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는 결코 아들 없이 존재하시지 않는다. 마치 등이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이 성부의 본성은 성자를 비추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부로부터 나와 밝게 빛나는 것이 성자의 본성이다. 성자의 존재는 그야말로 성부로부터 나온 것이다. 말 그대로 그분은 성부 자신으로부터 나온 광채다. 그분이 바로 성자시다.
이런 모든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반복해서 이를 말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요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20, 또한 사 42:1도 보라). 그런데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4:31). 성부만 성자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자 또한 성부를 사랑하신다. 성부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성부의 기쁜 뜻을 행하시는 것이 양식이 될 정도다(요 4:34). 성부께서 말씀하신 바를 행하시는 것이야말로 성자께서 누리시는 순전한 즐거움과 기쁨이다.
하지만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고, 성자께서도 성부를 사랑하심에도 전반적으로 성부와 성자 간의 관계는 매우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성부께서는 사랑하시는 분으로, 성자께서는 사랑을 받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성경에는 성자를 향한 성부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 하지만 성자께서도 분명히 성부를 사랑하심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성부의 사랑이 근본이라는 말이다. 성부께서 사랑의 중심이시다. 이는 성부의 사랑 안에서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성자께서는 결코 성부를 보내시거나 인도하시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3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런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다른 말로 하면, 성부-성자 관계의 형태(성부의 머리되심)로부터 사랑의 폭포를 이루는 은혜의 폭포수가 시작된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는 분이자 성자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성자께서도 사랑하시는 분이자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성자께서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요 15:9). 바로 여기에 복음의 아주 선한 것이 자리한다. 성부께서 사랑하시는 자요 성자께서는 사랑받으시는 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사랑하시는 자요 교회는 사랑받는 자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께서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를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먼저 오고, 우리는 단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요일 4:19).
이런 사랑의 역학관계는 결혼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그리스도께서 머리로서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아내를 사랑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자요 아내는 사랑받는 자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무언가를 해서 남편의 사랑을 얻어내는 게 아니다. 아내는 값없이, 무조건, 최대한으로 주어지는 풍성한 것들을 누린다. 성부께서는 영원히 성자를 사랑하셔서 성자로 하여금 영원한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신다. 남편도 이처럼 아내를 사랑해서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사랑으로 응답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양산되는 선이 펴져 나가는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