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극단적인 ‘무관용 품질 관리’는 최근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항노화 패러다임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학이 망가진 세포를 살리거나 암세포 증식을 물리적으로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엔 좀비처럼 끝내 살아남아 염증을 만들어내는 노화세포를 선별해 자폭시키는 기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학계에선 이를 세놀리틱스(Senolytics)라고 부릅니다.
우리 몸속에서 유전자가 손상됐거나 수명을 다한 세포들은 정상적인 사멸 과정을 거쳐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세포는 분열을 멈춘 채 죽지도 않고 체내에 끝까지 버티며 기생합니다. 학계에서 이들을 ‘좀비 세포’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 좀비 세포들은 ‘세포사멸 회피 신호(SCAP)’라는 일종의 보호막을 두르고 체내에 남아, 주변의 건강한 정상 세포들까지 파괴하는 독성 물질(SASP, 노화연관분비표현형)을 끊임없이 뿜어냅니다. 만성 염증, 관절염, 암, 각종 퇴행성 뇌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죠. 인간의 면역 시스템이 박쥐처럼 단호하게 이들을 초기에 도려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들과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가 30억 달러(약 4조 원)를 투자해 설립한 알토스 랩스(Altos Labs)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대거 영입해 세포 수준의 ‘노화 재프로그래밍과 정화’를 집중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1억 8000만 달러(약 2400억 원)를 투자해 출범한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Retro Biosciences) 역시 손상된 세포를 비워내고 세포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개발 중입니다. 어설프게 고치는 대신 박쥐처럼 의심이 가는 세포는 초기에 제거한다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약물로 구현하려는 시도죠.
이처럼 박쥐가 수천만 년 동안 진화하며 다듬어온 생존 비결은 이제 인류가 암과 노화를 극복하기 위해 풀어나가야 할 가장 유력한 실마리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