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자림에 갔습니다. 수령 500년에서 800년은 너끈히 되었다는 비자나무들이 모여 군락을 이룬 곳으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비자나무는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지름이 겨우 20cm밖에 크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처럼 거대한 숲을 이루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생각하다 보면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늦가을 비자림을 찾은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습니다. 육지는 물론 한라산보다도 한 달 정도 단풍이 늦은 까닭에 짧은 가을을 그나마 길게 느낄 수 있거든요. 비자나무가 잠시 틈을 보인 자리에 들어선 단풍나무들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중입니다. 물감 번지듯 은은하게 빛나는 그 모습이 화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향긋한 숲 냄새를 맡으며 타박타박 길을 걸다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하나둘 주워 모았습니다. 무릎에 펼쳐 놓으니 모양도 색깔도 참 제각각입니다. 어떤 단풍나무 낙엽은 날개를 펼친 나비를 닮았고, 검은 점이 박힌 배롱나무 잎사귀는 흡사 무당벌레처럼 앙증맞습니다. 이렇게 다르게 생겼기에 한데 어울렸을 때 더 어여뻐 보이는 거겠지요.
우리네 삶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요. 다양한 모양의 삶이 존중받을 때 일상은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이번 호 뉴스레터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그간 센터를 중심으로 맺어진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 좋은 삶의 요건에 대해 탐구해 봤습니다. 바리스타부터 농부, 대학생에서 초등학생까지 색색으로 빛나는 삶의 모습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