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입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년 8월, 아내가 인사팀으로부터 뜻밖의 메일을 받았다. 직장어린이집 추가 원아모집에서 이현이의 입소가 확정되었다는 메일이었다. 

근속연수, 부모 동반 재직여부, 한부모 가족 여부 등 어느 평가 항목에서도 우선순위가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기적, 운명, 로또처럼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아이가 커서 입시에 성공하면 이런 기분일까? 나중에 진짜 학부모가 되면 큰일 나겠구나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챙겨야 할 준비물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다. 개별 물티슈 4팩, 겉옷과 내복 각각 상하의 3벌, 실리콘 재질의 턱받이, 스테인리스 양치컵, 오염된 옷 담을 가방, 펌프형 개인로션, 빨대 컵 등. 턱밭이와 빨대컵만 빼면 군대 준비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리스트였다. 그러고 보니 메일에서부터 익숙한 표현이 등장했었다. 입학이 아닌 입소라고. 

이름이 곧 적응과 성장의 상징인 준비물도 있었다. 낮잠 이불과 속옷. 하나는 아이가 오후 일과까지 소화할 수 있을 때, 하나는 기저귀를 뗐을 때 비로소 준비의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반년이 지난 현재, 하나는 아직 준비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첫 등원날, 우리에겐 넘어야하는 큰 관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정책이 바뀌어 부모는 현관까지만 출입이 가능하고 입구에서 방까지는 선생님하고만 가야 했던 것이다. 시간제 보육에서는 같이 들어가 손까지 씻고 헤어졌었는데 이제는 부모와 함께 하는 일체의 과정 없이 신발장 앞에서 쿨하게 헤어져야 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강력한 이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결별이 예상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등원 첫 달 스무 번 중 정확히 열 여덟 번을 울면서 등원 했다. 하루 이틀은 떼쓰기로 치부하고 또 다른 하루 이틀은 ‘다른 아이들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는 선생님 말에 위로를 받으며 버텼다. 나머지 하루는 이현이보다 더 크게 울면서 어린이집을 오는 아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등원 시키는 다른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위안 삼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소리내 울진 않지만 여전히 힘든 등원을 이어가고 있다. 입으로 ‘씨앗반 가기 싫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전날 밤부터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다음날 등원을 하기 싫다고 울먹이곤 한다. 맞벌이인 나와 아내는 매일 아침 각자의 직장을 가야 하기에 아이에게 어린이집을 가는 게 원칙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울먹임 속에 등원을 시키고 뒤돌아서 출근하는 동안의 마음은 쿨하지 못한 부모 그 자체일 때가 많다. 

어린이집 생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어떤 친구나 보육 선생님이랑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제대로된 돌봄을 못 받고 있는건 아닐지, 여기가 최선일지, 공동육아나 숲자람터 같은 곳에 보내면 더 나을지, 이대로 보냈다가 정서 상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등등 책임질 수 없는 걱정의 연속인거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모든 양육의 어려움이 해결될거라고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출산 전에는 어린이집이 모든 보육과 교육을 책임져주는 줄 알았고, 출산 후에는 적어도 양육자가 계획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루틴한 ‘비 양육 시간’이 주어질거라 믿었다.

반 년을 겪어보니 내 기대가 다소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끝이 아닌 건데, 어린이집이란 곳을 마치 누군가의 아이를 도맡아 키워주는 특별 육아 프로그램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이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해 줄 순 있지만 내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은 결국 양육자가 채워줘야 하는 것이고 행복 여부도 결국 내 아이의 성향과 기질에 달려있는 건데 말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부터 예상됐던 문제가 있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아이여서 단순히 더 크고 좋은 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것,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데 내성적이고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그만큼 좌절감과 답답함을 느낄 것이란 것, 단체활동과 사회생활이란 것 자체가 어려워서 군중 속의 외로움을 자주 느낄 거란 것, 아빠의 피를 조금이라도 물려받았다면 적어도 그런 성향이 다 큰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란 것. 

예상은 역시나 현실이 되었고 아이는 어린이집에서의 적응과 편안함의 상징인 응가를 반 년동안 한번 밖에 하지 않았다. 아이가 씨앗반에 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아내와 장모님은 어린이집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닐지 걱정하지만 나는 아이의 적성과 내구성부터 걱정하곤 한다. 내가 어릴적에 그랬기 때문에. 과거의 내가 지금 아무리 좋은 어린이집을 다닌다해도 똑같이 안 가고 싶었을 것임을 알기에. 어른인 나도 주5일 출근이 힘든데 이제 세 살인 아이는, 특히 심이현은 훨씬 더 힘들 수 있기에. 

육아를 하다보면, 정답을 찾는 시간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육아에 정답은 없고 선택만 있는 느낌이랄까. 

직접 보육이 아닌 어린이집에 보내는 선택. 아이의 ‘가기 싫어’를 한 귀로 흘리면서 등원을 시키는 선택. 아이가 아무리 걱정이 되어도 보육 선생님에게는 진상부모짓을 안 할 선택. 아이가 어린이집 적응을 힘들어 해도 직장을 그만 두지 않겠다는 선택. 매일 아침 괴로운 순간이 찾아와도 버텨보겠다는 선택.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봤을 때는 부모가 조금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육아나 실외활동이 많은 숲자람터 같은 곳이 정답처럼 보이지만 우리 부부가 처한 맞벌이 현실과 업무강도 속에서 아이와 공존을 하기 위해선 직장 어린이집 말고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만약 더 특별한 방식, 더 나은 방식을 찾은데 에너지를 쏟았다면 지금쯤 아내나 나 둘 중 한명은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영위하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 속에서 불행한 육아를 했을지 모른다.

지금의 조기 사회생활이 분명 아이에게는 한 치수 큰 모자처럼 느껴지겠지만 어떨 땐 모자 크기에 맞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한 번도 탄 적 없는 지하철에 대해 배워온다거나, 친구들 이름을 외우며 그날의 행동을 묘사를 한다거나 할 때면 기특함이 마음 속에 차오른다. 가끔 출처 모를 이상한 노래를 배워와서 부를 때에는 미래의 흑역사가 될 영상을 남겨놓는다.  

평일 오후 세 시, 휴대 전화 잠금화면에 키즈노트 알림이 뜨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 온다. 입소 초기엔 푸쉬 알람이 뜨자마자 실시간으로 열어보고 보육교사 선생님이 써주신 글을 한글자 한글자 정독 했지만 이제는 10초도 안되는 속도로 대충 훑어보고 특이사항만 체크한다. 만약 무슨 일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예측 가능한 시점에 예측 가능한 형식으로 알림장이 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어제의 알림장과 오늘의 알림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저녁 여덟 시, 퇴근을 하고 집 문을 여는 순간 우당탕탕 소리가 들린다. 등원할 때와 180도 다른 태도로 아빠를 맞이하는 심이현의 소리다. 어린이집 출퇴근의 피로감 때문인지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하지만 기분만큼은 최고조다. 집에서는 친구들 눈치 안보고 자기가 마음대로 해도 되서인걸까, 아니면 규칙과 제도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인 환경에 와서인걸까. 아침마다 마음 속에 시련이 있었을지 몰라도 다행히 아직 큰 실패는 없어 보인다.  

다음 주면 아이가 노랑씨앗반이 아닌 분홍잎새반으로 등원을 한다. ‘씨앗반 가기 싫어’가 이제 ‘잎새반 가기 싫어’로 바뀌겠지만, 어린이집 문을 열고 닫듯이 반복하다보면 얻게 되는 것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봄 이전의 겨울도, 내일 이전의 오늘도 유튜브처럼 건너뛸 수는 없지만 그게 나쁜 일이 아님을 말이다.  

Fathers’ Update

💬 올해 11살인 장남이 아기일 때 열이 많이 올라 열경기를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ㅎㅎㅎ 지금도 장남의 열에는 민감하게 반응된답니다 ㅎㅎㅎ (우니우니)

💬 아이가 언제 어떻게 아플지는 예고가 없는 법. 안전히 건강하게 잘 놀던 어느 날 밤, 아이가 엄마아빠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려고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침대모서리에 턱이 찍혔었어요. 깊게 찍혀 지혈이 안되는 상황이었고 119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아이야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하며 응급실 가는 40분 내내 아이를 껴안고 울었어요. 병원도착 후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부모가 아이 몸위에 올라타 잡고 정면에서 아이의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을 보는데.. “아이야 미안해 엄마가 대신 다쳤더라면 엉엉“하며 계속 울었어요. 이렇게 아이의 첫 구급차 탑승, 첫 응급실 내원, 첫 봉합시술…을 겪은 일이 떠올랐는데 벌써 1년전 이야기네요. 흉터는 많이 아물어 눈에 띄지 않지만 아이의 머릿속에 남겨진 밤-침대-피 트라우마의 흉터는 너무 깊어 시간이 약이다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삐뽀삐뽀)

💬 이서가 장염 심하게 왔군요 ㅠㅠ 저희집 애도 돌치레로 고생하다가 처음 토했을 때 너무 놀랬던 기억이나는데 ㅠ 하루에 5번이나 토하다니... 그래도 어른들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이서 너무 기특하네요 ㅠㅠ (유키농)

💬 잠든 아이 옆에 누워서 보내주신 메일을 읽습니다 ㅜㅜ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였으니 몇시간정도는 잠을 자지 않고 지켜봐야겠지요. 여느 때와 같이 오늘도 11시가 지난 늦은 밤이 되서야 안방 패밀리 침대로 들어와 누웠어요. 9시쯤 아이를 재우면 거실에서 책도 보고 티비도 보고, 또 내일 월요일을 떠올리며 한주를 준비하기도 하니까요. 방에 들어와 잠든 아이를 살짝 쓰다듬으며 기도를 해주다가 뭔가 쎄한 느낌이 들어 체온계로 열을 재보았더니, 노란불. 39도네요. 다급하게 아내를 깨우고 해열제를 먹이고,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봅니다. 낮에 세게 찧은 정강이에서 열이 나는 걸까? 저녁을 잘못먹은걸까? 코로나일까? 방 보일러를 너무 높여서 일까? 저는 일단 또 몇시간을 옆에서 기다리다 아이의 열을 체크하며 밤을 보내야겠어요. 부디 평화로운 한 주를 보낼 수 있길… (아민파파)

💬 다시 쓰시면서도 아찔했을 순간을.. 이렇게 생생하게 남겨주셔서 감사하단 마음마저 드네요. 저 원래 남의 얘기에 그렇게 감정이입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막 눈물이..ㅎㅎ 저희 아기는 이제 9개월이 되어가는데 아직 그렇게 아파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글을 읽는 내내 머릿 속으로 그려보게 되더라구요. 백번 천번 그려봐도 아마 아이가 아픈 상황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여러 낯선 순간들을 겪을 때 혹은 겪고 나서 가장 생각나는 것은 그 길을 먼저 걸어간 많은 육아 동지들/선배들이더라고요. 그 고마움은 뭐라 비교할 수 없지만 빚진 마음과 닮아있어요. 그래서 오늘부터 남편 이름을 크게 부르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밤박하)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보낸 지난 편지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편지를 혼자 읽기 아깝다면? 썬파클이 필요한 주변 사람에게 아래 구독 링크를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