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XC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영화라고요?
"서 : 시리아의 비가라는 영화에서 시작됐어요. 시리아 내전의 참혹한 피해를 알렸던 다큐멘터리에요. NXC가 영화를 수입했어요. 이 영화를 봤던 김정주님이 수입을 주도했어요. 영화광이셨기 때문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던 거예요. '아무도 시리아의 비극 같은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지 않을텐데, 우리가 수입해서 전쟁의 참상을 알려야 한다'고 하셨다네요.
그래서 채용공고가 떴어요. 제작사와 소통을 위해 불어가 가능해야 하고, 영상과 영화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한대요. 제가 프랑스어를 조금 쓸 줄 알았고, 한예종 영상원에서 단기 과정을 수료해서 영화관련 지식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특이했던 지원요건이었는데... 지원서를 냈더니 다음날 정주님한테 연락왔어요. '밥이나 먹읍시다'라고요. 그렇게 NXC에서 일하게 됐어요."
"임 : 저는 래디쉬의 전신인 바이라인에서 일했던 시절 김정주 대표님을 알게됐어요. 코넬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가 영국 옥스퍼드로 일종의 교환학생으로 갔어요. 그래서 이승윤 대표를 알게됐고, 승윤형이 바이라인을 창업할 때 초기에 함께 하게 됐죠. 그 이후에서야 승윤형이 먼저 알고 있었던 정주님을 알게 됐어요."
-바이라인을 중간에 나오셨는데도 인연이 이어졌군요.
"임 : 바이라인이 래디쉬가 되면서 나왔어요. 래디쉬가 지금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5000억원에 팔린 웹소설 플랫폼이었지만 초기엔 작은 저널리즘 플랫폼이었거든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도 저널리즘이었고요. '1명의 기자에게 든든한 1000명의 독자' 이 가설을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1000명이 물적으로 후원을 해준다면 더 다양한 저널리즘 시도가 이어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회사가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웹소설로 피벗을 하게 됐어요. 그 지점에서 승윤형과 부딪혔고, 내부에서도 많이 싸웠죠. 결국 제가 회사를 나왔어요. 그렇게 방황을 잠시 하다 직접 창업을 하려고 알아보기도 했어요. 그때 정주님한테 메일이 왔어요. '지금 오기로만 창업부터 하면 망한다'고, 정주님이 NXC에 와서 몇년만 일을 하다 떠나라고요. 그 다음에 나가서 창업하라고요. 그렇게 NXC로 갔어요. 내부의 회사 설립과 투자 검토 등의 일을 했죠."
-그리고 사내연애였나요.
"임 : 네. 회사에서 눈이 맞았거든요. 희경님과 사귀기로 한 날, 정주님한테 메일을 썼어요. 저희 이렇게 사내연애 하겠다고요. 말해야할 것 같았고... 거짓말은 못 하겠더라고요. 답장은.. 대충 'ㅎㅎ'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2018년 결혼을 했고, 정주님이 주례를 봐주셨고요. 결혼 후에도 미국올 때마다 자주 만났어요. 근처에 멕시칸 타코집 맛있는 곳이 있었는데, 늘 저보고 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한데 '임대표한테 언제 비싼 것 얻어먹을 수 있을까'하고 놀리곤 했죠."
"서 : 창업하고 나서도 정주님한테 전화를 자주 했어요. 특히 둘이 싸우고 나면 꼭 제가 전화를 했죠. 저는 사업 이야기는 잘 안 했어요. 저희 아버지와 동갑이셨거든요. 개인적인 일을 상담하고 이야기했어요. 부부싸움에 대한 정주님의 솔루션은 '집을 잠시 떠나봐요'라는 것이었어요. 한 한달쯤 집에 안 들어가면 남편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요. 정주님의 대답은 엉뚱하면서도 핵심을 찌를 때가 있어요. 조언을 들으면 속이 시원해진다고 해야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