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대나무 칫솔이 하나에 4900원. 브랜드 이름은 ‘HUMBLE’. 솔 부분이 무지개색으로 된 건 6000원. 패키지에 무려 PROUD라고 써있다. 지인 커플이 생각나서 선물할까 하고 두개를 집었다. 이번에는 친환경 수세미 3개에 9900원. 친구랑 나눠가져야지. 마지막으로 가구를 만들고 남은 재료를 재활용한 쟁반 22000원. 

이것 저것 손에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다가오는데 어쩐지 모든게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빈손으로 집에가는 게 나한테도 지구한테도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산할 차례다. 답안지를 내기 직전에 수정테이프로 답을 고치듯이, 나는 모든 물건을 급히 내려놓고 가게를 나왔다.

나는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을 실행하다보니 모든게 ‘패션’이 되어버렸다. ‘패션좌파’, ‘패션페미’라는 말처럼 어떤 신념이나 생각 앞에 ‘패션’이 붙으면 참 없어보인다. 사실 게을러서 그렇다. 돈을 쓸 일이 아닌것도, 게으르니까 돈이 든다. 집에서 얌전히 두부를 부쳐먹으면 될 것을 비건 버거를 배달시키고 만다.

빈손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죽은 아카시아 화분에 버섯이 빵긋 피어나있다. 아카시아는 우리집에 온 지 1주일만에 운명을 달리했었다. 우리집은 남향이며, 벽 한 면이 모두 창문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왜 죽었을까. 죽은 아카시아는 말이 없다. 

버섯이라는 것은 숲에서 봤을 때는 참 귀여웠는데 집에서 보게되니 기괴했다. 캐내도 캐내도 다시 올라오는 버섯. 아카시아의 죽은 뿌리 밑으로 버섯의 생태계가 완성된 것이 틀림없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그 키는 내 허리까지 오는 죽은 나무를 한 참 바라보다가 결국 종량제 봉지를 가져왔다. 가위로 죽은 가지를 자르려는데 아무리 해도 잘리지가 않았다. 그래, 다음에 가자꾸나. 나는 포기한 저승사자처럼 종량제 봉지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죽인 식물들을 떠올려봤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친구 생일 선물을 살 때 무조건 ‘모닝글로리’라는 문방구에 갔다. 거기서 각종 쓸 데 없는 장식품(주로 세라믹이었음)이나 액자를 사서 친구에게 선물하고는 했다. 가끔 화분을 선물하기도 했다. 대부분 아주 인위적으로 꾸면진 다육이 화분이었는데, 친구 엄마들은 그 화분을 가져가서 TV위에 올려놔 주었다. 그 화분은 물론 우리집에도 있었고 그게 내가 살해한 첫번째 식물이었다. 

우리집에 거실에는 천장까지 닫는 행운목과 관음죽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진정 그들의 아버지 같았다. 할아버지가 쓰다듬어주면, 그들은 있지도 않은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어댔다. 하지만 식물을 잘 기르는 능력은 가족력과 상관이 없었는지, 나는 초등학교 텃밭에서 기른 ‘오지윤의 고구마’조차 제대로 한 번 수확한 적이 없었다.

죽은 식물을 종량제 봉지에 넣을 때마다,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만약 이게 동물이라면, 뉴스에 나오고도 남을 일인데 어째서 식물은 이렇게 매일 사체로 유기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연쇄 살해자로 ‘그알싶’에 이미 나오고도 남았겠지. 때 마다 나는 그들을 주차장 옆 작은 화단에라도 묻어줘야하지 않았을까. 올해도 몇번 죽은 식물들의 메마른 잎과 검정색이 줄기를 쓰레기들 사이로 구겨 넣었다. 

강형욱씨가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라는 책을 냈었다. 그 때 나는 그책을 사서 아빠에게 선물했다. 강아지와 함께 살지만 산책을 죽도록 싫어하는 아빠에게 무언의 일침을 날리고 싶어서였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식물을 키우면 안된다’라는 책은 없는걸까. 아직 아무도 그런 책을 써서 식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는 않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우리집 환경부터 잘 지켜야 지구도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싹수가 노랗다. 안타깝게도 우리집엔 아직 6개의 생명이 남아있다. 잎이 갈라지기 시작한 여인초. 절대 성장하지 않는 고무나무와 호프셀럼. 폐업하는 꽃집에서 구조 해온 알로카시아, 아직 우리집에 온지 2주밖에 안된 아레카야자. 그리고 유일하게 아주 잘 자라고 있는 금전수. 

여름 옷들을 정리하고 침대밑에 있던 화장품 샘플까지 긁어모아 파우치에 넣었다. 우리집이 거대한 혈관처럼 느껴졌다. 물건들로 꽉차서 피가 통하지 않는 나는 곧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직전이다. 잘 쓰지 않는 접시와 먼지 쌓인 카페트, 오래된 수건, 속옷, 양말까지 정리하니, 남은 건 죽은 아카시아 나무. 아직은 이 큰 몸을 쓰레기 봉지에 넣을 자신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유예. 

‘친환경 아이템’들의 ‘친환경’은 대부분 이 아이템들이 ‘버려질 때’ 발휘되는 가치다(생분해되는, 재활용 가능한). 이게 참 묘하다. 침대에 누워 쇼핑앱들을 하나하나 삭제했다. 내일 다시 다운로드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렇게 오늘의 의식을 마무리한다. 언젠가 버릴 물건이라면 굳이 짊어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다가. 마음이 헛헛할 때는 휴지에 물을 적셔 여인초 잎을 닦으리라.

오늘 사진은 프랑스에서 만난 비오는날의 환경미화원입니다. 저는 초록색이 참 좋습니다. 개인이 어쩐다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임계점은 이미 지났다고들 말합니다. 그렇다고 막 살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하니까 뭐라도 하는거죠,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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