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스튜디오 서간&시저스앤스페이드&카라블로썸
2024.02.19 우수
 오늘의 the seochon 
기 이야기: 싹을 틔우는 마음으로
인터뷰: 식물 스튜디오 ‘서간’ 대표 유상경 님
서촌의 절기: 우수에 가는 서촌
✍️Editor’s view 

2월 19일 오늘은 눈이 비가 되어 내리는 우수(雨水)입니다. 겨우내 꽁꽁 언 강이 풀리니 식물들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자연의 소리가 들립니다. 우수는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트는 때입니다. 봄에는 설렘이 가득하지만 마음 한편엔 식물들을 따라 나도 무언가를 틔워야 하지 않겠나 하는 괜한 조바심이 듭니다. 생기 가득했던 잎도 결국엔 지는 순간이 오는데 말이죠.


the seochon 2호의 인터뷰이는 이러한 자연의 순환과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바로 식물 스튜디오 ‘서간’의 대표 유상경 님인데요. 상경 님은 식물의 생장을 관찰하며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봄에는 새싹을 내고, 여름에는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잎을 떨구고, 겨울에는 잠든 식물들을 보며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죠. 또 싹을 틔우는 마음으로 도전하고, 지는 꽃을 바라보듯 나이 들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하게 성장하기도 합니다.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상경 님의 이야기를 봄비에 녹여 전합니다.

✍️Editor’s view 

 “책<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나이가 들어도 자연 속에서 모험하듯이 살고 싶어요.” 상경 님은 창밖을 바라보며 먼 훗날을 꿈꾸는 듯 말했지만 그가 말한 조르바의 모습은 이미 눈앞에 있는 듯 했습니다.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상경 님의 삶이 꼭 노인 ‘조르바’ 같았거든요.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식물처럼 여유롭게 삶의 싹을 틔우는 모험가 상경 님을 만나보세요.

식물과 함께 피어난 새로운 도전

30대에 접어들고 안정적인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던 어느 순간 무기력감을 느꼈어요. 직책, 월급, 능력 면에서 안정을 찾았지만 진정으로 마음 가는 일도, 몰두하는 일도 없었죠. 회사에서 일 땐 제 기획 파트에만 몰입을 하고, 그 이후의 과정에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협업하다 보니 결과물을 ‘내 것’이라고 느끼기도 어려웠고요. 하지만 식물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존재였고, 그 과정에서 몰입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어요. 잎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고 가만히 바라보는 일에 제 마음을 쏟으면서 에너지를 얻었던 것 같아요. 퇴사할 무렵에는 그냥, 식물이 너무 좋고 집에 더 이상 식물 둘 곳이 없어서 이 일을 하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도전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에게 맞는 ‘그릇’을 찾는 삶

식물의 그릇을 고르는 일은 나의 환경을 선택하는 것과 같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서간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나라는 사람은 어떤 그릇에 있어야 할까, 어떤 환경에 있어야 할까 고민했죠. 모든 식물은 각자에게 적합한 환경에 있을 때 아름답게 생장할 수 있고 저마다 어울리는 그릇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뿌리의 깊이에 따라 높고 얕은 화분을 쓰는 것처럼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제가 서간에서 하는 일은 편집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식물을 키우는 것은 제가 아니라 자연이 하는 것이고, 역할은 그저 식물에 적합한 환경을 편집하는 거죠. 회사 밖에서 저한테 맞는 그릇을 찾은 것처럼 식물마다 어울리는 그릇을 찾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아주는 것이 제 일이에요.

✍️Editor’s view 

꽃 피는 봄을 앞두고 상경 님과 시든 꽃, 나이 듦에 대해 유독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청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랬을까요? 상경 님은 '식물 좋아하는 여유 있는 아저씨’라는 수식어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젠 아저씨라는 말을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노화를 인정하면서 식물 좋아하는 아저씨로 나이 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가 이렇게 온유한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데에는 식물의 나이 듦을 순응하는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식물과 함께 나를 바라보는 시간

식물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여유로울 땐 한적한 풀을, 힘이 부족할 땐 묵직한 나무를 바라보게 되죠. 요즘 제 시선은 나이 듦과 화려한 꽃에 머물러 있어요.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감탄이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런 마음 때문인지 요즘은 화려한 꽃에 눈이 가면서 어르신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 풍성함 속에서 삶의 활력을 얻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해요. 지금 제 모습은 마치 저 분재처럼 화려하게 꽃이 폈다가 지는 상태인 것 같아요.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보면 쓸쓸함과 함께 묘한 위안을 느끼기도 해요. ‘그래, 뭐. 꽃이 지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 하고요.

 

못난 모습도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

저를 분재 과정에 비유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하는 상태인 것 같아요. 식물을 기르다 보면, 예상보다 못생겨 보이는 아이들도 만나게 돼요. 그럴 땐 치우거나 버리지 않고 그냥 둬요. 언젠가 예뻐지겠지 생각하면서 꾸준히 지켜보는 거예요.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못생겼던 아이들이 아름답게 변신하는 경우도 많아요. 모든 식물마다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시기가 있거든요. 못생긴 것도 걔의 일부분이니까 그 시기를 당연히 지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꽃이 시들 때의 두 가지 선택

시든 꽃잎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요. 하나는 꽃이 더 시들기 전에 미리 따주는 방법, 그리고 다른 하나는 꽃이 마지막 생명을 다해 땅에 떨어질 때까지 지켜보는 방법이에요. 나무의 입장에서는 꽃을 미리 따주는 것이 더 좋아요. 영양분이 괜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자연에서도 꽃이 너무 많이 달린 가지는 도태되는 경우가 많아요. 마지막 순간에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죽는 거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따지 않으면 결국 가지가 말라 버리기도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네 목숨 다 먹다 가라’라는 생각으로 꽃을 미리 따지 않아요.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요. 꽃이 지는 건 나무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아요. 나무는 꽃이 지고 잎을 떨군 후에도 멈추지 않고 제 나름의 생장을 이어나가요. 뿌리를 굵게 만들어서 더욱 듬직해지기도 하고, 혹은 잠시 생기 없는 상태로 머무르기도 하죠. 잎을 떨구면 잠시 쉬다가 다음 일을 하겠지, 그 아이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겠지 생각해요.

 

시드는 초목, 꽃피는 죽음

분재 클래스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있었어요. 보통 분재는 생명력이 느껴지도록 풍성하게 풀을 배치하는데, 한 분이 굳이 시들어가는 초목을 고르셨어요. 처음에는 그 선택이 이해가 안 가서 제가 조심스럽게 “저런 초목은 힘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으니 지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그분께서는 “아니요, 전 그런 게 좋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의 목표는 ‘죽어가는 초목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거였어요.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굉장히 새로웠어요.

✍️Editor’s view 

서양 원예와 달리, 분재는 세월의 흔적이 담긴 나무의 연륜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마치 삶의 역경을 극복하며 성장한 사람처럼요. 다가오는 봄, 조금은 더디게 자라는 생명을 보더라도 빠른 속도보다는 단단한 마음과 생기를 갖도록 보살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계절 내내 겪은 상처로 단단하게 내린 뿌리

서양의 원예와 극동 아시아의 분재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차이가 있어요. 서양 원예는 하루하루 다르게 새로운 잎이 나고 생장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분재는 사계절의 변화와 오랜 세월이 담긴 나무의 연륜을 느낄 수 있어요. 생장에만 초점을 둔 나무는 가지가 삐쭉 길게 뻗기만 해 연륜을 느끼기 어려워요. 하지만 분재의 방식으로 자연에서 자란 나무는 수많은 경쟁을 통해서 잎을 떨구고 상처도 입으면서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내리기 때문에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죠. 분재는 나무의 빠른 생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작지만 알차게 성장하도록 돕는 방식이에요.

 

나무의 생명력을 더해주는 철사

철사는 자라는 걸 막는 게 아니라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이기도 해요. 보통 철사를 사용한 나무를 보면, 사람 마음대로 억지로 나무를 구부리는 것 아닌가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나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철사를 사용한다면 오히려 나무를 보호하고 성장시켜줄 수 있어요. 약한 가지나 줄기를 지지해서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기도 하고, 특히 새로 이식하거나 가지치기 후에 취약한 분재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에요. 무게 중심을 조절해서 분재가 넘어지거나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고요. 철사를 사용하는 것은 마치 아기를 키우듯이 소중히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어느 정도의 디자인이나 교정은 나무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더해주면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Editor’s view 

더 서촌은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으로 삶의 이유를 묻습니다. 다소 당돌한 질문임에도 상경 님은 곧바로 명쾌하게 답해주었습니다.

 

찰나에 머물다 가더라도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살아요. 모든 것은 저 꽃처럼 다 떨어져서 죽기 마련이잖아요. 사람도 꽃처럼 찰나에 머물다 가는 건데 왜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면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사는 게 아닐까 해요. 관계에서 느끼는 즐거움,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생명력, 새로운 광경을 보면서 느끼는 창조적인 에너지 같은 모든 것들이요.”

🔍식물 스튜디오 '서간' Instagram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1길 15 1층
⏰ 목-일 13:00 – 19:00

Editor. 박현아  

🌱시저스앤스페이드 scissors and spade: 따스한 마음으로 식물을 대하는 식물가게

신한은행 효자동점 앞, 길게 뻗은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역 돌담길로 향하는 골목에서 이웃들에게 계절을 전하는 서촌의 식물가게, 시저스앤스페이드. scissors 꽃가위와 spade 꽃삽이 그려져 있는 노란 파스텔 간판과 가게 앞에 줄지어 햇살과 바람을 맞고 있는 식물들을 보며 이곳의 사장님이 궁금해진다. 호기심에 발길을 안으로 들이니, 사장님의 식물에 대한 진심이 배로 진해진다. 곳곳에 놓인 가습기와 써큘레이터가 쉼 없이 식물들을 바라보며 움직이고 식물을 위한 공간에 사람이 잠시 들려 인사를 나누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식물 하나를 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지 사장님과 잠깐의 대화에서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식물이 머물 공간의 온습도와 환경에 맞춰 추천을 해 주는가 하면, 생각만큼 식물이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면 다시 이곳으로 데려와 맞춤 케어까지 해주신다는 말에 식물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녹아 비가 되어 초목에 싹을 틔우는 우수처럼 서촌에서 매일 싹을 틔우는 시저스앤스페이드와 함께 초록의 봄기운을 전해본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 1층
⏰ 화-금 11:00 – 19:00 / 토-일 12:00 - 19:00

📞 0507-1325-5361

🌱카라블로썸: 섬세한 손길로 꽃을 피우는 화원

매일 점심마다 줄이 길게 늘어선 칸다소바를 조금 지나 수성동 계곡 방면으로 걸어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카라블로썸. 많은 분들이 꽃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화원이라 생각하지만 식물에 대한 애정도 매우 깊음은 느낄 수 있는 서촌의 숨은 식물가게이다. 카라블로썸 블로그에는 사장님의 식물일지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중 재미나게 읽은 것 하나를 소개해본다.

“책상 위에 올릴 수 있는 작지 않고 계속 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꽃은 흰색으로 향기가 있고,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정갈하고 품격 있는 것으로 잘 골라주세요.”

보기만 해도 쉽지 않은 주문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요청사항에 딱 맞는 장수매를 추천하여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장님의 센스에 흠칫 놀라게 된다. 원하는 스타일과 식물을 난이도에 따라 맞춤형으로 추천해 주시는 따스한 마음의 서촌 화원, 카라블로썸에도 싹이 피어오른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24 1 층
⏰ 월-일 11:00 -22:00

📞 010-3221-1552 / 0507-1412-1552

Editor. 김민하 / 한달기  

the seochon 3호는 3월 5일 경칩(驚蟄)

님을 찾아갑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이 활기를 되찾고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경칩을 맞이해

 님의 '여행의 시작'을 응원하려 합니다.


우수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싹을 틔우는 마음으로 잘 살아내다 또 만나요.

비의 종점


                                                           김태운


봄이 와서 깜빡 졸다가

비를 타고 종점까지 가 닿는다


낯선 냄새 

낯선 어둠 

낯선 온기


어서 와 

옆에 있던 물이 툭 친다

그때야 기억해 내었다


나는 물이었다

한 계절을 얼어 있었던

the seochon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봄' 에디터 박현아: "사랑하기 위해 질문하고 사유합니다."
👋'여름' 에디터/포토그래퍼 김민하: "live and let live"
👋'가을' 에디터/디자이너 조아림: "즐거움과 따뜻함을 채우며 삽니다."
👋'겨울' 에디터 한달기: "겨울에 태어났지만 봄날같은 사람이고자 합니다."
👋 서촌이웃 김태운 님: "서촌에서 시 쓰고 밥 먹고 잠드는 김태운입니다."
👋서촌이웃 박채운 님: "서촌이 그저 좋아 살게된, 산책과 붓글씨를 즐기는 박채운입니다."

로컬 휴먼 콘텐츠 <로컬루트>
사람의 가치, 로컬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로컬. the seochon
로컬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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