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쿨한나입니다.


엄마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말이 끊임없이 오가요.
누구네 아이는 벌써 중등 수학을 시작했다더라.
어디 학원이 그렇게 잘 봐준다더라.
지금 안 잡아두면 고학년 가서 후회한다더라.


그 말들을 듣고 있으면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 아이만 제자리인 것 같고요.
집에 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상해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들었는데,
누구는 그 말을 안고 밤새 뒤척이고,
누구는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흘려보내요.
들은 말은 똑같았는데요.
다르게 만든 건 그 말을 받아든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이런 말은 공부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걸러 들어야 할 말이 사방에서 들어와요.
친정 엄마의 걱정 섞인 한마디, 시댁 어른의 지나가는 말,
선생님의 짧은 코멘트, 그리고 가끔은 아이가 무심코 던지는 말까지.
새겨들어야 할 말과 흘려보내야 할 말이 한데 섞여서 밀려옵니다.


문제는 이 둘이 비슷한 얼굴로 온다는 거예요.
"이거 안 하면 늦어요." 똑같은 한마디라도,
어떤 집엔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고, 어떤 집엔 그냥 지나가도 되는 말이거든요.
가려 듣는 눈이 없으면, 들리는 말마다 마음에 내려앉아요.
그러다 보면 알아볼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 눈이 유독 잘 안 떠지는 데가 있어요.
바로 내 아이 일이에요.
남의 집 일은 그렇게 차분하게 잘 봐요.
저 집은 좀 과한 것 같은데, 저건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러다 내 아이 차례가 되면 그 차분함이 스르르 사라집니다.
사랑이 깊어서, 불안이 커서, 눈앞이 흐려지거든요.

제일 잘 봐야 할 아이를, 제일 못 보게 되는 거예요.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와요.
물이 출렁이고 있을 때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물결이 잦아들고 잔잔해진 뒤에야 바닥까지 환히 비친다고.
마음도 똑같아요.
불안으로 출렁이는 마음에는 아이가 제대로 비치지 않아요.


또 이런 구절도 있어요.
바람이 대숲을 지나갈 때는 잎이 서걱서걱 소리를 내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대나무는 그 소리를 붙잡아 두지 않는다고요.
지나갈 말은 지나가게 두라는 거예요.
들을 때는 듣되, 지나간 말까지 마음에 쌓아두지 않는 것.
그런데 우리는 지나간 말 한마디를 며칠씩 품고 곱씹잖아요.
그 말이 마음에 자국을 남기고, 그 자국이 다시 불안을 키웁니다.


그럼 무엇이 출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나갈 말을 지나가게 둘까요.
저는 마음 안에 단단한 기준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저는 뿌리라고 불러요.

우리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 한 줄이 마음에 새겨져 있으면,
같은 말을 들어도 그 말이 나를 통째로 뽑아가지는 못해요.
바람에 잎이 흔들려도, 뿌리 깊은 나무는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요.


뿌리가 얕으면 반대예요.
좋다는 말 한마디에 이쪽으로 쏠리고,
늦었다는 말 한마디에 저쪽으로 쏠려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마음만 더 어지러워져요.
돌아갈 자리가 없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늘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에요.
저라고 처음부터 마음 편히 책만 읽혔을까요.
두렵고 답답한 밤이 참 많았어요.
다들 무언가를 시키는데 나만 손 놓고 있는 것 같아서,
이러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내가 지금 아이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따라 해본 적 있어요.
남들 한다는 선행을 따라 진도를 쭉쭉 빼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자꾸 불편했어요.
이게 정말 혜린이한테 맞는 걸까.
아니면 그냥 불안한 내 마음을 달래려고 시키고 있는 걸까.
아이 얼굴을 보는데 아이는 잘 안 보이고, 내 불안만 잔뜩 보였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겠더라고요.
아, 이건 내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니라
잠깐 나를 흔들고 지나갈 소리였구나.
내가 그 소리에 잠깐 휩쓸렸던 거구나.

그걸 알아챌 수 있었던 건, 제 안에 돌아올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그 오래된 한 줄이요.

흔들릴 때마다 저는 매번 그 자리로 돌아왔어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하죠.
저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려요.
흔들렸다고 해서 잘못 키운 게 아니라고.
흔들리면서도 뿌리만 놓지 않으면, 그래도 꽃은 핀다고요.


그러니 지금 누군가의 말 때문에 마음이 자꾸 시끄럽다면,
조급하게 답을 찾기 전에 잠깐 멈춰보세요.
마음이 출렁일 때 내린 결정은, 대개 내가 아니라 내 불안이 내린 결정이거든요.
물결이 가라앉고 나면, 그제야 아이가 다시 보이기 시작해요.


오늘 내 마음을 흔들고 간 그 말은,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을까요.
아니면 잠깐 지나갈 소리였을까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