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이성현 인턴기자가 음반과 소설을 소개합니다😘
🍀살구 싶은 마음이 시작되는 곳 - <자몽살구클럽>, 한로로
“죽고 싶지만(힝 ㅜㅜ) 실은 살구(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발랄해서 더 마음이 아픈 문장이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새 앨범 <자몽살구클럽> 이야긴데요. 이 앨범은 동명의 소설과 함께 출간됐습니다. 고등학생 네 명이 결성한 비밀모임 ‘자몽살구클럽’은 서로를 죽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자살 유예 기간 20일이 주어지고, 다른 부원들은 그 시간 동안 그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한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드는 관계에 관한 상상이죠.
🧵한로로는 데뷔곡 ‘입춘’부터 불안정한 청춘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뮤지션입니다. 이번 앨범을 듣다 보니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가 떠올랐어요. 믿었던 사람은 등을 돌렸고, 낯선 사람에게 이유 없는 미움을 받기도 했죠. 마음을 미국에 두지 못하니까 계속 한국 시각을 확인했고요.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한국에 있던 친구가 해준 말이 있어요. “너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를 하루에 세 가지씩 적고, 보여줘.” 처음에는 행복해야 할 이유를 적는다는 게 무척 어색했는데요. 조금씩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우리도 자몽살구클럽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앨범 수록곡 ‘0+0’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난 널 버리지 않아/너도 같은 생각이지?” 아무것도 없는 나와 또 다른 누군가가 만나 하루를 살아내기도 합니다. 0과 0이 만나면, 그건 더 이상 무(無)가 아닐지도 몰라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가 익숙해진 지금, 우리 곁에도 자몽살구클럽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가사 몇 줄도 소개합니다😋
차갑던 햇살 위태로운 눈물을 닦아주네
원래 이랬던가? 하루만 미뤄내보는 다이빙
- 내일에서 온 티켓
자라나는 저 잡초에 남은 온기 모두 쏟으면 그 누구보다 키 큰 나무 되려나요
아 그치만 나를 찾아오는 감기는 무서워요 하얀 희망은 더 그래요
- 갈림길
검은 눈동자의 사각지대를 찾으러 가자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도 혼나지 않는 파라다이스
앞서가는 너의 머리가 두 볼을 간지럽힐 때 나의 내일이 뛰어오네
- 0+0
🍀조용한 문장으로 고발하는 ‘일상의 폭력’ - <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저자,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집을 읽었습니다. 수록된 세 편의 단편은 모두 여성과 남성 간의 뒤틀린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책의 번역판 제목을 ‘여성혐오(Misogynie)’로 정했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표제작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연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무심하고 폭력적인 남성성을 다루는데요.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몇 차례 자각하지만, 끝내 바뀌지 않습니다. 대신 손쉬운 선택인 ‘폭력’을 택합니다.
클레어 키건 특유의 문체가 돋보였어요. 옮긴 이는 키건의 글을 ‘여백이 많은 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요.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는 문장이 많았어요. 작가의 조용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연인 관계 곳곳에 스며든 폭력성과 불균형이 보입니다. 과장되지 않은 현실이라 더욱 서늘하게 와닿았어요.
처음에는 조용한 문체 탓에 소설이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조용함’이 여운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앞서 지나쳤던 문장들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도 했고요. 마치... 평양냉면 같은 책이었습니다😁 첫 맛은 심심했는데, 괜히 또 찾고 싶은 느낌이요. 키건의 조용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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