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를 포기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는 기분이다. 한동안 커피 대신 마음 안정이 된다는 허브티를 마시다가 너무 착한 기분이라 최근엔 디카페인 커피로 바꿨다. 아침이면 물을 끓이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켠다. 몸의 마디마디가 꽉 막힌 듯 찌뿌드드하다. 모카포트에 수슈슉 하고 올라오는 커피를 보는게 그나마 찾은 즐거움이다.

모든 것에 심드렁해졌다. 아무래도 번아웃인듯하다. 작년에 쓴 [단련일기] 글을 다시 보니 일에 지칠 땐 ‘초록’을 찾았었다. 산에 가거나 채소를 먹거나.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지치면  루꼴라를 사서 먹었다. 톡 쏘는 매운 잎을 씹고 있으면 잠시 마음이 청량해졌다.

작년 새해에 쓴 글을 보니 기대에 찬 다짐에 흠칫 놀랐다. 연말이면 방도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짰는데 이번엔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방은 조금 치웠으나 치우다 지쳐서 책과 파일 뭉치가 바닥에 아직 있다. 올해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길 바란다.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에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엔 갑갑하면 무작정 불광천에 달리러 나갔는데, 겨울이라 그러지도 못한다.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동네 헬스장에 가서 등록해버렸다. 단 10분이라도 달리면 나아질 거 같아서. 새로운 환경에 있으니 뻘쭘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러닝머신의 START 버튼을 누른다. 헬스장이 고층에 있어 해 질 녙에 창밖으로 노을이 시원하게 보여서 맘에 든다. 대신 일몰 시각을 놓치면 운동하러 가기 싫어진다.

무기력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내친김에 번아웃 해소 방법을 적어놔야겠다. 인생은 반복이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언젠가 또 번아웃이 찾아올지 모르니. 오늘의 발버둥을 기록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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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집중의 ‘번아웃에 대처하는 자세’

1.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쉬어도 괜찮다.
2. 시계를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3. 작은 목표를 만들고 크게 칭찬한다.
4. 소설책과 영화를 본다. 다른 세상 구경하기.
5. 팟캐스트(큰일여, 영노자, 비혼세, 밀림의 왕 등등)를 듣는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다. 
6. 허브티를 마신다. (커피와 술을 줄인다. 끊으면 더 좋겠지만)
7.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한다. (루꼴라가 스파이시해서 자극적이고 맛있다.)
8. 운동한다. 귀찮겠지만 생각하지 말고 10분이라도 한다. 
9. 자연과 가까워진다. 역시 귀찮겠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서 걷고 햇볕을 쬔다.
10. 호흡한다. (10부터 거꾸로 세는 수식법 호흡이 도움이 된다.)
11. 전자기기를 멀리한다. 
12. SNS를 하지 않는다.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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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반복일까? 지난 일기장을 들춰보면 그런 듯하다. 올해 하고 싶은 일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재작년에 했던 고민을 작년에도 했다. 이런 내 인생이 지겨워 올해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새해를 맞았다. 

진짜 새해는 설이라고 하던데 올 설은 유난히 길었다. 설 연휴가 월요일에 시작해서 주말을 끼면 실제로 연휴가 꽤 길기도 했지만, 이번 설부터 더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게 되어서 특히 길게 느껴졌다. 설을 한 달 앞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3년 전 추석 즈음 돌아가셔서 이번 설부터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만난 사촌 동생이 아직 어린 동생들을 보며 "이제 명절에 용돈을 못 받겠네요" 라고 말했다.

나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까지 명절이면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 내려갔다. 아빠가 허리를 다쳤을 때를 빼고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평소에 왕래가 없는 데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이라 막상 같은 자리에 있어도 서로 몇 마디 주고받지 않는데 왜 이 먼 길을 달려와서 만나는걸까? 나는 일 년에 두 번뿐인 명절이 너무 자주 오는 것 같다고 불평하면서도 가지 않을 핑계를 찾지 못해서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시고 일 년에 두 번 내 나이만큼 반복했던 일과가 멈췄다. 갑자기 길어진 연휴가 어색해서 명절인 것을 잊은 채 보냈다. 그동안 못 만난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보다 바쁘게 보내느라 정작 설인데도 떡국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철없이 새해를 맞았다. 시골에 가면 어묵과 곤약이 들어간 떡국을 먹었었다. 좀 더 평범한 떡국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글을 쓰다 보니 그리워진다.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인생이 지겹지만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도 살아있기 때문일거다. 나의 어리석음도 타인의 어리석음도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관대해질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2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2022년이다. 20년 동안 나는 무엇을 반복하면서 살아왔을까. 배우고 일하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떠나보내고 결심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에 멈추어서 더는 반복하지 않은 일도 있을 거다. 작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던 일기 쓰기, 책 읽기, 요리 하기, 요가 하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등을 멈추었는데, 올해는 다시 시작해야겠다. 멈추고 시작하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