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3'를 시작했습니다. 월~금요일 매일 아침 8시,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 화요일에는 금진방 작가님의 '나의 첫 차 수업'이 연재됩니다. '이제 슬슬 차를 시작해볼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 있으시죠?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 'Playlist'에서는 계여행 중 만난 첫사랑 잡으러 10,420km를 찾아 온 남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멋집니다. 

💬 'Books'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겨울을 지날 때>에서 문장을 가려 뽑았습니다. 

🍵 나의 첫 차 수업 |  금진방

어쩌다 차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홀짝.

입술을 따끈하게 간지른 보이차가 목을 타고 단전 아래로 내려간다. 베이징北京의 삵풍에 꽁꽁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 이제 좀 쉬어야겠다. 다시 홀짝.


나의 차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 차를 마실 때 내가 차를 주제로 강연을 다니고, 차회茶會를 열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기자인데, 매일매일 사건을 쫓고 속보를 써내야 하는 것이 내 일인데, 어느 날 내 인생으로 차가 불쑥 들어왔다니! 인생의 강물은 어디로 방향을 틀어 흘러갈지 몰라서, 우리는 오히려 여기에서 묘미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를 마신다는 행위와 차를 마시는 그 시간이 그저 좋았을 뿐이다. 따뜻한 찻물이 내 속으로 흘러 들어올 때 나는 고요해졌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차분해졌다. 차를 마시며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차우茶友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다정한 그 시간을 즐기며 잠시나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차가 내어 주는 선의善意닐까.

그저 좋아서 행했을 뿐인데, 그것이 내 삶 속에 이토록 깊이 들어왔을 줄이야.


처음 차를 마시게 된 것은, 그러니까 제대로 차를 마시게 된 것은 베이징 특파원 시절이다. 2017년 1월 베이징에 부임하자마자 공항 취재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건기자를 했던 터라 속칭 ‘뻗치기’에는 자신 있었다. 베이징 공항에 드나드는 북한 인사를 취재하는 일이 막 부임한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1월의 베이징은 야속하게도 추웠다. 예부터 북평北平이라 불리는 베이징 평야 위에 세워진 공항의 바람은 북방 툰드라의 추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공항을 빠져나오는 북한 인사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두꺼운 겨울옷으로 몸을 아무리 둘러싸 매 보아도 바느질 자국 틈을 파고드는 북방의 칼바람은 송곳처럼 매섭기만 했다.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4시간까지도 공항에 서 있다 보면 내가 강원도 덕장에 널린 황태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취재가 끝나고 찾아가는 차관茶館의 따뜻한 차 한 잔은 위안이자 위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논공행상과도 같았다. 따뜻한 차 한 잔이 몸을 타고 흐르면 느껴지는 안온함. 그게 내가 차를 마시는 이유이자 동기였다.


차를 마시기 시작한 동기가 뭔가 더 거창했으면 좋겠지만, 언 몸을 덥히는 게 그 시작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기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창한 이유로 차를 시작할까. 티베트 고원의 사람들과 몽골 초원을 달리는 유목민은 살기 위해, 윈난의 소수민족은 생업生業으로 차를 마실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기 위해’ 차를 마시던 게 근대에 들어와서야 고상한 취미로 발전했다. 내 경우는 고상한 취미라기보다 살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까웠지만.

살기 위해 시작된 차 생활은 어느새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홀짝홀짝 마시던 차가 궁금해진 것은 연하게나마 맛과 향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미묘한 맛의 차이가 차를 막 시작한 나에게는 큰 흥미를 안겨 주었다.

처음엔 기호랄 것이 없으니 주는 대로 차를 마셨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주는 대로 받아먹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안목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안목은 나중에 취향으로 나아간다. 취향이 쌓이고 쌓이면 그게 기술이 되고, 기술이 좋아지면 스타일로 굳는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패션이든 글이든 영화든 다 똑같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차에 막 관심이 생겨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대놓고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어렴풋이나마 맛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후부턴 ‘무슨 차입니까?’라는 물음이 차를 마시기 전 엄숙한 제례祭禮처럼 앞섰다. 그런데 묻긴 물었지만 까막눈 까막귀인 나 같은 초보가 알아들을 턱이 있나. 그냥 ‘주는 대로 마시자.’ 하며 머릿속을 비우고 팽주烹主(다구를 두고 차를 우리는 사람)가 주는 찻잔을 공손히 받아 들 뿐이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차가 나오기 시작할 때쯤에는 주워들은 풍월 덕택에 보이 숙차熟茶와 생차生茶를 구분하게 됐다. 녹차와 백차, 황차, 우롱차, 홍차가 무엇인지도 그럭저럭 알 수는 있게 됐다. 그렇다고 눈 가리고 마시며 차를 구분할 정도가 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차를 마신 지 어느새 석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새 나는 다인茶人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차를 시작하고 싶다면 차관에 다녀보세요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차를 마시는 공간은 중요하다. 차와 차를 마신다는 행위가 ‘내용’이라면 공간은 어쩌면 ‘형식’일 수도 있다.

모든 내용에는 거기에 어울리는 형식이 있다. 시는 시라는 형식에 들어가야 시다. 음악은 설계가 잘 된 콘서트홀에서 들어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축구를 배드민턴 경기장에서 하라고 하면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차도 마찬가지다. 차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다실茶室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무실 책상이나 집 식탁 등 별도의 다실을 마련하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에는 다실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대신 중국이든 한국이든 집이나 회사 근처에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차관茶館을 정해두고 차를 마셨다. 어느새 차관은 나의 다실이자 쉼의 공간이 됐다.


차관이라 하면 뭔가 거창할 것 같지만 사실은 차를 판매하고, 차와 관련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또 편하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중국에서 다닌 차관은 ‘도연당陶然堂’이라는 곳이었다. 우리가 ‘실장님’이라고 부르는 팽주가 늘 차관을 지키고 있어 일과 중이든 퇴근 이후든 언제든 찾아가면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차관이 좋은 점은 차에 관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볼 수가 있고, 같은 시간 차관을 방문한 차우와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몇 번만 다니면 친숙해지고 익숙해진다. 차관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초보 다인’에게는 주변의 차관 한 곳을 정해놓고 수시로 방문하며 차 생활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초보’라는 단어를 여기에 붙이는 게 맞는지 한참을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붙여 보았다. 운전과 주부에도 초보가 있듯, 모든 취미와 일에는 초보가 있는 법이니까.


솔직히 말해 차라는 것이 진입 장벽이 조금은 높은 편이다. 마트에서 파는 녹차나 홍차 티백을 마시는 것도 차를 마시는 것이라 한다면 진입 장벽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차는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니 부디 이해해 주시길.

차를 처음 시작하면 모르는 것투성이다. 마치 운전대를 처음 잡은 초보 운전자처럼 모든 게 두려움의 대상이요, 모든 일이 도전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분명 룸미러를 보고 있지만 뒤의 상황은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앞과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동시에 어떻게 보냐고! 정말 여기서 내가 좌회전을 할 수 있을까? 회전교차로에 들어섰는데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을 몰라 다섯 바퀴나 빙빙 돌고 있다고. 이게 모두 처음 차를 시작하는 이가 겪는 상황이다. 과장이라고? 흠, 절대 과정이 아니다.


다인들은 처음에는 남이 우려 주는 차를 받아 마시다가 나중에는 직접 차를 우려먹는 ‘테크’를 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테크를 홀로 수련하는 건 쉽지 않은 데다 진도도 빨리 나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차관이 중요하다. 축구 교실에 가면 마당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공다루기를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과 같다.

내 차 생활 중 대부분의 테크와 루틴은 차관에 다니며 생긴 것이다. 한국의 다인들보다 찻잎을 많이 넣고 차를 짧게 우려낸다든지, 첫 번째 차를 우릴 때는 차호茶壺에 물을 가득 채워 뚜껑을 닫으면 찻물이 차호 주둥이로 뿜어져 나오게 한다든지, 세차洗茶를 한 물을 잔을 덥히는 데 쓴다든지 하는 버릇은 모두 이때 생겨났다. 그리고 이건 나의 교류한 차우(茶友)와 내가 다닌 차관 팽주의 버릇을 그대로 닮았다. 뭐가 맞고 틀렸다는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루틴이 된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처음에는 시도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누군가 내게 방법을 보여주고 내가 그것을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주변에 차관이 없다면 굳이 먼 거리에 있는 차관을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끔 찾아갈 수 있는 차관을 정해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좀 더 깊이 차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나도 차관을 들락거린 지 여러 달이 지나고서야 어느 날 문득 ‘차를 제대로 좀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도 차관에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관에 다니지 않았다면 차우들의 이야기가 내 귀에 닿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도 사무실에 간단한 다구를 갖다 놓고 매일 매일 늘 마시는 차를 우려 마시는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을까? 이 정도의 생활에 그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차우들과 교류하며 더 풍성해진 차 생활을 즐기고 있는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다.


사람들과 함께 차를 즐기다 보면 차에 관한 궁금증이 이것저것 솟아난다. 이 차와 저 차는 무슨 차이가 날까? 저 사람은 이게 숙차인지 생차인지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몽글몽글 피어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꽉 채우게 되면 차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다. 이때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 차 선생님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눈에 띈다. 맞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의 첫 차 선생님이다.

어쨌든, 처음 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강권해서라도 차관에 데려가고 싶다. 왜냐고요? 차관에 가면 행운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으니까요. 🔖

차를 사랑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차를 마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차를 권한다. 대륙의 식탁 베이징을 맛보다 중국의 맛을 썼다. 미식가로도 유명한 그의 인스타그램 @gold_awesome에는 차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 이야기가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 1일 3매 |  최갑수

헤어진 첫사랑과 공항 가는 버스

공항.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 가장 친숙했던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가장 낯선 단어가 되어버렸다. 공항. 다시 한번 발음해보지만 낯설다. 아주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어느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난처하다. 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어? 응. 오랜만이네. 너도 잘 지내지? 나야 뭐 그럭저럭, 매일 똑같지. 그래. 그대로구나. 아무튼 잘 지내, 건강하고……. 그래, 잘 가. 너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지금까지 딱 오십 년을 살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약간 슬프다. 벌써 오십 년이나 살아왔구나. 삼십 대가 되는 순간, 사십 대가 되는 순간에는 아무런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 이제 서른이 됐구나, 이제 마흔이 됐구나.’ 하고 잠깐 생각했을 뿐이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과 서른의 첫날이, 서른아홉의 마지막 날과 마흔의 첫날이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단지 하루의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사람의 인생은 하루 만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십이 되는 날은 달랐다. 마흔 아홉의 마지막 날과 오십의 첫날은 너무 달랐다. 아침에 눈을 뜨자 ‘벌써 오십이 됐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슬프기까지 했다. 한참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늙었구나. 더 늙어가겠구나.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했다.


사람에겐 여러 가지 마음 또는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 기쁨, 슬픔, 분노, 우울, 외로움 등이 그것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 마음의 농도가 점점 옅어지고 감정의 선예도가 점점 무뎌진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점점 희미한 마음과 뭉툭한 감정을 갖게 된다. 좋다면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다 이해해.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나쁘면 한없이 나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거기서 거기지 뭐. 너만 그런 게 아냐. 어차피 다 똑같아. 뭐 별수가 있겠어?’

나이 혹은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가 이미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경험은 우리를 노련하게 만들어 주고 지혜라는 선물을 안겨주지만, 그 대신 기대감과 설렘을 앗아간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여행작가로 이십 년 넘게 살아오며 여행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 물론 초창기엔 그러지 않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설레요. 이번 여행은 내게 또 어떤 걸 보여줄까? 이런 기대감을 잔뜩 안고서 트렁크를 꾸린답니다.”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이 말은, 미안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내게 ‘일’일 뿐이었다. 나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고 여행지라는 ‘일터’로 가서 취재라는 ‘일’을 하고 글과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클라이언트에게 ‘납품’했을 뿐이다. ‘납품 기한’도 성실하게 지켰다. 지난해 펴낸 책 『어제보다 나은 사람』의 서두에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다.” 하고 선언하기도 했다.


여행작가로 일하는 동안, 공항이라는 공간 역시 내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 위해 출입국 수속을 하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창 여행작가로 일할 때 나는 연평균 약 15~20회 정도 해외 취재를 다녀야 했다. 그건 (왕복을 해야 하니) 그 두 배 수로 우리나라의 공항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해외 취재지의 공항을 이용하는 횟수를 더한다면(보름 일정 동안 공항을 8~10번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 정말 공항이란 곳은 내게 ‘업무 공간’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티켓을 받고, 보안 검색을 거쳐 출국 심사를 받고, 보딩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린다. 간혹 공항 카페에서 탑승 전까지 열심히 원고를 쓰기도 한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길, 공항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영종도의 갯벌을 지나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공항 건물이 보일 때도 ‘아, 이제 떠나는구나!’ 하는 설렘보다는 ‘공항이 좀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항이 후쿠오카 공항이다. 아마도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느 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다. 지난 2000년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튀르키예 항공을 이용해 이스탄불국제공항에 도착 후 열흘간의 이스타불 취재를 마치고 다시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내가 공항을 마지막으로 이용한 때다. 그 뒤로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까지 단 한 번도 공항에 가질 않았다. 아니, 가질 못했다. 갈 일도, 가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나 역시 여행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나는 일본으로 취재 여행을 간다. 후쿠오카를 비롯해 규슈 지역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여권도 다시 만들었다. 세상에, 지난해 10월 여권이 만료됐는지도 몰랐다. 여행을 이토록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니! 어쨌든 새로 만든 푸른색의 여권은 아주 근사하다. 가끔 책상 서랍에서 여권을 꺼내 쓰윽하고 쓰다듬곤 한다.

다시 공항에 대해 생각한다. 눈을 감고 공항의 풍경을 떠올려 본다. 공항에 처음 들어섰을 때 들리는 특유의 웅성거림, 출발시간과 게이트를 알리는 전광판의 분주함, 체크인 카운터에 늘어선 여행객들의 기다란 줄, 출국심사대에서 여권에 출국 도장이 꽝 하고 찍히는 명쾌한 순간, 면세점을 기웃거리던 그 시간들. 그리고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통유리 통해 바라보던 활주로와 그 활주로를 힘껏 이륙하며 공중을 향해 가뿐하게 솟아오르던 비행기의 부드러운 직선. 

아, 그랬던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며 ‘이 쇳덩이가 과연 공중에 떠오를 수가 있을까? 하고 두려움 섞인 물음표를 가득 품었던 시절.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벅찼던 공항에서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를 여행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을지도 모른다.


며칠 후 나는 공항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내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나는 공항이 그리웠던 것 같다. 이토록 설레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공항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그 사랑에서 멀어지는 수고를 감내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내가 잊고 있었던 여행에의 감각, 그 감각을 되돌리는 일은 마땅히 공항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공항.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단어를 입 속에 잠깐 우물거려 본다. 두 음절의 이 단어가 나를 두근대게 만들고 있다. 지금 내게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옛 애인과 만날 것인지, 다시 공항으로 가 여행을 떠날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

최갑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 작가다. 조만간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탈 예정인데, 출입국 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그의 생각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Playlist | 세계여행 중 만난 첫사랑 잡으러 10,420km를 찾아 온 남자

"모든 게 이상한 하루였다. 이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했던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고, 매번 들리던 파도소리도, 매번 보이던 풍경도 낯설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일까? 그냥 흘러가는 바람이겠지. 그저 오늘은 이 살랑이는 바람을 느껴보자. 머물다 가는 긴 여운도 나쁘지 않으니까."


🎒 유튜버 '유숨'은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 중 그의 첫사랑을 만났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 각자의 여행을 떠나야 했죠.


😍 그런데 어느 날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남자 친구가 10,420km를 날아왔습니다. 영화 같은 일이 펼쳐진 거죠.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답니다.


🧳 유튜브 유숨YUSOOM 외동딸의 세계 외박에서 그의 흥미진진한 여행을 볼 수 있습니다.

📖 Books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캐서린 메이 지음 |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40대 초반의 저자, 어느날 심한 복통을 느낀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장의 상태가 70대와 같다는 판정을 받은 그는 지금까지의 식습관을 오직 쉬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쉬는 동안 여행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나면, 무엇이든 붙잡을 수 있다. 그것이 저항할 수 없는 겨울의 선물이다. 겨울은 좋든 싫든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새로운 외투로 갈아입어야 겨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힘든 겨울을 지나고 있는 분들에 위로와 힘이 되는 문장이 많다.


- 책 속에서 -

 
  • 겨울나기의 과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법을 배우는 것. 우리는 겨울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낼지는 선택할 수 있다.

  • 식물과 동물은 겨울과 싸우지 않는다. 겨울이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며 여름에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삶을 영위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준비하고 순응한다. 그들은 겨울을 보내기 위해 놀라운 탈바꿈을 감행한다.

  • 겨울에 우리는 바로 그런 것을 배운다. 과거가 있으면 현재, 그리고 미래도 있다는 것. 어떤 일을 겪은 후에는 또 다른 시간이 온다는 것.

  • 주치의가 “제가 뭐 도울 일이 있을까요?”라고 했을 때, 나는 아이슬라드 여행에 대해 말하며 가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니요, 저는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어차피 아프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 있든 다른 나라에 있든 그게 문제가 될까요? 차라리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낫지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아요.”

  •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해.” 그녀가 말했다. “바늘은 옷감을 수선하기 위해 옷감에 상처를 내지. 바늘이 없으면 옷감도 없어.”

  • 행복은 바로 우리의 잠재력이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생각을 펼치고, 마음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며, 괴롭힘과 모욕의 지독한 무게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내면의 산물이다.

  • 행복이 하나의 기술이라면, 슬픔 역시 그렇다. 아마도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혹은 힘든 일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슬픔을 무시해야 한다고, 책가방 속에 슬픔을 쑤셔 박아놓고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때때로 그 또렷한 외침에 귀 기울이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윈터링이다.  

  • 트롬쇠에서 나는 어둡고 추운 북극의 밤에 놀라운 일들이 가득할 수 있음을 배웠고, 한편으로는 아무리 내가 발버둥 친다 해도 내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삶은 우리에게 결코 단순한 해피엔딩을 안겨주지 않는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원인과 결과의 도덕적 명확성, 그리고 내 행위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처벌이 내가 갈망하는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모든 것을 설명 가능하게 해주는 삶의 지도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가장 잘한 행동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한 최악의 행동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이미 속죄하기도 늦어버린 때에 나에게만 드러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 〈얼론 앤 어라운드〉의 구독은 무료지만, 후원금도 감사히 받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으신 분은 후원금을 보내주세요. 작가들의 원고료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일과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굿즈를 만드는 데도 사용됩니다. 물론, 무료로 받아보셔도 됩니다. 후원해주신 분께는 〈얼론 앤 어라운드〉에서 펴내는 책을 보내드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여러 강연과 다양한 행사에 우선으로 초대합니다. 후원금을 보내신 분들은 메일로 성함과 연락처를 꼭 보내주세요.

후원계좌 : 신한은행 110-351-138969 (최갑수 얼론북)


〈얼론 앤 어라운드〉는 구독자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다른 구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픈 3매의 경험, 3매의 생각을 저희 이메일(alone_around@naver.com) 로 보내주세요. 일, 인간관계, 살아가는 이야기, 여행, 요리 등 어떤 주제도 환영합니다. 편집을 거쳐 발송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될 것입니다.

얼론 앤 어라운드
alone_around@naver.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아시아출판문화센터 2층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