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술관은 실험실이 되어야 할까요? “왜 미술관은 실험실이 되어야 할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c-lab은 큐레토리얼 실천을 이야기하고,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주제를 함께 연구할 동반자를 만났습니다. 진Zine을 만들며 미술관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브뤼노 라투르의 책을 읽고 인류세 바깥의 길을 탐색하는 예술의 힘을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난 12월 13일 *c-lab은 2025년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실험 음악 플랫폼 닻올림과 즉흥 협연을 진행했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침내 그 질문을 풀어갈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즉흥 협연에 모인 15명의 연주자는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즉석에서 호흡을 맞추며 그 전에 없던 음악적 조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때 연주자가 보여준 태도는 “서로의 소리를 듣고”, “용기내어 자신의 소리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익숙한 요소는 새롭게 연결되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습니다.
브뤼노 라투르는 어떤 행위자가 다른 요소와 연결되어 강한 실재를 획득하는 것을 절합Artic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실험실은 아직 충분히 절합되지 못한 미지의 행위자를 만나는 공간입니다. 새로운 조합의 연결이 가능한 태도와 장을 보여주는 것, 미술관이 실험실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리서치 딜리버리에는 미술관/실험실을 함께 고민하고 있는 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이 참여했습니다. 서로 연결된 주제가 독자 여러분을 만나 또 다른 가능성으로 확장되기를 바라며, *c-lab 9.0은 2026년 2월,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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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닻올림 즉흥 협연 모임 스페셜 @코리아나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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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아트Sound art의 계보는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가이자 이론가, 큐레이터로 활동한 페터 바이벨Peter Weibel은 이탈리아 미래주의 작곡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가 1913년 발표한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과 그가 제작한 소음 발생 장치 인토나루모리Intonarumori를 주요한 시초로서 평가한다.
1960년대 후반 서구에서 간헐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일반적인 음악적 공간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리’ 관련 활동—설치, 해프닝, 퍼포먼스 등—을 포괄해 지칭한다. 1979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Sound Art》 전이 개최되고, 1982년 미국의 작곡가 윌리엄 헬러먼William Hellerman이 사운드 아트 재단Sound Art Foundation을 설립, 1984년 뉴욕의 조각 센터SculptureCenter에서 《Sound/Art》 전이 열리면서, 사운드 아트는 미술관 안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흐름과 200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미술 현장의 모습을 다양한 미디어가 혼재하는 풍경으로 바꿔놓았다.
이후 소리를 다루는 예술, 소리의 예술, 혹은 미디어 아트의 한 형태로서 이들을 이르는 ‘사운드 아트’를 미술관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현대미술이 이것저것을 잡아먹으며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중에서도, 사운드 아트는 사이의 위치에서 독특한 장을 형성하며 스스로를 형상화하는 것만 같다. 그 끝과 끝을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그 용어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미술관의 ‘소리’는 앞으로 또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찾아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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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이탈리아 가수 아드리아노 첼런타노Adriano Celentano는 독특한 노래 한 곡을 발표한다. 〈Prisencolinensinainciusol〉이라는 이 곡은 얼핏 들으면 영어 같지만,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의 조합이다. 그는 당시 미국 팝 음악의 억양과 리듬을 흉내 내며 “뜻 없이도 들리는 언어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첼런타노의 노래는 가사가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비틀고, 언어의 껍데기만을 빌려온 뒤 그 속을 비워낸 것으로, 노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새로운 차원에서 보여준 하나의 실험으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개념이 하나 있다. 바로 지버리쉬Gibberish이다. 뜻을 담지 않은 말소리, 문법적 체계를 갖추지 않은 발화, 하지만 그 자체로 리듬과 억양을 가진 언어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발화 방식인 지버리쉬는 의미를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청자로 하여금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을 감각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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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실험적 소리는 사실 그보다 훨씬 이전, 다다이스트들이 다뤘던 것이다. 1916년, 휴고 발Hugo Ball(1886-1927)은 무의미한 음절로 구성된 시를 낭독한다. 알 수 없는 음성을 내뱉는 그의 발화는 언어가 반드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규범을 완전히 해체하고 발음되는 순간의 호흡·리듬·몸짓만을 드러낸다. 이로써 언어가 전달을 위한 도구라는 전제 자체는 붕괴되고, ‘소리의 퍼포먼스’ 그 자체만 남는다. 휴고 발의 퍼포먼스부터 첼런타노의 음악까지, 지버리쉬는 언어가 가진 틀을 벗겨내고 소리의 순수한 힘을 드러내는 하나의 실험적 도구로 작동한다. 의미를 비워낸 순간, 우리에게 언어는 새로이 들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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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언으로 시작된 미술 운동의 시초: 미래주의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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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이 과거의 미술사조와 다른 점은 자신들의 세계관과 이념을 공공연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선언’하면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동시에 그들의 사회, 정치적 실천도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활동을 “운동Movement”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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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2월 9일 르 피가로 신문사 앞에서,
루이지 루솔로, 카를로 카라, 필리포 마리네티, 움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좌측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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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주의 선언은 1909년 2월 20일,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 1면에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1876-1944)가 작성한 〈미래주의 시(時) 선언〉을 발표하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10년 3월 8일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1882-1916), 카를로 카라Carlo Carrà(1881-1966),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1883-1966),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1885-1947), 지아코모 발라Giacomo Balla(1871-1958) 등 다섯 명의 화가가 트리노의 키아레라 극장 앞에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공표하면서 미술 운동으로 확산했다.
이후 미래주의자들의 실천은 시, 음악, 연극,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이들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소리, 빛, 운동과 같은 움직임을 회화에 가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후 미래주의자들의 역동성과 동시성 개념은 러시아의 키지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 미하일 라리오노프Mikhail Larionov(1881-1964) 등의 작가들과 영국의 보티시즘Vorticism에 영향을 주었고, 반(反) 전통의 정신은 다다로 이어져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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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Un-creative Creativ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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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비창조적’이라는 말은 창작을 거부하는 선언이 아니라, 문학이 오랫동안 ‘독창성’만을 가치 기준으로 삼아온 관습을 비틀기 위한 전략적 명명이다. 골드스미스에게 창의성은 새로움을 발명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넘쳐나는 언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전유하고 배열하는가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태도는 골드스미스의 책 『Day』(2003)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골드스미스는 2000년 9월 1일 자 뉴욕타임스 지면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타이핑해 약 900쪽의 책으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텍스트의 양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지만 거의 읽지 않는 정보의 규모를 드러내며, 작가의 몸을 창조적 주체가 아니라 반복을 수행하는 매개로 전환한다. 언크리에이티브 라이팅은 이처럼 글쓰기의 관심을 ‘누가 썼는가’에서 벗어나 언어가 어떤 조건과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에 두려는 시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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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에서 제본까지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얇은 소책자를 의미하는 진은 1930년대 미국 SF 소설의 팬덤이 서로 교류하기 위해 제작한 팬 매거진을 그 기원으로 본다. 이들은 The Comet(1930), Fantasy Fan(1934) 같은 팬진을 만들며, 저비용·자기 출판·소규모 유통이라는 형식을 확립했다. 이러한 인쇄·유통의 방식은 팬진 출신의 편집자를 통해 1960년대의 인디 음악, 반문화 운동으로 확산했고 1970년대 펑크 문화가 팬진의 계보를 직접적으로 잇게 된다. 제도와 자본주의에 반항하는 문화에 뿌리를 둔 펑크 진Punk zine은 정치적 주장과 반상업주의, 반권위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진은 1976년 런던에서 마크 페리Mark Perry가 창간한 Sniffin’ Glue이다. 펑크진이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진은 익숙한 표현 방식으로 정착했고 이후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DIY 선언과 결합해 진 문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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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 디지털 인쇄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진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은 더 가벼운 행위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독립 출판 생태계를 크게 확장시켰고, 지금은 세계 곳곳의 아트북 페어와 진 전문 서점에서 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진의 형태가 어떻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자신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공유하려는 데 있다. 이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진 메이커가 될 수 있다. 진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nicezines에서 전 세계 진 메이커들의 소소하고 귀여운 진을 감상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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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귀여운 것 앞에서 쉽게 마음을 내주게 될까? 생물학은 이를 생존 전략으로 설명한다. 귀여운 대상을 마주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긴장을 완화하고 공격성을 낮추며, 우리의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이끈다. 그러나 푸바오의 재롱에 열광하고, 라부부의 가격이 치솟는 현상을 이러한 생물학적 반응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귀엽다”는 감탄 뒤에는 사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자리한다. 누군가를 귀엽다고 부르는 행위는 애정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를 약하거나 미성숙한 존재로 위치시키는 선언이기도 하다. 애정과 우월감이 함께 작동하는 감정의 정치. 대상이 사물이라면 소비와 소장으로, 사람이라면 보다 미묘한 형태의 길들이기로 이어진다. 귀여움은 친밀함의 언어인 동시에 관계의 위계를 적립하는 장치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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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헬로키티의 탄생 이후, 일본은 이 복합적 감정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워냈다. 패전 이후 전통적 남성성이 흔들리고 정치적 무력감이 사회 전반에 퍼지던 시기, 젊은 세대는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가벼움과 애매함의 미학인 ‘가와이이(かわいい)’를 선택했다. 이는 일종의 도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감정의 피난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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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역시 이러한 귀여움의 담론을 점차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24년 서머셋 하우스와 쿤스트할 로테르담이 공동 기획한 전시 《CUTE》는 귀여움이 어떻게 동시대 감수성—기술, 젠더, 정체성, 향수—을 매개하는지 탐구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KAWS, 아야 타카노의 작업은 귀여움이 특정한 취향을 넘어, 오늘날 시각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귀여움은 부드러운 외양을 지녔지만, 내부에는 보다 복잡한 층위가 겹쳐 있다. 미술관에 침투한 귀여움은, 우리가 익숙하게 느껴온 감정 속에 어떠한 긴장과 정치가 숨어 있는지를, 유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펼쳐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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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엇이 몸을 (미술관에서) 작동하게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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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1947-2022)는 실험실을 비인간 행위소가 출현하여 사회적 존재로 전환되는 결정적 장소라 했다. 그의 관점을 미술관에 적용해 본다면, 미술관은 오일·아크릴·흑연·청동과 같은 조형 재료는 물론, 오늘날 신체가 시각적·감각적으로 출현 가능한 장소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투르의 논문 「몸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2004)에서 언급되는 네트워크, 연합 등 절합의 협상 가능성은 자신을 상실하지 않은 채 다른 존재들과의 협상을 통해 무언가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에서 ‘몸’은 다른 재료·매체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며, 어떤 가능성을 작동시키고 있는가? 우리는 신체를 행위와 과정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수행적Performative’ 행위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두고 춤이라는 언어로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오늘날 미술관에 공연예술이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몸’을 전시에서 움직이게 하는가?’가 아닐까. 근미래에 우리는 마침내 구겨지고, 겹치고, 접힌 몸을 전시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그때 만날 전시에 관한 짧은 프리뷰이다.
*김홍중, 『가까스로-있음』, 서울: 이음, 2025, pp. 172-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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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① Hugo Ball reciting the sound poem “Karawane, photographed at the Cabaret Voltaire, Zürich, 1916 ©UEN② Kenneth Goldsmith, DAY, 2003 ©2025 Type Punch Matrix③ The Story of Early ’80s Anarcho-Punk Fanzine, Guilty of What?④ The 10 Greatest Punk Zines of the Eighties, Life in Hell⑤ 나카노 요시오, 『人間兇器』 제13권, p. 84.⑥ A Hello Kitty installation at Somerset House, part of the London gallery’s Cute ©David P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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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Decembe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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