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잘 보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회원의 인사말에 의욕이 솟아 부지런히 편지를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시시콜콜한 활동가 일상과 함께 에너지 절약방법을 안내하기도 하고, 밀양 송전탑 건설의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신문광고주가 되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백두대간 행사에 쓰겠다며 호랑이 사진을 구해달라는 엉뚱한 부탁을 하기도 했었어요. 또 회원들과 생물종 조사를 했던 홍천의 골프장 예정지를 결국 지켜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동계올림픽을 위해 위해 가리왕산에서 베어진 나무토막에 초를 켜고 가장 슬픈 크리스마스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요.
울고, 웃으며 쓴 이메일에 하나둘 답장이 늘어났습니다. 함께 힘내자, 애써줘서 고맙다, 회원이라서 자랑스럽다... 회원관계 담당을 갓 맡은 활동가에게는 숫자로만 존재하던 회원을 ‘우리'라는 실체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우리 모두의 녹색연합’이라는 말로 편지를 끝맺고 있었지요. 소식을 전할때마다 이메일 너머 강력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활동의 크고 작은 기쁨이 읽는 이의 자랑으로, 또 그가 느낄 안타까움이 결속된 슬픔으로 제게도 전해졌지요. 만나지 않아도, 제각각 있어도 녹색연합으로 모인 우리는 이미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10년 전 밀양 주민들과 송전탑 건설 반대 활동을 하던 때, 산등성이 새까만 밤이 문득 떠오릅니다. 눈을 붙인 사이 포크레인이 밀고 들어올까봐 밤에도 두사람씩 조를 짜 불침번을 서며 서로를 의지한 채 어둠의 공포를 견뎠지요. 길고 컴컴한 밤은 그곳에서 처음 만난 모두를 ‘우리'가 되게 했고, 함께 지켜내자는 다짐은 연대였고, 믿음이었으며 동시대인으로서의 염치였습니다.
밀양의 긴 싸움에서 어르신 두 분의 죽음과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으로 몰아친 폭력에 맨 몸으로 맞선 저항을 목도했고, 시비와 소송으로 마을 공동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결국 송전탑은 들어섰고, 상처만 남은 싸움에 마음이 쉬이 추슬러지지 않았어요. 그 때 오래된 회원과의 통화를 잊지 못합니다. 그 분은 녹색연합의 송전탑 건설 반대 입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며 덧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녹색연합이 해야 할 역할을 지지하기 때문에 후원합니다.” 눈물이 핑 돌아 제 목소리가 흔들렸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기꺼이 ‘우리’가 되겠다는 말은 그 어떤 응원보다 강력한 재촉이었습니다.
힘들고 절망스러운 때마다 밀양의 그 새까만 긴긴밤을 떠올립니다. 공포를 견딘 힘은 새벽의 빛이 아니라 꼭 잡은 따뜻한 손이었습니다. 지난 33년, 돌려세워야 할 현장에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힘은 노련한 활동가 한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제 길을 걷는 녹색연합 손을 잡아주십시오. 기꺼운 ‘우리'가 되어 주십시오. 그 따뜻한 힘으로 우리 모두의 숲과 바다와 강을 기어이 지켜낼 것이고, 가장 연약한 생명의 편에 끝까지 서겠습니다. 이미 후원회원이시라면 가까운 분들에게 녹색연합 회원을 권유해주십시오. 자부심으로 답하겠습니다.
녹색연합의 역전을 위한 기록은 당신과 함께 쓰겠습니다. 5월, 숲의 찬란한 기운을 듬뿍 담아 보냅니다.
우리 모두의 녹색연합 활동가 윤소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