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우리는 집 안에서 소리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초인종 소리나 문 여닫는 소리는 누군가가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물 흐르는 소리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죠. 그런데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 외 감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특히 시각적 정보를 중시하게 되는데요.
청각장애인 건축가 로버트 니콜스는 시각적 정보를 통해 공간 내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집 안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특히 현관문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 조리 공간에서는 깜빡거리는 점멸등을 설치해 정보를 전달합니다.
이번 2022년 마지막 뉴스레터에서는 국제 청각장애인 건축가협회의 이사이자 지난 40여년 간 포용적인 건축설계에 대해 고민해온 로버트 니콜스와의 인터뷰 일부를 싣습니다. 


본 내용은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생활안전부터 재난까지 안전을 위한 디자인의

일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에디터 강성혜, 김병수
사진제공 Robert Nichols

로버트 니콜스는 2016년 설립된 국제 청각장애인 건축가협회WDA (World Deaf Architecture)의 창립자이자 이사로 청각장애인 건축가들의 네트워킹과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딴 니콜스 디자인 건축사무소Nichols Design Associates를 통해 포용적인 건축 설계와 유니버설 디자인 자문을 진행 중이다. 카렌 브렛마이어와 마찬가지로 미국 접근성 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국제 청각장애인 건축가협회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장애가 있는 건축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공평한 고용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죠. 그래서 6년 전에 청각장애인 건축가를 위한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WDA는 9명의 이사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모두 청각장애인이거나 난청, 혹은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22건축가죠. 성별,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전세계적으로 청각장애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고요.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한 집은 어떤 공간이 돼야 하나요? 실제 디자인하셨던 사례가 궁금합니다.
시각에 중점을 두는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헨리 포드Henry Ford의 고손녀집을 디자인한 적이 있어요. 포드 자동차를 설립한 그 헨리 포드 맞습니다. 집안이 굉장히 부유했고 남편과 함께 넓은 집에 살고 있었죠. 청각장애와 발달장애가 있어서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수어로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었어요. 첫 만남 당시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부엌이라고 하더군요. 부엌이 너무 좁고, 집은 너무 큰 데다 초인종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걱정이라고요. 남편도 청각장애인이고 집은 3층 반 정도 되는 구조라 문 앞에 누가 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누군가 침입하거나 화재 알람이 울려도 들을 수 없었죠. 부엌에 아일랜드도 설치하고 싶어 했어요.

헨리 포드의 후손을 직접 만나셨다니 흥미로운데요. 부엌은 어떻게 리모델링 하셨나요?
청각 대신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엌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아일랜드 역할을 해줄 카운터를 제작하고 바퀴를 달았어요. 그동안은 부엌에 있을 때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죠.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카트 형태의 카운터를 밀고 회전해서
롤링 캐비닛을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하며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도 확인할 수 있다. 카운터 하단에는 전화 벨 소리, 화재경보기 소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멸등을 설치했다. © Robert Nichols
외부 소리를 불빛을 통해 감지한다는 점이 인상 깊은데요.  
시야의 범위를 넓히는 디자인도 중요했어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눈으로 최대한 멀리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부엌 앞에 식사 장소를 만들었는데 부엌과 직각을 이루도록 배치했어요.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거실과 부엌을 한눈에 볼 수 있었죠. 거실에도 부엌과 똑같은 불빛 시스템을 적용했고 눈에 잘 띄도록 3 미터 정도 높이에 설치했습니다.

집 안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각으로 충분히 인지할 수 있으니 안전한 집이 되었군요?
맞아요. 청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은 다른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거울로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진동으로 누군가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예전에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디자인한 적이 있어요. 보통 교실처럼 한 줄씩 앉기보다 둥근 원 형태로 앉을 수 있도록 교실을 개조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죠. 선생님은 원 가운데에 서서 수업했고 떠드는 아이가 있을 때는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주의를 주었어요.
니콜스는 자택 부엌을 비주얼 키친visual kitchen으로 직접 리모델링했다. 곳곳에서 빛이 드는 밝고 탁 트인 곳이다. © Robert Nichols
공간에서 시각적 요소들 외에 다른 중요한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요소는 근접성이에요. 근접성이란,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수어를 하며 걸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말합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팔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음향도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청각장애인이 왜 소리를 신경 써야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공와우를 착용하는 사람이라면 천장에 달린 에어컨이나 난방기, 냉각탑과 같은 열교환장치에서 나오는 소음을 괴로워해요. 청력 보조장치를 통해 잡음이 증폭되기 때문이죠. 전문 엔지니어가 직접 전체 시스템을 교체해서 소음을 없애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바닥도 촉각적 단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진동이 잘 느껴지는 소재를 사용해야 합니다. 발을 굴러서 서로를 부를 때 진동이 잘 전달될 수 있게요. 예전에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디자인할 때 바닥을 목재로 시공했어요. 들보는 철근으로 제작했습니다. 벽의 질감도 다르게 디자인할 수 있죠. 아이들이 벽의 표면을 만져보고 촉각으로 공간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기도 하니까요.

오랜 기간 이 분야에서 일을 하셨는데요.
안전사고와 관련된 직간접적인 경험도 있으세요?
물론이에요. 최근 뉴스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두 모녀의 사망 소식을 접했어요. 정말 슬펐습니다. 차 시동을 끄지 않고 집에 들어와서 차고지에 불이 났어요. 그런데 화재경보기 불빛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밤새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거죠. 집에서는 인공와우를 빼고 생활하는 청각장애인도 있으니 화재 경보 점멸등은 방마다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각장애인에게는 집 안에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각으로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설비는 장애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고요.

지금까지 질문은 주로 공간에만 초점을 맞췄었는데요.
대중교통 디자인에서 청각장애인의 안전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나요?
제가 사는 워싱턴주의 지하철 시스템은 아직 청각장애인의 안전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어요. 만약 지하철에서 사고가 났을 때 영문도 모르고 열차 안에 갇혀 있는 일은 장애인에게 정말 힘든 일이겠죠. 비장애인도 마찬가지겠지만요. 현재로서는 청력 보조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이 지하철 안내 방송도 제대로 듣기 힘들 만큼 음향 시스템이 부실합니다. 조명도 어둡고요. 또 화재 탈출 계단이 마땅치 않아서 지하나 열차 어딘가에 발목이 묶여서 피해가 배로 커지는 경우가 많아요. 출구가 없으니 소방관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도 제대로 돼 있지 않죠.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각장애인이 직접 열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할 수 있는 수단이 사고 발생 사실을 전달받을 수 있는 시스템만큼 중요하죠.

MSV 소셜 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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