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특한 사람, 괴짜가 좋다는 말이 아니다. 특이한 취향을 가졌지만 그 취향에 대해 질문을 몇 번 던지다 보면 금세 밑천이 바닥나는 사람도 있다. “그냥요”나 “잘 모르겠어요”로 설명이 끝난다. 특이한 취향을 가졌고 동시에 별생각이 없는 것이다.

3. 독특한 의견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의견의 근거를 제 논리로 설명 못 하고 “유튜브에서 봤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끌리는 게 아니라 무서워진다.

4. 반면, 잡학에도 깊이를 담을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내가 끝내 동의하지 않는 주장이지만 경청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주제를 다양한 맥락에서 검토했고, 한 측면을 추상화하여 전혀 다른 범주에 있는 다른 사건과 유연하게 잇는 능력이 있으며, 메타인지도 확실한 사람들이다. 그런 지성과 주관에 경험까지 더해진 사람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5. 소설가로서 나(=장강명 작가)는 그런 이들을 “콘텐츠가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콘텐츠가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 재미있다. 대화만으로 뭔가를 배운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지만, 잠깐일지라도 덕분에 어떤 정신의 전망대에 올라 새로운 풍경을 즐기는 시원함을 맛본다.

6. (돌이켜보면) 젊었을 때는 ‘생각의 깊이’보다 ‘속도’에, ‘완결성’보다 ‘경쾌함’에 끌렸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서는) 순발력이나 발랄함에 지적인 흥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7. (특히) 젊을 때 반짝반짝해 보였던 또래들을 모처럼 다시 만났는데 오가는 이야기들이 얄팍하고 껄렁해서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최악은 “우리 그때 재미있었지” 하면서 옛날얘기를 되풀이하는 부류다.

8. 내 관찰로는 영리한 청년이었다가 내용물 흐릿한 중년이 된 친구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지 않고 타고난 영리함과 순발력으로 30대를 버틴 것이다.

9. (바꿔 말하면) 정신의 어떤 부분을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것이다. 그 훈련은 근력 운동과 흡사하다. 어린아이의 몸을 보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20대도 어느 정도 그렇다. 하지만 40대는 체형을 보면 평소에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티가 난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운동 부족이 몸의 병이 되어 돌아온다.

10.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독서 부족이 노년에 마음의 병을 일으킬 거라 믿는다. 삶이 얄팍해지는.

11.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자. 주름 제거 시술보다 (책을 읽는 게 더) 시급하다. 콘텐츠 부재도 주름만큼 (눈에) 훤히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