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자유입니다. 얼마 전 누구나데이터 10주년을 앞둔 9주년을 맞았습니다.
누구나데이터는 얼마를 벌까? - 9년의 생존기

안녕하세요, 김자유입니다.

얼마 전 누구나데이터 10주년을 앞둔 9주년을 맞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뜻한 바대로 일하고 목표한 성과도 거두어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도 길었습니다. 24살에 아무 것도 모르고 창업해서 고군분투했던 9년이었습니다. 매해 적자를 감당하다가 창업 6년만인 2023년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수년간 다달이 몇백만 원씩 상환하던 누적 2억 원의 법인 빚을 2025년 상반기를 끝으로 모두 청산했습니다. 길고 외로운 생존 싸움을 졸업하고 마침내 완전한 자립 재정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버틴 시간이었습니다.

그간의 솔직한 심경과 누구나데이터가 지나온 십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또한 척박한 국내 비영리단체 B2B 시장에서 소셜 기업을 설립해 도전한 과정과 소회를 진실되게 기록하는 것도 이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의무인 것 같습니다. 내부 구성원 외에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고생한 지난 시간은 이제 추억으로 묻고 내년에 더 성숙한 모습으로 10주년을 맞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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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년 연재 순서
1. 누구나데이터는 얼마를 벌까? - 9년의 생존기
2. '제2의 누구나데이터'는 나올 수 있을까? - 비영리 섹터에서 B2B 사업을 한다는 것
3. 10주년을 앞둔 누구나데이터의 계획 - AI 전환기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비영리 공동체, 누구나데이터는 비상한 각오로 재창업에 준하는 도전에 나섭니다.
<누구나데이터는 얼마를 벌까? - 9년의 생존기>

꽤 많은 분들이 누구나데이터 돈 잘 벌지 않나? 라고 생각하십니다. 어떤 분은 직원이 한 30명쯤 되는 줄 아십니다(지금 3명입니다 참고로). 어떤 분은 김자유 대표 나름 잘 나가는 벤처사업가 아니냐고 하십니다. "누구나데이터는 비영리계의 구글"이라는 말도 들어봤고요. 대형 NGO 고객 대상으로 돈 많이 벌어서 작은 단체들에게 자선사업 하는 좋은 곳으로 알고 계시기도 합니다. 이상은 실제 누군가 쓰셨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우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반대로 걱정어린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나데이터는 비영리인가요? 누구나데이터는 돈을 벌고 있는 거죠? 돈을 어떻게 버나요? 강의로 버나요? 지원 받는 데가 있나요? — 어떤 분들에게 누구나데이터는 돈 나올 구멍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안 죽고 계속 숨쉬고 있는, 베일에 쌓여있는 조직입니다.

우선 매출 구조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누구나데이터는 비영리단체를 주타겟 고객으로 하는 B2B SaaS 주식회사입니다. 투자 받은 금액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모든 수입은 100% 서비스 매출로 벌고 있습니다.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9년간 한해도 정체되지 않고 손익이 순증했으며, 월급 제때 드리고, 돈 나갈 거 나가고, 어느 정도 재투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대형 모금기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늘의리포트 솔루션, 중소 비영리단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이너스 솔루션의 이용요금이 주요 수익원이며 이것이 매출의 90% 이상입니다. 오늘 기준으로 603개 조직이 저희 솔루션을 이용하며 정기적으로 요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그외 자체 강좌/세미나 수강료, 도서 판매, 기타 부대수입이 있으나 작은 규모입니다. 누구나데이터가 강의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강의 사업은 애초에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 활동이 아니며, 실제 매출 비중과 마진도 미미합니다.

이제부터가 현실 이야기입니다. 누구나데이터가 비영리 섹터에서 '유명'해진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유명세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비영리단체가 홍보와 모금을 기막히게 잘해서 시민들을 좀 압도적으로 끌어들여서 세상을 확 바꾸면 좋겠다는 절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나 불평등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자기 이익만 좇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당들이 늘어가는데, 모름지기 세상을 바꾸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면 한가하면 안 되고 치열하게 홍보하고 절박하게 모금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해낼 수가 없는 게 국내 비영리 섹터의 현실이었습니다. 인프라가 전혀 없는 나홀로 허허벌판임을 제가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꼈기에 누구나데이터를 시작했습니다. 법인 등기부상 설립 목적에는 이렇게 박았습니다. <공익의 실현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자에게 생산성 향상을 위한 소프트웨어 및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의 불평등 해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다음 사업을 수행한다.>

처음엔 제 전문성을 바탕으로 구글 애널리틱스 기반 데이터 분석 시스템 구축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용역 서비스로 출발했습니다. 비영리도 이제는 데이터로 마케팅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동감했던 동료 이찬우님이 첫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창업한 2017년도에는 국내 10대 NGO도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감으로 태우던 시기였습니다. 우선 대형 기관부터 하나씩 설득, 전환시키고 작은 단체로 한 걸음씩 내려와야 했습니다. 첫 고객은 국경없는의사회였습니다(창업 첫 달부터 입에 풀칠할 수 있게 해주신 국경없는의사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창업 2년차까지만 해도 수익이 괜찮았습니다. 계약 금액은 큰 편인데 입은 둘 밖에 안 되니 계속 열심히 하면 이십대 중반에 이만하면 고소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비영리 섹터 전체를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 많은 조직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이 뛰어다녀야 하는 용역 비즈니스로는 일년에 몇 단체 못만나는 것이 명백했습니다. 반드시 프로덕트 비즈니스로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출시하게 된 것이 2019년 '캠페이너스'였습니다. 디지털 마케팅을 하려면 일단 웹페이지가 바로 서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모바일 지원조차 안 되는 홈페이지를 가진 단체가 수두룩이었고 이걸 해소하지 않으면 디지털 전환은 요원했습니다. 매사에 순서가 있는 법인데, 기초학력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그 다음 과정으로 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2022년에는 '오늘의리포트'를 출시하고 기존의 구글 애널리틱스 용역 서비스를 프로덕트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중소형 단체들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데이터 기반 모금을 시작할 수 있게 개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보 사장은 프로덕트 비즈니스가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용역은 계약을 따내면 바로 선금이 통장이 꽂히지만 프로덕트는 론칭하는 데에만 몇 달 걸리고, 객단가는 낮아서 손익분기를 내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선투자금 마련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해내야 하는 것이지 물러설 이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 대출을 받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PT를 거쳐 청년창업 정부지원 융자 대상에 선정되어 저리로 1억을 빌릴 수 있었고 벤처기업 인증도 주셨습니다. 물론 갚아야 하는 것이었지만 일단 1억이 입금되었고 열심히 준비하여 캠페이너스를 론칭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출 전에 다른 자금을 먼저 모색하였습니다. 초기창업패키지 등 여러 정부/민간 지원사업에 도전하였으나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임팩트 투자를 한동안 알아보았으나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접었습니다. 일반 벤처투자를 받을 기회도 두 번 있었습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고객으로 주타겟을 바꾸는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창업 동기와 반대로 달리는 것이기에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투자 관련해서는 2편에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020년도부터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더 이상 자금 알아보는 데 시간을 쓰지 말고 그 시간에 한 개라도 더 팔자,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해서 고객들에게 선택 받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언제든지 돈이 부족하면 저녁에 쿠팡 이츠라도 뛰자 라는 마음으로 커다란 보냉 백팩도 주문했습니다. 당근을 보다가 그냥 새 걸로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 가방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각오를 기억하기 위해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파이팅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손익분기의 고지는 저 멀리에 있었고 초보 사장은 좌충우돌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매출은 꾸준히 늘고 적자폭은 줄어갔지만, 폭이 줄은 것이지 적자는 여전했기에 마이너스가 누적되었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버티면 n년 뒤에 좋아지는 것은 분명했지만, 정말 오랫동안 버텨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접을까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만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으나 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과제가 아직 산처럼 쌓여있는데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믿고 선택해주신 고객들께 안정적이고 중단 없는 IT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하나둘씩 포기를 선언하고 조직으로 돌아가는 동년배 소셜벤처 대표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위축됐지만 "역시 이 바닥에서는 누구나데이터 같은 사업은 안 되나봐" 라는 좌절스런 선례를 섹터에 남기면 안 된다는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창업 6년째 된 2023년에 비로소 흑자 전환을 했습니다. 희망이 보였습니다. 제가 호기롭게 일을 벌려 사람을 불러모은 이 '프로덕트'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동료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방망이를 깎은 결과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관들을 설득해 고객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페르소나는 누구일까, 우리가 게을러서 고객에게 어필하지 못한 제품의 장점은 무엇일까, 어디에 더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까 등등 수시로 zoom과 노션을 켜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다양한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일매일의 일상적 고객지원도 일정한 품질로 쳐내야 했습니다. 각자가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런 디테일이 누적되니 고객이 늘고 수익성이 눈에 띄게 개선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다달이 갚아야 할 돈이 있으니 아직은 흑자가 흑자가 아니었습니다. 누적된 부채와 미납금 속에서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일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삐끗하면 바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는 재작년이었습니다. 누워도 잠을 자기 힘들었습니다. 계좌 압류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에 진 빚은 어느 정도 유예 및 분할 상환을 제공해줍니다. 그러다가 어느 임계점이 오면 날짜를 박아서 최후 통고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행되지 않으면 즉시 압류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압류에는 계좌 압류(회사 계좌에 입금은 되지만 출금은 정지되는 상태), PG정산 압류(PG결제는 동작하지만 정산이 정지되는 상태)가 있습니다. 압류가 걸리면 채권기관 담당자가 제시하는 목돈을 입금해야만 풀리며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나마의 돈이 회사 계좌에 있는데 그 계좌가 동결된 상태이고, 고객에게 수금한 돈이나 PG정산이 되어 들어오는 돈도 역시 회사 계좌로 입금되고 있는데 그 돈은 출금이 안 되는 상황이니, 압류를 풀기 위한 금액을 내려면 전혀 다른 데서 돈을 끌어와야만 합니다. 회사 계좌에 돈이 있어도 돈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편 계좌가 정지되면 급여 지급은 물론이고 그 어떠한 지출도 불가능하여 회사가 즉시 멈추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게 되므로, 그날로 파산을 선언하고 싶지 않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현금을 동원해서 계좌를 사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뉴스에서 보는 기업이 파산하는 전형적인 코스입니다. 이같은 압류조치 또는 압류예고를 현금흐름이 가장 안 좋았던 2024년에 몇 차례 겪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을 자기 어려웠습니다. 한번 겪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살인적인 스트레스라서 매출과 수익성에 그 시기 극도로 예민해졌고 저의 긴장감이 동료들에게도 어느 순간 빠르게 전이됐을텐데, 죄송했습니다. 재정과 관련해서는 대표가 온전히 짊어질 짐이므로 동료들 앞에서는 평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때만큼은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들의 급여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된 날짜에 월급은 나가야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급여는 무풍지대인 것으로, 그리고 매년 최소 5% 이상 인상하는 것으로 신뢰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고백컨데 지난 9년간 세 차례,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급여를 1주일에 걸쳐 분할 지급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차례, 퇴직급여를 약속한 기한 내 지급하지 못해 큰 실망과 피해를 드린 일이 있습니다. 급여가 불가피 지연될 것 같다고 입을 뗄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불가피'한 건 이유가 될 수 없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대표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양해해주신 당시 동료들 덕분에 고비를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시기에 자리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비영리 고객들을 지원하는 것으로서 동료들은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7년간 저의 월급은 세전 150만원이었습니다. 어떤 달에는 그마저도 가져가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상적인 급여로 설정하고 미지급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고, 주변 대표님들이 조언해주셨습니다. 물론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배부른 소리였습니다. 급여를 높여 놓으면 그만큼 내야 할 보험료가 조금이라도 커지기 때문에 당장의 현금 지출을 한푼이라도 아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을 만큼의 최소 급여를 설정하고 버텼습니다. 소득이 작게 신고되니 개인 전세대출 등도 금액이 적게 나오는 불이익이 있었습니다. 끝까지 버텨보다가 2025년 말에 비로소 정상적인 급여로 책정하고 지급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에는 제가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되었습니다. 대가 없는 순수한 선의의 지원금은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보았습니다. 비로소 누구나데이터의 가치를 말이 아닌 금전으로 처음 인정해주신 것으로서 정말 뜻깊었습니다. 카카오임팩트 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한테 지급된 2년간 월 200만원의 펠로우 활동비는 그대로 회사 통장으로 이체됐습니다. 그 시기 회사 재정에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중순, 회사의 모든 빚을 갚았습니다. 마지막 남아있던 빚 9,649,230원을 입금하고 새로고침을 눌렀을 때 "상환할 잔액 : 0원"이 모니터에 뜬 걸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존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닙니다. 주식회사 누구나데이터는 세상에 진 빚은 모두 갚았지만, 자연인 김자유에게는 여전히 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긴급할 때 넣었던 돈들이 적지 않게 쌓여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에서만 근무하다 이십대에 창업한 제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없던 돈도 억지로 땅을 파서 만들어 넣었던 돈들입니다. 이 빚은 이자는 없지만, 법인 채무로 분명하게 재무제표에 달아두었습니다. 언젠가 돌려받아야 할 돈입니다.

누구나데이터를 약 10년 동안 해서 얼마가 남았을까요. 돈이 남은 건 특별히 없습니다. 그러나 비영리 조직들이 믿고 쓸 수 있는 모금·마케팅 인프라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자립 체력을 가진 회사가 하나 남았습니다. 누구나데이터를 믿고 선택해주신 누적 1천여 기관 고객들, 누구나데이터에서 치열하게 일한 동료들,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도움주신 모든 이해관계자 분들. 이분들이 벌게 해주신 돈으로만 누구나데이터는 10년간 운영되었고 이 돈으로만 빚을 갚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누구나데이터의 주주입니다. 저는 그것 위에 누구나데이터가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저 대리인으로서 오로지 주주님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회사를 운영해나가겠습니다. 지난 십 년 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끝까지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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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제2의 누구나데이터'는 나올 수 있을까? - 비영리 섹터에서 B2B 사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았습니다. 발행시 이메일로 받고 싶다면 여기서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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