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한승원(85) 작가가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앞에서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아버지 한 작가는 딸이 당장은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딸에게) 창비, 문학동네, 문지 셋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출판사에서 장소를 마련해 기자회견을 하라고 했는데 (딸이)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더니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더라"고 말했습니다.

딸 한강 작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고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아버지가 전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이로 인한 죽음 앞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의 즐거움을 얘기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제주 4·3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아픈 현대사를 문학으로 위로하는 작품을 써온 작가로서의 고민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낸 출판사 3곳도 오는 15일 기자회견을 준비했지만, 한 작가는 꺼리고 있다고 합니다. 

노벨문학상에 온 나라가 들썩이지만 정작 수상자는 수상 소감마저 절제하는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 작가와 교류가 많은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한강답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작가가 기자회견은 꺼리고 있지만, 노벨위원회 측이 어제(10일) 수상자 발표 직후에 전화 인터뷰를 한 내용은 공개됐습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약 7분 동안 진행됐는데요, 한 작가는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놀랐다(surprised)"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뜻밖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수상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한 편안한 하루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밤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축하할 것"이라고 차분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이후 국내 언론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데요, 정돈된 생각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쾌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번역의 쾌거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한강 작가의 시적인 문장들은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질 높은 번역으로 이런 언어적 장애물을 뛰어넘었습니다.

첫발은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이었고,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숨은 주역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한국 문학 번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만나 작품성을 알아보고 번역은 물론 출판사 접촉부터, 홍보까지 도맡았습니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단 5년 만인 2015년 1월, 영국에서 '채식주의자'의 영어판을 처음 펴냈고 1년 뒤에는 작가와 함께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현재 민간에서는 대산문화재단이, 정부 쪽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이 수십 년 전부터 한국문학의 번역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만 해도 번역원의 지원으로 영어, 불어 등 28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총 76종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한국 문학이 외국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문학상에서의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려면 번역을 지원하는 체계가 더 큰 안목에서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