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랑을 한다 하지만 (222⛲)

 6월의 햇살은 무지갯빛으로 내려앉는다. 바야흐로 다시 돌아온 프라이드 먼스 (Pride Month). 성소수자 인권의 달이라고도 불리는 이달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지만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떤 사랑.

 ‘프라이드 먼스’는 1969년 6월 미국 뉴욕의 스톤윌 주점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 단속과 체포에 맞서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그 시위는 성소수자 인권 보호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에서는 차별법이 폐지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매년 6월이 되면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 캐나다 토론토, 브라질 상파울루 등 전 세계 대도시에서 ‘프라이드 먼스’를 기념하는 퀴어 축제가 열린다.

 그런 달이다, 6월은. 그러나 이달 우리는 벌써 슬픈 소식을 여럿 들었다. 디즈니·픽사 신작 애니메이션 ‘버즈 라이트이어’가 동성 간 키스 장면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아동 관람 금지 등급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상점에선 더 이상 무지개색 장난감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당국이 해당 물품을 모두 압수했기 때문이다. 사실 바다를 건너지 않고도 그런 일들은 차고 넘친다. 본래 신고제인 서울광장 사용은 성소수자 행사(서울퀴어문화축제)에만 허가제로 집행되었고, 그마저도 여러 제한이 붙었다. 어떤 사랑은 여전히 무시당하고 위협받는다. 이런 소식을 듣는 개개인의 일상에는 그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6월 아닌가, 그림자에 맞서 사랑의 횃불을 들어올려야 할. 그래서 오늘 파란은 당신의 자리에 무지갯빛을 드리울 몇 가지 작품과 행사를 소개하려 한다. 이 글엔 파란 창간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해 마음을 보탰다. 이 6월이 지난 후에도 사랑이 그저 사랑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러니 여러분도 사랑의 눈과 열린 마음으로 즐겨 주시라. 

런던 프라이드 (랭보💥)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두 집단, 동성애자와 광부들의 정치적 연대를 넘어선 진짜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1984년, 영국의 광부들은 광산 폐쇄 정책에 반대해 장기 파업에 들어간다.

정부에 의해 폭압 당하는 광부들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낀 퀴어들은 ‘광부들을 지지하는 동성애자 모임(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LGSM)’을 조직해 모금 활동을 벌인다. 퀴어를 향한 유서 깊은 폭력의 역사 속에서 대체로 가해자의 위치에 있던 그들에게 동성애자들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영화는 Miner(광부)를 위한 행동이 Minor(소수자)를 위한 행동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며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영화는 연대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연대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들을 꼼꼼히 조명한다. 광부와 게이들 중심으로 이뤄진 연대지만 이들의 결속을 위해 당사자보다 더욱 분투한 광부의 아내들과, 수는 적지만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 레즈비언들이 존재했음을 잊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

너에게 가는 길(젤리🍭)

동성애자 아들 예준의 엄마, 27년차 항공 승무원 ‘비비안’과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한결의 엄마, 34년차 소방 공무원 ‘나비’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내 아이의 커밍아웃 이후 무지개빛 퀴어 세상에 함께 뛰어들게 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자녀의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그동안 주목된 적 없었던 성소수자 엄마의 삶을 담았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의 연대, 자신의 정체성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설득’해야만 하는 예준과 한결의 현실을 보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들의 길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편견의 안경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애쓴다면 서로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사랑과 성장 이야기, 바로 드라마 <하트 스토퍼>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하이틴 배경에 성소수자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이 드라마는, 흔히 성소수자를 다룰 때 언급되는 ‘게이’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의 스토리를 모두 담은 것이 특징이다. 

<하트 스토퍼>는 성소수자 등장인물들을 동정하지 않고 그들과 타인을 동등한 시선으로 따뜻하게 그려낸다.  성소수자에 대해 무겁게 접근하지 않아, 누구나 편견 없이 즐기기 쉬운 콘텐츠이다.

80년대 뉴욕, 새로움과 활력으로 가득찬 즐거운 풍경이 떠오르지만 사실 그 뒤편엔 비밀스러운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소외된 영혼들이 모이는 곳,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는 그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 무도회장. 드라마 <포즈>는 당시 성 소수자들의 문화였던 '무도회'를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경쟁과 화합, 그리고 사랑과 자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등장인물들은, 무도회장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자신을 선보인다. 재치있고 멋진 '포즈'와 함께. 무도회가 끝나고 진한 화장과 멋진 옷을 벗은 후에는, 그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서로의 상처입은 마음과 영혼을 섬세하게 감싸안고 위로한다. 진정한 '나'를 보여주고자 하는 저마다의 투쟁이 아름다운 이야기.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기 전에 투쟁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중략) 결혼을 결혼이라 말하기 전에 동성 결혼이라 밝혀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 여전히 문학의 몫임을, 믿고 싶다.” -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中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지점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퀴어 소설은  그들의 사랑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엄청난 서사를 짜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둘의 사랑을 기본 전제로, 그 관계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젠더는 까맣게 잊고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퀴어와 그들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그들의 사랑이 나의 사랑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만한 나에게 주는 처방전 같은 책이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222⛲)

'퀴어문화축제'라는 이름의 성소수자 축제. 최초의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서울 대학로에서 시작되었다.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오는 7월 15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린다. 코로나 여파로 3년 만에 다시 열린 이번 축제의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하지만 올해 축제는 개최 전부터 많은 장애물을 맞닥뜨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지난 4월 13일에 서울퀴어퍼레이드 개최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했다. 조례에 따르면 사용신고에 대한 통지는 접수 후 48시간 안에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 열린광장시민위원회가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 신청 안건을 수정가결한 것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난 6월 15일이었다. 그마저도 허가 받은 것은 단 하루였고, 신체 과다노출 금지와 청소년보호법에 저촉되는 유해 음란물을 판매전〮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조직위’는 “신고제인 서울광장 사용을 성소수자 행사에만 허가제로 집행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적 행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광장 사용을 막는다고 흐르는 사랑을, 터져 나오는 존재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생각일랑 거두고 그냥 '살고 함께하고 나아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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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문화축제가 한창일 7월의 서울을 떠올려본다. 무지갯빛 드리운 거리엔 사랑하게 해달라고, 이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무해한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포옹하며 행진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맞은편엔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혐오를 내비치는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다. 퀴어축제가 열릴 때면 항상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건너편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가 있곤 했다.

 어느 쪽이 사랑인지는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광장 맞은편,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해서 아들의 죽음까지도 감수했다고 믿는 이들의 말엔 ‘사랑’이 빠져 있을 테니. 분명한 것은 또 있다. 결국은 사랑을 말하는 쪽이 이길 것이다. 자주 부서지고 가끔은 패배하더라도 그리되리라고 확신한다. 이유를 묻는다면,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7)"기 때문이라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