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도 익숙한 구분
 Season 6  vol 15. 💡2025.08. 08. ~ 2025.08.14.

점 찍고 돌아온 테토녀와 에겐남
접근금지가 간소해진다면
벡델 테스트 통과한 한국 영화는


입주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플랫팀 김서영 기자입니다. 

이제 아침 저녁에는 조금 시원해진 것 같다가도 낮엔 여전히 더워서 매일 뭔가 속은 느낌이 드네요. 한 서른 밤쯤 속고 나면 가을이 오겠지요? (추석 연휴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 

이번 주 플랫 레터도 시작해 보겠습니다. 

8월30일(토) 줌바 클래스에 아직 신청하지 못 하신 분들은 얼른 🧵신청해 주세요!


입주자님은 ‘테토녀’, ‘에겐남’과 같은 유행어를 들어보셨나요? 아마 이미 익숙해진 표현일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고, 지금은 또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가요? 

아직 테토녀와 에겐남이 낯설 분들을 위해 소개드리자면, ‘테토-’, ‘에겐-’은 요즘 유행하는 밈으로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과 ‘여성성’, ‘남성성’과 같은 사회적 규범을 결합한 용어예요. 테스토스테론이 많으면 주도적이고 힘이 넘치고 ‘직진 성향’이고, 반대로 에스트로겐이 많으면 다정하고 섬세하고 수동적인 성격이라는 표현입니다. 에스트로겐이 많은 에겐녀는 전통적인 여성상, 테스토스테론이 많은 테토남은 전통적인 남성상을 뜻하고 남성이지만 ‘여성스러운’ 에겐남, 여성이지만 ‘남성스러운’ 테토녀가 됩니다.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동안 MBTI, 혈액형, 별자리 같은 것들이 시대를 풍미하며 사람을 분류/분석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는데요. 테토/에겐 구분은 어떻게 보면 더 단순하고 더 극단적인 이분법입니다. 인체의 호르몬을 성격 규정과 연결지었다는 것이 새롭달까요. 

칼럼니스트 이진송은 테토녀와 에겐남이 “그간 숱하게 반복되어온 ‘상남자/천상여자’, ‘선머슴’ , ‘초식남/육식녀’의 도식에서 눈 밑에 점만 찍고 돌아왔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왜 지금 이 구분이 이토록 대중적 호소력을 가지는지를 살펴봤어요. 

저뿐만 아니라 입주자님도 아마 공감하실 대목인데요. 이진송은 이 에겐/테토 구분이 “젠더 정치적으로는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의 자연화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인기를 얻는 이유는 “걔가 테토녀잖아”라는 말의 경제성과 직관성 때문일 것이라고 봤어요.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사회가 변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진송은 “이 유행은 대놓고 ‘남자답다’, ‘여성스럽다’라는 단어를 쓰기는 조심스러워지고, 성별 규범에서 어긋나는 면을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다”고도 언급합니다.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하거나 이를 강화하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현대인의 교양, 그럼에도 실재하는 규범적 여성성과 남성성을 언급하게 되는 2025년의 딜레마를 에토 밈이 구원한 셈”이라고 했어요. 

사실 에겐/테토는 너무 조악한 구분입니다. 호르몬과 사회적 젠더 수행, 개인의 성격을 연결짓는 자체가 비과학적이기도 하고요. 성소수자를 올바로 지칭할 수 없다는 한계도 명확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분이 불편하면서도 익숙하고 그렇더라고요. 

저자는 기존의 성별 규범에서 갈 곳이 없었던 다정한 남성, 적극적인 여성이 "자신을 에겐남과 테토녀로 설명하며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밈이 나름의 긍정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고 언급해요. MBTI를 접목해 설명하자면, ‘T인 여자’도 있다는 것이겠죠. 

입주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주, 혈액형, MBTI, 호르몬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요? 💪


지난 주 플랫레터에는 스토킹 피해를 당하다 살해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겼는데요. 특히 의정부와 울산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검찰이 잠정조치 신청을 받고도 “지속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잠정조치 신청 후 적용까지는 최소 이틀 반에서 2주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행 스토킹처벌법으로는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있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를 요청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소위 ‘피해자 보호명령제’를 도입한다면 피해자가 검찰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보호를 신청할 수 있게 되는데요. 

이 제도는 2021년 스토킹처벌법 제정 때부터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법원 인력 부족, 스토킹 여부 판단 어려움 등의 이유로 도입되지는 못했습니다. 2022년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피해자 보호명령제를 포함한 개정안을 냈으나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반대해 무산됐어요. 이를 두고 법원이 스토킹 범죄의 특성, 즉 친밀한 관계가 깨질 때 훨씬 위험하고 초기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피해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제도 보완을 지시했어요.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에도 피해자 보호명령제가 ‘재추진할 제도’에 포함돼 있고요. 이번에야말로 피해자 보호명령제가 도입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벡델 테스트는 영화 속 성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꼽힙니다.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영화의 성평등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1985년 고안한 세 가지 지수인데요. ①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 나올 것 ②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③이들의 대화 소재나 주제가 남성 캐릭터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 등의 요건으로 구성됩니다.

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한국 영화 10편이 추려졌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공개된 영화 125편 중 10편을 선정해 ‘벡델 초이스 10’을 발표했는데요. DGK는 기존 벡델 테스트에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등을 추가해 총 7가지 항목으로 2020년부터 평가를 해오고 있습니다.

<파과>, <빅토리>, <그녀에게>, <한국이 싫어서>, <검은 수녀들>, <리볼버>, <하이파이브>, <럭키, 아파트>, <딸에 대하여>, <최소한의 선의> 등입니다.

이화정 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는 올해 선정작에 대해 “남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만든 작품이 증가했다. 창작자의 성별과 관계 없이 여성이 매력적인 서사의 중심으로 인정받았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밝혔어요. 더 다양한 여성의 모습, 더 풍부한 여성 서사를 한국 영화에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이번 주에도 이성현 인턴기자가 음반과 소설을 소개합니다😘


🍀살구 싶은 마음이 시작되는 곳 - <자몽살구클럽>, 한로로


“죽고 싶지만(힝 ㅜㅜ) 실은 살구(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발랄해서 더 마음이 아픈 문장이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새 앨범 <자몽살구클럽> 이야긴데요. 이 앨범은 동명의 소설과 함께 출간됐습니다. 고등학생 네 명이 결성한 비밀모임 ‘자몽살구클럽’은 서로를 죽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자살 유예 기간 20일이 주어지고, 다른 부원들은 그 시간 동안 그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한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드는 관계에 관한 상상이죠.


🧵한로로는 데뷔곡 ‘입춘’부터 불안정한 청춘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뮤지션입니다. 이번 앨범을 듣다 보니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가 떠올랐어요. 믿었던 사람은 등을 돌렸고, 낯선 사람에게 이유 없는 미움을 받기도 했죠. 마음을 미국에 두지 못하니까 계속 한국 시각을 확인했고요.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한국에 있던 친구가 해준 말이 있어요. “너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를 하루에 세 가지씩 적고, 보여줘.” 처음에는 행복해야 할 이유를 적는다는 게 무척 어색했는데요. 조금씩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우리도 자몽살구클럽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앨범 수록곡 ‘0+0’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난 널 버리지 않아/너도 같은 생각이지?” 아무것도 없는 나와 또 다른 누군가가 만나 하루를 살아내기도 합니다. 0과 0이 만나면, 그건 더 이상 무(無)가 아닐지도 몰라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가 익숙해진 지금, 우리 곁에도 자몽살구클럽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가사 몇 줄도 소개합니다😋


차갑던 햇살 위태로운 눈물을 닦아주네

원래 이랬던가? 하루만 미뤄내보는 다이빙

- 내일에서 온 티켓


자라나는 저 잡초에 남은 온기 모두 쏟으면 그 누구보다 키 큰 나무 되려나요

아 그치만 나를 찾아오는 감기는 무서워요 하얀 희망은 더 그래요

- 갈림길


검은 눈동자의 사각지대를 찾으러 가자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도 혼나지 않는 파라다이스

앞서가는 너의 머리가 두 볼을 간지럽힐 때 나의 내일이 뛰어오네

- 0+0



🍀조용한 문장으로 고발하는 ‘일상의 폭력’ - <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저자,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집을 읽었습니다. 수록된 세 편의 단편은 모두 여성과 남성 간의 뒤틀린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책의 번역판 제목을 ‘여성혐오(Misogynie)’로 정했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표제작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연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무심하고 폭력적인 남성성을 다루는데요.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몇 차례 자각하지만, 끝내 바뀌지 않습니다. 대신 손쉬운 선택인 ‘폭력’을 택합니다.


클레어 키건 특유의 문체가 돋보였어요. 옮긴 이는 키건의 글을 ‘여백이 많은 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요.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는 문장이 많았어요. 작가의 조용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연인 관계 곳곳에 스며든 폭력성과 불균형이 보입니다. 과장되지 않은 현실이라 더욱 서늘하게 와닿았어요.


처음에는 조용한 문체 탓에 소설이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조용함’이 여운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앞서 지나쳤던 문장들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도 했고요. 마치... 평양냉면 같은 책이었습니다😁 첫 맛은 심심했는데, 괜히 또 찾고 싶은 느낌이요. 키건의 조용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드려요!




👤 신나게 몸을 흔들며 리듬타고 웃고 뛰고 싶어요. 줌바클래스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우리 모두 어렵고 힘든 세상 웃고 춤추며 버텨봐요.

👤 주짓수를 하고 있으면서 이은미 관장님을 멋지게 존경해오던 주짓떼라로서! 플랫 기획이 너무 멋있고, 일정이 안 되어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플랫팀과 참여자들 후기가 공감되고 또 반가웠습니다:)

👀 From.Flat 

📣 플랫팀이 쓴 도서 <헤어지다 죽은 여자들>에 많은 입주자님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도서 증정 이벤트는 마무리됐지만, 앞으로도 입주자 이벤트가 예정돼 있으니 기다려 주세요!


📣 스포츠가 있는 플랫 – 입주자 반상회 ③ 줌바

외워서 추는 춤이 아니다! 마음껏 흔들려도 좋다! 플랫과 함께 줌바를 경험해보실 분들은 아래 링크로 신청 고고~

- 일시: 8월 30일 (토) 오전 11시
- 장소: 7스튜디오 역삼점(서울 강남구 역삼로 310 한솔필리아 지하1층)
🌹8월에도 플랫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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