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늬레터입니다🫶
제멋대로 떠났다가 제멋대로 돌아와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는 게 순서겠죠. 하지만 때로는 순서를 지키는 것이 너무 형식적이고 면피처럼 보여서 주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면 더 조심스럽게 에둘러서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며 편지의 시작을 오래 망설였어요.
하지만 역시 원하는 것이 있을 땐 조금 뻔뻔해지는 것이 좋겠지요? 저는 여러분의 용서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저를 믿으라는 설익은 허세보다는 제게 가져갈 수 있는 유익한 것들을 골라 가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년 전의 편지에 서로에게 실망하길 두려워하지 말자고 했었죠. '그동안 감사했다'라는 냉정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정말 후련했습니다. 지나간 일을 미화시키지 않는 성격이라 정말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늬레터를 쓰는 시간이 그리워졌습니다. 힘들었던 순간들 서러웠던 기억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던 생채기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데도, 그 고통과 함께 왔던 보람과 사랑의 순간들이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더 이상 '편지를 쓰는 사람'이라고 저를 설명할 수 없어서 울적해졌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커졌습니다. 실망시켰다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도 서로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삼 개월의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크고 작은 만남과 이별을 했습니다. 단편 영화 한 편을 찍었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카메라를 샀고, 영화제에서 단기 스태프로 일을 했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실컷 웃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잠깐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편지를 보내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 이 에피소드를 편지로 써야 하는데!' 했다가, '맞다. 이젠 편지 보낼 수 없지.' 하며 금세 쓸쓸하게 돌아서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했습니다. 그 사이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마땅한 계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할 때, 무늬책방의 손님으로 연을 맺었던 루아 님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또 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어요. 일하는 중이라 너무 짧게 만나서 아쉬움이 컸어요. 정말 운명이란 게 있는 건지, 딱 그날 무늬책방에 입고했던 <무등산수박등>의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지인분께 무늬레터를 소개했었는데 그분이 만드는 잡지에 저의 글을 싣고 싶어 하신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새벽에 수락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 밤, 무늬레터를 통해 연결되었던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최근에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다시 읽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시 중에 '사랑의 전문가'라는 시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