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플인터뷰 #동남아 #소프트뱅크벤처스 #케네스 로우

안녕하세요, 님! ‘목요 팩플’ 인터뷰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적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6월말엔 유니콘 기업이 478개였는데, 1년 만에 729개로 껑충 뛰었어요. 미국과 중국 유니콘들이 가장 많지만, 의외의 지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동남아시아(South East Asia, SEA)입니다. 인도(3위)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유니콘이 많은 동네가 바로 SEA입니다. 눈치 빠른 국내 대기업들은 몇 년 전부터 '남남동'을 향해 뛰고 있고요. 그래서 오늘 팩플레터에선 이 지역 전문가인 벤처투자자와 인터뷰를 전해 드립니다. 김정민 기자케네스 로우 소프트뱅크벤처스 동남아 오피스 수석 심사역과 인터뷰했습니다. 동남아 유니콘들에 대한 그의 인사이트, 한번 들어보실까요?

2021.11.4 #163
Today's Interview
젖과 꿀이 흐르는 유니콘들의 바다, SEA
4억명, 한국 인구의 8배. 지난해 동남아시아 주요 6개국 인터넷 사용자 수다. 5년 새 1억 4000만명이 늘었다(e-Conomy SEA 2020, 구글·테마섹·베인앤컴퍼니). 심지어 이들 절반은 IT기업들이 탐내는 30세 이하 ‘영 어덜트(Young adult)’다. 코로나19로 젊은 동남아의 ‘파괴적 혁신’엔 가속도가 붙었다. 올해 아세안(ASEAN·동남아 10개국)에서 탄생한 유니콘 기업만 19개. 한국의 네이버와 쿠팡도 이 시장을 노린다.

동남아, 여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바다(SEA·South East Asia)일까. 팩플팀은 지난달 12일 시장의 최전방을 항해하는 케네스 로우(Kenneth Low·40) 소프트뱅크벤처스 동남아 오피스 수석 투자심사역을 만났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그는 잠시 본사(서울)에 들렀다.

말레이시아 국적인 로우는 캐나다에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3년간 홍콩과 뉴욕, 싱가포르에서 여러 글로벌 투자은행(IB)을 거쳤다. 이후 인도네시아(이하 인니)에서 창업을 경험한 뒤, 1년간 글로벌 벤처캐피탈(VC) 500스타트업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그는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에 합류했다.

IB에서 13년간 커리어를 쌓았는데, 왜 VC로 왔나.
“바로 VC에 온 건 아니고, 2016년 인니에서 레스토랑 예약·할인 앱 ‘클럽 알라카르테(Club Alacarte)’를 창업했었다. 4년간 회사 키우는 법, 투자받는 법 등을 절절히 배웠다. 우리 회사 투자자들과 VC에 있는 친구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다 다음 목적지로 VC를 택했다.”

그럼 창업은 왜 했었는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 ‘이집트로 이사나 갈까’ 고민하던 때였다. 운명(serendipity)처럼 창업에 뜻이 있던 친구 둘이 날 찾아왔다. 당시 인니, 그러니까 동남아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도 식당 예약은 전화로 했다. 거기서 기회를 발견했다.”

어떤 기회였나.
“우리 앱에 고급 레스토랑들부터 입점시키고 50% 할인 쿠폰을 뿌리는 등 회사를 열심히 키웠다. 고급 식당에서 시작하면 나중에 대중적인 식당을 입점시키긴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기 때문이다(웃음). 사업은 꽤 잘 됐지만, 코로나라는 블랙 스완(black swan·예기치 못한 충격적 사건)을 만나 결국 폐업했다. 외식하러 나오는 사람도, 식당도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사업은 아니었다.”

VC에 와보니 어떤가. IB와 가장 큰 차이점은.
“IB는 기업에게 투자 자문을 파는 ‘셀 사이드(sell-side)’고, VC는 기업에 돈을 투자하고 굴리는 ‘바이 사이드(buy-side)’다. IB는 주로 전통 대기업을 상대하고 VC는 빠르게 성장하는 테크 스타트업들을 만난다. IB는 정해진 절차를 따른다.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의 경우, VC는 IB보다 더 세세하게 기업 하나하나를 뜯어봐야 한다. 가장 큰 차이는 리스크 유무다. IB는 조언만 할 뿐, 책임지지 않지만 VC는 회사와 출자자(LP)의 돈을 건다.”

리스크가 큰 쪽이 더 재밌던가.
“나는 그랬다. 사실 연차가 쌓일수록 셀 사이드에서 바이 사이드로 옮기는 게 꽤 힘들다. 점점 리스크를 선호하지 않게 되니까. 적어도 2~4년차엔 이직해야 ‘VC 멘탈’로 갈아끼우기 좋달까. 그치만 나는 창업을 해봤고, 내 인생을 주도하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근 동남아 시장에 한국도 관심이 많아졌다. 그쪽 스타트업들 분위기는 어떤가.
“최근 1년간 3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①글로벌 투자자들이 몰렸다. 중국의 빅테크 규제가 심해지면서 이들의 눈이 중국 밖을 향했다. 그 돈이 동남아로 왔다. ②동남아 유니콘이 쏟아졌다. 올해 열 달 동안에만 유니콘이 20개쯤 나왔다. 아세안 유니콘(39개)의 절반이 1년새 나온 거다. 전체 순위도 미국(431개), 중국(165개), 인도(50개)에 이은 4위다. ③대형 엑싯이 등장했다. 이커머스 플랫폼 ‘부칼라팍(Bukalapak)’이 올해 8월 인니 유니콘 중 최초로 인니 증권거래소(IDX)에 상장하며 ‘잭팟’을 터뜨렸다.”
(*부칼라팍은 ‘인니의 쿠팡·마켓컬리’로, 국내에선 신한금융·미래에셋·네이버가 투자)

잭팟을 터뜨렸다는 건?
“부칼라팍이 IPO로 모은 자금이 자그마치 15억 달러(1조 7700억원)다. 동남아 최대 규모다. 기업가치는 50억~60억 달러(6~8조원)를 찍었다. 미국 투자자들이 동남아 시장에 눈뜬 계기였던 2017년 씨(SEA)그룹의 나스닥 상장 이래, 다시 입증된 거다. ‘동남아 스타트업의 엑싯은 문제 없다’는 게.”
(*SEA 그룹은 싱가포르에서 출발한 동남아 빅테크. 산하에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 ‘가레나(Garena)’, 이커머스 ‘쇼피(Shopee)’, 전자결제 ‘씨머니(SeaMoney)’ 등을 두고 있다. 3일 기준 나스닥 시총 230조원.)

수많은 유니콘과 대형 엑싯이란 성과는, 역시 코로나 때문일까.
“코로나 이후 온라인 결제 사용자가 6000만명이나 늘었다. 유통, 배송, 결제, 교육 모든 분야에서 급속도로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있다. 동남아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10년 전 중국·인도’라고들 하는데, 현재 중국과 인도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 봐라. 그들이 동남아의 미래다. 총 인구 6억 5000만명,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인 기회의 땅이다.”

고젝과 합병해 고투그룹이 된 토코피디아의 홍보대사는 BTS와 블랙핑크. 사진 속 인니어 ‘Selalu Ada Selalu Bisa’는 ‘원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란 뜻의 토코피디아 슬로건. 사진 토코피디아
요즘 잘나가는 동남아 스타트업들은 어디인가.
“제일 유명한 곳은 SEA 그룹이겠고…. 소프트뱅크벤처스가 2013년에 처음 투자한 토코피디아도 올해 5월 고젝과 합병해 고투(GoTo) 그룹이 됐다. 기업가치 180억 달러(20조원)를 평가받았으니 동남아 슈퍼앱에 가장 가까운 회사로 볼 수 있다.”
(*토코피디아는 2018년부터 소프트뱅크 비전펀드1의 포트폴리오사이기도 하다.)

투자한 회사들 중 최근 급성장한 곳을 소개한다면.
“인니의 모바일 주식 투자 플랫폼 아자이브(Ajaib, 2018년 창업)와 싱가포르 중고차 거래 플랫폼 카로(Carro, 2015년 창업)다. 둘 다 최근에 유니콘이 됐다. 아자이브는 ‘인니의 로빈후드’로 불린다. 낮은 수수료로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코로나로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혜를 입었다. 카로는 우리가 총 6번 투자한 곳인데, 본사는 싱가포르지만 인니, 태국, 말레이시아에서도 사업한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할 뿐 아니라, 중고차 시세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곳이다.”

동남아는 ‘로컬 위너’가 나오는 시장인가, ‘해외 빅테크’가 이기는 시장인가.
“산업마다 다르다. 핀테크 같은 규제 산업은 로컬 기업이 유리하다. 라이선스 취득이 더 쉽기 때문이다. 글로벌에서 성공한 사업모델이라도 그냥 갖다 꽂는다고(plug and play) 되는 게 아니다. 현지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 ‘우버 vs 그랩’을 떠올려보자. 우버는 점유율을 높이려고 기사 보조금까지 풀었지만, 시장을 장악한 건 그랩이었다. 우버는 신용카드 결제만 지원했는데, 싱가포르를 제외한 동남아의 신용카드 사용률은 5% 이하였다. 우버는 이걸 놓쳤다.”

한국 기업이 참고할 만한 동남아 소비자들의 특성이 있다면.
“한국이 혁신자(innovator)라면, 동남아는 추종자(follower)다. 일단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0분의 1이니 (한국 기업이 보기엔) 구매력이 높지 않다. 가격 비교가 습관화되어 있어 브랜드에 대한 고객 충성도도 낮은 편이다. 한국은 거의 모든 사람이 쿠팡을 쓰지 않나? 동남아 소비자들은 최저가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더 익숙하다. 또 돈이 얽힌 문제에선 ‘신뢰’가 정말 중요하다. 만약 ‘전자지갑’이 뭔지 모르거나 운영사가 못 미덥다면 절대 돈을 맡기지 않는 게 보편적인 동남아 정서 같다. UX/UI도 훨씬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복잡하면 사용자가 바로 떠난다.”

동남아 시장은 흔히 ‘동남아’로 한데 묶여 불린다. 나라별로 뜯어봐야 하는 건 아닌가.
“좋은 질문이다. 나라마다 문화, 규제, 소비자 심리가 전부 다르다. 메신저만 봐도 인니는 왓츠앱을 쓰지만, 태국은 라인을 쓴다. 제품·서비스 판매 전략과 채널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에듀테크는 어떤가. 베트남은 교육열이 높아 인니보다 에듀테크에 대한 지불 의사가 높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도 1인당 GDP가 높은 선진국에 속하지만 인구가 적다. 반면 인니나 말레이는 GDP는 낮아도 인구는 훨씬 많다.”

네이버와 쿠팡이 동남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쇼피나 토코피디아 같은 로컬 강자들을 이길 수 있을까.
“아예 승산이 없다고 하진 않겠다. 커머스처럼 자본집약적인 산업에선 자본만 빵빵하면 모두 승산이 있다. 쿠팡과 네이버는 이미 자본력이 강하므로, 경쟁사를 넘는 ‘브랜딩(Brand association, 소비자가 브랜드에 갖는 느낌과 지식 등)’이 관건이다. 쇼피·토코피디아·라자다는 이미 인지도가 확고히 쌓인 브랜드니까. 그 다음이 물류(logistics)다. 커머스의 가장 큰 장벽(bottleneck)은 배달 경쟁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한국에서 뛰어난 물류 운영력을 입증한 만큼, 이곳에서도 투자를 세게 밀어붙이면 성공한 후발주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이 보기에, 동남아에서 네이버·쿠팡의 핵심 경쟁력은 뭐가 될까.
“자본력이다. 커머스는 자본 싸움이다. 쇼피를 봐라. SEA그룹에 인수된 직후 음식 배달 진출, 낮은 가맹점 수수료(6%, 쇼피는 동남아 현지에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같은 소상공인 오픈마켓을 운영함) 등 공격적인 확장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자본을 바탕으로) 커머스 후발주자가 빠르게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방법은 결국 두 가지다. 고객 여정 면에서 완전히 차별화된 제품을 보여주거나, 고객의 접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거나.”

브랜딩을 강조했는데, 동남아에서 가장 성공한 브랜딩 사례를 알려준다면. (*그는 한참 고민 후 답했다.)
“두 곳이 떠오른다. 첫째는 쇼피푸드(ShopeeFood)다. 쇼피가 음식 배달을 시작한 지 1년 됐는데, 초장부터 ‘가격 파괴’ 전략을 썼다. 그랩·고젝이 20~25% 받던 배달 수수료를 15%까지 낮추고는, 한 달 만에 시장 점유율 10%를 가져갔다.”

다른 한 곳은?
“우리 투자사이기도 한 싱가포르 디지털 자산관리 플랫폼 인다우어스(Endowus)다. 인다우어스는 상장지수펀드(ETF)나 뮤추얼 펀드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 회사가 투자유치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싱가포르 주요 은행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거였다. UBS 같은 글로벌 기관을 뚫어 전략적 투자도 받았다. 불안해하는 소비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플랫폼도 믿고 쓸 수 있도록, 기존 금융권의 신뢰를 구매한 거다.”

그럼 동남아의 로컬 커머스 스타트업들은 충분히 성숙해있나.
“아직 아니다. 인니 커머스를 꽉 잡고 있는 토코피디아도 여전히 1티어급 대도시(Tier 1 cities) 중심에 머물러 있다. 2~3티어 도시는 라스트 마일 배달이 힘들고 비싸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2~3티어 도시에 집중하는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쇼피나 토코피디아와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인구가 많은 2~3티어 도시에서 기회를 본다.”

가령 어떤 스타트업이 있나.
“인니의 ‘슈퍼(Super)’가 대표적이다. 슈퍼는 각 지역 유지나 주부들을 데려와 ‘슈퍼 리셀러’로 만들고, 이들을 통해 물건을 공동구매하면 값을 깎아주는 ‘커뮤니티 할인’ 모델로 성공했다. 1티어 도시보다 배송비가 20~30% 더 비싼 문제를 공동구매로 해결한 거다. 중국(핀둬둬)과 인도에서 검증된 사업모델을 인니에 잘 적용한 흥미로운 사례다.”

마지막 질문이다.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 코아츄 매니지먼트, 안데르센 호로위츠(a16z) 등 쟁쟁한 큰손 투자자들과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다른 투자사와 무엇이 다른가. 
“하나는 20여년간 쌓은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와 지식이다. 이 지역은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또 하나는 창업 경험이 있는 팀원들이다. 우린 ‘외산 돈줄’ 정도에 그칠 생각이 없다. ‘월 성장률 20%’ 같은 단편적인 숫자만 보고 스타트업을 쇼핑하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모든 스타트업은 각자의 문제가 있고, 창업자들은 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힌다.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인적·전략적·사업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다방면에서 조언해줄 수 있는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려 한다.”

오늘 케네스 로우 소프트뱅크벤처스 심사역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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