로 들었던 이야기는 할매들이 어떻게 하여 황혼육아에 발을 담그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A는 원래 거주지가 인천이었다. 딸네 부부의 직장이 부산으로 이전되면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평일에는 부산의 딸 집에 머물며 8살인 손녀와 2살인 손자의 등하교(하원)를 거들어 주었다. 금요일이 되면 A는 다시 인천으로 올라가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목욕을 하며 쉬는 시간을 가졌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B는 사위가 해외로 파견을 가게 되면서 딸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 이사를 와서 손주를 돌봐준다고 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맞벌이 부부로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늘 죄의식을 갖고 지냈다고 했다. 아이가 대입을 앞두고 있을 때 조기 퇴직의 바람이 불기도 했고, 후회 없이 아이를 지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손주의 초등학교 입학시기와 사위의 해외 파견 근무가 맞물렸을 때 딸은 승진을 앞두고 직장을 계속 이어갈지 고민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B는 "네가 원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면 상관없지만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면 자신이 거들어 줄 테니 일을 계속하라"라고 조언을 했다.                


휴직하기 전에, 아파트의 같은 동에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없었다. 휴직을 하고 오며 가며 얼굴이 마주쳤을 때도 자연스레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갔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머물렀지만 내 눈에 담긴 존재는 작고 귀여운 어린이들이었지 그 뒤켠에 서있던 할매들이 아니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파트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서 한창 근무중일 시간에 주로 헬스장에 갔으니 함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주로 할매나 할배들이 있었다. 몇 번 마주치면 할매들은 먼저 다가와서 묻는다. '몇 동에 사냐. 몇 살이냐.' 커피나 사탕을 건네주며 말을 이어간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간병하며 짬짬이 틈을 내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었고 젊은 시절 무용수였으나 은퇴 후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했다.            

    

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다닐 무렵,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아기들을 거실에 풀어놓고 식탁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니 두 아기들이 기어와 엄마들의 다리에 매달렸다. 짐짓 모른 척하며 친구와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니 아기들이 엄마들의 다리를 잡고 흔들며 ‘우아우어’와 같은 옹알이를 외쳐댔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는 관심을 먹고 자라나는 존재인 것 같아."라는 말을 내가 했고 친구는 동의한다는 표현으로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다만, 청춘은 싱그럽고 그 자체로 축복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젊고 싱싱한 것들에게로 향한다. 그러니 늙어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눈에 담기는 것보다 누군가를 눈에 담을 때가 많아지는 순간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관심이 누군가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 사그라드는 나의 존재감에 휘둘리지 않고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세상은 그런 삶의 태도를 여유라고 부른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걸어왔던 길 위의 시간도 나이가 들면 천천히 흘러간다. 바지런히 걸어가던 속도를 늦춰가며 뒤를 돌아봐 줄 수 있는 여유. 앞서 내가 겪어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뒷 시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풋내 어린 무모함과 실패를 지켜봐 주고 곁을 내어주는 것. 늙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잘 늙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해거름에 서서(by. 못골)

나이가 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식물처럼 나이가 들지만,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에서 늙는 것은 동물처럼 무력해지고 격리되는 것이다. 무력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밀려 나이 많은 한 무리의 소외계층이 된다. 노인이 존경받는 시대에서 비하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유교가 깊이 뿌리내렸던 우리 사회는 노인 존경의 흔적이 흉터처럼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젊었을 때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하고 싶은 시기가 있다. 그런 욕구는 노인이 되어서 또 한 번 되풀이된다. 내 주위 몇몇 친구들이 따로 집을 얻어 가족과 떨어진 혼자만의 거처를 마련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그런 생활이 젊을 때와 달리 많은 현실적 불편함 때문에 대개 다시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독립생활로 가족으로부터 받는 부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보고 싶은 갈망은 누구나 가질 것이다.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전철에서 함께 사회활동을 했던 젊은 여성을 우연히 만났더니 묻는다. “선생님! 퇴직하니 무엇이 좋아요?” “내일을 준비하지 않아서 좋다.”라고 답했다. 술을 마셔도 친구와 놀러 가도, 동아리 활동을 해도 언제나 내일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갑갑한 삶에서 벗어났다. 남자들에게 공통되는 악몽이 있다. 제대했는데도 어느 날 꿈에 다시 입대하게 되는 꿈이다. 퇴직한 나의 악몽은 수업 준비 없이 수업하는 꿈이다. 몸이 피곤하면 가끔 그런 꿈이 꾸어진다. 이제 그 꿈에서도 벗어났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많은 것은 장애이다. 저렴하고 쾌적한 요양원이 있다는 친구의 소개를 받았다. 만덕터널 입구에 있는 황전양로원을 찾아가는 길에 휴대전화기 이용이 익숙하지 않아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왜 늙은 것이 불쾌하게 말을 거느냐는 표정이다. 헬스장에서 있었던 일이 불현듯 생각났다. 스쿼시를 하는 여성의 자세가 너무 좋아서 옆에서 “자세가 참 좋습니다!” 했더니 그때도 쳐다보는 여성의 눈길이 그랬다. 승강기에서 어린이를 보고 “참 이쁘구나!”하고 칭찬하면 옆에 있는 아이 엄마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는 젊은 여성에게 말을 걸지 말아야지!' 내심으로 작정했으면서도 또 그런 눈길을 받는다. 노인 혐오증이 곳곳에 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현실에서 맡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은 맡지 않으려는 저렴한 기피 업종 직업군으로 밀려나는 시기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농경사회였다. 아버지가 가장이라는 직책을 당연시 생각하고 그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알았다. 모든 생활의 중심은 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가정 최고의 어른이다. 아들보다 오히려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더 관용적이고 여유 있는 가정교육을 담당하는 또 다른 아버지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이제 아무 쓸모없이 밀리고 밀려 탑골공원에서 전철에서 역광장에 모여 한 끼 식사를 기대하는 초라한 존재로 바뀌었다. 퇴직한 동료가 하는 말 “퇴직하고 3년이 지나면 거지가 된다.”라고 한다. 남성 공무원으로 퇴직하여 모든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기고 나머지가 되어버린 친구의 하소연이 그러할진대 연금이 적어 생활하기 어려운 일반 시민들에게는 노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급속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여 넘쳐나는 노인들의 수가 전철에 앉아보면 실감한다. 경로 우대증인 이 무임승차권을 전철을 이용할 때마다 고맙게 생각한다. 전철을 타면 노인석이 아닌 일반석에는 앉지 않는다. 그 자리는 우리들의 이용료까지 함께 지불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앉아야 할 자리이고 노인이 그들을 제치고 앉아 가기에는 너무 뻔뻔스럽다고 생각한다. 70이 넘으면 이제 소득과 연결되는 생활은 모두 마무리하고 오직 소비생활에만 전념하게 된다. 소득이 없으니 지출도 거의 바닥이다. 이 나이가 되면 수입도 없고 지출마저 최소화한 생활이니 관혼상제에 부조금이나 축의금을 내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고 자유스러워진다.


나와 친했던 친구와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해 왔지만 이제야 그의 모든 참모습을 알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여러 면에서 나와 비슷한 시각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였던 친구도 이때쯤이면 다른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고를 하는 친한 친구를 보면 '아니 이 친구가 그런 친구였나?' 하고 놀란다. 사회를 보는 지향점이 달라서 내가 말하면 그 친구는 분노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나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친구를 보면 내가 참기 어려워진다. 서로 어려운 사이가 된다.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눈치 보며 언성을 높일 일이 아님에도,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듯 말하게 된다. 싸우고 돌아와서 허탈해하는 그런 친구들은 이제 만날 의미가 증발하여 버린다. 시효가 끝난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사회생활을 해나갈 시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야 할 기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제 수입도 사회참여도 친화력도 모두 떨어진 상태에서 나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친구와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싸우는 사이라면 그런 불화에도 만남을 계속해야 하는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같은 시각으로 논하며 전망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니 친구 많음이 이제는 의미 없는 나이이다. 발이 넓어 여러 가지 문제 발생 때 대처하기에 유용한 역할을 해 주었던 친구도 생각이 확연히 다르면 서로의 간격이 멀어진다. 지금 보니 오래 사귄 친구가 좋은 친구가 아니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친구가 좋은 친구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치기해 버리면 주변에 남는 친구가 몇 되지 않는다.


이제는 혼자서 놀아야 하는 시기이다. 살아남다 보면 점점 혼자가 되어 간다. 쓸쓸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과의 유대가 더 필요하다. 그마저도 힘들다면 어쨌든 혼자서 견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고 인화를 하고 또 그것을 보고 그림으로 옮기고, 평생 하지 않았던 음악도 손대어 하모니카를 불며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주는 노래를 선택하고 연주하며 혼자된 즐거운 시간에 익숙해지려 몸부림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잊을 것을 잊고 관계도 단출하게 정리하고 복잡한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어린아이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잊고 또 잊으며 하루하루를 이어 나가고 있다. “요즘은 잊음의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아!”라는 친구의 말에 “응 그래”하면서 또 하루를 보낸다. 모두에게 닥치는 일이다. 알고 미리 준비하면 훨씬 덜 괴롭고 지나가기도 쉽다. 지나와서 보면 그 꽃 같던 시절도 어제처럼 가깝다. 젊을 때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멀리 느껴졌을 뿐이다. 너도나도 예외 없이 와 닥칠 늙은 어느 날을 미리 알고 대비하자. 내가 늙은이 되는 그때는 좀 즐겁자! 퇴직은 일만 하다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기이니 좋은 구석도 있다.

조부모 너머에 할미와 할비(by. 아난)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미, 할비’는 완전히 다른 언어처럼 느껴진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거나 거의 왕래가 없었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흐릿한 잔상 같은 분들로 기억에 남아있다. 명절이면 뵙던 외할머니를 떠올려봐도 단둘이서 대화를 해본 시간이 10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연결된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집에 오면 밥상 가득 음식을 차려주시고 떠날 때 양손 가득 명절음식과 물김치, 단술을 바삐 챙겨주시는 게 할머니의 표현 방법이었구나 싶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한 대를 건넌 엄마와 아버지의 부모님이고 나와는 연결된 적이 없는 관계 같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혈육이지만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는 가족이자 온도감이 없는 어휘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조부모가 되면서 얻게 된 호칭인 ’할미, 할비‘가 주는 느낌은 노란빛의 식탁등 같다. 할미와 할비는 힘든 황혼 육아에 툴툴대면서도, 인생 2회차의 기회를 얻은 것처럼 인생의 오답노트를 복기한다.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사는 게 바빠서 연서한테 하듯 존중해주지 못했는데 돌아와 보니 미안하네." 할 정도로 우리를 키워낼 때는 놓쳤던 것을 다시금 보고 있다. 부모-자식의 관계에서 할미할비-손녀의 관계로 넘어가니 세월과 연륜을 거치며 여유가 생겼다. 윽박지르며 다짜고짜 등짝을 후려치던 엄마가 할미가 되자 조카가 거짓말을 해도 “할미랑 이야기 좀 해.”라며 찬찬히 아이의 입장에서 마음을 살펴준다. 엄격한 아버지는 할비가 되어 손녀의 공부를 봐주면서 “공주! 받아쓰기 그냥 보고해도 돼. 숫자 틀려도 돼.” 하면서 아이가 기대감에 부응하려 애쓰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좀 힘을 빼고 흐트러질 수 있도록 해준다.


조카의 탄생과 함께 황혼 육아를 시작한 할미와 할비가 어느새 9년 차에 접어들었다. 매일 아침같이 일어나 교대로 아이를 보고 쉼 없이 달려가던 육아가 조카의 혼자서기와 함께 힘 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야 나는 할미와 할비는 단 한 번도 원하는 공간에서 살아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1998년 처음 입주한 아파트는 이제 색이 바래었고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그간의 세월만큼 차곡차곡 짐들이 체할 듯 쌓여있었다. 하지만 청년 사진사였던 할비에게는 자신만의 암실을 가지는, 커피를 좋아하는 할미는 6인용 식탁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하는 소소한 소망이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집수리를 하자 했다. 역시나 아끼는데 익숙한 할비는 “물 나오고 전기 나오면 되지. 그냥 우리는 이래 살다 갈게~”하며 매운맛 농담과 함께 집수리를 격렬히 거부했다.


할미와 할비는 대개 고집이 장난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괜한 짐이 될까 봐, 돈을 아꼈으면 하는 좋은 마음이지만 이 마음은 짜증과 역정이라는 포장지에 휩싸여 말이 나온다. 할미, 할비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찬찬히 번역기를 돌려가며 포장지를 걷어내고 그 안에 마음을 보며 대화를 해야 한다. ‘견적만 보자’로 무턱대고 현장 일정을 잡은 뒤 덜컥 계약을 하고 할미와 할비에게 통보했다. 공사를 위해 약 한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된다고 알리자 할미와 할비는 제일 먼저 조카를 못 돌보는 것을 걱정했다. 9년 만에 온 기회라며 걱정 말고 할미, 할비가 가고 싶어 했던 제주 한 달 살기나 템플스테이를 하러 떠나라고 했다. 할미와 할비는 오랜만에 설레기도 하는 듯 친구들과 일정을 논의해 보고 정말 떠날 듯했다. 그러나 할미와 할비는 발걸음을 돌려 ‘가지 마’하는 조카와 워킹맘으로 허덕이는 딸에게로 향했다. 할미는 ‘가봤자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며 한 달동안 지낼 월세를 내느니 차라리 그 돈을 내 새끼들을 위해서 쓰겠다고 했다.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싸우고 한 달 동안 경주 외가에 간 적이 있거든. 그때 마음이 진짜 너무 허하고 안 좋더라고. 그러고 학교 갔다가 집에 딱 왔는데 할머니 신발이 현관에 보이는 거야.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할머니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더라고. 연서한테는 사람이 있다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오는 그 헛헛함을 안기게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봐도 조카에게는 엄마가 둘이다. 할미가 된 엄마는 어린 소녀였던 시절까지 되돌아가 받았던 상처나 결핍을 돌아보고 그것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그래도 할비와 할미가 자신만을 위해서 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몇 번을 설득해 보아도 역시나 할비와 할미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고, 결국 한 달 동안 두 분은 조카의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이삿짐을 옮기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가족들 가운데, 갑자기 대가족이 된 집에서 조카는 총총 뛰며 신남을 감추지 못했다. “연서가 제일 신났더라~”하며 행복해하는 할미와 할비를 보며 그제서야 알았다. 활짝 웃는 조카의 얼굴에 비하면 평생 한 번은 가고 싶다던 템플스테이와 제주 한달살기는 별 것 아님을.


할미와 할비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지금이 제일 편하다고 한다. 퍼부어야 하는 예금도 없고 자식들도 다 제 밥벌이하고 살기에 할비는 좋아하는 그림과 사진에, 할미는 춤에 흠뻑 빠져 지내면 된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사연 없는 가족이 없고 모든 가족들은 각자의 결핍과 상처가 대부분 대물림된다. 그러나 그것이 대물림되지 않을 수 있도록 끝없이 인생을 돌아보며 애쓴 엄마와 아버지 덕에 조카에게는 할미와 할비가 여러 색깔의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남아있을 듯하다.

💌 지난 호 구독자 후기 (#19. 좋은 배우자란?)
쇼잉님 : 피부에 와닿는 주제이고 내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해볼 만한 좋은 주제였어요. 아난님의 유니콘이 되어보겠다는 글은 감동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제 자신을 반추해보게 하네요. 고맙습니다. 메일을 읽는 동안 만큼이나 메일을 읽은 후에 생각해 볼 만한 질문과 주제를 던져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수니. 
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읽으면서 머리를 스친 어떤 의견이든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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