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나 뉴스레터 vol.5] 길을 찾는 대신, 우리만의 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쿨한나입니다.
새해 인사를 나누기 전, 지난 2025년을 천천히 복기해 보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만큼 제 삶에 큰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거든요.
오늘은 그간 릴스나 짧은 글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제 속마음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한 번 꺼내 보려 합니다. 조금 긴 글이 되겠지만,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내 안의 괴물, '욕심'이라는 이름의 가면
작년 이맘때가 기억나네요. 혜린이가 12살, 5학년이 되던 시기였죠. 그전까지 독서와 집공부로 내공을 잘 쌓아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달릴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제 마음속에서 묘한 욕심이 고개를 들더라고요.
잘하는 아이를 압도적으로 잘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안정 장치'라고 믿었습니다. "혜린아, 우리 좀 더 체계적으로 해보자." 아이와 긴 대화 끝에 본격적인 입시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학원을 오고 가는 시간이나 전체 커리큘럼에 맞춰야 하는 일반 학원 수업은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래서 대치동 화상 수업을 1:1로 연결해 수학과 영어를 시작했고, 일본어와 영어 회화까지 화상 수업으로 일과를 채워 넣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의 학습 능력을 칭찬했습니다. 독서로 다져진 문해력이 학습력으로 치환되는 그 순간을 보며, 저는 제가 '정답'을 쓰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무너져가는 아이, 그리고 마주한 '거짓말'
하지만 그 정답은 3~4개월 만에 오답으로 판명 났습니다.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거든요.
성격이 날카로워진 건 물론이고, 어느 날부터 아이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하지 않았고, 책상 앞에 앉아는 있는데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혜린이의 수업은 하루 2개 정도였습니다. 숙제가 많긴 했어도 시간적 여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죠. 그런데도 아이는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널 뒷바라지했는데, 네가 감히 나한테 거짓말을 해?"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며, 그동안 쌓아온 관계를 볼모로 삼아 "조금만 참고 견뎌보자"며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멍하게 천장을 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나를 잠 못 들게 한 처절한 질문들
그날부터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말 무섭고 아픈 질문들이었습니다.
도대체 너는 왜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키는 거니? 5학년 아이가 중학생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정말 혜린이의 인생에 필수적인 거야? 좋은 대학? 그래, 좋은 대학 가면 그다음엔? 대기업? 전문직?
지금 네 눈으로 세상을 봐. AI가 세상을 뒤덮고 있고, 우리가 알던 '안정적인 직장'의 개념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잖아. 신규 채용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10년 뒤에도 대학 간판이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을까?
변화하는 세상을 너는 정말 읽고 있긴 한 거야? 아니면 단지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무서운 '너의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니니? 만약 네가 틀린 방향으로 아이를 끌고 가다가 아이가 20살이 되었을 때, 그때의 망가진 관계와 허비된 시간을 네가 어떻게 책임질 건데?
작가가 꿈인 아이에게, 지금 이 문제집 풀이가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더 쓸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지금 이 아이가 하는 공부가 미래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역량을 키워주고 있기는 한 걸까?
결국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레이스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게 아니라, 단지 부모인 저의 불안이 만들어낸 거대한 허상이었다는 사실을요.
잣대를 꺾고, 아이의 길을 인정하다
저는 아이에게 사과했습니다.
"미안해, 혜린아. 엄마의 생각이 너무 짧았어. 너라는 사람을 내 좁은 잣대로 판단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려고 널 밀어붙였어. 이제 우리, 엄마의 기준이 아니라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함께 고민하고 경험하며 성장하자."
그날 이후 우리는 변했습니다. 정해진 트랙에서 내려와 우리만의 서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저부터 솔직하게 저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시작했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많은 분 덕분에 저 또한 성장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혜린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그동안의 독서 가치를 나누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어느덧 2만 크리에이터가 되었고, "혜린이를 보며 힘을 얻는다", "아이가 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감사한 댓글과 메시지가 쏟아졌습니다.
많은 아이로부터 고민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만큼 어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할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공부도 적당히, 꿈도 적당히,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커온 아이들이 20대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 이제 뭐 해야 하지?"라며 갑자기 사회로 던져진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나만의 경험과 서사, 나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살아남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길이 맞을까 불안해하는 대신, 우리만의 길을 직접 만들어가기로 했으니까요. 처음부터 정해진 길은 없으니, 우리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글이 길고 무거워졌네요.
가볍고 따뜻하게 쓰고 싶었는데 제 진심이 앞섰나 봅니다. ^^;
다음 주에는 정말로 가볍고 따뜻한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