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질병, 이갈이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구현모입니다.
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용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갈이용 마우스피스입니다. 정식으로는 이갈이 스플린트라고 불리는데요, 저의 이를 대신해서 갈려지는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저는 10년 동안 여행을 가도, 출장을 가도,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말그대로 매일 밤 이걸 끼고 자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잘 수가 없습니다. 사실 자긴 자는데, 다음 날 턱이 얼얼합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갈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는데요, 이갈이는 삶의 하방을 조용히, 꾸준히, 확실하게 훼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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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갈이와의 만남
2. 이갈이가 파괴하는 것들
3. 이기지 말고 안고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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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를 가면 다 같이 섞여 자는 방에서 새벽에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소리가 입에서 나는 것을 모두가 듣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친구들이 "너 이 안 깨져?"라고 묻는데, 이 질문을 수십 번은 들었을 것 같네요.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저와 함께 자는 사람은 예외 없이 한 번은 이갈이 소리 때문에 깹니다. 재밌는 건 정작 저는 개운하게 잘 잔다는 겁니다.
문제는 수면의 퀄리티가 아니었습니다. 2013년 갑자기 턱이 아프기 시작했는데요. 밥 먹을 때, 하품할 때, 말할 때도 턱관절이 욱신거리며 아팠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면 "딱" 소리가 날 정도로 턱이 고장 났는데, 원인을 생각해보니 이갈이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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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이는 사실 턱관절 장애를 유발하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턱관절 장애의 정식 명칭은 측두하악장애(TMD, Temporomandibular joint disorders)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TMD로 진단받은 사람은 2022년 약 46만 명으로 5년 사이 21% 증가했습니다. 연평균 4%씩 꾸준히 느는 중입니다. 주목할 건 연령대인데요, 20~30대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스트레스 많은 세대가 이를 가는 세대이기도 한 겁니다.
턱관절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서는 전문 치과에 갔습니다. 교합 검사를 받고, 본을 뜨고, 맞춤 마우스피스를 만들었고, 그때부터 벌써 13년이나 매일 밤 끼고 자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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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를 가는 이유는 의외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학계에서 꼽는 요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관련 메타분석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수면 이갈이의 상관계수는 0.3~0.4 수준입니다. 유의미하긴 하지만 '이갈이의 원인은 스트레스 때문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 겁니다'가 대부분의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답입니다. 저 역시 모든 병원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으니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참 답답한 부분입니다. 고혈압처럼 약 먹으면 조절되는 질환이 아니라 평생 관리하는 병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면 이갈이 자체는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경험하는 생리적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대한수면학회 기준, 성인의 약 8~16%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수면 이갈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이를 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 가볍게 오물오물하는 수준인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저처럼 물리적으로 이가 갈려 나갈 정도로, 마우스피스가 닳아 없어지거나 부러질 정도로 세게 하는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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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이를 그냥 '이 가는 습관' 정도로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그렇게 가볍게 보면 안 되는 질환입니다. 심한 이갈이가 장기간 지속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망가집니다.
치아 손상이 가장 먼저 옵니다. 이갈이를 할 때 치아 교합면에 가해지는 힘은 정상 저작력의 3~10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음식을 씹을 때 어금니에 가해지는 힘이 약 70kg이라면, 이갈이를 할 때는 최대 700kg까지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 힘이 매일 밤, 수시간 동안 치아에 가해집니다. 에나멜이 닳는 정도를 넘어서 치아에 미세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이 쌓이면 치아가 깨집니다. 크라운을 씌운 치아도 예외 없이 이갈이로 인해 보철물이 깨지거나 탈락합니다. 저는 이갈이 스플린트를 무려 2개나 박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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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 지인이 왜 이렇게 갈렸냐고 놀라더라고요 © 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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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마모도 심각합니다. 이갈이가 심한 사람은 치아 교합 면이 평평하게 닳습니다. 네, 제 치아입니다. 제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스토리에 올리니까 치과의사인 지인이 왜 이렇게 이가 갈렸냐고 답장을 주더라고요. 원래 어금니에는 산과 골짜기 같은 요철이 있어서 음식을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합니다. 이갈이로 표면이 갈려 나가 평평해지면 음식을 씹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치아의 기능이 퇴화해 소화에도 영향이 가는 것입니다.
잇몸 퇴축도 따라옵니다. 과도한 교합력이 반복되면 치아를 잡고 있는 치주 조직에 스트레스가 누적됩니다. 잇몸이 내려가고 치아 뿌리가 노출돼 이 시림을 겪게 됩니다. 찬물 마시면 이가 시린 분 중에 이갈이가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턱관절 장애(TMD)는 제가 직접 겪은 것입니다. 턱을 벌릴 때 딱딱 소리가 나고 심하면 입을 크게 못 벌립니다. 턱관절 디스크가 제 위치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더 심해지면 턱이 잠기는 현상, 이른바 개구장애가 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입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물리치료만으로는 안 되고 시술이 필요해집니다.
두통과 이통. 교근과 측두근이 과도하게 긴장하면 긴장형 두통이 만성화됩니다. 매일 아침 머리가 무겁고, 관자놀이가 뻐근합니다. 귀 안쪽이 아픈 것 같은 느낌도 교근 긴장에서 오는 연관통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비인후과를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귀가 아프시다면, 이갈이를 의심해보실 만합니다.
안면 비대칭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한쪽으로만 이를 갈거나 한쪽 교근이 더 발달하면 얼굴이 비대칭으로 변합니다. 사각턱이 되는 겁니다. 미용 목적으로 교근 보톡스를 맞는 분이 많은데, 사실 이갈이 환자에게는 미용이 아니라 치료입니다.
가벼운 이갈이는 괜찮습니다. 근데 심한 이갈이는 이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됩니다. 조용히, 천천히, 확실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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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이에 대한 대응은 사실 몇 가지 없습니다.
마우스피스가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치과에서 본을 뜨고 맞춤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갈이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치아의 이갈이 운동은 그대로 두고, 이가 갈리지 않게 하는 원리로, 치아 대신 마우스피스가 갈리기 때문에 완전한 소모품입니다. 저는 대략 8개월에서 1년 사이에 하나씩 갈아 치우는데요, 마우스피스 표면이 패여서 울퉁불퉁해지면 새로 만듭니다.
약국이나 인터넷 등에서 파는 기성품 마우스피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추천해 드리지 않는 이유는, 교합이 안 맞으면 오히려 턱관절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과에서 맞춤으로 만드는 게 답입니다.
마우스피스도 박살 낼 정도로 이갈이가 심했던 저는 보톡스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3개월도 안 돼서 마우스피스가 뚫리는 것을 보고 교근 보톡스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교근은 턱 양쪽에 붙어 있는 씹기 근육입니다. 이를 악물면 볼록 튀어나오는 근육인 교근은 대략 세 덩어리가 붙어 있는 구조인데, 보톡스는 그중 가장 큰 덩어리 하나를 약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턱에 들어가는 힘 자체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대략 1년에 2번, 6개월 간격으로 맞습니다.
효과는 확실합니다. 맞고 나면 2~3주 후부터 이갈이 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마우스피스 닳는 속도가 확 느려지고 턱도 덜 아픕니다. 맘 같아서는 교근 세 덩어리를 다 죽이고 싶습니다. 근데 그러면 밥을 못 씹는다고 하더라고요.
찜질. 흔히들 이야기하는 방법입니다. 따뜻한 수건을 턱에 올려놓으면 기분은 좋습니다. 뭉친 근육이 좀 풀리는 느낌도 납니다. 근데 찜질은 근육통 완화에 도움이 될지언정, 이갈이의 동력을 제공하는 교근을 근본적으로 완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턱이 아플 때 당장의 통증을 줄여주는 응급처치 수준입니다. 이갈이를 멈추게 하진 못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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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이를 세게 하면 턱관절이 불편해집니다. 턱관절이 불편하면 자연스레 목 근육도 뭉칩니다. 목이 뭉치면 두통이 옵니다. 두통이 오면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이갈이 하나가 턱관절 → 목 → 두통 → 피로 → 집중력 하락까지 연쇄적인 도미노 구조를 만듭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바닥인 날이 반복되면 그게 그냥 내 체질인 줄 아는데요, 근데 알고 보면 이갈이가 원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옆 사람도 고통받습니다. 동거인에게 미안한 수면 질환 1위가 코골이라면, 2위는 확실히 이갈이입니다. 코골이는 그래도 백색소음처럼 느끼는 분이 있다는데, 이갈이는 본능적으로 불쾌합니다. 칠판 긁는 소리의 변종으로, 같이 자는 사람의 수면의 질까지 떨어뜨립니다. 이갈이는 나만의 문제를 넘어 나와 내 주변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이갈이는 사실 치료라는 개념이 없고 제대로 진료받기도 어렵습니다.
첫째, 당장 안 죽습니다. 이갈이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턱이 좀 아프다, 이가 좀 시리다, 이 정도로 넘깁니다. 근데 이게 5년, 10년 쌓이면 이가 깨지고, 치아 교합이 틀어지고, 보철이 필요해집니다. 그때 가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10대부터 이를 갈았는데 2013년이 되어서야 병원에 갔습니다. 거의 10년을 방치하고 통증이 와서야 움직였습니다. 대부분 아프기 전에는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둘째, 이갈이 전문 치과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치과 선생님이 해줄 일도 몇 가지 없습니다. 치과에 가도 "이갈이가 있으시네요, 마우스피스 해드릴까요?" 수준입니다. 적극적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체계적 관리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관리 받으려면 턱관절 전문 치과를 따로 찾아야 합니다. 근데 그걸 찾아서 가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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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을 이갈이와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기려고 했습니다. 고치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면 낫겠지, 운동을 하면 낫겠지, 좋은 베개를 쓰면 낫겠지. 수면 자세를 바꿔보고, 명상 앱도 깔아보고, 마그네슘도 먹어봤습니다. 그런데 이갈이는 뭘 해도 안 낫더라고요.
어느 순간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갈이를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이 틀렸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원인도 모르는데 이기라니, 근본 치료도 없는데 극복하라니, 애초에 승패를 겨루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이기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것. 싸우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것. 매일 밤 마우스피스를 끼는 건 패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공존의 루틴입니다. 6개월마다 보톡스를 맞는 것도 굴복이 아닌 질병과의 협상입니다. "너는 갈아라. 대신 내 이 말고 이걸 갈아라." 이게 13년째 제가 이갈이와 맺고 있는 계약입니다.
이건 이갈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성 비염을 극복했다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아토피를 완치했다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허리 디스크가 사라졌다는 사람은요? 우리는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우울증을 이겨내라, 불면증을 이겨내라, 만성 통증을 이겨내라. 근데 이길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려고 하면 자책만 남습니다. 왜 나는 못 이기지? 왜 나는 여전히 이러지? 이 자책이 질환보다 더 사람을 갉아먹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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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지 마십시오. 안고 가십시오. 좋든 싫든 함께 가져가되, 지속 가능하게. 질병을 이긴 사람은 없습니다. 질병과 잘 사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생활 속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질환들이 있습니다. 코골이, 이갈이, 만성 비염, 손목터널증후군, 거북목. 당장 죽지 않으니까 미룹니다. "좀 불편하지만 살 수 있잖아." 살 수 있습지만, 삶의 질이 조금씩, 매일, 확실하게 깎이지 않나요.
행복은 상방에서 오지 않습니다. 연봉이 500만 원 오른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라고 쓰고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와요) 승진한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근데 매일 밤 턱이 아프면 확실히 불행해집니다. 매일 아침 두통이 있으면 확실히 피곤합니다. 하방이 무너지면 상방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밤 마우스피스를 끼고 잡니다. 1년에 두 번 보톡스를 맞습니다. 이갈이는 낫지 않았습니다. 13년째 여전히 갑니다. 근데 이기려 하지 않고 안고 가기로 한 그 순간부터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턱이 안 아프고, 이가 안 깨지고, 옆 사람이 덜 고통받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갖고 있는 질환이 있다면 이기려 하지 마시고, 대신 늦지 않게 관리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하방을 지키는 게 진짜입니다. 행복은 위에서 오지 않습니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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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ENS(이센스) Live] No Boss | “나는 아랑곳하지 않아 아랑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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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자기 사상과 이야기를 조용히 읊조리는 래퍼는 참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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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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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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