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내밀한 우정" 박명인
발행일자: 2022-07-29 
Vol. no 15 

루소의 내밀한 우정

(Cimon and Pero)

 

by 박명인(한국미학연구소장, 아티파이 고문)


우정 또는 친구라는 개념을 놓고 회자(膾炙)되고 있는 말이 많다. 그러나 과연 친구란 무엇이며 우정이란 무엇인가. 지난 번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기고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을 지음(知音,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과연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지난 번 올린 뒤러와 프란츠의 우정도 마찬가지겠지만 역사적으로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어서 마음이 훈훈해 진다.


   이번에는 루소와 밀레의 우정에 담긴 이야기를 올린다.
   루소와 밀레는 프랑스 동쪽 센 에 마른(Seine et Marne) 데파르트망의 작은 도시 바르비종(Barbizon)의 대표적인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 풍경화가이다. 루소는 1834년 살롱전에 출품한 《콩피에뉴의 숲》, 《벌목된 숲의 가장자리(Lisiere d'un bois coupe, foret de Compiegne, 1834년경)》를 오를레앙 공작 페르디낭 필리프(Ferdinand-Philippe d'Orleans, 1810~1842)에게 팔리는 등 일찍부터 솜씨 좋은 풍경화가로 인정받았다. 루소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숨쉬는 자연의 생명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면서 바르비종에서 근대 외광파(外光派)의 기초를 닦았다. 후기인상파와 비교하면 훨씬 어둡고 네덜란드 풍경화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그를 포함한 바르비종파의 자연에 대한 개방적 태도는 회화사상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밀레는 살롱전에 수차 낙선하였고, 1840년 초상화 한 점이 당선되어 초상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루소와는 달리 로코코풍의 목가적인 풍경화와 누드를 그렸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내마저 결핵으로 사망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하루는 루소가 밀레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다.
   “여보게, 드디어 자네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그림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
   밀레는 친구 데오도르 루소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밀레는 그림을 팔아 본적이 별로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었다.
   “여보게 내가 화랑에 자네 그림을 소개했더니 적극적으로 구입 의사를 밝히더군. 이것 보게, 나더러 그림을 골라 달라고 선금을 맡기더라니까.”
   루소는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 주었다.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 줄이었다. 희망이 움텄다. 화가는 화랑에서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 줄 때처럼 기쁠 때가 없다. 작품을 인정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데오도르 루소 & 장 프랑수아 밀레 청동 장식판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밀레도 화단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된 밀레는 친구 루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루소가 화랑의 부탁이라면서 사간 그 그림이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가난에 찌들려 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해 친구 밀레의 속마음을 알고 그가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고 화랑에서 사 준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밀레는 그제서 친구 루소의 깊은 우정과 배려의 마음을 알고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가난과 고난의 역경을 이겨낸 밀레는 말년에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렸으며, 1868년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 중 《씨 뿌리는 사람》(1850),《이삭 줍는 사람들》(1857), 《걸음마》(1858), 《만종》(1859), 등은 발표 당시부터 주목을 끌었다. 말년의 가작 《봄》에는 빛의 효과에 있어서 인상파를 예고하였다. 그 밖에 《우유 짜는 여인》, 《저녁기도》, 《실 잣는 여인》, 《괭이 가진 남자》, 《젊은 어머니와 아기》 등이 있고, 소묘와 판화 등의 작품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그의 그림을 눈 여겨 보았던 것은 평론가들이 아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루소였다.

씨뿌리는 사람(The Sower), 1850,  밀레(Jean-François Mille)
이삭줍는 사람들(The Gleaners), 1857,  밀레(Jean-François Millet)
  그러한 밀레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밀레는 사회 비판적인 철학을 가진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평소 철학과는 달리 만종이나 이삭줍기 등의 대표작들은 평화로운 외견상의 내용과는 달리, 그림의 배경은 역설적인 경우가 눈에 띈다. 《이삭 줍는 여인들》의 이삭을 줍는 여인들은 수확이 끝난 후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최 하층민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수확물은 원칙적으로 지주의 것이지만, 떨어진 이삭은 예외였기 때문이다. 또한 여인들의 모자와 옷의 색은 파랑, 빨강, 흰색의 프랑스 혁명의 깃발 색을 상징하며, 멀리서 수확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했다. 농부의 모습을 주로 그린 것을 두고 보수 우파는 ‘계층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나는 사회주의라는 사상도 정치도 관심이 없는 화가일 뿐이다.”
   밀레는 정치적 논란을 일축했다. 루소와 밀레는 우정이 밑거름이 되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우정은 아름다운 행복의 원천이다.
   아무튼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두 화가의 우정은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요즘은 너무 척박해져서 실명이든 익명이든 그림을 사주는 친구는 보기 드물다. 하물며 아주 작은 물건도 사주지 않는 세태이다. 심지어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어도 쌀 한 됫박도 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과거는, 지나간 시간들은 현재에 많은 삶의 교훈을 남기고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떤 이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한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기를 바란다. 굳이 덧 붙인다면 어제보고 오늘 또 보아도 십 년 만에 본듯 더없이 반가운 친구.   그런 친구 하나 있으면 인생은 절로 살 맛이 나고 즐겁고 행복을 누리는 삶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좋은 글이라는 생각보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이런 친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그 만큼 얼어붙어 있다. 우리는 뒤러와 프란츠의 이야기나 루소와 밀레의 이야기를 흘려 보내지 않고 이 시대에 진정한 지음이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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