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막쓰, 나는 고막사람을 초고처럼 대하는 당신의 접근 방식이 너무나 좋다고 생각한다.
 
016_부내와 뽕끼 사이.
한아임 to 오막
2023년 3월
 
오막쓰,

나는 고막사람을 초고처럼 대하는 당신의 접근 방식이 너무나 좋다고 생각한다. 약간 의식의 흐름 같은 것…!

고막사람은 고막을 두드리는 것들에 대한 뉴스레터인데, 여기다 자꾸 당신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 것 같아 좀 남사스러운가 싶을 때도 있지만, 애초에 당신의 이런 면 때문에 나는 고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했던 거다. 한마디로, 당신이 좋지 않았으면 당신더러 이거 같이 하자고 말도 안 했을 거란 얘기다.

당신의 ‘의식의 흐름’은 꽤 두서 있다. 당신과 같은 창작 방식을 쓰면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올 수가 없다. (게슈탈트 붕괴: 뭔가에 너무너무 집중한 나머지, 거기서 이질감을 느끼는 현상.) 게슈탈트 붕괴가 오기 시작하면, 노력은 개많이 하는데 결과가 파편화되며, 심지어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일컬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가 자신의 대단한 노력을 인정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문제는, 타인이 보기엔 결과가 없음은 물론이고 완벽주의에 매몰되어 과정조차 없기에, 걍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니 인정이고 뭐고 할 것도 없으며, 악순환은 반복된다.

그런데 당신은 아예 그런 덫에 빠질 수가 작업 방식을 갖고 있는 듯하여, 나는 너무나 마음이 놓인다. 오막은 스스로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행동도 꽤 많이 취한 듯하단 말이지……
앨범 작업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나도 시티팝 너무 좋아… 어떡하지? 시티팝 비스무리한 것도 전부 좋아한다. 사실 내가 시티팝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확한 정의로 시티팝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시티팝스러운 것에는 두드러진 베이스에 뭔가 뾰로롱뾰로롱한 사운드가 늘 들어간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반짝이는 별은 보이지 않으며, 아무리 화려하게 빛나는 유리와 네온사인의 향연이 나를 둘러싸도 그중 내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는 점에서 낙담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위가 어둠을 막을 수 있으며 어쩌면 나의 인위 역시 언젠가는 어둠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시티팝의 뾰로롱뾰로롱은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것이 시티팝을 아름답게 한다.  
저번 날에는 저 노래를 들었어.
이 노래는 특히나 흥미로운 게 가사다.

신사 홍대 압구정
아니 어디가 됐든지 좋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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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자 형의 맛집 정보 받고
난 네비 찍고서 널 데리러 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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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촌호수 걷다 시그니엘 라운지서 Chill
 
지금 들으면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가사지만, 순간 나는 50년 후 이 노래를 들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시티팝의 뾰로롱뾰로롱이 아름다운 건 희망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 가사는 2020년대 초반의 서울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부($$)스럽다고 여겼는지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경제적 희망의 단편이랄까.

젊은이들이 어디서 젊음을 즐겼는지, 돈이 생기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시그니엘이라는 너무나 특정한 위치까지… 소설과 마찬가지로 가사도 관점인지라, 그저 수치로서 대변되는 ‘사실’에는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 가사에서 반짝이는 도시적 희망의 단면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노래도 넘나 좋다:
캬…… 청 to the 량…… 음악을 음료화한다면 시티팝은 포카리스웨트일 것이야……
저 뾰로롱 어쩔 것이야. 나는 뾰로롱이 너무 좋다. 둘리 음악 같다.
둘리와 시티팝 사이에는 공통적 뾰로롱이 존재한단 말이다.

그리하여 시티팝이란 야행성 성인을 위한 동화에 가장 가까운 장르가 아닌가 이 말이다. 둘리랑 통한다. Establishing shot이 첨부된 음악 같다. 정경이 바로 떠오른다.
그런데 네가 추천한 250님의 뽕…… 너무나 강한데? 뽕적이면서도 세련됐어. 사운드가 막 바빠! 도시적이야! 그리고 정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기승전결이 분명해서인가? 역시 나는 음악이 쌓여가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야기에 순서가 있듯이, 음악 내에서도 순서가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다. 왜 때문에 앞에 오는 게 있고 뒤로 가는 게 있냐는 말이지. 그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장르의 역사나 기술적인 측면은 모르지만, 소위 말하는 뽕끼가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에 그 뽕끼가 너무 빠졌다고도 생각한다. ‘세계화’를 위해 ‘한국의 그룹’들의 사운드가 여느 다른 나라의 사운드와 다를 바 없게 된 것 같다. 굳이 ‘한국의 그룹’이라는 걸 강조할 건덕지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2009년에 발매됐다는 티아라의 이 곡에는 뽕끼가 다분하다.
정말이지, 이런 리듬, 이런 감성이야말로 타 국가에서 따라 할 수 없는 삘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노래에서 이게 너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세계화’되어 ‘세련화’된 노래가 아니라, 그냥 무성격의 노래 같다.

그 와중에 250님의 곡을 들으니…… 와우…… 신선하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당신이 말했지. 이분이 ‘신남 안에 슬픔이 섞인 것’이 뽕이라고 하셨다고.

혹시 그것이 ‘한’과 비슷한가?

흔히들 말한다. ‘한’이란 정서를 타국인에게 설명하기 너무 어렵다고. 맞다. 내 생각에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한’이 뭔가 수동적으로 슬픔에 사무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걸 해방하는 능동적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뭐랄까. 나도 외부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반쯤? 4분의 1쯤 내부에 걸쳐진 사람으로서 관찰해 보자면, 한국적 한은 ‘당하는’ 느낌보다는 ‘떨치는’ 느낌이 강하다. 거기서 250님의 곡에서 느껴지는 활동적 에너지가 나오는 건가 싶다. 한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그냥 통과시키려고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걸 집어삼켜서 소화하고 뱉어낸다.

음. 좀 개멋있는 듯? 그리고 그러한 소화와 뱉어냄의 과정에도 스펙트럼이 있지 않겠나. 그 스펙트럼에 아련함 내지는 노스탤지아적인 구현도 포함되는 것 같다. (스펙트럼의 반대편 끝자락에는 정말이지 광기 어린, 뭐랄까, 무당의 굿까지 가는 ‘한’의 현현도 있겠지.)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이라면 앞서 언급한, 저런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뭔가, 왜 좋아하는가?

최근에 어디선가 주워들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고. (하도 주워듣는 게 많아서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진심 까먹음……)

그분이 썼던 예시가 이런 거였다. 사람들이, 자신이 ‘여행을 좋아한다’고 착각해서 여행 유튜버가 된다고.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경우, 좋아했던 건 ‘여행’이 아니라 그중 일부일 뿐이라고. 예를 들면, ‘출근하지 않고 돈을 펑펑 쓰는 것’이라든가,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시키는 즐거움’이라든가, 아니면 ‘모르는 장소에 가는 것’이라든가. 그걸 그냥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퉁쳐서 말을 하니까, 막상 여행 유튜버가 되면 그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한아임은 ‘이야기하는 자’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데, 이야기라는 것, 혹은 이야기하는 행위 중 대체 정확히 뭘 제일 좋아하는가.

답은, ‘점을 잇는 것을 좋아한다’이다. 말이 안 될 것 같은 걸 말 되게 하는 걸 좋아한다. 상관없을 것 같은 것들이 모여서, 끝에 가서는 말이 되게 하는 걸 좋아한다. 또한, 참, ‘끝’도 좋아한다. 실생활에서는 내 삶의 모든 것이 최대한 오래도록 유지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지만, 이야기에서는 반대다. 어쩌면 실제 삶에서 '영원'이라는 것에 약간 집착을 하기 때문에, 이야기 내에서는 자유롭게 끝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에는 영화를 주로 보고, 미국식 시즌제 드라마를 정말 안 보게 되더라. 걔네는…… 책임감이 없어. 끝을 흐지부지하게 내거나, 아예 내질 않아. 예산이 안 나오면 그게 '끝'인 거야. 그냥 이야기가 중간에서 끝나 버려.)

아무튼. 인간은 본디 죽기 전에는 끝을 경험할 수가 없는데, 나는 세상의 ‘말 안 되는’ 점들을 이어다가 말이 되게 만들고, 거기에 끝을 줘서 ‘마무리’라는 걸 겪게끔 할 수 있는 걸 좋아한다.

관련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다크호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1660456)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예상치 못한 루트를 통해 예상치 못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논픽션 책이다. 그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녀 승진을 하고 은퇴를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업을 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관두고 양복 재단사로서 업계 최고가 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는데 국제적인 천문학자가 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실은 삶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들을 이어서 ‘말이 되게끔’ 하는 작업이 일직선의 삶의 케이스들보다 더 어려우니까, 한마디로 이 세상이 그들을 이해하기를 귀찮아해서 마치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다크호스’ 같은 책을 쓰기 전까진 말이다. 아니면 나 같은 점 잇기 홀릭 변태가 점을 잇기까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오막도 영화를 공부하다가 지금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마케팅을 하다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하지 않았다거나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음악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나는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뭐랄까, 우리가 일직선으로 곧장 음악을 했거나, 일직선으로 곧장 이야기하기로 향했으면, 음악을 하거나 이야기를 했을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이 음악을 하거나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진 않다. 다른 음악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고, 그 음악이나 이야기가 지금 하는 음악이나 이야기보다 덜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 이것은 아닐 거라고.

이 얘기를 왜 하는 거지?
과거의 점들은 자기가 잇기 나름이라는 건가?
뭐 하나 버릴 게 없다고 주장하는 건가?

음. 그러한가.
형, 근데 요즘 형이 나이 얘기를 부쩍 많이 하는 것 같아…… 형, 형은 아직 젊어……

나는 120살까지 살 계획이라서, 이제 겨우 인생의 1/4쯤을 산 형이 나이 얘기를 하니까 재미나다.

그런데 이야기 상대가 고프다니. 에디터 J와 하는 프로젝트가 실현되길 바라. 바깥으로 향하는 창구를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이야기할 기회도, 이야기할 사람도 늘어날 거라 생각해.

내가 팟캐스트나 블로그를 계속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누군가는 어디선가 계속 듣고, 보고 있더라. 인스타그램보다 훨씬 보람참. 인스타그램은 일단 내게 데이터를 보여주지 않고, 누군가가 ‘라이크’를 눌러주면 물론 고맙지만, 그 ‘라이크’의 무게가 말 그대로 손가락 한 번 까딱하는 무게잖아.

그런데 누군가가 팟캐스트를 정기적으로 듣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시간꼴로 일부러 내 목소리를 듣는다는 거고, 블로그의 경우에는 애널리틱스에서 전반적인 트렌드를 볼 수 있단 말이지. 같은 지역에서 어떤 패턴으로 접속하는지, 같은 거 말이야. (물론, 고막사람 여러분? 한아임은 구글 애널리틱스를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정보 마구 걷어가지 않아요. 개인정보 침해하지 않는 Plausible을 씁니다.)

픽션 이야기들은 더하다. '실제'가 아닌 어떤 세계에, 누가 나를 믿고 들어가겠다고 동의한다는 건 정말이지 짜릿하다.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요상하게도, 나 혹은 내가 내놓는 것들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나처럼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서, 심지어 내 스토어를 방문해준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 좀 알 수 있게 된다. (외부 사이트에서 구매가 이루어진다면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텐데.)

이렇게, 창작물에 접근하는 이들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오막에게도 추천합니다. 이런 경우가 도파민을 잘 쓰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도파민 중독을 마냥 피할 게 아니라, 나를 좋은 방향으로 행동하게끔 하는 도파민을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고 봅니다. 꼭 누가 나를 보고 듣기에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가 보고 듣는다는 걸 알면 좀 힘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고막사람 읽어주시는 분들, 퓨어 픽션 읽어주시는 분들, 아임 드리밍 들어주시는 분들, 그리고 진짜 별 내용 없는 일기 블로그에 재방문해주시는 분들…… 한아임은 당신들을 사랑하지 ♥️
마지막으로, 혜원에게 고막사람 참여 가능 여부를 물어보겠다. 

그것도 그렇고, 지금쯤이면 우리가 여행을 갈지 말지 결정될 줄 알았는데, 참여 인원과 변수가 여럿이다 보니,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어떻게 되든지 간에, 동의한다. 맞다, 일로 가는 여행도 여행이다. 사실, 일로 가는 여행이 최고야. 왜냐하면 나도 막상 어딜 가려고 하면 귀찮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행 가서 일을 한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최.상.최.고.

그러하다. 다른 참여 인원/변수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오막쓰. 당신이 이렇게까지 여행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지 나는 몰랐지. 제발 올해 와라. 왜냐하면, 이번에 안 오면 다음엔 올 거 같아? 다음에도 안 올걸…… ㅋㅋㅋ 그리고 나도 ‘다음’이 있을지 어쩔지 몰라. 한아임 신변에도 앞으로 여러 변화가 있을 거 아니겠어? 하여간에 만약 당신이 미국에 놀러 오고 싶잖아? 그러면 올해가 기회다.

캘리 여행도 좋고, 당신이 늘 말하는 오막도 좋지. 사람 오막 말고 동네 오막 말이야. 자주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궁금함. 예전에 당신이 말했던 시애틀 방문을 이번 기회에 해도 좋고. 장소야 어디든지 간에, 사진을 찍는 당신의 그 마인드가 있으면 멋있는 사진이 나오겠지.

그러니, 음. 참고 부탁합니다. 이번이 기회다. 올해가 기회라고. 알겠지?
- 의식의 흐름을 포용하는 오막을 애끼는 한아임이. -
이번 편지를 보낸 한아임은...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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