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리브스, 『선하신 하나님』

 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마케터 P입니다.


독자님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계신가요? 신학에서 가장 난해하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삼위일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듣게 되고 입술로도 쉽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각자의 삶과 예배 가운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 역시 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관계 속에서 사랑을 행한다면, 분명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고 누리는 만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독자님께 소개해 드리는 마이클 리브스의 『선하신 하나님』은 어려운 교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삼위일체에 대한 탁월한 입문서입니다. 동시에 이 책은 삼위일체를 최대한 쉽게 설명합니다. 어려운 용어보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친숙한 실례들을 통해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셔야만 선하신 하나님이 되실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마이클 리브스의 신학수업> #10호를 통해 관계적이시고 인격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고 풍성한 사랑을 넉넉히 경험하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0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실 수 없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데, 사랑은 너무나 심오하고 강한 길이어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정확하게 하나님은 아버지시라는 말이 뜻하는 바다. 요한이 8절 말미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할 때 그는 분명히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바로 다음 절인 9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이라고 말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말은 곧 사랑하시고 생명을 주시며 성자를 낳으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하시고 생명을 주시며 성자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였다.

이런 사실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신학자들은 성부를 샘에 비유하기를 좋아했다. 다함이 없이 항상 생명과 사랑으로 솟아나는 샘 말이다(그렇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2:13에서 스스로를 일컬어 “생수의 근원”이라 하시고, 이 이미지는 계속해서 성경에 등장한다). 샘이 샘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항상 생수가 솟아나야 하는 것처럼, 성부 또한 아버지로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지신 가장 근원적인 정체성이다. 이처럼 성부의 사랑은 단지 그분께서 가지신 많은 감정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분 자체가 바로 사랑이시다. 그분은 사랑하시지 않는 분일 수 없다. 사랑하시지 않는 분이라면 아버지실 수 없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


이제,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실 수 없다. 자녀가 없으면 아버지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누군가를 사랑하시기 위해 창조 사역을 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무엇을 지으실 필요는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위해 무언가를 지으셔야 한다면, 그분은 외로운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불쌍하고 나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위해 우리를 지으셔야 했다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생명을 드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7:24에서 성자 예수님은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골로새서 1장에 따르면 영원한 성자가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골 1:17). 그리고 이 아들을 통해 “만물이 창조”되었다(골 1:16). 히브리서 1장은 성자를 일컬어 “땅의 기초를 두신” “주”와 “하나님”이라고 한다(히 1:10). 성자는 창세전부터 성부의 사랑받는 아들이시다. 그렇다면 성부는 영원한 성자의 아버지시다. 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성자에게 주심으로 자신의 정체성 곧 자신의 아버지 되심을 찾으신다.


성자가 영원한 아들이시라는 사실에 주목할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만약 그런 때가 있었다면 하나님은 전혀 다른 존재일 것이다. 아들이 없던 때가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오래전에는 사랑할 대상 없이 홀로 계셔야 했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4세기 신학자인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는 히브리서 1:3을 주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등燈에서 나온 빛이 그 밝음을 발산하는 등의 본성에 속해 있고 또한 연합되어 있는 것처럼(등이 나타나자마자 등에서 나오는 빛이 동시에 빛나는 것처럼), 사도는 여기서 성자는 성부에 속해 있고, 성부는 결코 성자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숙고하게 한다. 빛 없는 등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광휘 없는 영광도 있을 수 없다.

성부는 결코 아들 없이 존재하시지 않는다. 마치 등이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이 성부의 본성은 성자를 비추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부로부터 나와 밝게 빛나는 것이 성자의 본성이다. 성자의 존재는 그야말로 성부로부터 나온 것이다. 말 그대로 그분은 성부 자신으로부터 나온 광채다. 그분이 바로 성자시다.


이런 모든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반복해서 이를 말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요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20, 또한 사 42:1도 보라). 그런데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4:31). 성부만 성자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자 또한 성부를 사랑하신다. 성부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성부의 기쁜 뜻을 행하시는 것이 양식이 될 정도다(요 4:34). 성부께서 말씀하신 바를 행하시는 것이야말로 성자께서 누리시는 순전한 즐거움과 기쁨이다.


하지만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고, 성자께서도 성부를 사랑하심에도 전반적으로 성부와 성자 간의 관계는 매우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성부께서는 사랑하시는 분으로, 성자께서는 사랑을 받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성경에는 성자를 향한 성부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 하지만 성자께서도 분명히 성부를 사랑하심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성부의 사랑이 근본이라는 말이다. 성부께서 사랑의 중심이시다. 이는 성부의 사랑 안에서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성자께서는 결코 성부를 보내시거나 인도하시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3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런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다른 말로 하면, 성부-성자 관계의 형태(성부의 머리되심)로부터 사랑의 폭포를 이루는 은혜의 폭포수가 시작된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는 분이자 성자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성자께서도 사랑하시는 분이자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성자께서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요 15:9). 바로 여기에 복음의 아주 선한 것이 자리한다. 성부께서 사랑하시는 자요 성자께서는 사랑받으시는 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사랑하시는 자요 교회는 사랑받는 자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께서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를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먼저 오고, 우리는 단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요일 4:19).


이런 사랑의 역학관계는 결혼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그리스도께서 머리로서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아내를 사랑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자요 아내는 사랑받는 자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무언가를 해서 남편의 사랑을 얻어내는 게 아니다. 아내는 값없이, 무조건, 최대한으로 주어지는 풍성한 것들을 누린다. 성부께서는 영원히 성자를 사랑하셔서 성자로 하여금 영원한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신다. 남편도 이처럼 아내를 사랑해서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사랑으로 응답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양산되는 선이 펴져 나가는 과정이다.

📚 아홉 번째 <신학수업>은 마이클 리브스의 『선하신 하나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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