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 작가는 지난 개인전 《The Gold Terrace》(아트딜라이트, 2018)에서 이러한 서울-유행-셀프-인테리어의 감각을 가구 형태의 작품들로 보여준 적이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감각을 한층 더 발전시켜 '벽면'에 집중합니다. 벽에 붙은 현관문, 창문, 카펫, 아트월 등은 입체인지 평면인지 헷갈리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합판 위에 그려진 꽃병, 와인병, 컵, 카펫은 실질적인 부피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평면이기도 하지만, 벽에서 아주 살짝 떨어져 오브제처럼 놓여있다는 점에서 입체이기도 합니다. 또 멀리서 보면 다들 벽에 붙어서 걸려있는 게 회화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면 합판을 완벽하게 자르고 이어서 만든 모양새가 잘 만든 조각 같기도 합니다. 벽에 납작하게 붙은 채로 최소한의 부피만 차지함으로써 존재를 확보하는 이들이 과연 회화일지 조각일지 고민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미술 작가끼리 협업한 전시는 많이 본 것 같은데, 회화 작가와 음악가의 협업으로 꾸려진 전시는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전시는 동양화 재료로 회화를 만드는 김옥정 작가와 인디밴드 크랜필드가 서로의 그림과 음악을 주고받으면서 확장한 작업들로 구성됩니다. 저는 음악의 요소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음악의 분위기를 느끼는 정도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느낌은 매우 좋았습니다!) 

둘의 협업에 대해서 비평하려면, 음악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그림에서는 어떻게 작용했는지, 역으로 그림이 음악에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쉽게도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잘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시를 음악이라는 이야기와 그림이라는 삽화가 있는 하나의 책처럼 경험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색이 대담하고 아름다운 김옥정 작가의 회화는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 그림들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텍스트로 옮긴다면, 그것은 어디까지 창작일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작가가 텍스트로 구현했다고 해서 이를 온전히 작가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에 앞서 누군가의 삶을 창작의 소재로 삼아도 괜찮은 것일까요? 작품 안에서 주인공을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것은 비극을 더 비극답게 만드는 작법 규칙을 따른 것이므로 정당한가요? 연극은 진정 소외된 삶을 충실히 재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를 관람한 관객은 정말 책임에서 비켜 있을까요? 연극 〈마우스피스〉는 이 모든 의문을 담아 연극을 둘러싼 위선을 파헤치고, 창작의 윤리와 태도를 성찰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에든버러의 솔즈베리 언덕. 주목받던 작가였지만 오랜 시간 글을 쓸 수 없었던 극작가 '리비'와 가난과 가정폭력에 가려 자신의 미술적 재능조차 알지 못하는 소년 '데클란'이 벼랑 끝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데클란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리비는 데클란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으로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둘은 창작을 목적으로 만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보러 가고, 펄프와 너바나 같은 락 스타 이야기와 먹먹하고 눅눅하고 푹 절여져 있는, 생채기 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은 언뜻 서로 진심을 공유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예술과 웃음과 마리화나와 진을 나누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두 외로운 존재가 충동적으로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리비는 자신의 위치와 둘의 관계를 수평에서 수직으로 수정하려합니다. 게다가 리비가 쓴 연극의 초고를 본 데클란은 자신이 자살하고 마는 결말을 보고 겉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리비의 일방적인 단절 때문에 둘은 멀어지지만, 데클란의 삶을, 심지어 그림 제목을 그대로 딴 (또는 베꼈다고 말할 수 있는) 연극 〈마우스피스〉는 그렇게 무대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최초로 극장을 찾아 관객과의 대화에 난입한 데클란의 절규와 분노. "이 연극은 내 인생을 훔쳐서! 누군가 소리 내서 웃었습니다…(중략)… 다들 이 연극 봤죠? 내가 어떻게 사는지. 이 연극에서 내가 어떤 인간들이랑 사는지 봤지? 나한테 뭐가 필요한지 봤지? 안정감, 그치?"
연극의 결말은 리비의 시선, 데클란의 시선이 뒤섞여 전개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데클란의 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말 같은 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소외된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순간에도, 소외된 자들의 삶은 불안정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감'을 내세워 창작하고 소비하는 모든 순간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작품은 메타연극을 앞세워 거리 두기를 택했지만, 작품을 목격한 저는 때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떤 삶 앞에서 나도 역시 무턱대고 카메라를, 펜을 들지는 않았나 하는 마음에서요. 무엇보다 많이 보면 볼수록 내가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착각이 오히려 내 시야를 더 좁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성찰과 고민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